언어별 명칭 | |
우크라이나어 | Мала Русь, Мала Росія, Малоросія |
러시아어 | Малая Русь, Малая Россия, Малороссия |
영어 | Little Rus', Little Russia, Malorussia |
그리스어 | Μικρὰ Ῥωσία |
1. 개요
[clearfix]소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명칭이다.2. 상세
"소러시아"라는 명칭은 현대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과 벨라루스인의 시초인 루스인(Rus')들에서 비롯된다. 후술하겠지만 애초에 "러시아"라는 국가가 생기기 이전부터 쓰인 명칭이다. '소러시아'라는 명칭은 오히려 동로마 제국에서 루스 서부와 동부에 각각 두 대교구를 설치하면서 만들어졌다. "소러시아"라는 명칭에서 러시아와의 연관성을 연상하는 것은 "러시아" (Russia)와 "루스" (Rus') 간의 혼동에서 비롯된다. "러시아"라는 명칭의 국가는 1547년 루스 차르국의 성립으로 등장, "루스"에 국가 이름 접미사 -ia를 붙이면서 러시아가 된 것. 따라서 본래 "러시아"라는 명칭은 현대 러시아 뿐만이 아니라 전 루스, 즉 동슬라브 루스 계열 민족 모두를 아우르는 명칭으로 쓰였으며 현대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벨라루스인은 각각 소러시아, 대러시아, 백러시아라고 개별분류되었었다.[1] 하지만 19세기와 20세기를 거쳐 "러시아"라는 명칭이 과거 대러시아라고 불렸던 현대 러시아를 지칭하는데 정착되면서 과거 "루스"를 지칭하는데 쓰인 "러시아"라는 명칭과 소러시아, 백러시아와 같은 파생형들에 혼동이 생긴 것.[2]또한 "소러시아"와 "대러시아"라는 명칭 용례에 소(小)와 대(大)의 사용의 정확한 원인은 불명이다. 다만 소폴란드와 대폴란드나 그리스가 남이탈리아 지역을 "대그리스"라는 명칭으로 부른 용례와 같이 그리스/로마 지리학자들이 지역 구분에 대/소를 사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소러시아/대러시아의 경우에 어느게 '소'고 어느게 '대'인지의 결정이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그저 추측만 가능할 뿐.
다만 소러시아의 영역은 지속적으로 변동되어 왔고, 중세 시기에는 갈리치아-볼히니아를 지칭하던 '소러시아'는 17세기에는 르비우에서 키예프를 아우르는 지명으로 확대되었다.
3. 역사
"소러시아"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확인되는 사례는 1355년, 루테니아 왕국의 왕 유리 2세의 칙령에 '전(全) 소러시아의 왕 (Dux totius Russiæ minoris)'라고 서명한 것이다. 이후에도 칼리스투스 1세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가 루스에 교구좌를 신설할 때에 대러시아와 소러시아를 언급하며, 폴란드 왕국의 카지미에시 3세는 자신을 "레히아와 소러시아의 국왕"으로 칭했다.이후, 특히 루테니아 왕국의 멸망 이후 사용이 뜸해졌다가 17세기 초반부터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정교회 사제들에 의한 용례가 발견된다. 14세기 이후 1600년을 기점으로 발견되는 이 '소러시아'의 정의는 정교회를 믿는 폴란드-리투아니아 하 루테니아계 땅을 일컫었다.
또한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충돌한 러시아는 1654년, 보흐단 흐멜니츠키를 위시로 한 카자크의 충성을 서약받은 후 드니프로 강 좌안 (동안)의 북부 우크라이나를 '소러시아'로 지칭하기 시작한다. 폴란드 분할 이후 드니프로 강 우안 (서안)의 우크라이나 상당수도 러시아의 휘하에 들어감과 함께 17세기 초반의 기록에 '소러시아'로 지칭되었던 서부 우크라이나 상당수 또한 소러시아라 지칭되었으며 이후 현 우크라이나를 '소러시아'라 지칭하는 추세는 20세기 이전까지 계속된다.
오늘날 소러시아라는 명칭은 현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확장주의적 행보를 옹호하는 형태로 쓰이기도 한다. 가령 우크라이나를 소러시아라고 칭함으로써 우크라이나가 곧 러시아의 영역임을 주장하고 우크라이나인과 국가 우크라이나의 자주성을 부정하는 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가 파탄에 이른 지금 우크라이나인에게 우크라이나를 '소러시아'라고 지칭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