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문화유산 | 1980년 모헨조다로 고고 유적 موئن جو دڑو اصلی نام (موہانڑوجودڑو) یعنی موہانڑو قوم کا ٹیلہ وادی سندھ کا سب سے پرانا قبیلہ میں آثار قدیمہ کے کھنڈر | 1980년 탁실라 ٹیکسلا | 1980년 타흐티바히의 불교 유적과 사리바롤의 도시 유적 تخت بھائی کے بدھ کھنڈر اور قربی شہر سیری بہلول کی باقیات |
1981년 라호르 성과 샬리마르 정원 قلعہ لاہور اور شالامار باغ | 1981년 타타의 역사 기념물 مکلی کا قبرستان, ٹھٹہ | 1997년 로타스 요새 قلعہ روہتاس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모헨조다로 고고 유적 |
영어 | Archaeological Ruins at Moenjodaro | |
프랑스어 | Ruines archéologiques de Mohenjo Daro | |
국가·위치 | 파키스탄 신드 주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87년 | |
등재기준 | (ii)[1], (iii)[2] | |
지정번호 | 138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 중 하나
언어별 명칭 | |
우르두어 | موئن جو دڑو |
영어 | Moenjodar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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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키스탄 중남부에 있는, 인더스 문명이 기원전 2600여 년 전 남긴 최대의 도시 유적. 수쿠르에서 서남쪽으로 70 km 거리에, 라르카나에서 서남쪽으로 20km 떨어진 인더스 강 서안의 언덕에 자리한다. '모헨조다로'라는 이름은 '사자(死者)의 언덕'이라는 뜻이다.[3] 인더스 문명을 지금의 북부 인도인의 조상인 인도아리아인이 정복했는데, 이때 멸망한 문명의 중심지가 바로 이곳, 모헨조다로였기 때문.
건물 대부분을 벽돌로 지었다. 당시에는 2층 건물을 올리는 방법이 없어 모든 건물은 1층이지만, 사막의 더위를 피해 높게 지은 것이 특징이다. 꽤나 정교한 계획도시였기 때문에 전체적인 모습은 바둑판에 가깝다. 각 건물 사이 도로를 열 십(十) 자로 내었고, 그 좌우로는 벽돌은 한 층 낮추어 만든 수로를 파서 하수도 시설을 갖추었다. 또한 이 도시에는 거대한 대중 목욕탕이 있었는데, 모헨조다로는 근대 이전의 도시로서는 매우 특이하게도 사원이 없었기 때문에 종교와 관련된 시설은 아닌것으로 보인다. 이렇듯이 사원이 존재하지 않는데다가 모든 집들과 무덤의 규모가 비슷하기에 상하계급의 구분이 없는 철저한 무역도시였다고 추측한다. 특히 주변에 비슷한 유적 천여 곳이 존재하므로, 강줄기 물류망를 따라 발달한 무역도시들중 하나였을 듯하다.
모헨조다로 유적지에서 놀라운 기술력의 예시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하수도 시설과 대중목욕탕(대욕장) 시설이다. 둘 다 성능이 대단히 뛰어났다고 한다. 목욕탕은 벽면에 콜타르를 발라 방수처리를 했는데 지금도 손상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를 두고 '오늘날과 별 다를 바 없는 목욕탕' 운운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원전 시대 기준으로 굉장히 선진적인 기술력이지 현재의 관점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일례로 모헨조다로에는 각 가정의 생활하수를 배출하고 한 곳에 모아 저장하는 하수도 시설이 있었는데, 하수관이 역류하여 냄새가 극심하였을뿐더러[4] 일정주기로 모아놓은 하수가 범람하였다고 한다.
파키스탄의 대표적인 유적지이자 관광지로, 유적지 바로 북쪽에 공항까지 있다. 유적지와의 거리가 불과 300m도 되지 않아 1967년 건설 당시에 유적이 훼손될까 우려가 많았지만, 건설이 진행되고 공항이 완공된 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별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모헨조다로 공항은 인근 인구 50만의 도시인 라르카나의 수요 역시 감당한다.
2022년에는 홍수로 유적의 벽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있었다. #
2. 인더스 문명의 유산
더불어 인더스 문자가 쓰인 유물들도 출토되고 있지만, 그 의미는 현재까지 해독되지 못하고 있다. 문자를 해석하려면 기다란 문장이 필요한데 인더스 문자는 도장, 벽 등에 그려진 단어들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해독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세계 4대 문명의 문자 중 유일하게 해독되지 못한 문자이다.
1965년 이후 더 이상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다. 영국인들과 인도인들이 옛날 인도 문명과 연관이 있을까 해서 연구했지만, 194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었다. 그나마 허용하던 외국 연구자들도 1965년 이후로는 지반침식이라는 핑계를 대고 더 이상 발굴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모헨조다로의 인지도가 많이 떨어졌다.[5] 위에서 1978년 연구자들이 들어갔다고 했지만 그들은 제대로 된 고고학자가 아닐 확률이 높다. 이들이 펴낸 책에 고대 핵전쟁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어떤 수준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