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명 | 목홍석(睦宖錫) |
본관 | 사천 목씨[1] |
출생 | 1885년 2월 23일 |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서문리 | |
사망 | 1928년 4월 20일 |
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2묘역-451호 |
서훈 |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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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85년 2월 23일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화계리에서 태어났다. 원래 보명(譜名)은 21세 항렬자 석(錫)을 사용한 목홍석(睦宖錫)이다.그의 아들인 목일신(睦一信, 1913~1986)은 아동문학가, 시인이며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국민동요 자전거의 가사를 만든 사람이다.[3]
목치숙은 고흥군에 위치한 기독교 교회의 목사였다. 그는 고흥군수, 순천법원 지청장, 순천헌병분대 감독보조원 등에게 독립선언서를 발송하였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19년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았고 항소했지만 대구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기각당하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0년 고흥읍내 기독교 청년들을 모아 고흥기독교청년회를 창립하고 총회를 열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조선청년연합회에 가입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동들을 위해 야학회를 설치하고 한글, 한문, 산술 등을 가르쳤다.
1923년 고흥기독교청년회 주관으로 물산장려운동(物産奬勵運動)에 참여해 일제로부터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 조선산 의복을 입게 하고 우리의 토산품을 사용하는 등 단연을 통한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1928년 경상남도 사천에서 사망했으며,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