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5 20:31:13

미국 길들이기



1. 개요2. 내용
2.1. 반미주의의 원인2.2. 저항전략
2.2.1. 균형(Balancing)2.2.2. 망설임(Balking)2.2.3. 속박(Binding)2.2.4. 공갈(Blackmail)2.2.5. 정통성 흠집 내기(Delegitimation)
2.3. 순응전략
2.3.1. 편승(Bandwagoning)2.3.2. 지역균형(Regional Balancing)2.3.3. 결속(Bonding)전략2.3.4. 국내정치침투(Domestic Political Penetration)
2.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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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길들이기>(Taming American power : the global response to U.S. primacy)현실주의 국제관계학 학자인 스티븐 월트(Stephen M. Walt) 하버드 대학교 교수가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어떻게 상대하는지에 관하여 2005년에 저술한 책으로, 국내에는 2007년에 출간되었다.

2. 내용

정치현실주의에서는 국제관계를 강대국이 주도한다고 전제하기에, 대개 미국의 관점에서 세계를 어떻게 상대하여야 하는가를 살펴보는 것과 다르게,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어떻게 상대하는지를 다룬다. Taming American Power, 아카이브

책의 역자는 한국인들이 미국에 대해서 감정만 발산할 뿐,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스웨이그(Sweig)는 <프렌들리 파이어>(Friendly Fire)에서 한국에서는 '반미(美)', '친미(美)', '연미(美)', '항미(美)' '용미(美)', '혐미(美)', '비미(美)' 등 미국에 대한 다양한 감정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막상 감정의 분출만 있을 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논의가 부족하다. 무엇을 할 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근본적인 고찰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다른 국가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 길들이기, 옮긴이 서문, 15p

아무리 미국의 힘이 강력해도 신처럼 전능하지는 않으며, 미국이 공격적이고 일방주의적으로 행동한다면 다른 국가들은 순순히 복종하기보다는 저항한다. 따라서 미국은 다른 국가들의 협력을 얻어야 목표를 원활히 달성할 수 있다. 월트는 강대국을 상대하는 약소국들의 전략을 분석하면서 사회학과 인류학까지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감옥, 강제수용소, 노예 사회, 봉건질서 와 같이 강자가 약자를 완벽히 지배하는 것으로 보이는 관계에서도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하며, 지배당하는 약자들이 대응하는 다양한 방식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교도소장이나 간수가 수감자들의 모든 행동을 일일히 감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떤 규칙 위반을 처벌하고 어떤 일탈은 눈감아야 할 지를 선택적으로 판단해서 상벌 체계를 수립하지만, 수감자들은 이런 규정을 교묘히 회피하기 마련이고, 결국 모든 규정 위반 행위를 일일히 다 잡아서 근절시킬 수는 없다. 또한 가족관계에서 부모가 자식보다 강력하기에, 밤 늦게까지 자지 않는 자녀를 들어서 억지로 잠자리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아이가 잠들기를 거부할 수 있다.

이처럼 다른 국가들도 미국의 강력한 힘에 대항하여 다양한 전략을 사용한다. 첫째가 균형(balancing)전략이다. 정치현실주의에서 익숙한 다른 국가와 연합하는 세력균형의 개념이다. 망설임(balking)전략은 미국의 요청을 무시하거나 지연시키거나 거의 최소한으로 실행하면서, 미국의 요구를 완전히 거부하였을 경우의 충돌을 피한다. 속박(binding)전략은 미국의 활동을 옭아매기 위해서 국제 규범과 제도를 이용하는데, 국제 경제 문제에 있어서 효과적이다. 공갈(blackmail)전략은 미국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에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겠다고 위협한다. 정통성 흠집 내기(delegitimation)전략은 미국의 정당성을 공격하여 미국의 위상과 위신을 실추시키는 것으로, 한국인들이 유교 성리학의 대의명분론으로 익숙한 개념이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위협에 굴복하여 미국의 힘을 수용하고 협조하는 경우에는 편승(bandwagon)전략을 선택하는데, 이런 경우는 거의 보기 힘들다. 국가들이 미국과 협력하는 것은, 대부분 주변의 위협을 억제해줄 역외 세력 균형자로서의 미국의 보호가 필요해서이지, 미국의 위협에 굴복해서가 아니다. 또한 결속(bonding)전략으로 미국 관리들과 개인적인 유대를 형성하고, 특정한 미국의 정책에 지지를 표명하면서 미국의 활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기도 한다. 침투(penetrating)전략은 미국의 의사결정구조에 침투하여 은밀히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으로, 스티븐 월트의 다른 저서인 <이스라엘 로비>가 잘 설명한다.

2.1. 반미주의의 원인

미국에 대한 전세계적인 반발은 미국의 우월한 힘이나 미국의 가치관에 대한 근원적인 반감에 의한 것 보다도, 미국이 위선적이고 일방주의적으로 행동하면서 역사적인 원한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미국이 민주주의적 선거로 선출된 정권들을 전복하고 친미 독재정권들을 수립했었는데, 대표적으로 1953년 이란 모사데크 정권, 1954년 과테말라, 1953년과 1964년 영국령 기아나, 1957년 인도네시아, 1963년 에콰도르, 1964년 브라질, 1965년 도미니카 공화국, 1950년대 코스타리카, 1973년 칠레 등이 있다.
실제로 미국의 위선 사례는 매우 많다. 미국 지도자들은 툭 하면 자유무역 원칙을 원용하며 교역 대상국들이 미국 상품에 대한 무역장벽을 설치하는 행위를 비난했지만, 강력한 미국 내 이익집단이 해외 상품과의 경쟁으로 위협을 받으면 이러한 원칙을 내팽개쳤다. 미국은 다른 국가에 압력을 넣어 대량살상무기를 입수하거나 실험하지 못하게 하며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까지 감행했다. 그러나 미국은 1,000번이 넘는 핵 실험을 강행했으며 7,000기가 넘는 현용 수소폭탄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다른 국가들에 강요한 것과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스스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임을 자부하고 있지만 미국은 수년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지지했다. 심지어 미국은 지정학적 이익에만 부합하면 사담 후세인 같은 잔혹한 독재자들도 지원했고, 지금도 파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다른 친미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있다.
스티븐 월트, 미국 길들이기(Taming American Power), 제2장 분노의 근원, 130~131p
위선적인 외교정책은 미국에 많은 문제를 안겨주며, 특히 미국이 누리는 초강대국의 위상에 큰 부담을 안겨준다. 첫째, 미국 스스로 특정한 윤리적 원칙에 근거하여 행동한다는 점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일정한 윤리적 기준에 따라 행동하며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준수한다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고 위선적으로 행동하면 미국의 도덕적 우위나 미국이 한 약속에 대한 신뢰에 심각한 불신이 싹트게 된다. 다른 국가들은 세계 최강대국이 부도덕하게 행동할수록 더욱더 부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미국이 위선적으로 행동할수록 미국의 전 세계적인 우위에 대한 정당성은 약화되게 마련이다. 둘째, 다른 국가에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규범을 미국 자신이 무시한다면 미국은 규범에 구속될 의향이 없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힘을 휘두를 것이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이러한 행동은 다른 국가들의 분노를 초래할 뿐 아니라 미국의 힘 그 자체에 대한 잠재적인 두려움을 증폭시킬 공산이 크다.
스티븐 월트, 미국 길들이기(Taming American Power), 제2장 분노의 근원, 132p
역사적 망각
앞서 언급했듯이 만일 다른 국가들이 미국이 과거에 자신들을 괴롭혔고, 특히 자신들이 먼저 시비를 걸지도 않았음에도 괜히 잔인하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생각한다면 이 국가들은 미국이 미래에 또 무슨 짓을 할 것인지에 대해 의심하고 미국의 강력한 힘에 분개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 겪은 굴욕이나 고생에 대한 기억은 아주 천천히 잊히며,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고난을 가해자들이 잊은 뒤에도 여전히 기억하게 마련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미국이 예전에 간섭한 기억으로 깊은 감정의 골이 패여서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가 극도로 어려울 때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다른 국가들이 여전히 기억하는 이와 유사한 사례 중에는 미국이 기억을 묻기 위해 별짓을 다한 경우도 있다. 물론 모든 국가가 자신의 고유한 역사를 빛내고자 부정적인 기록은 삭제하기도 하며, 자신들이 저지른 가장 사악한 죄상은 종종 경시하거나 아예 무시할 때도 있다. 비록 국가들이 예전에 저지른 엄청난 잘못을 인정하더라도, 이러한 행동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불가피했다고 항변하거나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나쁜 짓을 했다고 지적하면서 물귀신 작전을 시도할 때도 있다. 미국과 같이 열린사회에서는 극심한 역사 왜곡이 자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이런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월트, 미국 길들이기(Taming American Power), 제2장 분노의 근원, 138~139p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한결같이 고귀하고, 원칙에 입각하며, 호의적이라고 묘사하면서, 미국은 자국민에게 전 세계에 많은 축복을 '베풀어'주었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은 미국에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의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표하지 않는 경우, 우리는 이들이 선천적으로 적개심이 강하거나 혹은 일종의 반미이념이나 이질적인 문화, 종교적 광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판단을 내린다. 우리가 일단 이런 식의 결론을 내리고 나면 이 집단들은 당연히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미덕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동시에 과거의 실수를 망각함으로써, 왜 다른 나라가 우리를 불신하거나 싫어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현존하는 갈등을 더욱더 악화시키는 대응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스티븐 월트, 미국 길들이기(Taming American Power), 제2장 분노의 근원, 141p

2.2. 저항전략

미국에 저항하는 경우는 크게 세가지 조건이 있다. 양보할 수 없는 핵심적인 이해관계가 미국과 정면으로 충돌해서 미국의 반발이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경우, 미국에 맞서더라도 미국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숨길 수 있는 경우, 미국이 너무 많은 문제로 정신이 없어서 새로운 도전에 대응할 여유가 없는 등, 반항하는 국가에 대응하여 마땅히 보복할 수단이 없거나, 보복해봤자 이득보다 손해가 커서 대응할 수 없을 경우이다. 이러한 조건들에 해당할 경우에 다른 국가들이 미국에 저항한다. 미국에게 정면으로 대항하지는 않더라도, 미국이 대응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도록 사소한 정도로 소극적인 저항을 하는 살라미 전술도 가능하다.

2.2.1. 균형(Balancing)

미국에 대항하여 공식적인 반미 동맹을 형성하는 세력균형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예측하였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에 대항하는 반패권적 동맹의 위험성을 경고하였고, 스티븐 월트는 그것은 미국이 매우 무능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다. 스티븐 월트는 방어적 현실주의에서 케네스 월츠의 세력 균형을 위협 균형으로 발전 시켰다. 단순히 미국이 강하다고 해서 미국에 대항하는게 아니라, 미국이 매우 공격적이고 일방적 위협적으로 느껴져야지만 미국에 대항한 연합 세력이 형성된다.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중국, 러시아 그리고 아마도 이란이 합세한 거대한 동맹이 형성되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통합된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불만감에 의해 통합된 '반패권' 동맹이다. 이것은 그 규모나 영역면에서 과거 중 · 소 진영에 의해 제기되었던 도전을 상기시켜 줄 만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국이 주도국이 되고 러시아가 추종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가능성이 아무리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이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유라시아의 서쪽과 동쪽 그리고 남쪽에서 동시적으로 미국이 지정 전략적 기술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거대한 체스판, 80~81p
미국의 지리적 특성은 러시아, 중국, 인도를 포함한 반미동맹 결성이 왜 용이하지 않은지를 잘 설명해 준다. 이 국가들은 기나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으며 오랫동안 갈등이 있었고 여전히 서로 상당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고 있다. 물론 미국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행동한다면 미국을 포위하는 거대한 반미동맹 세력의 결성을 배제할 수야 없겠지만, 이는 미국이 실수를 거듭하고 매우 무기력하며 무능해야 가능할 것이다.
스티븐 월트, 미국 길들이기(Taming American Power), 55p

공식적인 반미 군사 동맹을 결성하는 견성균형(Hard Balancing)전략 보다는, 연성균형(Soft Balancing)전략을 선택할 것이라 한다. 미국에 저항할 수 있는 군사적 기술 능력을 공유하거나, 국제기구에서 서로 공동 대응하거나, 미국이 배제된 상호 협력관계를 추구하는 등의 사례가 있다.

외부균형 대신에 내부균형(Internal Balancing)을 추구할 수 있다. 재래식 전력에 의한 전통적인 군사행동 대신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분야에서 비대칭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당시 한창 진행중이던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테러리즘 비정규전과 대량살상무기를 예시로 든다. 또한 중국의 무제한 전쟁(초한전)을 예시로 든다.

2.2.2. 망설임(Balking)

미국의 요청이나 요구에 협조하지 않으려고 할 때 사용하는 저항 전략이다. 미국의 요청에 공식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최소한으로 이행하면서 질질 끄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은 무단 점령지의 불법 정착촌 문제에 대하여 미국이 항의하면 공식적으로는 미국에게 동의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이행하지 않는다. 또한 무임승차(free-riding)의 방식이 있다. 미국의 전략 목표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떠넘기려 한다. 미국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힘이 강력한 시기에 매우 효율적인 전략이다.

2.2.3. 속박(Binding)

국제기구나 제도와 규범과 법에 의하여 미국의 행동을 억제하고 속박하는 전략이다. 미국이 우월한 분야에서 대놓고 이중잣대를 사용하고 일방주의적으로 폭주하면 미국의 정당성이 손상되기는 하지만, 미국의 행동을 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이 규범을 위반했을 때의 이득보다 손해가 큰 경우에는 미국의 행동을 억제할 수 있으며, 경제 통상이 대표적인 분야이다.

2.2.4. 공갈(Blackmail)

미국을 상대로 위협과 압박을 통해서 양보를 얻어내는 전략으로, 다음과 같은 필요 조건들이 있다. 첫째, 미국의 이익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둘째, 위협이 진짜로 실행될 수 있다고 인식될 정도로 확실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미국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협박이 실행되는 것이 공갈꾼에게 이익이 될 수 밖에 없다면, 진짜로 협박이 실행될 수 있다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셋째, 협박하는 내용은 미국이 쉽사리 저지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넷째, 공갈꾼은 미국이 일단 시키는 대로만 하면 더 이상의 위협은 없을 것이라고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위협이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리라고 예상된다면, 미국은 협박에 굴복하기보다는 피해를 감수하려 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만 약소국이 공갈전략을 성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① 미국이 원치 않는 행동을 저지를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② 미국이 이런 행동을 간단하게 막을 수 없어야 한다. ③ 요구 사항이 너무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④ 양보할 경우에는 협박을 실행에 옮기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이 믿을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냉전 종식 후 '효과적인 공갈전략 이용' 분야의 세계 챔피언은 단연 북한이다.
스티븐 월트, 미국 길들이기(Taming American Power), 202p
공갈은 동맹국들 간에 쓸 수 있는 전략으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국가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힘이 센 후견국을 상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기본 원리는 동일하다. 약한 동맹국이 후견국이 원하는 행동을 하는 대가로 뭔가를 뱉어내게 설득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후견국이 반대하는 행동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가령 냉전기 동안 소련과 미국의 피후견국들은 자신들의 후견국에게 진영을 바꾸거나 탈퇴하겠다고 협박을 하거나 심지어 완전히 주저앉아 버리겠다고 협박해서 후견국에게서 많은 이익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집트의 지도자였던 가말 압델 나세르는 1970년에 자신이 물러나고 친미 성향의 후계자를 대통령으로 앉히겠다고 협박하여 소련에게서 더 많은 군사 원조를 받아냈다. 그리고 고딘 디엠이나 응구옌 반 티유 같은 남베트남 지도자들은 더 많은 원조가 없다면 그냥 잠적하여 베트남을 공산주의자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하겠다고 암묵적으로 협박을 해서 미국에게서 추가 지원을 받아냈다. 냉전 당시 두 초강대국은 자신들의 이익와 위신이 이런 피후견국들의 운명에 달려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들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며 이러한 공갈전략으로 때때로 상당한 원조를 이끌어냈다. 마찬가지로 한국, 대만 일본은 미국에게서 재래식 군사 원조와 안보 보장을 받아내기 위해 '핵무장'을 하겠다고 은근히 위협을 한 적도 있다.
스티븐 월트, 미국 길들이기(Taming American Power), 206~207p
역설적으로 공갈전략은 적성국보다는 동맹국들에게 더 용이하게 먹혀든다. 동맹국들은 양보를 받아낼 수 있다. 동맹국들은 양보를 받아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뭔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취하겠다고 위협할 수도 있지만, 전쟁까지 도발하리라는 우려는 안겨주지 않는다. 반면 적국들이 너무 심하게 밀어붙이면 미국은 완전히 돌아서서 공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북한의 핵 공갈전략은 참으로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비용 부담이 적고 잽싸게 수행할 수 있었다면 얼마든지 북한 내 정권 교체를 부추겼을 것이다. 그러나 딱히 손쉬운 해결책이 없었기 때문에 초강대국인 미국마저, 핵무기는 만들 수 있으나 국민들은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는 별 볼일 없는 국가에 계속 시달리고 있다.
스티븐 월트, 미국 길들이기(Taming American Power), 209~210p

한국도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의 휴전 협상에 반대하여 반공 포로를 석방하거나, 단독으로 북진하겠다고 위협하여서 미국의 휴전 협상을 훼방놓았었다.

2.2.5. 정통성 흠집 내기(Delegitimation)

미국의 도덕성이나 정당성, 위신을 실추시키는 것이다.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관타나모 수용소, 인디언 전쟁, 더러운 전쟁, 하워드 진이나 노엄 촘스키, 올리버 스톤, 윌리엄 블럼(William Blum) 같은 것이다. 조지 워커 부시 같은 네오콘이 집권했을 경우에는 폭발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다. 보통 진보주의자들이 자주 사용하지만, 보수주의자들도 사용 가능하다. 정통성 흠집 내기는 유교 성리학의 대의명분론과 유사한데, 유교적 가치관이 강한 한국인들이 평상시에도 자주 사용한다.

정통성이 실추되고, 국제적 여론이 악화되면, 다른 나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미국의 역량이 약해지고, 미국의 이미지와 미국 기업들의 브랜드를 손상시키고 불매운동을 촉발하는 등, 나름 타격이 있다. 미국의 힘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서 미묘하고도 아주 느리게 진행되는데, 점진적으로 미국이 국제적인 저항에 직면하여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만든다.

2.3. 순응전략

2.3.1. 편승(Bandwagoning)

미국의 위협에 굴복하여 복종하는 경우이다. 미국의 압도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약소국들은 자신들의 핵심이익이 침해당한다면 기꺼이 미국에게 저항하려고 하며, 네오콘의 무력 외교에도 불구하고 반미 국가가 친미 노선으로 전환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오히려 미국의 위협은 다른 국가들이 미국에 대항할 수단으로 핵무장을 추진하도록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간혹 미국의 무력 외교의 옹호하는 근거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가 핵개발을 포기한 것을 제시하는데, 당시 미국은 리비아를 상대로 군사적 위협을 하지도 않았으며, 조지 워커 부시가 제시한 악의 축에도 리비아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게다가 리비아의 핵 프로그램은 별로 진전되지도 않았었는데, 이것은 핵무장이 카다피에게 주요 목표가 아니었다는 것이고, 카다피는 핵무장의 이익보다 경제적 외교적 부담과 비용이 더 커서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한 것이다. 즉 리비아는 미국의 공격을 두려워해서 정책을 바꾼 것이 아니라, 경제적 동기로 노선을 전환한 것이다.

2.3.2. 지역균형(Regional Balancing)

결과적으로 미국과 협력을 한다는 점에서 얼핏 편승과 비슷해 보이지만, 동기가 다르다. 역외세력균형(offshore balancing)은 주변국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하여 멀리 떨어진 미국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사자성어로 원교근공이라고 한다.

2.3.3. 결속(Bonding)전략

단순히 미국과의 제휴를 통하여 보호받는 것을 넘어서, 긴밀한 전략적 유대 관계를 가지고, 미국의 정책이나 구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의 관계, 일본과 미국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영국에서는 부시의 푸들이라고 불렸던 토니 블레어가 대표적이고,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가 QUAD와 TPP를 지원하였고, 심지어 트럼프와 골프 치다가 골프장에서 백텀블링까지 하였다.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으려면, 근본적인 국가의 이익이 미국의 이익과 양립 가능하고, 서로 상호 존중하여야 한다. 결속전략이 성공하려면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한국이 북한이나 일본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취하였는데, 상대가 화답하지 않으면 무산되듯이, 친미 정책을 펼치는 정부에 미국도 화답해서 어느 정도 양보를 해줘야 한다. 미국에게 올인하는 외교를 했는데도 보상으로 돌아오는게 별 거 없으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2.3.4. 국내정치침투(Domestic Political Penetration)

미국 정부의 희망에 맞춰서 무기력한 충성을 바치는 대신에, 미국의 힘을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교묘히 조종한다.(manipulate) 어찌보면 책 제목인 <미국 길들이기>에 가장 부합하는 전략이다. 스티븐 월트의 책 이스라엘 로비가 잘 설명한다.

2.4. 결론

첫째, 미국 지도자들은 불필요한 전쟁을 수행하는 식으로 쓸데없이 미국의 힘을 탕진시키거나 미국 경제를 망가뜨려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둘째, 미국은 다른 국가들이 새로운 역량을 확보하거나 다른 국가와 합세하여 세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힘을 강화시킬 구실을 더 이상 주어서는 안되며, 각 지역에서 안보 문제가 떠오르면 모두들 미국에 도움을 구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미국을 상대로 다른 국가들이 균형전략을 구사하려는 시도를 좌절시켜야 하며, 우리를 통해 지역균형전략을 전개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스티븐 월트, 미국 길들이기(Taming American Power), 289p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3가지의 거대 전략을 살핀다. 첫째로, 세계패권(global hegemony)의 추구는 오히려 전 세계에서 미국의 위상을 실추시켰으며, 총구를 들이대면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요하는 행위는, 민주주의가 서구 제국주의의 도구이며 꼭두각시라는 주장을 강화시켰다. 현대에는 민족주의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제국주의적 정책은 불가능하다. 둘째는 선택적 개입(selective engagement)은 군비경쟁을 막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지역에 군대를 주둔시키지만, 예방전쟁을 하지는 않으며, 미국의 가치관 전파를 위한 성전을 추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선택적 개입의 주장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별로 선택적이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세번째로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은 미국의 핵심 이익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을 경우에만 힘을 해외에 투사한다. 미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핵심지역은 유럽과 아시아의 산업화된 지역과 페르시아만 지역이고, 이런 지역을 미국이 직접 통제하기보다는 적대적인 강대국의 지배에 들어가지 않게만 막으면 되고, 이를 위해 지역의 세력균형에 의존한다. 만약 지역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세력균형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에만 미국이 개입하여야 한다. 역외균형은 고립주의 정책이 아니다.

미국은 다양한 적들에게 악의 축이나 추축국이라는 꼬리표를 함부로 붙여서는 안되는데, 이러한 행위는 자기 실현적 예언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적들이 서로 손잡고 함께 미국에 대항하도록 몰고 가서는 안되며, 적들을 이간질하고 각개격파해야 한다.

해외에 방대한 병력을 유지하기보다는 미군의 기동성을 증대시켜서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