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22 06:24:57

반주(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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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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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충렬왕의 후궁
반주 | 盤珠
생몰년 미상
본관 미상
반주(盤珠)
부모 미상
부군 충렬왕
자녀 슬하 1남
강양군 소군 왕서(江陽君 小君 王湑)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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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제25대 국왕 충렬왕의 후궁.

2. 생애

반주는 충렬왕의 첫 여자로 과거 충렬왕이 왕태손이 되었을 때 김준최의시비인 그녀를 바쳤는데, 반주가 총애를 받아 서장자인 왕서(王湑)를 낳았다. 이는 당시 제1비였었던 정화궁주가 입궁하기 전에 일이며 증조부 고종과 조부 원종이 모두 생존해 있을 때 태어났다.

훗날 충렬왕이 즉위한 후 충렬왕의 제1왕후인 제국대장공주도 그를 특별히 아껴 궁중에 출입하게 하고 그를 왕소군(王小君)이라 불렀다.

이어 중랑장(中郞將)에 임명된 후, 충렬왕의 뒤를 이어 황제의 숙위가 되려고 강수형(康守衡)에게 뇌물을 주고 청탁하자, 강수형이 원나라 승상(丞相) 안동(安童)을 사칭하여, 왕서더러 툴루게(禿魯花)를 거느리고 원나라로 오라고 고려에 지시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충렬왕 2년(1276년)에 왕서가 교만하고 방자하다는 이유로 머리를 깎이고 승려가 되었다. 이후의 생애는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그는 나중에 중랑장에 임명되었는데 왕을 이어 숙위하고자 하여 강수형에게 뇌물을 주고 청탁하였다. 강수형이 승상 안톤[安童]의 말이라며 사칭하며 고하기를, “왕서에게 툴루게[禿魯花]를 인솔하고 대원에 입조하라.”라고 하였다.

이 사건 이후 충렬왕 2년(1276) 왕이 왕서가 교만방자하다고 여겨 머리를 깎아 승려가 되게 하였다.

반주의 기록은 여기서 끝나며 그녀가 최의시비라는 태생적 출신 탓에 왕자를 낳았음에도 후비의 책봉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3. 가족관계

  • 배우자 / 남편
    • 남편 : 충렬왕 왕거(王昛)
      • 아들 : 강양군 소군 왕서(王湑)

[安童] 안동[禿魯花] 독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