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臘(? ∼1121)
1. 개요
북송 말기의 대표적인 민중 반란 지도자이면서 중국 고전소설 수호전의 등장인물로 잘 알려져있다. 한국에선 잘못된 두음법칙으로 인해 '방납'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목주 청해현 사람.2. 실제 역사
방랍에 대한 개인적인 사항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방랍의 난 지도자로만 알려져 있다. 송나라 휘종 시기에 강남(중국)은 화석강 수집을 비롯해서 지배층의 지속적인 수탈로 민심이 흉흉했는데, 결국 1120년 10월에 방랍이 농민들을 규합해 성공(聖公)이라 칭하고 영락(永樂)이란 연호를 쓰면서 관리와 장수를 두어 수건과 장식으로 구별하고 자홍색 두건을 최상으로 해서 모두 6등급으로 두었다.목주에서 반란을 일으켜 항주, 목주를 공격해서 6개주, 52개현을 함락하며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방랍의 반군은 초기에는 10만명 수준이었지만 나중에는 100만명까지 확대돼서, 결국 송나라 조정은 요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던 정예 병력을 돌려 진압에 나서야 했다.
정예병을 총동원한 진압작전 덕분에 반란군은 결국 1121년 청계전투에서 송나라 관군에게 참패하여 진압되었다. 패배한 방랍은 관군인 한세충에게 붙잡혀 아들과 동료 52명과 함께 개봉으로 압송되어 처형된다. 하지만 이 반란으로 송은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정강의 변이 일어나면서 북송은 멸망하고 만다.
수호전이나 일부 역사서의 영향으로 방랍이 송나라 멸망의 원흉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방랍의 난의 원인이 당시 송 조정의 가혹한 수탈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방랍은 단순히 살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고 볼 여지가 많다. 실제로 휘종은 자신의 취미인 화석강을 모으기 위해 끊임없이 백성들을 노역에 동원했으며, 심지어 화석강 운반 중에 집이 있으면 집을 부수고 논밭이 있으면 경작지를 갈아 엎어서 운반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으니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한 때 관리들을 식인하거나 100만 대군 수준으로 세력이 확대된 것을 보면, 조정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런데 방랍의 난을 강경 진압하면서 약 3백만명의 백성들이 죽거나 다치고 생계터전을 잃어 유랑하는 등 그 피해가 막대했지만, 방랍의 난이 진압된 지 2달만에 또 화석강 모으기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목주와 인근지역은 송나라에 대한 반감이 매우 높은 지역이 되었으며, 훗날 고종이 악비를 필두로 한 북벌을 시도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3. 수호전에서
수호전에서는 그야말로 최종보스격 존재. 전호, 왕경을 토벌한 후 등장하며 세력이 특히 강대하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 후 당연하다는 듯 송강이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토벌에 나서는데, 이후의 전개가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 수준. 야율휘, 전호, 왕경과의 싸움에서 한명도 죽지 않았던 양산박 두령들이[1] 갑자기 우수수 쓸려나가며 대거 사망하기 시작한다. 두령들 중 59명이 전사하고,[2] 10명이 병사하고 방랍 토벌 전에 조정에 남았거나(소양, 황보단, 김대견, 악화) 중도에 불려갔거나(안도전) 은거(공손승)한 사람, 토벌전 이후 도를 깨달아 승천했거나(노지심), 벼슬을 단념하고 절에 남거나(무송) 중도에 떠난 사람(이준, 연청, 동위, 동맹)도 있어서 토벌 후 온전히 동경으로 귀환한 두령은 27명이었다.그러나 두령들과 병력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송강과 노준의는 꾸역꾸역 반란을 진압해 나가고, 방랍은 결국 본거지가 함락되고 숨어다니다가 노지심에게 사로잡힌다.
사실 싸우는 건 방랍의 친족을 비롯한 부하들인 석보, 등원각, 여천윤, 사행방, 포도을, 정표, 여사낭, 방만춘, 왕인, 방걸 등이었고, 정작 방랍은 소설중에 그다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반란의 우두머리라 이름이 많이 회자되기 때문에, 독자들의 뇌리에는 최종보스격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
4. 기타 창작물
중국 드라마 43부작 수호전(1998) 및 86부작 수호전(2011)에서는 어째선지 방랍이 무예의 본좌로 등장한다. 이문열 평역 수호지에서는 방랍이 칼을 쥐는 대목조차 아예 없다. 즉 방랍의 무예에 관련된 대목은 아예 없다는 것이다. 특히 방랍은 후방에서 지휘만 하지 한번도 싸운 적이 없었고 도주하다가 노지심한테 손쉽게 잡혔다. 하지만 중국 드라마에서는 방랍의 무예가 거의 최고급이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방랍이 맞짱을 뜬 상대가 다름 아닌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은 무송이다. 아무래도 명색이 최종보스인만큼 클라이막스를 장식하기 위해 최종 보스 보정을 받아 보스급 무력이 부여된 듯. 전호, 왕경은 추가인물인데다가 전호는 딱히 개성을 부여할 요소가 없고 왕경은 대놓고 임충, 무송의 행적을 악랄한 형식으로 바꿔서 베낀 인물이다보니 등장시킬 만한 매력이 없어 수호전 원본의 등장인물에 실존인물이기도 한 방랍에 모든 최종보스의 면모를 부가했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들과 맞서는 위치에 있는 고구, 채경, 동관, 양전의 경우 수호전이나 역사상으로서나 무능한 간신배의 인상이 강해 능력을 높게 주기 어렵기에 실제로 강남(중국) 일대를 석권해 송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반란군의 두령이었던 방랍을 사실상 최종보스로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다.원래 수호전 원전 내용에 의하면 무송이 한 팔을 잘린 것은, 방랍의 부하 포도을과 싸울 때 포도을의 현원혼천검 때문이었다.[3] 하지만 유물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 국가답게 중국에서는 드라마, 영화에 도술, 요술 관련 건은 일절 등장시키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해당 내용을 변경해야 했고 더불어 입운룡, 공손승의 활약상이 많이 축소되고 고렴은 거의 얼굴만 보이는 수준이며 나진인, 교도청,[4] 포도을 등의 인물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아무튼 드라마에서 무송의 팔을 자르는 인물이 바로 방랍으로 설정된다.[5]
수호전에서는 그저 반란을 일으킨 악역으로만 묘사되며 방랍 토벌의 주체가 주인공인 양산박 두령들인 만큼 강남(중국)에 자행된 대학살이 반영안되고 그냥 악의 집단을 섬멸한 것처럼 묘사를 해놨지만 실제로는 휘종의 수탈에 견디지 못한 민중이 일으킨 반란이었던 만큼 이점이 재평가되어 대중매체에서 묘사되는 방랍의 모습도 가면갈수록 호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43부작 수호전(1998) 드라마에서 방랍은 아들 방천정, 부하들을 거느리고 갑옷과 투구를 입은 채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1994 삼국연의 84부작 드라마에서 왕평 역을 맡았던 배우가 여기서 방랍 역을 맡았다. 방랍은 언월도를 든 상태로 이규, 완소칠, 연청 등과 맞붙어 매우 잘 버텨나간다. 그러다가 아들 방천정이 뒤에서 찌른 노준의의 창에 가슴이 꿰뚫리고, 무송이 양손에 든 계도로 방천정을 찌르는 참담한 광경을 목격한다. 분노한 방랍은 무송에게 질주하고 순식간에 언월도를 휘둘러 계도를 쥔 무송의 한 쪽 팔을 그대로 잘라 버린다.무송은 엄청나게 비명을 지른다. 잘린 무송의 팔은 여전히 계도를 쥐고 있고, 땅에 쓰러진 방천정의 시신에는 잘린 무송의 팔이 쥔 계도가 박혀있다. 무송은 한 팔을 잃었지만, 그대로 돌격해 방랍을 덮쳐서 결국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86부작 수호전(2011) 드라마에서의 방랍은 더욱 용맹하다. 마지막 결전 부분에서 방랍은 쫓겨다닌터라 갑옷을 입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추격해 온 채원자 장청과 손이랑 부부를 살해한다.[6] 뒤따라와서 장청, 손이랑 부부의 시신을 확인하고 시신의 눈을 감겨 준 무송은 방랍을 죽이러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건물 안에서 밥을 먹던 방랍은 낌새를 알아차리고 무송과 일대일로 붙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송과 일대일로 붙어서 어느 정도 버틴 사람은 서문경[7], 장문신 등 이후 처음이다. 무송에 의해 다리 부분을 부상당한 방랍은 절뚝거리며 어딘가에 숨는다. 무송은 방랍을 찾으며 두리번거린다. 천려일실이라던가. 그토록 용맹한 무송도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방랍의 일격에 그만 당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방랍은 일단 무송에게 무언가를 던져서 정신 못 차리게 하고, 갈쿠리 같은 것으로 무송의 팔을 찌르고 그대로 기둥에 갖다 박아 버린다. 무송은 자신의 팔을 관통한 갈쿠리 뾰족한 끝이 기둥에 박힌 격이다. 방랍은 호랑이를 잡았다는 무송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냐며 비꼬지만 다친 본인의 다리가 아팠기에 절뚝거리며 건물 밖으로 나가려 한다.
무송은 아무리 해도 갈쿠리가 안 빠지고, 방랍은 달아나려고 하고 하자. 그만 자신의 계도를 들어 스스로 팔을 잘라버린다. 그리고 한 팔만 남은 육신을 방랍에게 던져 방랍을 깔아뭉개고 한 팔의 주먹으로 마구 구타한다. 결국 방랍은 실컷 얻어맞아 피떡이 된채로 잡힌다.묶여오는 방랍. 그러나 그 옆에 있는 무송의 한 팔이 없는 것을 송강, 노준의, 임충, 이규, 화영 등등이 목격하고 분노한다. 송강은 직접 칼을 빼들어 방랍을 죽이려고 하지만 노준의 등이 만류한다. 생뚱맞게 방만춘이 방랍을 구하겠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서 달려오는데 이규가 도끼를 들고 달려가는 순간, 임충이 먼저 장팔사모를 던져서 방만춘의 배를 관통시켜 즉사시킨다. 사실 방랍군 휘하 장수 중 본좌는 유성추와 벽풍도를 쓴 석보인데, 수호전 드라마에서는 석보는 안 나오고, 방만춘이 한다.
개봉 동경으로 돌아온 방랍 토벌군에 대한 논공행상이 끝나 살아돌아온 호걸들에게 보상이 내려지고, 방랍은 길거리에서 참수된다. 사실 방랍이나 송강이나 태생은 똑같은데, 108두령들이 방랍을 치다가 죽은 것은 사실 송강의 판단 착오에 의한 개죽음이라 하지만, 사실 개죽음은 아니다. 애초에 구천현녀가 송강에게 하늘의 부름에 따라가라고 말한 탓이다. 도입부를 보면 알지만, 송강 등 108호걸은 본래 봉인되어 있던 '마왕'이 인간으로 환생한 존재이다. 그들에게는 마왕의 본성에 따라서 지상을 혼돈에 빠뜨릴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천도에 따라서 살 것인가 하는 '운명적인 선택'이 제시되어 있을더러 나진인이 몇몇 이들이 죽어 갈 때가 되었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즉 천도에 따라서 마왕이 되지 않은 채로 운명적으로 죽은 셈이다. 애초에 방랍의 반란은 실제 역사에서 송강이 진압한 적이 있으니 동족사살은 아니다.
수호전의 스핀오프로서 중국 소설가 왕중문이 쓴 《수호별전》의 1부에서는 이 사람이 일으키는 방랍의 난이 중심소재로 등장한다.
김용의 의천도룡기에서는 명교의 교주로 언급된다. 각종 드라마에서 방랍의 무예가 범상찮은건 이 영향이 큰듯.
수호전 천도 108성에서는 평균적인 능력치를 갖고 있으며 직업은 무법자, 산사람. 능력치는 그저 그렇지만 과연 나라를 뒤흔든 반란군 지도자답게 초기 직업 레벨이 5다. 시나리오3에서는 플레이 가능한 호걸로 등장하며 어째서인지 소설에서 크게 활약한 적이 없는 누민중, 표문영, 조사원, 방모 등의 능력치가 매우 좋게 나왔다. 그래도 108명이 다 모여있는 송강급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송강 다음으로 강력한 세력.
[1] 전호 토벌전 과정에서 항복해 온 장수들이 왕경 토벌전에서 다수 죽기는 했다.[2] 전사로 분류된 두령들 중 시은, 공량, 후건, 단경주, 정득손은 조금 애매하다. 앞의 4명은 배를 타고 공략하다가 도중에 물에 빠져 익사, 정득손은 독사에게 다리를 물려 독이 온 몸으로 퍼져 사망한다.[3] 그것도 포도을 본인은 무예 실력이 좋지 않아 도술로 현원혼천검을 사용해서 이겼다.[4] 사실 1998년작이나 2011년작이나 전호나 왕경 토벌 건은 아예 잘렸다. (여담으로 2011년작에선 대요 전쟁까지 잘렸다) 때문에 전호 토벌에서 양산박 진영에 합류했던 호걸들은 두 드라마에서 일절 모습을 비추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경영은 2011년작에서 등장한다.[5] 사실 송사통속연의에서는 무송은 방칠불의 부하한테 팔을 짤린다.[6] 원작에서는 채원자는 방만춘이 구붕을 살해하자 퇴각하다가 방만춘의 병사들에게 살해당하고, 손이랑은 욱보사와 같이 두미한테 죽는다.[7] 단 이건 너무 말도 안되게 묘사된 것이다. 박도 한번 걷어찼다고 언급되어 있는걸 거의 무송과 동급 무력으로 만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