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 | ||||||||||
농가 | 도가 | 묵가 | 법가 | 명가 | 병가 | 유가 | 음양가 | 잡가 | 종횡가 | 소설가 |
1. 개요
兵家사마담 및 유향의 《칠략》의 제자백가 분류에서, 주로 군사전략가를 포함하는 부류이다. 따라서, 사실 유가나 묵가와 같은 사상적 카테고리와는 달리, 이들의 사상적인 특성은 애매하며, 학자에 따라서는 제자백가의 카테고리에서 제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후 병가에서 말하는 병법과 사상은 단순히 전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통치술, 세상에 대한 안목까지 확대되어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할 때 '손자병법에 따르면 ~라고 했으니 이렇게 공부해야겠다.'라고 하는 식.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곤란한 상황이 닥칠 때 '삼십육계 줄행랑[1]'을 외치는 것도 그러하다. 이 점을 고려해 병가를 말하면 '병법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고 방법을 찾는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손자병법은 현대에 이르러서는 마치 자기계발서나 경영 팁, 철학서의 일종처럼 논어 같은 것과 묶여서 팔린다.
2. 사상가
최초의 병가로 기록되는 사람은 기원전 6~5세기 제나라 출신인 손무이다. 그는 손자병법을 지었다고 전해지며, 오왕 합려에게 등용되어 혁혁한 군공을 세웠다. 그의 자손이라고 전해지는 기원전 4세기의 손빈은 역시 제나라와 위나라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다. 최근까지 손빈은 병법가가 아닌 전설적인 인물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으나, 1970년대에 서한(전한)대에 베껴진 손빈병법의 죽간이 발견되어 손무병법과 손빈병법이 별도로 존재했음이 확인되면서, 두 사람 모두 전략가로서 병법서를 저작한 사실이 인정되고 있다.손무와 병칭되는 전략가로 기원전 5세기의 오기(吳起)가 있는데, 그는 전략서인 《오자병법》를 지어 남겼다. 오기는 본래 공자의 제자인 증자를 스승으로 삼은 유가 출신이었으나, 증자의 문하에서 출문당하여 군사전략을 연구하였으며, 또한 초나라에서는 법가적인 변법을 주도한 법가사상가이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기원전 3세기에 진나라에서 활약한 울료자[2] 등이 있다.
2.1. 목록
3. 병법서 목록
- 손자병법- 손자가 쓴 병법서이다.
- 손빈병법- 손자의 후손 손빈이 쓴 것이다. 손자병법의 저자가 손빈이라는 썰도 존재 하지만, 1972년 산둥성 임기현에서 손자병법과 손빈병법 두 가지의 죽간이 출토되며 각 저자가 다른 것이 판명났다.
- 오자병법- 오기가 쓴 병법서로 '무능한 지휘자는 적보다 무섭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 육도- 태공망 강상이 쓴 병법서로 알려져 있다.
- 제갈량집- 제갈량이 쓴 병법서이다.
- 삼략- 황석공이 쓴 병법서이다. 후에 장량에게 넘겨주었다.
- 사마법- 제나라의 장군인 사마양저의 병법서이다.
- 위료자- 진시황의 병법가 위료가 저작한 병법서이다.
- 이위공문대- 이정이 자신과 당태종 이세민이 병법에 대해 대화한 것을 기록한 병법서이다.
- 백전기략- 유백온이 쓴 병법서이다.
- 삼십육계- 작자 미상.
[1] 물론 이건 한참 뒤의 송나라에서 나온 거니 엄밀히 말해 병가는 아니다.[2] 위료자라고도 한다. 울지경덕과 비슷한 케이스로 위(尉)는 인명에 쓰일 때는 '울'이라고 읽는 것이 맞으나 이러한 지식이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각각 울료자와 울지경덕 대신 위료자, 위지경덕으로 알려진 것이다.[3] 본명은 전양저(田穰苴)로 사마는 그가 한 벼슬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