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1 09:57:20

보리스 넴초프

초대 니즈니노브고로드 주지사
제14대 러시아 연방 수석부총리
보리스 예피모비치 넴초프
Борис Ефимович Немцов
파일:보리스_넴초프_2014.jpg
<colbgcolor=#96023d><colcolor=#fff> 출생 1959년 10월 9일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러시아 SFSR 소치[1]
사망 2015년 2월 27일 (향년 55세)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모스크바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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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정치인
최종 당적
종교 러시아 정교회
배우자 라이사 넴초바
자녀 1남 3녀
서명
파일:넴초프 서명.jpg

1. 개요2. 생애3. 죽음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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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 러시아정치인이다. 무릎꿇고 사느니 선채로 죽겠다를 몸소 실천한 인물로, 정부에게 죽임을 당할 줄 알았으면서도 끝까지 정부에 맞서다가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테러로 사망하였다.

2. 생애

1959년 10월 9일 소련소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러시아인이고 어머니는 유대인이다. 본인은 러시아 정교회를 믿었다. 소련에서 살다가 러시아가 성립하면서 옐친의 지명에 의해[2] 1991년 니즈니 노브고로드 주지사가 되었다. 자유주의 성향인 그는 주지사 시기에 집단농장을 사유화했고 세제 혜택을 주어 외국 자본을 유치했다. 1995년에 민선 선거가 실시되자 승리하여 연임했다. 1997년에는 제1부총리가 되었고 1998년까지 그 자리를 지냈다. 러시아 연방 대통령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으나 본인은 출마를 거부했다.[3]

1999년에는 우파연합을 만들어 블라디미르 푸틴을 지지하였으나 이후로 푸틴이 자유주의보다는 권위주의, 독재의 길을 걸으면서 점차 갈라서기 시작했으며 당시 러시아 범 우파 정당들을 통합해서 출범한 통합 러시아에도 합류하지 않았다. 보리스 넴초프는 이후부터 반정부 운동을 시작했고 2003년에 본인이 속한 우파연합이 총선에서 패배하자 대표에서 물러났다. 보리스 넴초프는 2008년 우파연합이 타 정당들과 합당하여 성장당이 될 무렵 당을 탈당했다. 이후 같은 2008년 솔리다르노스티 소속이 된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국민자유당 소속이었고 2012년부터 공화인민자유당 소속이 되었다. 푸틴은 넴초프가 군소정당 소속으로 입지가 큰 정치인이 아니었음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를 회유하거나 계속 행동을 통제하려 들었지만 넴초프는 듣지 않았고 야당의 길을 지속적으로 걸었다.

3. 죽음

2015년 2월 27일에 모스크바 한복판 붉은 광장 인근에서 밤에 우크라이나인 여자친구와[4] 길을 걷다가 등에 총탄 4발을 맞고 사망하였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그가 다리를 건너는 사이 갑자기 하얀색 승용차에서 괴한 여러 명이 내리더니 그에게 총을 발사하고 차에 다시 탄 채로 도망갔다고 한다.

그는 암살 전날 러시아 야권의 단합을 이야기했으며 3월 1일에 반푸틴 반정부 시위를 열 것을 제안했다. 그를 누가 죽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가 지속적으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개입을 다룬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정황상 블라디미르 푸틴이 배후일 확률이 높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추모했다.

한편 그가 암살당하기 17일 전인 2015년 2월 10일에 그는 이러한 말을 남겼다.
나는 푸틴에게 죽을까 봐 두렵다.
푸틴은 공식적으로는 넴초프의 살해를 비난했지만 경찰이 사건 현장을 깨끗하게 물청소하는 걸로 볼 때 아마 제대로 된 수사결과를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보리스 넴초프는 러시아 지도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되어 있다는 증거를 담은 보고서를 준비 중이었다. 그가 암살당하면서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동료들이 그의 뜻을 이어서 결국 그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투입된 군인들이 민간인 신분임은 맞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엄청나게 많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러시아 병사들이 전역해서 '자원병'으로 나가라는 제안을 받았고, 이들을 돈바스로 파견하는 일은 친푸틴 계열의 사회단체들이 맡았다고 한다. 보고서는 이들 단체가 실제 러시아 자원병들만 아니라 전직 군인과 친러시아 체첸 무력기관(카디로비치) 출신들에게도 자금을 제공했다고 쓰고 있다. 보고서 저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반군이 민스크 합의에 따라 전선에서 철수시켜야 했던 다연장 로켓포 '토르나도-S'[5] 같은 군사장비도 확실한 증거였다. "이 로켓포는 러시아제로 해외로 수출된 적이 전혀 없다. 이건 러시아군에서만 운영되는 장비이다." 하고 러시아 공화당-국민의 자유당 정치위원회 위원 일리야 야신이 보고서 발표회 도중에 지적했다. 보고서 저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크림의 러시아 귀속 시나리오는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2013년 여름에 이미 러시아 당국에 의해 치밀하게 준비됐다. 내용출처기사 삭제됨

러시아 연방 보안당국의 수사에 따르면 보리스 넴초프의 암살은 전직 러시아 연방 소속 체첸 공화국 경찰특공대 부(副) 대장 자우르 다다예프가 벌인 짓이라 한다. 자우르 다다예프는 부하 일곱 명을 이끌고 보리스 넴초프를 모스크바에서 쏴 죽인 뒤 차를 타고 도망쳤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체첸 반군이 아니라 전직 친러 체첸 경찰특공대가 벌인 짓이라는 것이다. 친러시아 체첸 경찰특공대는 흔히 카디로비치라고 불리며 경찰특공대 역할도 수행하지만 사실상 러시아 연방 체첸 공화국 대통령 람잔 카디로프의 친위대다. 애초에 카디로비치란 이름 자체가 카디로프의 아들이란 뜻이다. 람잔 카디로프는 푸틴이 종신 대통령을 해야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으며 자신의 부하들이 언제든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그의 부하 조직원 2만여 명이 푸틴 대통령에 충성 맹세를 하였다.

보리스 넴초프를 암살한 자우르 다다예프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보리스를 죽였다고 자백했으나 이후 재판을 앞두고는 진술을 번복하였다. 그에 따르면 자신이 자백한 건 머리 위에 가방을 이틀 동안 올려놓는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었고, 많이 얻어맞았으며 수갑과 밧줄 때문에 몸에 피멍이 들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수사당국이 자신이 자백하면 자신의 동료들은 풀어주겠다고 제안해서 거짓으로 자백했다고 하였다.

한편 일부 친정부 언론들은 자우르 다다예프를 비롯한 그의 부하들이 체첸 출신 무슬림이기 때문에, 이들이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비판한 샤를리 엡도를 지지한 보리스 넴초프를 암살했다고 주장했는데 심히 억지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친정부 체첸인들은 체첸 반군들과 이슬람 종파부터가 다르다. 친정부 체첸인들은 율법 대신 춤을 중요시하는 신비주의 분파인 수피파(تصوف‎)를 믿지만 체첸 반군들은 이슬람 율법 샤리아(شريعة)를 중요시하는 살라프파(سلفية)를 따른다.[6] 일반적으로 봤을 때 수피즘은 유연한 편이지만 살라프파는 극단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는 종파라 행태에 질린 일부 민족과 사회에서 이슬람을 선택할 때 이쪽으로 가입한 사례가 많고, 체첸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람잔 카디로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우르(Zaur)는 진정한 러시아의 애국자다"라고 써놓았다. 이쯤되면 자우르 다다예프가 람잔 카디로프의 지시를 받고 보리스 넴초프를 암살했다는 게 거의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많은 러시아 야권 인사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 관료들조차도 '카디로프가 너무 막 나간 거 아니냐, 체첸이 러시아 연방의 자치공화국이라면서 사실상 거의 통제불능이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카디로프에게 훈장을 수여함으로써# 러시아 관료들 사이 반발은 거의 사라진 것 같았으나...

카디로프가 러시아 연방 경찰에 대해 "사전 통보 없이 우리 땅에 모스크바 사람이든 스타브로폴 사람이든 누구든지 나타나면 총격을 가하라. 그들은 우리를 존중해야 한다." 하고 한 달 뒤에 주장해서 더 큰 논란이 생기고 말았다. 즉, 아무리 러시아 연방 경찰이라도 자기 허가가 없으면 체첸 공화국에서 멋대로 작전을 못한다는 뜻이다. 결국 러시아 관료들이 '체첸 공화국은 반(半)독립 상태나 다름없다.'고 주장할 정도로 카디로프를 불신했다.

2019년 2월 24일에 모스크바에서는 넴초프 암살 4주년을 사흘 앞두고 야당지지자들이 넴초프를 기리는 가두행진을 벌였다.#

넴초프가 죽기 1년 전부터 연방보안국(FSB) 소속의 요원으로부터 미행당했다.#

넴초프를 암살한 혐의로 복역 중이던 남성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는 조건으로 석방됐다.#

4. 기타

1995년 TV 토론회에서 있었던 주스 파이트 사건 중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에게 주스와 컵을 맞은 사람이 바로 넴초프다. 참고로 지리노프스키와 넴초프가 둘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된 시점에서 이 동영상을 본 러시아 네티즌들은 넴초프가 했던 말과 지리노프스키가 했던 말이 동시에 실현되었다는 평이다.(지리노프스키는 넴초프를 향해서 총을 맞을것이라고 폭언했고, 넴초프는 지리노프스키를 향해서 "당신은 치료되어야 하며 주사 두번이면 끝이라고" 받아쳤다. 그 다음에 격분한 지리놉스키가 주스 잔을 던진 것.)[7]

당시 체코 프라하 시장이었던 즈데네크 흐르지프가 러시아 대사관 앞 광장 이름을 보리스 넴초프 광장으로 붙였다.#

그의 장녀인 잔나 넴초바는 러시아의 유명한 언론인인데 그녀도 푸틴 정권의 탄압을 당했고 아버지가 살해된지 3개월 뒤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독일로 망명했다. 현재 잔나는 독일의 공영방송인 도이체벨레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1]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소치[2] 당시 주지사는 민선이 아닌 지명제로 선출했다.[3] 사실 푸틴이 총리가 되어서 체첸반군을 찍어내릴때까지 보리스 옐친의 실정으로 친 옐친 인사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선거패배를 당할것이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이었고 보리스 넴초프 자체는 주지사로써는 꽤 호평을 얻는 인사였지만 그럼에도 대선에 나가기에는 매우 부담되었던 상황인지라 대선 출마를 망설이는것이 당연했다.[4] 우크라이나의 여성 모델인 안나 두리츠카야로 넴초프와 3년간 사귀다가 넴초프 사후 우크라이나로 귀국했다. 안나는 우크라이나로 돌아오고도 살해 위협을 받아 한동안 우크라이나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았다.[5] 스메르치를 경량화한 300mm 다연장로켓[6] 수니파의 한 종파인 한발리파에 속하지만 거기서도 극단주의 파에 속한다.[7] 넴초프는 상술했듯이 암살당했고, 지리노프스키는 코로나 19에 감염되어서 백신을 여러 번이나 맞았지만 회복되지 못한 채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