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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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 이름 | 국적 | 격추 수 | 주 기종 | 비고 | |
21위 | 쿠르트 브렌틀레 | 독일 | 180대 | |||
22위 | 귄터 요스텐 | 독일 | 178대 | |||
23위 | 요하네스 슈타인호프 | 독일 | 176대 | |||
24위 | 에른스트-빌헬름 라이네르트 | 독일 | 174대 | |||
귄터 샤크 | 독일 | |||||
26위 | 에밀 랑 | 독일 | 173대 | |||
하인츠 슈미트 | 독일 | |||||
28위 | 호르스트 아데마이트 | 독일 | 166대 | |||
29위 | 볼프 디트리히 빌케 | 독일 | 162대 | |||
30위 |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 | 독일 | 158대 | Bf109 | 서방 비행기 최다 격추 | |
▼ 31~50위 |
볼프디트리히 "퓌르스트" 빌케 (1913. 3. 11~1944. 3. 23)
Wolf-Dietrich "Fürst" Wilc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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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볼프디트리히 빌케는 제2차 세계 대전 루프트바페의 전투기 조종사. 슈퍼 에이스이다.총 격추 수는 162대, 출격 횟수는 732번이다. 대부분의 적을 동부전선에서 격추시켰고, 서부전선에서는 25대를 격추시켰다.[1]
2. 삶
2.1. 출생&서부 전선
빌케는 포센 주 슈림에서 태어나 1934년 독일 공군에 자원했다. 처음에는 육군에 지원했으나, 그는 1935년 공군으로 이적했다. 스페인 내전에서는 콘도르 군단의 일원으로 참전했고, 소령으로 진급했다. 그는 첫 격추를 1939년 11월 7일에 해냈고[2], 1940년 5월 18일 격추되어 프랑스에 포로로 잡혔다. 하지만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함에 따라 6월 30일에 풀려나 다시 루프트바페에서 싸우게 되었다. 빌케는 다음 날 바로 대위로 진급했고, 7월 11일에는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영국 본토 항공전 중, 빌케는 격추되어 영국 해협에 빠져 죽을 뻔 했으나, 다행히 구조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의 상관이 실종되어 빌케는 3번 분대의 분대장이 되었다.
2.2. 동부 전선
1941년 6월 8일, JG 53은 중남부 독일의 기지로 이동했다. 6월 21일, JG 53은 곧 시작될 공격에 대해 안내받았고, 6월 22일 공격이 시작되며 JG 53도 참가했다. 빌케는 그날 I-15 3대를 격추했다. 두번째 임무에서는 하루만에 5대를 격추했다.JG 53의 3번 분대는 1941년 8월 23일까지 769기 격추라는 기록을 보였고, 15명의 파일럿을 잃었다.[3]
2.3. 북아프리카 전선
독일로 돌아온 3번 분대는 시칠리아의 카타니아에 도착했다. 그 다음에는 리비아의 티미미로 옮겨, 빌케는 그곳에서 그의 34번째 격추 기록을 올렸다.3번 분대는 몰타 항공전에 참가하기 위해 시칠리아로 돌아왔고, 빌케는 항공전에서 35번째 격추를 올렸다[4]
2.4. JG 3
1942년 5월 18일, 빌케는 JG 3으로 전입했고, 8월 11일에는 JG 3의 지휘관이 되었다.1942년 6월 13일, 빌케는 JG 3에서의 첫 격추를 올렸고, 7월 6일에는 또 한번 하루에 5기를 격추했다.
빌케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도 활약했다.[5] 여기까지 그의 격추 수는 총 156대.
2.5. 사망
빌케는 1943년 12월 1일 대령으로 진급했고, 1944년 2월에는 비행을 금지한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부하들과 독일 방어전에 참가한다. 1944년 3월 4일, B-17을 격추하며 160번째 격추 기록을 세웠다.1944년 3월 23일, 빌케는 브라운슈바이크 근처에서 폭격기 요격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이 임무에서 B-17과 P-51을 격추했으나 격추당했다. 그를 격추한 사람은 돈 젠타일 대위와 존 트레버 갓프리 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