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11 02:02:05

뽕뽄느 열차 추돌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뽕뽄느 열차 사고.jpg

1. 개요2. 사고 내용3. 사고 이후

1. 개요

L'accident ferroviaire de Lagny-Pomponne

1933년 12월 23일 프랑스 뽕뽄느에서 일어난 열차 추돌사고.

2. 사고 내용

사고 당일은 토요일이었고, 25일은 크리스마스라 3일간의 휴일이 있어 연휴를 맞아 휴가가는 승객들이 많았다.

파리에서 낭시로 가는 55번 열차는 휴가가는 승객들을 위해 특별 편성된 열차였다. 열차는 원래는 오후 5시 49분에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예정보다 늦은 오후 7시 22분에 파리에서 출발했다. 출발 후 중간에 신호등 문제로 더 늦어 버렸다.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25번 열차 기관차는 EST 241 증기기관차# 였다. 원래는 파리에서 오후 6시 16분에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이쪽도 예정과 달리 늦어지면서 오후 7시 29분에 출발했다.

55번 열차가 뽕뽄느에 도착할 무렵, 짙은 안개로 인해 빌리에쉬마른에서 잠시 멈추고 대기하라는 명령이 왔다. 낭시 행 55번 열차 뒤에 경고등이 켜졌다. 당시 열차 신호는 지금의 열차 신호인 초록(전진) 노랑(경고) 빨강(멈춤)이 아니었다. 하양(전진) 초록(경고) 빨강(멈춤)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밤인데다 안개까지 껴서 뒤따라 오던 25번 열차는 경고등을 제때 보지 못했다. 봤다 하더라도 당시 기관사였던 Henri Charpentier가 색맹이라 어떤 색인지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열차가 밟고 지나가면 터지면서 소리로 경고를 주는 데토네이터#도 설치되어 있어 열차가 밟고 지나가면서 경고 소리도 났다. 실제 승객 중 몇명은 당시 데토네이터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기관사가 듣지 못하는 바람에 열차를 막을 수 있던 마지막 수단 마저 소용없게 됐다.

결국 두 열차는 오후 8시 12분 경, 시속 110km로 충돌했다. 충돌의 충격으로 승객칸 7칸이 박살났다. 승객칸이 목재로 만들어진데다, 오래되어 내구도가 약해 피해가 커졌다.

사고 지역에 안개가 너무 껴서 구조대가 도착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인근 지역 주민들은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가 구조하면서, 인근에 불을 피워 구조대가 보고 빨리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인근 성당과 교회의 신부, 목사들도 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주변 역의 화물보관실은 임시 시신 안치소로 쓰였다.

사고로 204명이 사망하고 120명이 부상입었다. 기록에 따라 사망자 수는 230명 까지 오른다. 부상자 중 몇명은 너무 추운 날씨에 저체온증에 걸리기도 했다. 사고는 1917년에 일어난 생 미셸 드 모린 열차 참사 이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철도 참사, 전쟁중이 아닌 때에 일어난 철도 참사 중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참사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기관사와 신호 담당자는 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 판결 받고 풀려났다.

사고 이후 프랑스의 철도 신호 체계는 초록(전진) 노랑(경고) 빨강(멈춤)으로 바뀌었다.

사고를 낸 기관차는 피해가 적어 사고 이후 수리되어 재사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