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20:01:35

사손서

후한의 대사농(大司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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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孫瑞
(129년 ~ 195년)
1. 개요2. 생애3. 창작물에서

1. 개요

후한 말의 관료이며 자는 군영(君榮) 또는 군책(君策)으로 옹주 부풍군 평릉현 사람.

2. 생애

대대로 학문을 하는 집안으로 어려서 가업을 이어 널리 사물에 통달해 통하지 않는 바가 없었으며, 벼슬해서 높은 직위를 역임했다. 192년 4월에 상서복야를 지내면서 사도 왕윤, 사례교위 황완, 사례교위 양찬, 동탁의 부하 여포와 공모해 동탁을 주살했으며, 국삼로[1]가 되면서 정사 동탁전의 주석인 헌제기에서는 대사농, 후한서에는 광록대부가 되었다고 한다.

삼공에 결원이 생길 때마다 후보에 올라 태위 주충, 황보숭, 사도 순우가, 조온, 사공 양표, 장희 등이 공이 될 때 모두 사손서에게 양보하려고 했으며, 삼보의 난으로 이각, 곽사 등이 정권을 잡을 때 왕윤이 동탁을 토벌한 공로를 전부 자신에게 돌리면서 사손서는 공이 있어도 열후에 봉해지지 않아 화를 피하면서 사마광은 이 일에 대해 지혜롭다고 평가했다.

이각, 곽사 등이 서로 내분을 일으키면서 헌제가 그들을 피해 달아났다가 이각, 곽사가 화해해 다시 추격했는데, 홍농의 조양에서 따라붙자 양봉과 백파적 등이 맞섰지만 패했다. 이 때 상서령을 지내던 사손서는 이각, 곽사가 이끄는 군사들이 공경 백관들을 죽이고 궁인들을 약탈할 때 죽임을 당했다.

헌제가 허현에 도읍하고 사손서의 공을 추론(追論)하여 아들 사손맹(士孫萌)을 담진정후(澹津亭侯)에 봉했다. 사손맹은 자가 문시(文始)이고 또한 재학(才學-재주와 학식)이 있고 왕찬(王粲)과 친했다. (벼슬을 받아) 국(國)으로 나아갈 때에 이르러 왕찬이 시를 지어 사손맹에게 선물하니 사손맹이 이에 답했고 왕찬집 중에 있다.

3. 창작물에서

파일:삼국지14사손서.png
삼국지 14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7삼국지 8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았다가 삼국지 14에서 오랜만에 복귀하였다. 14에서 능력치는 통솔력 24, 무력 13, 지력 65, 정치력 73, 매력 67로 일러스트는 오른손을 위로 올리면서 이야기를 하려 하고 있다. 개성은 인맥, 학자, 주의는 예교, 정책은 종횡술 Lv 3, 진형은 방원, 전법은 저지, 도발, 친애무장은 왕윤, 혐오무장은 동탁이다. 그리고 삼국지 14에서 동부, 순상에 이어 3번째로 생년이 이른 인물이다. 한의 충신이고 처세를 잘했음에도 능력치가 낮다.[2] 그런데 옹주 부풍군 평릉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성씨패란 시나리오에서 출신지인 장안이 아닌 허창의 재야로 등장하는데 이는 명백히 고증오류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 직위가 복야사, 이름이 손서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성씨에 들어가는 선비 사자를 변호사할 때 직책을 나타내는 사자로 착각한 오류로 여겨진다. 복야할때 야자는 사실 '射'자로 이때는 야자로 읽는다. 또한 상서복야의 준말로 조정의 실무를 보던 상서대 차관으로 품계가 1000석인 탓에 상서령과 모든 게 같으니 현재에 대입하면 부상서령이라 보면 된다. 그리고 상서령이 없으면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창천항로에서 왕윤이 동탁을 죽여야 한다고 하자, 군권은 동탁 손아귀에 있다면서 이를 말린다. 여포에 의해 동탁이 죽은 후에 왕윤이 사주한 무리들이 여포를 죽일 시각을 왕윤에게 보고하면서 왕윤이 옥에 갇힌 채옹을 경수형에 처하는데, 채옹이 자신에게서 흘러나오는 말을 기록할 수 있도록 부탁했지만 살려두면 우리들을 비방한다는 이유로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사손서는 이런 왕윤을 보고 예전에 환관 장양을 탄핵했던 청렴한 기골의 사람이 아니라 후세에 남을 자신의 이름에 연연해 이를 위해서라면 역사의 그늘에 봉인시키려는 모사꾼에 지나지 않는다며 실망한다. 이후 이각 무리에 의해 죽은 것으로 나온다.[3]

일기당천에서는 남양학원 교사인 대머리 할아버지이며 사마휘의 친구다.


[1] 三老, 주나라 때 왕이 부친의 예로 대접한 왕의 스승을 일컫는 것이었지만 한고제 이후로는 지방 통제와 농촌 교화를 위해 현, 향에 설치된 향관의 명칭으로도 쓰였으며, 그 밖에 나이가 많고 명망있는 중앙 조정의 인물을 예우하면서 삼로, 오경 등으로 삼았다. 국삼로는 향관인 삼로와 구별하기 위해 다르게 칭한 것으로 추정된다.[2] 코에이는 B급 이하 인물들은 한 번 정한 능력치를 가급적 바꾸지 않으려는 행태를 보이는데 삼국지 7, 8에서 이미 낮은 능력치로 등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쳐도 매력 67은 좀 심한 감이 있다.[3] 이각이 사손서의 수급을 왕윤에게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