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17:22:05

복성

1. 개요2. 용례3. 한국의 복성
3.1. 주요 복성3.2. 일본계 귀화성3.3. 유래 불명 복성3.4. 과거 기록에는 있으나 지금은 사라진 복성
4. 중국의 복성
4.1. 이민족계 복성
5. 그 외 복성6. 복성을 쓰는 인물
6.1. 근현대6.2. 근대 이전
6.2.1. 한국6.2.2. 중국6.2.3. 유목민족
7. 대중매체에서

1. 개요

複姓

(한자문화권에서) 두 글자로 된 성씨.

2. 용례

대한민국(+북한)과 중국의 성씨는 대체로 한 글자 성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두 자로 된 성씨가 존재한다.[1] 이를 복성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반대로 두 글자 이상의 복성이 흔하며 한자 한 글자 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2]

한국인은 보편적으로 중국식의 세 글자 이름[3]쓰는 관습이 있다. 드물게 복성을 가진 사람들은 이에 맞춰 자식의 이름을 외자작명하는 경우가 많다.[4] 한국에서 가장 많은 복성인 남궁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대표적인 케이스. 성명 기입이 필요한 서류 및 온라인 양식도 일반적으로 세 글자를 작성할 것이라 가정하고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5] 긴 이름을 갖고 있으면 의외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6] 어쨌든 세 글자 성명에 복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풀네임은 무난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성과 이름 각각을 설명할 때에는 귀찮은 일을 자주 겪고, 복성을 사용한 네 글자 이름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독특하다는 인상을 준다.

원래 복성이던 성씨 이외에 2000년대에 아버지 성씨와 어머니 성씨를 합쳐 복성으로 네 글자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7] 이는 페미니즘 운동 중 '부모 성 함께 쓰기'의 영향이다. 한국인은 성씨를 자신의 아버지 가문에서 물려받는 관습이 있는데, 이를 가부장제라 부조리하다 여기고 개명하거나 가명을 지어 성씨를 어머니의 성씨로 바꾸거나 어머니의 성씨를 넣어 복성을 쓰는 것이다. 한자가 같다고 해도 가문이 다를 경우도 해당된다. 이 방식으로 복성을 쓴 사람들의 이름은 대부분 아버지 성씨 + 어머니 성씨 + 자신의 이름, 아니면 어머니 성씨 + 아버지 성씨 + 자신의 이름이 된다. 그 의도를 따지고 보면 어머니의 성씨도 어머니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온전히 가부장제를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요점은 어머니의 성씨를 받았다는 당사자의 행동이기에 페미니스트들은 딱히 문제 삼지 않는다. 이를 처음 주장한 인물은 이이효재·고은광순 등이 있고, 2018년 가장 유명인은 윤김지영일 것이다. 행정적으로는 외국인귀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기존 한국인이 새로운 성씨를 창설하는 것이 안 되기 때문에 본명으로 이런 복성을 쓸 수는 없고, 이름의 첫 글자에 부모의 성 하나를 넣어서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즉 행정적으로는 '한 글자 성씨 + 세 글자 이름'이 되는 것이다.

중국에는 북방민족에서 비롯된 복성들도 많다. 모용씨, 독고씨, 우문씨, 야율씨, 완안씨, 도단씨 등이 대표적. 이런 케이스는 욱구려(郁久閭)[8], 보륙여(普六茹)[9], 흘석렬(紇石烈), 오림답(烏林答), 보르지긴(博爾濟吉特 박이제길특),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 애신각라) 같이 3글자 이상인 경우도 많다. 현대까지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경우도 있지만 허서리(Heseri[赫舍里(혁사리)])씨 등을 거쳐 현대에는 강(康)씨로 개성한 거란 계통 성씨나 신해혁명 이후 금(金)씨로 개성한 일부 만주족 성씨 같은 사례가 존재한다.[10]

그런데 이 경우 성과 이름을 붙여 써 놓으면 복성인지 아닌지를 헛갈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맞춤법상 이름과 성은 붙여 써야 하지만 복성이거나, 혹은 글자가 복성과 겹쳐서 혼동할 수 있을 때에는 예외적으로 이름과 성을 띄어쓰는 것을 허용한다. 예) 남궁억(표준어) - '남궁 억'(허용). 황보미(표준어) - '황 보미'(허용). 과거에는 성과 이름을 띄어 쓰도록 규정하였는데 1988년 맞춤법 개정 때에 성과 이름을 붙여 쓰도록 바뀌었다. 1988년 이전의 문서를 보면 복성에 대한 오역이 심심치 않게 나오며, 개정 이후에도 복성을 사용하는 개드립이 존재한다. 무협소오강호의 주인공인 영호충(令狐冲)은 복성인 '영호' 씨인데, 한국에서는 특히 영화 등에서 '영'씨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11] 공손찬'손찬이 형'이라고 부르거나 호연작, 서문경을 '호 연작', '서 문경'[12]이라고 오역해둔 서적이 드물지 않았다. 한국인 캐릭터인 독고탁도 '독 고탁'이라고 출판된 만화책이 적지 않았다. 이쪽 역시 당연히 '독고 탁'이 옳다.

복성에 대한 지식이 없는 비한국인들은 복성 + 한 음절(외자) 이름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남궁민을 성씨 '남' + 이름 '궁민'으로 잘못 이해하고 Koongmin Nam(또는 Nam Koongmin)으로 잘못 나눠 버린다. 성씨 '남궁' + 이름 '민'이므로 당연히 Min Namkoong(또는 Namkoong Min)으로 나눠야 한다. 또한,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는 홍진영남궁민궁민이 오빠라고 한 예화도 있다. 또한 남궁민이 어릴적에 친구들이 남궁민의 집에 전화를 했는데 아버지가 받았고 친구들이 "궁민이 있어요?" 라고 하자 남궁민의 아버지가 "궁민이라는 애는 없다!" 라고 하시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이름 잘못 부르는걸 매우 싫어하신다고 남궁민이 밝혔다.

사실 한국인들조차 복성 + 한 음절 이름을 잘못 나누는 경우가 있다. 황보름별은 성이 '황', 이름이 '보름별'이고, 가상 인물 중에서는 웹툰 GM 시리즈 선우영은 성이 '선', 이름이 '우영'이라 상관없으나, 애니메이션 플라워링 하트 시리즈의 선우민은 '선우' 씨, 이름이 '민'인데 영문 이름이 Woomin Sun이라고 잘못 적혀 있다. 당연히 Min Sunwoo라고 적어야 한다. 2003년 3월 6일에 방영한 쟁반노래방 69회에서 남궁연이 자리 선정 및 이름만 표기하는 소절 막대에 올바르게 만 표기했듯이. 영화 설국열차에서 남궁민수가 자신의 이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남궁'과 '민수'로 나눠 알려주는데 이것도 예시.

복성을 예명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희귀하고 독특한 성씨라 대중에 오래 기억이 남고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희귀한 성씨가 유명인이 돼 이름을 드높이면 해당 종친회에서 감사패가 온다거나 초청장이 왔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고 한다. 복성을 예명으로 쓰는 유명인의 대표적 인물로 남궁원, 독고성·독고영재·독고준[13], 선우용여, 선우선, 서문탁이다.[14] 또한 창작물에도 등장인물의 성씨로 자주 쓰이곤 한다. 최고의 사랑독고진[15]이나 무협소설오대세가 등이 있다.

외자이름인데 돌림자가 있으면 그 항렬의 이름은 다 똑같아지므로 부수로 돌림자를 대신한다.

3. 한국의 복성

3.1. 주요 복성

  • 남궁(南宮) - 한국의 최다 복성.
  • 독고(獨孤) - 독고 성씨를 쓰는 3대 연예인 가족은 사실 독고씨가 아닌 전씨 집안 사람들이다.
  • 동방(東方) - 삼천갑자 동방삭의 후예라고 통칭되며, 중국영화 동방불패 속 모티브된 무술고수가 동방씨다.
  • 사공(司空) - 경제학자 사공일, 두산베어스 출신 재활트레이너 사공엽 등이 있다.
  • 서문(西門) - 중국계 귀화성씨. 만화가 서문다미가 이 성을 쓴다. 가수 서문탁은 예명으로 해당 인물은 서문씨가 아니라 이씨이다.
  • 선우(鮮于) - 정사기록상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복성으로 238년 한사군낙랑군 태수로 임명된 선우사(鮮于嗣)의 기록이 있다. 유명인 중에는 선우재덕, 선우정아, 선우은숙 등이 있다.
  • 제갈(諸葛) - 중국계 복성. 한국의 제갈씨는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를 시조로 모신다. 제갈규의 5대손 제갈충이 신라로 귀화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제갈규의 중 누구의 직계 후손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제갈량의 직계 후손이 맞다는 전승이 유명하며, 제갈량의 친아들은 제갈첨 하나뿐이었고 제갈첨은 유비의 손녀와 결혼했으므로 제갈충이 제갈량의 직계라는 전승이 사실이라면 그는 동시에 유비의 후손이기도 하다. 참고로 제갈량의 동생 제갈균의 후손은 (諸)씨와 (葛)씨로 나눠서 한국에서 그 후손을 이어가고 있다. 마치 고씨로 성을 쓴 백제온조왕과 원래 아버지 성을 쓴 비류왕의 경우처럼 말이다. 제갈량의 손자 제갈상의 가족과 남은 가족, 그리고 제갈균의 손자 손녀, 오나라 제갈근의 아들 제갈각의 차남 제갈준 등이 제갈씨와 제씨 갈씨의 선조인게 확실하다.
  • 황보(皇甫) -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한국의 복성. 젝스키스 주연의 세븐틴에 나온 것처럼 한자를 잘못 읽어서 황보가 아닌 황포(甫 -> 浦)로 읽는 사람이 나오기도 하는 성이다. 유명인 중에는 축구선수 출신 황보관, 샤크라 출신 황보혜정(황보) 등이 있다.

3.2. 일본계 귀화성

일본식 성을 그대로 한국 독음으로 읽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3.3. 유래 불명 복성

  • 소봉(小峰) - 일본에 같은 한자를 사용하는 코미네(小峰)라는 성씨가 실존하지만, 관련성은 없다고 한다. 중국의 봉(逢)씨와도 관련이 있는 거 같지만 딱히 증거는 없다.
  • 어금(魚金) - 위만조선 이후 기록은 있으나 출처는 전해지지 않는 신비한 성씨. 어쩌다 개명신청인에 어금니란 사람이 있어서 존재가 각인된 듯.
  • 장곡(長谷) -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하세 혹은 나가타니(長谷),[16] 아니면 하세가와(長谷川)나 하세베(長谷部) 등 長谷으로 시작하는[17] 일본 성씨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산해경 등의 고대 기록물들을 토대로 중국의 소수민족에서 파생된 성씨라고도 추정하고 있다.

3.4. 과거 기록에는 있으나 지금은 사라진 복성

  • 곽리(霍里) - 정사기록상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복성. 공무도하가 저자의 성이 곽리. 공후인은 중국 후한채옹(蔡邕, 133~192)이 엮은 《금조(琴操)》에 처음으로 등장.
  • 부여(扶餘) - 백제 왕족의 성씨. 부여 서씨의령 여씨가 후예라고 전해진다.
  • 흑치(黑齒) - 부여씨에서 갈라져나온 성씨. 유명한 인물은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한 흑치상지. 흑치씨는 당시 생존한 일가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살았기에 한국 국내에선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 귀실(鬼室) - 부여씨에서 갈라져나온 성씨. 유명한 인물은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한 귀실복신.
  • 진모(眞牟) - 백제 대성팔족의 성씨. 진모(眞募), 조미(祖彌), 저미(姐彌)라고도 표기되었다. 진(眞)이라는 단성 표기로도 나타난다. 서산 진씨가 후예라는 설이 있다.
  • 사택(沙宅) - 백제 대성팔족의 성씨. 사타(沙咤), 사택(砂宅)이라고도 표기되었다. 사(沙)라는 단성 표기로도 나타난다. 국사와 관련해서는 사택지적비로 유명하다. 사씨는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6명으로 조사되었는데 이 사씨와 대성팔족 사씨의 관계는 불명.
  • 목례(木刕) - 백제 대성팔족의 성씨. 목라(木羅), 목협(木劦)이라고도 표기되었는데 목협(木劦)은 목례(木刕)를 잘못 적은 것이다. 목(木)이라는 단성 표기로도 나타난다.
  • 연비(燕比) - 백제의 대성팔족인 연(燕)씨의 복성 표기로 추정된다. 전주 연씨가 후예라는 설이 있다.
  • 고이(古爾) - 백제의 성씨. 유명한 인물로 고이만년고이해가 있다.
  • 수미(首彌) - 백제의 성씨.
  • 재증(再曾) - 백제의 성씨. 유명한 인물로 재증걸루가 있다.
  • 물부(勿部) - 일본 계통의 성씨인데 특이하게 백제인의 성씨로도 자주 등장한다. 따라서 백제에 귀화한 일본계 가문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 있다. 유명한 인물로는 성왕(백제)의 관료로 활약한 모노노베노 마가무와 대당물부장군공덕비(大唐勿部將軍功德碑)에 등장하는 물부순 등이 있다. 본래 모노노베 가문은 니기하야히노미코토(邇芸速日命)라는 신의 후예로 여겨질만큼의 대호족으로 여러모로 백제와 연이 있는 소가씨와도 접전이 많은 가문이었다.
  • 혁련(赫連) - 본래 흉노의 성씨였으나 후손 중 일부가 한반도에 들어오기도 했다. 11세기 말 고려 문종 때의 학자였던 혁련정이 이 성씨이다. 중국의 왕조 중에도 혁련씨를 국성으로 삼는 나라가 있었다. 국내의 혁련발거(赫連勃據)의 후손들은 이후 김해 김씨 등의 성씨들에 귀속되어서 성씨 자체는 사라졌다.
  • 을지(乙支) - 고구려의 성씨. 사실 을(乙)씨에 존칭접미사가 붙은 거 아닌가 하는 가설이 있다. 살수대첩의 명장 을지문덕의 이름에서만 나타난다. 중국의 울지씨 또는 위지(尉遲)씨와 관련있다는 추측이 있으나 고구려에 관련된 기록 자체를 찾는 게 어려운 일이라 확실한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을지씨는 고구려에만 있던 성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록에 남은 마지막 을지씨는 을지탁(乙支倬)이며, 현재 북한에서는 고구려 띄워주기 정책의 일환으로 1945년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될 당시 평안남도 평양 일대에 모여살고 있던 목천 돈씨 사람들의 성씨를 의주 을지씨로 환원시켜놓았다. 따라서 북한에는 소수의 을지씨들이 존재하고 있다.
  • 명림(明臨) - 고구려의 성씨. 대표적인 인물로는 명림답부, 명림어수, 명림홀도 등이 있다.
  • 대실(大室) - 고구려의 성씨. 대무신왕관리 추발소에게 하사한 성씨.
  • 중실(中室) - 고구려의 성씨. 동명성왕건국 공로자무골에게 하사한 성씨.
  • 소실(少室) - 고구려의 성씨. 동명성왕이 건국 공로자인 묵거에게 하사한 성씨.
  • 부정(負鼎) - 고구려의 성씨. 대무신왕이 부여를 정벌하러 가던 중에 어떤 남자에게 하사한 성씨.
  • 사마(司馬) - 중국계 성씨. 조선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사마씨를 성씨로 삼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기록[18]이 남아 있으나, 현존하는 사마씨는 국내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마씨에서 갈라져 나온 성씨 중 (馮)씨는 한국에도 현존하고 있으나 중국 본토의 사마씨와의 연관성은 불명이다.
  • 하후(夏侯) - 중국계 성씨. 삼국지의 하후돈, 하후연 등으로 인해 인지도가 있는 그 하후씨다. 하나라 을 시조로 두고 있으며, 현재는 중국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성씨다.
  • 석말(石抹) - 고려의 성씨로 다루가치 석말천구(石抹天衢)가 광릉 석말씨의 시조다. 귀화 성씨로 그 기원은 거란까지 올라간다. 정동행성에도 석말천구, 석말 에센테무르(石抹也先帖木兒) 등 석말씨가 있었다.
  • 포선(包宣) - 포선만노 등의 인물이 역사에 기록되어 북방계 성씨로 유명하지만, 금나라 시대 이후 포선씨는 다른 성씨로 다 흡수되었다.
  • 영호(令狐) -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중국계 성씨로 본관은 문화 단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조선 시대 이전에 멸성된 성씨라고 기록돼있다.

4. 중국의 복성

4.1. 이민족계 복성

  • 곡률(斛律) - 고차족 성씨. 곡률광 등.
  • 난제(欒提) - 흉노 선우의 성씨. 난제호주천 등.
  • 당괄(唐括) - 성목황후 당괄씨
  • 도단(徒單)
  • 독고(獨孤) - 독고부 선비족의 성씨.남흉노와 탁발부의 혼혈. 단성으로 바꾼 경우는 유(劉)씨가 되었다.
  • 대하(大賀) - 거란족의 성씨. 거란 8부가 처음으로 연맹을 맺을 당시 연맹장을 맡았다. 당태종대하굴가당나라에 귀의해 이씨(李氏)를 사성받았다.
  • 모용(慕容) - 모용부 선비족의 성씨.
  • 묵기(万俟) - 탁발부 선비족의 성씨. 은 간체자가 아니고 묵기로 읽어야 한다.[23]. 그러나 하필이면 이 성씨를 가졌던 인물 중 남송의 충신이자 명장인 악비를 죽게 만드는 데에 진회와 함께 앞장선 묵기설(万俟卨)이라는 인물이 이 성씨를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그의 고향에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묵기라는 성씨를 모두 개성(改姓)해버렸고, 이 때문에 이 성씨가 현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 배만(裴満)
  • 복산(僕散)
  • 술률(述律) - 위구르계 성씨로 거란족에 속했다. 요태종 때 소(蕭)씨로 바꾸었다가 요나라 멸망 이후로는 석말씨(石抹氏)가 되었다. 순흠황후 술률씨 술률평 등.
    • 석말(石抹) - 이후 만주족과 동화된 석말씨는 성씨를 만주식으로 고쳐 슈무루(舒穆禄)씨가 되었으며 단성으로 바꾼 경우는 소(蕭), 서(徐), 서(舒)씨가 되었다. 석말천구 등.
  • 야율(耶律) - 질랄부 거란족의 성씨. 요련씨 이후에 연맹장이 되었다. 요나라의 황성.
  • 올안(兀顏)
  • 요련(遙輦) - 거란족의 성씨. 대하씨 이후에 연맹장이 되었다.
  • 우문(宇文) - 우문부 선비족의 성씨.
  • 이주(爾朱) - 글호부 흉노족의 한 지파가 이주천(爾朱川)이라는 곳에 거주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단성으로 바꾼 경우는 주(朱)씨가 되었다. 이주영 등.
  • 완안(完顔) - 완안부 여진족의 성씨. 금나라의 황성.
  • 질간(叱干) - 질간부 선비족의 성씨. 질간아리 등.
  • 탁발(拓跋) - 탁발부 선비족의 성씨. 단성으로 바꾼 경우는 원(元)씨가 되었다.
    • 독발(禿髮) - 독발부 선비족의 성씨. 원래 탁발과 완전히 같은 성씨였지만, 표기가 갈리면서 부족도 아예 갈리게 되었다고 한다. 단성으로 바꾼 경우는 원(源)씨가 되었다.
  • 포찰(蒲察)
  • 혁련(赫連) - 철불부 흉노족의 성씨. 철불부는 남흉노와 탁발부의 혼혈이었으며 원래는 유(劉)씨였으나 혁련발발이 개성하였다. 혁련발발 등. 훗날 한반도에도 유입되어 고려 문종 때 학자 혁련정(赫連挺)이 있었다. 지금 한반도에는 없는 성씨이다.
    • 철벌(鐵伐) - 혁련발발이 철불부 직계를 유씨에서 혁련씨로 개성시킬 때 철불부 방계는 철벌씨를 쓰게 하였다.
  • 호연(呼衍)

5. 그 외 복성

  • 관룡(關龍)
  • 계손(季孫)
  • 단목(端木) - 단목사(자공)
  • 태숙(太叔)

6. 복성을 쓰는 인물

공손, 남궁, 독고, 사마, 서문, 선우, 제갈, 황보는 각각 항목을 참고.

6.1. 근현대

6.2. 근대 이전

6.2.1. 한국

6.2.2. 중국

6.2.3. 유목민족

7. 대중매체에서



[1] 선비족 부족 이름에서 유래한 구목릉, 보륙고 등 세글자 성씨도 있었으나 북위 효문제 시절 한화의 일환으로 각각 목씨, 육씨로 성본변경을 했다. 이때 독고씨도 유씨로 바꾸게 했으나 후에 다시 독고씨로 복성하기도 했다고 한다.[2] 그 밖에 일본의 성씨는 한자 서너 자는 물론 심지어 다섯 자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일본의 성씨 참조.[3] 성씨 + 두 글자 이름[4] 일본계거나 혼혈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기에[5] 그나마 네 글자 이름까지는 대응이 가능한 경우가 더 많다. 가령, 대학수학능력시험 답안지에 이름을 기재하는 곳도 4칸으로 되어 있어서 네 글자 이름까지는 아무런 불편이 없이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물론 다섯 글자부터는 매우 불편해진다.[6] 정확하게 확인된 건 아니나, 남궁씨와 황보씨는 (시조가 황보제공 즉 두 자 이름임에도)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에서 해당 본관으로 기재된 인물이 전부 외자 이름을 쓰지만 제갈씨는 근대 이후 전부 두 글자 이름 인물로 나오는 것이 확인된다.[7]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이런 경우 복성이 아니라 '쌍성'(雙姓)이라 하여 구별한다.[8] 유연(柔然) 왕실의 성씨[9] 수나라 황실의 원래 성씨로, 수문제 역시 어린 시절 이름은 보륙여견(普六茹堅)이다.[10] 완안씨 같은 경우 금나라 시대에 중국 성으로 왕씨(王氏)를 사용했으며 금나라 멸망 후 왕씨로 개성하기도 했다. 물론 완안씨를 그대로 자신의 성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현대에도 중국과 대만에 있으며 집성촌도 있다.[11] 원작에서는 본문 중에 복성인 영호 씨라고 직접 언급한다.[12] '호연 작', '서문 경'이 되어야 한다.[13] 여기는 3대가 배우이면서 예명으로 같은 성씨를 쓰고 있는 경우로, 원래 성씨는 전씨이다.[14] 각자 본명이 홍경일, 전원윤, 전영재, 전성우, 정용례, 정유진, 이수진이다.[15] 이쪽은 소속사 사장이 이름이 아닌 성인 독고로 부를 정도. 일본이나 서양에서는 매우 흔하지만 한국에서 성으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16] 이 두 성씨는 한자 표기가 같으며 독법만 다르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한자 표기가 같더라도 독법이 다르면 별도의 성씨로 간주한다.[17] 한국은 법적으로 성씨는 두 글자 까지밖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3글자 이상의 성씨를 사용하던 일본인이 귀화하면서 자신의 성씨를 그대로 사용하고 싶을 경우 원래 성씨에서 2글자만 잘라 사용해야 한다.[18]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거평 사마씨가 존재했고 이천 사마씨는 사라진 성씨로 기록됐다.[19] 서진의 무장 맹관을 체포하여 살해한 인물.[20] 중국 기원 한국계 7대 복성 중 유일하게 없는 게 북궐/북궁(北闕/北厥, 北宮)씨다. 5방 복성 - 남궁 / 북궐(북궁) / 동방 / 서문 / 태사[21] 진희(陳豨)가 난을 일으킬 때 그의 장수로 있었는데, 난을 진압하던 주발(周勃)에게 죽었다.[22] 5호 16국 시대 초기에 동완태수로 있었다가 서감의 공격을 받아 쫓겨났다.[23] 표준 중국어로도 Mòqí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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