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1-02 23:05:47

산림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if 넘어옴1 != null
''''''{{{#!if 넘어옴2 == null
{{{#!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2 != null
, ''''''{{{#!if 넘어옴3 == null
{{{#!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3 != null
, ''''''{{{#!if 넘어옴4 == null
{{{#!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4 != null
, ''''''{{{#!if 넘어옴5 == null
{{{#!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5 != null
, ''''''{{{#!if 넘어옴6 == null
{{{#!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6 != null
, ''''''{{{#!if 넘어옴7 == null
{{{#!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7 != null
, ''''''{{{#!if 넘어옴8 == null
{{{#!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8 != null
, ''''''{{{#!if 넘어옴9 == null
{{{#!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9 != null
, ''''''{{{#!if 넘어옴10 == null
{{{#!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10 != null
, ''''''{{{#!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D7A3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if 설명 == null && 리스트 == null
{{{#!if 설명1 == null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if 설명1 != null
{{{#!html 나무들이 집단으로 번성하고 자생하는 곳}}}에 대한 내용은 [[숲]] 문서{{{#!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를}}}{{{#!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의 [[숲#s-|]]번 문단을}}}{{{#!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의 [[숲#|]] 부분을}}}}}}{{{#!if 설명2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를}}}{{{#!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3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를}}}{{{#!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4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를}}}{{{#!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5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를}}}{{{#!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6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를}}}{{{#!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7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를}}}{{{#!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8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를}}}{{{#!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9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를}}}{{{#!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10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를}}}{{{#!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의 [[#|]] 부분을}}}}}}
#!if 설명 == null
{{{#!if 리스트 != null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if 리스트 != null
{{{#!if 문서명1 != null
 * {{{#!if 설명1 != null
나무들이 집단으로 번성하고 자생하는 곳: }}}[[숲]] {{{#!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문서의 [[숲#s-|]]번 문단}}}{{{#!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문서의 [[숲#|]] 부분}}}}}}{{{#!if 문서명2 != null
 * {{{#!if 설명2 != null
: }}}[[]] {{{#!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3 != null
 * {{{#!if 설명3 != null
: }}}[[]] {{{#!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4 != null
 * {{{#!if 설명4 != null
: }}}[[]] {{{#!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5 != null
 * {{{#!if 설명5 != null
: }}}[[]] {{{#!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6 != null
 * {{{#!if 설명6 != null
: }}}[[]] {{{#!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7 != null
 * {{{#!if 설명7 != null
: }}}[[]] {{{#!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8 != null
 * {{{#!if 설명8 != null
: }}}[[]] {{{#!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9 != null
 * {{{#!if 설명9 != null
: }}}[[]] {{{#!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10 != null
 * {{{#!if 설명10 != null
: }}}[[]] {{{#!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 부분}}}}}}


1. 개요2. 내용3. 결론

1. 개요

산림()이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사용되었던 단어로 본래는 정치에 입문하지 않고 속세 밖에서 은거하며 공부를 하여 덕행과 학문이 높은자를 뜻하는 단어였다.[1] 하지만 보통 한국사에서 산림에 대하여 설명한다면 조선 후기에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은거하면서 자신의 제자나 유학자(성리학자)들을 통해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거두들을 지칭한 것이다.

산림과 사림은 같은 원어에서 기원하는데, 고려말에 조선 건국에 반대했던 자들[2]의 후예들이 사림파로 등장한다는 것을 본다면, 사림파들이 자신과 같은 부류들을 높여 부르던 말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3] 점진적으로 사림과 산림을 구분해서 부르다가 훈구파를 끝으로 관학파가 소멸하면서 15세기 전후로 산림의 뜻은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은거하면서 정게에 영향을 끼치는 거유(巨儒)를 지칭하게 된다.

이러한 산림들은 같은 대스승[4]을 둔 동류 산림들과 연대를 해 지역의 민심을 움직이거나[5][6], 조정에 출사한 같은 파벌의 유학자 혹은 제자들을 통해서 조정에 영향을 미쳤다.[7] 사림의 집권으로 등장한 이들은 붕당정치기에 그 영향력의 정점을 찍다가 숙종시기의 환국영조-정조 시기의 탕평책을 거치면서 영향력을 상실하기 시작했으며[8], 개화로 성리학이 쇠퇴하면서 사라졌다.[9]

2. 내용

산림(山林)이란 산곡임하(山谷林下)에 은거해 있으면서 학덕을 겸비해 국가로부터 징소(徵召)를 받은 인물이라는 뜻으로 조선 중기에 훈구를 대신에 조선을 장악한 기득권 사림과 구분되는 선비들을 가리킨다.

사실 산림이란 단어가 처음 나왔을 때는 사림이라는 단어와 같은 뜻으로 쓰였는데, 조선시대의 성종시기에 사림들에게 지배적인 존재들이 나타났을 때, 처음으로 산림과 사림을 구분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 구분할 때에는 성리학계의 안에서 식견이 높은 대학자들을 의미했는데, 붕당정치가 시작된 후로 그들은 지방사족들의 여론을 대변함과 동시에, 조정에 출사한 자신의 제자 등을 통해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된다.

따라서 초기부터 산림들이 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 산림들이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훈구파를 몰아낸 이후부터 였는데, 최초로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산림은 16세기, 선조시절의 성혼(成渾)과 정인홍(鄭仁弘)이었다. 이들 중에 정인홍은 조정의 대북 수장을 맡은 이이첨(李爾瞻)을 통해 자신의 뜻을 조정의 정책에 반영했다.[10]

정인홍의 사례는 인조반정으로 북인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서인들 또한 답습하게 되며, 인조반정 이후 산림(山林)이 뒤에서 조정에 영향력을 끼치는 체제가 관례화된다. 특히 인조시기부터는 산림들에게 명목상이나 실제의 벼슬을 내려, 산림이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산림(山林)들을 우대받게 되고 제도 속에 들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왕실과 서인의 이해가 맞았기 때문이었다. 왕실로서는 정묘호란병자호란으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인조반정과 새 조정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서 강력한 지지자들이 필요했다.

환국시기에 각 당의 신료들이 사사당하면서도 당이 소멸하지 않고 계속 건사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들 덕분이었다.

그러나 산림이 본격적으로 붕당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면서 이를 부담스러워한 숙종 등은 기사환국에서 송시열을 사사함으로서 영향력을 제거하려 하였고, 영조 또한 마찬가지로 영향력을 거세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의미로 지방 여론이 중앙 정부에 전달되는 대변인의 상실을 의미했으며, 이미 가속화되고 있던 한성과 기호 중심의 관료풀이 더욱 심화되는 계기를 제공하였고 이는 도성을 중심으로 하는 유력가문의 세도정치로 이어진다.

산림의 존재 자체는 고종 초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세도정치기에도 산림[11]은 존재하였으나, 그 영향력은 이미 거세된지 오래였기에 현실정책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12]
산림이 마지막으로 조정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 고종시기에 최익현흥선대원군을 실각시킨 것이었는데, 최익현이 기호지방의 대표적인 산림이었다.

3. 결론

산림은 사림들이 훈구를 밀어내고 정권을 장악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었으며, 조선을 성리학 국가로 만드는데 큰 공훈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맨 처음, 지방의 사족들의 여론을 중앙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나 인조반정 이후에 정계에 직접적 영향력을 미치게 된 후로는 붕당정치의 자체적인 한 축으로 자리잡는다. 현종대부터 숙종, 영조에 거쳐 이들의 영향력을 거세하기 위한 조치를 계속 시행하였고 결국 영조 이후로 그 영향력은 소멸되지만, 이는 반대로 조정이 도성과 기호의 유력 가문 위주로 운영되는 세도정치로 이어지는 결과를 맞이한다.


[1] 산림지사(山林之士), 산림숙덕지사(山林宿德之士), 산림독서지사(山林讀書之士)가 산림의 원어이다.[2] 많은 고려의 충신들 혹은 조선 건국세력과 맞지 않던 자들이 고려의 멸망이 확정나기 전까지 조선에 출사하지 않고 고향에서 제자를 기르며 세력을 늘렸다.[3] 사림들은 자신들을 좋게 포장하는 것을 좋아했다. 가령 사화는 ' (참된)선비들이 화를 입었다. '라는 뜻이다. 교조주의가 심해지면 자신들이 추종하는 스승 혹은 유학자를 비난했다고 사문난적으로 몰아가버리는 행태까지 벌인다.[4] 보통 이황(동인/남인), 조식(동인/북인) 이이(서인)이다.[5] 애초에 조정에 출사해 녹봉을 받지 않고도 글공부나 제자양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정도면 최소 지역의 유지(有志)이다. 즉 애초에 유교적 학식이 없어도 영향력이 있는 기득권이란 뜻이다.[6] 사병이 혁파되어 존재할 수 없던 조선의 역사 내에 수 많은 의병들이 유학자들의 격문에 순식간에 모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도 단위에서 전국 단위로 영향을 미쳤던 산림들을 왜 함부로 대할 수 없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성리학의 몰락으로 산림의 위상이 많이 죽었던 구한말에도 을사늑약 이전까지는 이러한 유학자/사대부들의 영향력들이 거병에 꽤나 크게 작용했다.[7] 이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지 감이 안잡힌다면, 실권을 쥐고 있던 흥선대원군상소 두 방에 실각시킨 산림인 최익현을 생각해보면 된다. 서원철폐만동묘 폐지까지, 영조정조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낸 흥선대원군의 위세는 세도가문보다 강했다. 흥선대원군조차도 기호유림의 눈치를 보고 내려 올 수 밖에 없던 것이다.[8] 특히 정조가 유향소를 폐지한 것은 산림의 힘을 많이 뺐다. 하지만 유향소 폐지가 세도정치시기의 문란을 불러와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9] 마지막 산림이 바로 최익현으로 1907년에 최익현이 죽은 이후에는 격문으로 군대를 조직할만한 영향력을 지닌 거유(巨儒)는 나오지 않았다.[10] 정인홍의 명성은 정말 대단했기에, 대북파의 실질적인 영수인 이이첨도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반대로 이이첨이 정인홍의 명성을 이용해 일을 추진한 부분도 분명 있었다. 먼저 상소 올려놓고 정인홍과 뜻이 같다고 한다던가, 정인홍 이름으로 상소를 올렸다던가 한 사례가 있기 때문.[11] 오희상, 홍직필 등이 그 예. 이들은 산림으로 대접받았으나 본인들 자체가 세도정국 자체에 부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은 정치 개혁 역량도 없으면서 정치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라 보아 정치 참여를 거부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들 또한 노론 명문가 출신이었다는 것. 오희상은 해주 오씨에 할아버지가 대제학을 지냈으며, 홍직필은 남양 홍씨에 아버지가 장관급 직책인 판서를 지낸 사람이다.[12] 위에서 언급된 영조-정조 이후의 노론계 산림인 오희상, 홍직필은 실학자로 유명한 유형원의 반계수록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이와 같은 인재가 출사하여 쓰이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경세학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의리에 따른 정치를 다시금 일으키길 원했으나, 이미 붕당이 소멸하고 한성-기호의 유력가문 위주로 돌아가던 세도정치 내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