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삼국지/지명/옹주
三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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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한나라의 행정 지명. 전한의 수도에 해당하는 장안과 장안 일대 주변을 일컫는 말로, 오늘날의 수도권 개념이다. 경기[1], 다른 용어로 기보(畿輔)의 3개 지역이므로 삼보(三輔)라고 불렀다.[2]항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였을 때, 유방의 측근들은 고향과 가까운 낙양(雒陽)을 도읍으로 삼기를 원하였으나, 장안을 도읍으로 할 것을 강력 주장한 유경, 장량덕에 결국 장안이 전한의 도읍으로 선정되었다. 장안과 장안 일대 주변 지역은 옛부터 관중이라 불리며 진나라와 전한의 수도권이었고, 후한의 수도권이라 할 수 있는 사례에 비견될 정도로 중추지역이었는데, 수많은 명문가들과 백성들이 거주한 크고 아름다운 부유한 지역이었다.
관중은 애초에 내사 1명이 통치했으나, 경제 2년(기원전 155년)에 좌내사·우내사로 분할하여 통치하도록 개편하였으며, 이때는 좌·우 내사가 관중을 공동 통치하였다. 이후 무제 7년(기원전 135년)에 관중 지역을 둘로 나누어 좌·우 내사가 각각 별도로 통치하게 하였다. 무제 38년(기원전 104년)에는 경조윤·우부풍·좌빙익 3개 권역으로 나뉨과 동시에 좌내사를 좌빙익으로, 우내사를 경조윤으로 변경하였고, 주작중위(主爵中尉)를 우부풍으로 개편하여 셋이서 통치하게 하였다. 이렇게 개편된 경조윤·좌빙익·우부풍 3개 지역과 이를 통치하는 지방관들을 삼보라고 불렀다.
하지만 후한말에 이각, 곽사에 의해 삼보의 난이 일어나 인구 대부분이 죽거나 피난민이 되고 수많은 재산이 약탈되었다.
후일 오호십육국시대 부씨의 전진이 이 지역을 바탕으로 화북을 통일하기도 했으나 비수대전으로 망했고, 남북조시대 북주가 건국 되기전까지 옛 성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2. 관련글
[1] 수도권이나 수도 그 자체를 일컫는 옛말이다.[2] 가끔 형주 위쪽이라고 착각하는 이들도 있는데 제갈량의 북벌에서의 목적지인것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옹주 주변, 익주 위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