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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Francisco Symphon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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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거점으로 하는 오케스트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등과 함께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악단으로 유명하다.2. 연혁
1911년에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헨리 킴벌 해들리가 창단했고, 해들리는 스스로 초대 음악 감독에 부임해 1915년 뉴욕으로 이주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해들리의 후임으로는 독일에서 이주해온 알프레트 헤르츠가 발탁되었고, 1930년 퇴임할 때까지 약 15년 간 악단을 이끌며 합주력 개선이나 연주 곡목 확장 등의 기틀을 닦는 동시에 라디오 연주회나 음반 취입 등을 창단 이래 최초로 시도했다.헤르츠가 퇴임한 후에는 영국 출신의 배질 캐머런이 뒤를 이었고, 이듬해에는 러시아 출신의 노르웨이 지휘자인 이사이 도브로벤이 추가 영입되어 2인 공동 음악 감독 체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캐머런은 1932년에 시애틀 심포니로 옮겨갔고, 이후 도브로벤의 1인 체제로 다시 환원되었다.
1933년 터진 세계 대공황 때문에 악단은 한순간에 휘청거렸고, 급기야 1934/35년 시즌의 공연 계획이 전부 취소되고 악단 이사회는 파산 신청을 하는 등 해단 위기에 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음악 애호가들이 채권을 급히 매입하고 시 측에 지원금을 신청하는 등 비상 대책을 세워 해산은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
위기를 모면한 악단은 1935년에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 몽퇴를 신임 음악 감독으로 초빙해 도약을 꾀했다. 몽퇴는 혼란스러운 악단 분위기를 다잡고, 정통 독일계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연주하면서, 모국인 프랑스를 비롯한 동시대의 음악을 적극 소개하는 등 혁신적인 프로그램 편성을 단행해 화제가 되었다. 또 NBC 방송국의 공연 실황 정기 생중계와 RCA의 정기 녹음 계약도 맺어 재정난에 큰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1949년에는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유명한 아서 피들러가 매년 여름마다 초빙되어 비슷한 설정의 팝스 콘서트를 정기적으로 지휘했고, 대단한 인기를 모아 악단의 연례 행사로 고정되었다.
1952년 몽퇴가 퇴임한 후에는 두 시즌 동안 객원 지휘자들이 공백을 메웠고, 1954년에 스페인 출신의 젊은 지휘자인 엔리케 호르다가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다. 호르다는 재임 초기에 열정적인 음악 만들기로 청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도력의 부재와 여타 단점이 점차 크게 드러나 비평가들로부터 밥먹듯이 디스당하게 되었다.
1963년 빈 국립 오페라에서 잔뼈가 굵었던 노장 지휘자인 요제프 크립스가 호르다의 뒤를 이어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크립스는 독일어권 정통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중후한 연주를 이끌어냈다. 또 과거에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이끌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를 비롯한 빈 춤곡 작곡가들의 작품 위주로 구성한 제야 음악회를 연례 행사로 만들었다. 동시에 뉴비였던 일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를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해 악단에 수시로 객원 출연하도록 했다.
크립스가 고령으로 퇴임한 후 오자와가 후임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오자와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젊은 혈기가 어울어져 악단의 수준과 인지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카라얀의 제자로서 스스로 독일 음악에 정통한 지휘자라고 생각했던 오자와는 독일-오스트리아의 정통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했지만 때때로 평단의 요구 등으로 "어쩔 수 없이"[1] 현대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또한 오자와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휘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연속 연주하는 컨셉의 공연이나 오페라 등 무대 작품의 연주회식 상연, 재즈나 블루스 뮤지션들과의 협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들 공연에서 연주된 일부 작품들은 도이체 그라모폰을 통해 녹음되기도 했다. 또 필립스에서 베토벤을 비롯한 유명 레퍼토리들을 녹음하여 악단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또 당시 베를린 필이나 빈 필과 공연하며 유럽에서 인정받고 있던 오자와는 샌 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유럽 투어를 이끌며 악단의 이름을 유럽에 알리기도 했다. 오자와는 1973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맡게 되어 두 악단의 상임지휘자직을 겸직하게 되었는데, 1974년 일본인 바순 주자의 영입을 두고 악단과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오자와는 1976년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를 사임했다.
후임으로는 네덜란드 출신의 에도 데 바르트가 임명되었다. 바르트는 오자와에 비해 세계적인 인지도도 약한 편이며, 음악 녹음 또한 많지 않은 편이라 전임자만큼의 큰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때때로 마이너 레이블에서 음반을 취입했으며, 건실한 음악성과 탄탄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1985년까지 재임했다.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졌던 바르트는 후반기에는 말러의 교향곡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1985년에는 스웨덴 출신의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신임 음악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서 베토벤, 브람스, 브루크너 등 정통 독일 레퍼토리에서 큰 호평을 받았던 블롬슈테트는 악단으로부터 중후하면서도 따뜻하고 감각적인 음향을 끌어내었다. 동시에 자신의 소속사였던 데카를 통해 고전에서 근현대에 이르는 많은 수의 음반을 녹음했다. 공연장의 음향 효과를 개선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서 동참하는 등 다방면에서 큰 몫을 했다. 악단 측은 블롬슈테트가 퇴임한 후에도 계관 지휘자 호칭을 수여했고, 블롬슈테트도 이후 객원으로 종종 출연하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후임 음악 감독으로 선임된 마이클 틸슨 토머스는 1995년 음악감독 취임 후 미국 음악에 좀 더 큰 비중을 두면서도 말러 교향곡이나 유럽의 근현대 작품에서 현대적인 리듬감과 속도감을 살린 연주를 뽑아내 큰 인기를 얻었다. 틸슨 토머스는 2020년까지 무려 25년이나 음악감독직을 수행하며 자국 지휘자에 대한 자부심 고취까지 이루어냈다.
2020년부터는 LA 필하모닉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끈 적이 있는 에사-페카 살로넨이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다만 최초 계약 5년까지만 임기를 수행하고, 재계약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으로 하였다.
3. 역대 음악 감독
- 헨리 킴벌 해들리 (Henry Kimball Hadley, 재임 기간 1911-1915)
- 알프레트 헤르츠 (Alfred Hertz, 재임 기간 1915–1930)
- 배질 캐머런 (Basil Cameron, 재임 기간 1930–1932)
- 이사이 도브로벤 (Issay Dobrowen, 재임 기간 1931-1934)
- 피에르 몽퇴 (Pierre Monteux, 재임 기간 1935–1952)
- 엔리케 호르다 (Enrique Jordá, 재임 기간 1954–1963)
- 요제프 크립스 (Josef Krips, 재임 기간 1963–1970)
- 오자와 세이지 (小澤 征爾, Seiji Ozawa, 재임 기간 1970–1977)
- 에도 데 바르트 (Edo de Waart, 재임 기간 1977–1985)
-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Herbert Blomstedt, 재임 기간 1985–1995. 퇴임 후 계관 지휘자 호칭 수여)
- 마이클 틸슨 토머스 (Michael Tilson Thomas, 재임 기간 1995–2020)
- 에사-페카 살로넨 (Esa-Pekka Salonen, 재임 기간 2020-2025)
4. 특징
로스앤젤레스 필과 함께 서부를 대표하는 악단으로 지위를 굳히고 있으며, 여러 나라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도시의 특성을 악단의 개성으로 흡수하고 있다. 새로운 음악에 대한 적응력도 로스앤젤레스 필 못지 않으며, 1999년에는 메탈리카와 협연한 더블 라이브 앨범인 'S&M' 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 영화음악 공연이나 재즈 아티스트들과의 협연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녹음은 1925년에 헤르츠의 지휘로 빅터 토킹 머신(이후 RCA)에 취입한 오베르와 바그너의 오페라 서곡들을 시작으로 상당히 많은 음반들을 내놓았고, 특히 몽퇴 재임기에 쏟아져 나온 RCA 음반과 오자와 재임기의 도이체 그라모폰과 필립스 음반, 블롬슈테트 재임기의 데카 음반들 중에는 그래미상을 비롯한 여러 음악상을 수상한 명반들이 많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들어 기존 음반사들이 클래식 시장을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하자, 악단 측에서 자체 음반/영상물 제작사인 SFS Media를 설립해 음원과 영상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공연 실황 영상과 함께 토머스 자신이 연주곡들의 총보[2]를 분석하는 피처링 영상을 같이 수록한 DVD 시리즈인 '키핑 스코어(Keeping Score)' 가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상주 공연장은 초기의 코트 극장 외에 커랜 극장, 티볼리 극장 등으로 옮겨가며 사용했는데, 모두 콘서트 전문으로 쓰기에는 음향과 무대 조건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1932년에는 새로 건립된 전쟁 기념관 오페라 하우스로 옮겨갔고, 이 공연장은 1980년까지 사용되었다. 1980년 9월에는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 새로 건립된 콘서트 전용 공연장인 루이스 M. 데이비스 심포니 홀로 다시 옮겨 2010년 현재까지 상주 공연장으로 쓰고 있다. 다만 여기도 음향 상태가 좀 안좋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었고, 1990년대 초반에 새로운 반사판을 설치하고 좌석 배치를 바꾸는 등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시작되어 1992년에 완료되었다.
악단 부속 공연 단체로는 1972년 오자와의 의뢰로 창단된 합창단인 샌프란시스코 교향 합창단(San Francisco Symphony Chorus)과 1981년 창단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유스 오케스트라(San Francisco Symphony Youth Orchestra)가 있다.
5. 기타
2013년 2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수석 오보이스트였던 윌리엄 베넷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을 협연하던 중[3] 갑자기 쓰러졌고 얼마 못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영문 블로그[1] 본인이 직접 그렇게 표현했다.[2] 관현악곡에서 모든 파트의 연주보가 통합되어 실린 악보. 영어로는 '풀 스코어' 라고 한다.[3] 협연자로 나선 것이다. 프로 오케스트라들은 종종 단원들과 협연하는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