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6 00:14:04

샤를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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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의 행정구
(괄호 안은 중심 도시)
라루비에르 행정구
(라루비에르)
몽스 행정구
(몽스)
샤를루아 행정구
(샤를루아)
수아니 행정구
(수아니)
아트 행정구
(아트)
튀앵 행정구
(튀앵)
투르네무크롱 행정구
(투르네, 무크롱)
샤를루아
Charleroi
Châlèrwè
파일:샤를루아 깃발-2000px.png 파일:샤를루아 문장-2000px.pn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깃발 문장
파일:샤를루아 로고.png
로고
국가
[[벨기에|]][[틀:국기|]][[틀:국기|]]
지역 왈롱
공동체 왈롱-브뤼셀 연방
에노
행정구 샤를루아 행정구
시장 폴 마녜트 [[사회당(벨기에)|
사회당
]][1]
데모님 Carolorégien(ne)(카롤로레지앵/카롤로레지엔)[2]
인구 201,610명(2021년)[3]
면적 102.9 km2
인구 밀도 1,966.7 명/km2(2020년)
사이트 파일:샤를루아 깃발-2000px.png
1. 개요2. 상징
2.1. 문장2.2. 로고
3. 역사4. 경제5. 명소6. 교통7. 자매도시

[clearfix]
프랑스어/네덜란드어: Charleroi
왈롱어: Châlèrwè

1. 개요


벨기에 에노주의 최대도시. 동시에 왈롱 지방의 최대도시이기도 하다. 1659년 피레네 조약이 체결되어 프랑스에게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상당부분을 상실한 이후 스페인이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방어를 위해 세운 도시로 도시 이름은 당시 스페인의 왕위 계승자였던 카를로스 2세에서 유래했다. 현재는 1970~1980년대의 합의에 의해 사회 수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사회당 강세지역이다. 2018년도 코뮌 선거에서 사회당이 51석 중 26석을 얻었다. 나머지 정당은 한자릿수 씩 나눠가졌다.

2. 상징

2.1. 문장

파일:샤를루아 문장(1847~1977)2000px.png 파일:샤를루아 문장-2000px.png
1847년 칙령에 의해 정해진 문장 1977년부터 쓰고 있는 문장
1847년부터 1977년 까지는 검을 쥔 노란 사자 문장을 쓰다가 1977년부터 별에 둘러싸인 샤를루아 요새 문장으로 바뀌었다. 깃발은 현재의 샤를루아 문장 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왈롱의 닭이다.

2.2. 로고

파일:샤를루아 로고.png
C위의 도형은 채석 작업 과정에서 생긴 언덕, 닭벼슬, 지명의 유래가 된 카를로스 2세의 왕관을 의미한다.(#)

3. 역사

역사적으로 샤를루아는 이미 선사 시대 부터 사람이 살았다. 상브르 강을 따라 상업 활동의 흔적이 보였고 로마 시대에는 이 일대에 여러 공공 건물과 사원 그리고 빌라가 지어졌다. 보석과 무기가 매장되어있는 무덤도 발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를루아는 르네상스시기까지만 하도라도 그냥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1659년 프랑스-스페인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이 피레네 조약을 체결해 벨기에 남부 지역에 상당한 영토를 프랑스에 빼앗겼다. 그러자 몽스나뮈르사이는 텅텅 비어서 브뤼셀이 노출된 상태였다. 그리고 1664년 네덜란드 총독인 프란시스코 데 카스텔 로드리고 후작은 샤를루아에 요새를 세웠고 이 것이 도시의 시작이었다.

샤를루아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를 왔다갔다하였고 결국 1748년 샤를루아의 요새를 해체한다는 조건으로 신성 로마 제국에 반환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샤를루아는 장바티스트 주르당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점령하였고 이는 나폴레옹이 몰락할 때 까지 계속되었다. 결국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자 벨기에 전역은 네덜란드에 병합되었다.

산업 혁명이 일어나자 샤를루아는 발전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탄광이 풍부해 대량으로 코크스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되자 수많은 공장이 샤를루아에 세워졌고 벨기에 전역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몰려들었다. 샤를루아 곳곳에 도로, 철도, 수로, 가로등, 학교, 대형 병원이 세워졌고 당시 벨기에 최대 자동차 회사인 아틀리에 제르맹(Ateliers Germain)의 본사도 들어섰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자 샤를루아는 독일과 프랑스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독일군의 기세에 밀려서 후퇴하였고 결국 독일군에게 점령당했다. 독일군은 민간인 32명을 처형하고 건물 156채를 파괴하였다. 그리고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샤를루아는 또 다시 독일군에게 점령당했고 이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은 독일군에 의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었다.

양차 대전이 끝나고 샤를루아는 점차 몰락하기 시작했다. 석탄보다 석유가 더 많이 쓰이자 샤를루아의 경제적 중요성은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광산이 차례대로 문을 닫기 시작했고 철강과 스테인리스를 생산하던 공장도 문을 닫아 현재 2곳 밖에 중공업 공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조차도 신흥국과의 경쟁에 밀려 경쟁력을 유지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4. 경제

원래 석탄, 철강, 유리 산업이 발달해있었으나 가장 큰 석탄 산업이 몰락했다. 현재는 남아있는 철강, 유리에 우주항공, 바이오 산업, 물류에 투자하고 있다.[4] 알스톰 엔지니어링 센터,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의 연구소가 샤를루아에 소재하고 있다. 이외에도 라이언에어의 취항지인 샤를루아 브뤼셀 쉬드 공항이 위치해 있다. 스피루와 팡타지오마수필라미를 출판한 뒤퓌가 여기에 소재하고 있다.

과거에는 석탄 산업을 기반으로 벨기에의 2차 산업을 대표하는 산업 도시 중 하나로, 석탄가루로 인해 Pays Noir(검은 땅)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벨기에 전체에서 가장 빈곤한 도시권으로 꼽힌다. 물론 브뤼셀 내부에서 사를루아보다 상태가 더 나쁜 구역들을 찾을 수 있긴 하지만, 이는 해당 구역의 사회 통합의 문제로 국한될 뿐 도시권 자체의 산업이 견실한 브뤼셀과 달리, 샤를루아는 전통적 석탄 산업의 쇠퇴로 인한 구조적 실업으로 도시권 전체의 경제가 몰락한 상태라 비교하기 힘들다.[5]

5. 명소

  • 샤를루아 종탑 (Beffroi de Charleroi) : 1936년 건설된 아르데코 양식의 종탑으로 시청과 연결되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보자르 샤를루아 (Palais des Beaux-Arts) : 1950년 개장한 샤를루아의 대표적인 공연 예술 극장으로 연극, 콘서트,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 르 부아 뒤 카지에 (Le Bois du Cazier) : 과거 탄광이었던 곧으로 현재는 광산 역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샤를루아 사진 박물관 (Musée de la Photographie) : 우럽에서 가장 큰 사진 박물관 중 하나로 과거 수도원이었던 건물을 개조하였다.
  • 성 크리스토퍼 교화 (Église Saint-Christophe) :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로 내부의 황금빛 모자이크가 인상적이다.
  • 유리 박물관 (Musée du Verre) : 다양한 유리 공예품과 유리 산업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는 박물관.

6. 교통

벨기에 전체에서 도시철도가 있는 세 도시 중 하나(브뤼셀, 안트베르펜, 샤를루아)라는 점이 과거의 영광을 대변하고 있다. 다만 중전철 도시철도를 갖춘 브뤼셀과는 달리, 샤를루아의 도시철도는 안트베르펜과 같은 Premetro 형태의 도시철도이다. Premetro란 중전철 도시철도의 일부 구간만을 건설한 후 트램 노선을 이에 연결한 형태이다. 샤를루아 Premetro의 노선망 자체는 과거 NMVB/SNCV의 인터어반 철도 네트워크의 유산인데, 이 인터어반 네트워크의 흔적은 브뤼셀과 안트베르펜 근교의 트램 노선망과 북해 연안의 Kusttram, 그리고 샤를루아 Premetro에서만 찾을 수 있다.

7. 자매도시



[1] 사회당 대표 겸직[2] 벨기에 프랑스어 공동체 데모님 지침.[3] 샤를루아 행정구의 인구는 395,418명이다. 행정구 인구의 약 51%가 샤를루아시에 집중되어 있다.[4] Découvrir les forces économiques - Charleroi Métropole[5] 에노의 1인당 GRDP는 왈롱의 평균에 못미친다. 샤를루아의 각종 지표가 에노 내에서는 많이 낮기는 하나 나머지 도시도 그다지 높진 않아 대체로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다.[6] 현재는 러시아가 실효지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