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과거 CD 미디어가 주류로 대두되기 시작했던 시절 공CD와 CD 라이터를 이용해서 게임, 영화, 음악, AV 등을 구워서 판 걸 서민 CD라고 한다. 서민 CD라는 단어는 콘솔계에서 주로 사용했던 단어로, PC게임쪽에서는 백업 CD, 음악쪽에서는 빽시디, 영화 DVD 쪽에서는 따오판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했다.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들을 판매하는 건 당연히 불법이고, 저작권에 위반되는 행위다. 그리고 AV의 경우는 음란물 유포죄까지 적용 받을 수 있다.
2. 상세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에 여러 유통 경로를 통하여 판매되었다. 당시에는 점심 밥값이 대략 3~5천원대 였기 때문에 가격은 주로 부담 없는 수준인 1만원선부터 시디 롬 라이터와 공 미디어의 가격이 내려가고 너도나도 사업에 뛰어들며 경쟁이 붙기 시작하자 2천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고.주로 동네 컴퓨터 가게 같은 곳에서 취급했으며 백업시디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 후에는 ESD와 온라인 서비스의 발달로 패키지로 나오는 사례 자체가 줄어서 이런 시장은 거의 사장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영화에 한해서는 2000년대를 넘어 아직도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진화형으로 서민 DVD를 넘어 서민 Blu-ray까지 나왔다고 한다. 당연히 영화업계의 커다란 피해로 인해 시나비아(Cinavia)라는 불법 영상물 재생방지 기술이 등장했지만 말이다.
백업 시디는 아니지만 해적판인 물건으로는 음악 시디의 경우 2000년대까지 애니메이션이나 JPOP 시디를 정식 라이센스를 받고 만든 척 하는 대만의 SM 시디(笙美影音光碟有限公司, Sonmay Records .Ltd)가 유명했다. 포르노의 경우는 양성적으로 허가를 받고 만드는 에로 비디오 수준의 포르노 비디오 가 주로 비디오 시디로 생산되었던 적이 있다.
Bootleg PS1 Games
콘솔 게임은 이미 오래 전부터 복사가 정착되었는데 MSX 시절의 메가램팩, 패미컴 시절은 정품이 거의 없이 대부분 복사팩 위주로 유통이 되고 있었고 슈퍼 패미컴은 알음알음 UFO를 사용한 디스켓 덤프가 유행하고 있었다. 그 후 플레이스테이션이 발매되며 빠르게도 복사 시디 플레이가 뚫렸는데 플레이스테이션 1000번은 개조를 하지 않고도 복사된 게임을 돌릴 수 있었고 프린팅 조차 되지 않은 프레스 시디가 같이 팔릴 정도였다. 복사된 게임의 가격이 워낙 저렴했기 때문에 개조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정도였다.
3. 종류
3.1. CD 백업
과거에는 개인이 자료를 백업할 수 있는 방법이 한정적이었다. 그러다가 2-4배속 시디 롬 라이터가 등장했을 무렵 컴퓨터 전문점에서는 개인이 하드디스크를 들고 오면 거기서 원하는 자료들을 백업해서 시디로 만들어 주는 서비스가 유행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미디어라고는 플로피 디스크가 고작이었던 시절에는 이게 당연했다.[1]이런 서비스를 응용하여, 업자는 자신이 가진 불법 프로그램들의 이름과 용량을 리스트로 만들어 올리면 구매자는 그 리스트에서 시디 용량만큼 꽉꽉 채워넣어 리스트를 제출하면 그것을 시디로 만드는 주문형 백업 CD 제작 서비스도 존재하였다. 당시 게임들은 시디로 나온 게임이라도 음악 트랙 따위를 제외하면 100메가도 안 하던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에 많은 게임들을 넣을 수 있었고 때문에 PC 게임의 1:1 ISO 백업 시디 구매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선호되었었다. 물론 니드 포 스피드: 하이스테이크 같은 일부 게임은 추격전 같은 특수 이벤트[2]를 진행하면 튕긴다. 아마 몇 KB짜리 더미데이터로 바꾼 탓에 그런 듯하다.
게임도 게임이지만 OS, 유틸리티 프로그램 또한 서민CD의 마수를 피해가지 못했다. 언급한 불법 CD 백업 업자들은 Windows 95 등 당시 인기있는 기성 프로그램은 주문형 이전에 완성품 복제판을 아예 준비해 놓고 팔았다.[3]
3.2. 게임
콘솔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이 복돌시대 초창기부터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프레스 시디가 먼저 등장하였지만 시디 롬 라이터가 대중화되고 공시디가 저렴해지자 개인 업자들도 사무실까지 차려 뛰어들었다. 좀 있는 업자들은 아예 듀플리케이터를 구비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고, 플스 후기에 가서는 개인들도 간편하게 집에서 업자 거르고 인터넷으로 ISO를 구워 자급자족을 실현했다. 프레스 시디는 품질이 조악했으나 PC통신 쪽에서는 나름 경쟁도 붙어서 가격면에서 서비스도 좋았고, 주문도 편리했으며 고해상도 컬러 프린터를 이용하여 표지를 깔끔하게 출력하였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다. 각종 프린터블 시디나 매뉴얼까지 스캔 인쇄하여 파는 업자들도 있기는 했는데 당시에는 골드 시디를 쓰는게 좋다는 인식이 높았고 제작측에서도 가성비와 효율이 떨어져서 그렇게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4][사진첨부]
드림캐스트는 디스크가 1.2GB나 되는 GD-ROM(Giga Disc ROM, 기가 디스크)이라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복사가 불가능했지만 MIL-CD를 지원한 덕분에 MIL-CD로 인식하게 해킹했다. 그리고 몇몇 CD 드라이브에서 레코딩 프로그램을 개조해 인식을 할 수 있게 만들어서 복사가 가능하다. 그리고 용량이 650~700MB CD-R 때문에 복사가 불가능할 거라 여겨졌지만 더미 데이터나 동영상 등을 제외하는 식으로 용량을 줄이는 식으로 복사 시디가 등장하게 된다. D2 같은 것은 나중에 800MB CD-R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2CD로 적절하게 나누는 경우도 있다. 디스크 저글러로 구워야만 했으며 유토피아 부트로더를 이용해야만 했지만 나중에 셀프 부팅을 지원하는 롬 파일들이 나와서 부트로더를 이용해야 되는 수고로움이 줄었다.
게임큐브는 8센치 광 디스크[6]를 기본 매체로 채택해서 어느 정도 안전했지만 2004년도에 모드 칩이 나오고 미니 DVD가 나와서 복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미니 DVD가 너무 비쌌고 게임큐브가 일찍 망하는 바람에 그다지 유행하지는 않았다. 아예 게임큐브의 케이스를 12cm 미디어가 들어가는 것으로 교체하는 꼼수도 있었지만 큐브가 워낙 일찍 털려서 딱히 의미는 없고 지역 코드 개조를 해야해서 여러모로 골치가 아팠다.
Wii의 경우는 Wiikey라는 모드 칩이 일찍 나와서 디스크 복사가 일찍 털리긴 했는데 닌텐도가 내부적으로 코드를 계속 업그레이드해서 지원과 호환이 다소 까다로웠다. 그러다가 보안이 완전히 털리고 국내 정발되고부터는 바로 하드로더 개조로 넘어가게 된다. 다만 닌텐도 스위치에서는 지역코드가 폐지되어서 이는 옛말이 되었다.
PC 게임은 Denuvo는 아닐 지라도 세이프디스크(SafeDisk)나 시큐롬 같은 DRM 장치가 존재했지만 가상 CD 유틸리티들이 이것들을 에뮬레이션하는 기능을 제공했기 때문에 별 소용은 없었다. 이 때는 ADSL 같은 고속 인터넷망이 일반화된 시대였기 때문에 다들 시디 복사보다는 이미지 파일을 공유하였고, 이것을 시디로 굽는 것은 만에 하나를 위해 백업하기 위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심지어 정품을 사더라도 시끄러운 시디 롬 작동을 막거나 드라이브, 시디의 수명을 깎지 않기 위해 복사를 구하기도 했다. 시리얼 코드를 적어 주거나 표지에 인쇄해 주는 경우가 있었고, 그림 패드나 암호표도 잘 접어서 케이스에 넣어 주기까지 했다.
3.3. 영화
이것으로 인해 날림으로 오소링을 하는 정품 타이틀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타이틀 메뉴가 부실하고 화질이나 음질이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복불복이므로 편차가 크다. 이건 음반쪽도 마찬가지. 어떤 건 테이프를 그대로 녹음을 했는지 1번 트랙에 곡 전체가 담겨져 있다. 물론 시나비아가 싫어서 뚫는 방법을 검색하기도 하지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정품을 지르자.(사례1)또 다시 정품사고 불법취급 받은 <파커>(미디어허브) DVD[7]
(사례2)아트서비스 DVD<세븐 싸이코패스>에도 불법 Cinavia가 뜨네요.
4. 현황
1997년도의 014XY 야간정액제를 시작으로 케이블 인터넷과 ADSL 사업 그리고 국민PC 사업과 스타크래프트로 시작된 PC방 열풍을 통해 전국민에게 인터넷과 PC가 보급되며 그동안 PC통신이나 유즈넷으로만 전해지던 불법복제 유통루트는 와레즈와 같은 인터넷으로 바뀌어 더 접근성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저렴해지는 시디 롬 라이터와 공시디 때문에 너도나도 범법행위를 쉽게 심지어 아무런 죄의식이나 자각조차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는 냅스터를 비롯한 eMule 등의 P2P 기술의 등장과 웹하드의 대중화 시대가 이어졌고, 결정타로 비트토렌트의 등장으로 서민 CD는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상당히 늦은 시기까지도 용산 굴다리 출구쪽에 백업 시디 좌판을 벌려놓는 사람이 있었으나, 200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해서 결국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한민국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설명할 때 불법복제의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 되었다. 저작권 의식이 낮거나 서방세계의 컨텐츠를 틀어막은 일부 국가들도 동일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긴 하다.
일부 카페에서는 규정에 걸리기 때문에 응응시디, ○○시디 등으로 돌려서 언급한다.
5. 관련 문서
[1] CD-ROM 라이터 등장 초기에는 일반 재생전용 CD-ROM에 비해 매우 비싼 가격(대략 PC 완본체 2~3대 가격)으로 인해 일반인들의 직접 구매가 어려웠다. 인터페이스도 개인 PC에서는 생소한 SCSI가 대부분이였고. 컴퓨터 전문점 등에서나 구매해서 백업 서비스를 할 수밖에. IDE 방식이 보편화되고 일반 CD-ROM과 거의 비슷한 가격이 되기까지는 한 4년 정도는 더 있어야 했다.[2] GPU에 따라 다름. 3Dfx Voodoo 1/2는 트랙 설정이 안된다.(S/W 렌더링도 동일)[3] 지금처럼 온라인 정품 인증이 아닌 키값만 넣으면, 아니 111-111111로 넣어도 정품 인식되고 사용에 아예 문제 없었던 시절이라 이런 CD들이 암암리에 대유행했다.[4] 나중에 뒷면까지 검은색인 공 CD가 유통되자 완전한 슈퍼 페이크를 만들기도 했다. 다만 미묘한 색상 차이가 있어 정품 디스크를 일본에서 들여와서 비교를 하면 눈치챌수 있었다.[사진첨부]
이렇게 볼펜으로 표지와 디스크에 제목을 쓰기도 했다.[6] DVD 기반의 파나소닉-닌텐도의 독자규격이다.[7] 원 링크 삭제로 한 블로거 링크를 첨부함
이렇게 볼펜으로 표지와 디스크에 제목을 쓰기도 했다.[6] DVD 기반의 파나소닉-닌텐도의 독자규격이다.[7] 원 링크 삭제로 한 블로거 링크를 첨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