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18 07:18:36

서홍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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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 지도자 | 할거정권 군주
팽옥림 전구성 진감호 황소양 주고후
등무칠 등백손 왕빈 야선 이진
유통 이첨보 조탁 승성오 전빈
채백관 이진 만사 이원 남연서
언본서 요혜 조보 단창 전빈
장련 채백관 양응룡 보바이 이신
이문 사숭명 만사덕 서홍유 유영명
장유원 탁선령 장응금 무자강 장일천
장반자 구정문 형홍랑 대천왕 왕가륜
고영상 장보미 이자성 장헌충 유수분
진상행 궁문채 마상
명 황제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명나라의 반란자
烈帝 | 열제
존호 중흥복열황제(中興福烈皇帝)
연호 대성흥승(大成興勝, 1622)
성씨 서(徐)
홍유(鴻儒)
부모 아버지 서씨(徐氏)
생몰 ? ~ 1622년 12월 23일
재위 1622년 6월 19일 ~ 1622년 12월 23일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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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명나라 시기 산둥 거야(巨野) 사람으로 백련교 소속이며 반란을 일으켜 황제를 자칭한 인물이다.

2. 생애

서홍유의 초기 생애는 전해지지 않으며 단지 백련교 소속으로 지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천계제 2년인 1622년 6월 19일, 지금의 윈청현에서 봉기를 일으켜 자신을 '중흥복열황제(中興福烈皇帝)'라 칭하였고 연호를 대성흥승(大成興勝)[1]이라 개원하였다. 그가 즉위하자 많은 원주민들이 호응했으며 그들은 홍건을 착용하고 진격하니 지금의 등주시(滕州市), 추성시(邹城市)를 점령했으며 취푸를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동년 10월 명 조정에서 정규군을 파견해 진압당하니 서홍유는 휘하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관군에 넘겨졌고 동년 12월 23일 처형당했다. 비록 그의 봉기는 실패했으나 이 시점을 기준으로 명나라는 민란이 끊이질 않게 되었으며 결국 숭정제조(朝) 말기 이자성의 난이 일어나 명나라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1] 대성흥성(大成興盛) 이라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