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6:31:38

석품

石品

1. 개요2. 창작물

1. 개요

생몰년도 미상

신라 진평왕 때 인물. 반역자.

관등은 아찬(阿飡)으로, 630년에 서라벌 한복판에서 지진이 일어나 궁궐의 땅이 갈라진 사건을 빌미로 631년 5월에 이찬 칠숙과 함께 반란을 계획하였다가(칠숙·석품의 난) 사전에 발각되었다. 백제 국경까지 도망을 갔다가 부인과 자식을 보러 집에 들렀다가 잡혀 죽었다고 한다. 의외로 가정적인 인물이었을 수도?

2. 창작물

2.1. 선덕여왕

파일:석품.jpg
홍경인이 연기했으며, 아역은 노영학. 서라벌 10화랑 중 한 명으로 청룡익도를 이끌고 있다.

작중 신분, 소속, 나이가 가장 애매한 인물 중 하나로, 외모나 행동을 보면 분명 보종보다 어려 보이지만[1] 실제로는 보종보다 나이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단서로 칠숙을 만났을 때 칠숙에게 본인이 "어린 시절 청룡익도에 있었을 때" 석품이 칠숙을 본 적이 있다면서 자신을 알아보겠냐고 물었다는 점인데, 칠숙이 사라진 시점은 덕만과 천명이 막 태어난 시점으로 보종 역시 갓난아기였거나 태어나지 전인 시점이었다. 보통 낭도 생활은 10대 때부터 시작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석품은 최소한 덕만보다도 10살 이상 연상이며 보종과도 아마 그 정도 차이가 날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의 소속인 청룡익도와 관련해서는 선덕여왕 인물 설명 때문에 어느 정도 혼란이 있다. 설명에는 분명 '청룡익도를 이끌지만 보종의 일월성도의 일원이기도 하다.'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석품은 보종보다 한참 이전에 청룡익도에서 활약했기 때문. 따라서 추측해 볼 수 있는 바로는 석품이 10화랑이 되기 이전에 청룡익도는 칠숙의[2] 일월성도 휘하에서 활동을 했을 수도 있으며 그렇기에 "청룡익도를 이끌면서도 일월성도의 일원"으로 여겨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3]

신분 역시 애매한데 본인 입으로 "진골 화랑"이라고 덕만에게 떠들었지만, 사실 본인 역시 컴플렉스가 있는지 자신의 가문을 언급할 때 "한미한 출신", "비천한 출신" 정도로만 언급한다. 다른 화랑들과는 달리 부모들과 조우하는 장면이나 부모들을 언급하는 장면도 없다.[4] 이런 걸 보면 진골 귀족이었는데 몰락해서 완전 땅으로 가라앉은 가문 출신이거나, 아예 진골 신분도 없는 미천한 출신이었는데 미실이 골을 만들어줬거나 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작중 행적을 설명하자면 한마디로 시종일관 변함없이 못된 짓만 골라 하는 캐릭터다. 덕충, 박의와 더불어 '화랑 싸가지 삼총사'의 리더 격이며, 용화향도가 서라벌에 올 때부터 가장 주도적으로 용화향도를 괴롭힌 선두 주자였다. 사실 10화랑의 분노는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 게, 천명공주가 임의로 듣보잡이었던 지방 화랑을 비재 등을 통해 실력을 입증하고 올라온 10화랑과 같은 위치에 두었기 때문이다.[5] 물론 그렇다고 해도 덕만이 여자니까 얼굴이 예쁘장하다고 옷을 벗기고 성희롱한 것 등은 정당화될 수 없기에 석품의 인성이 독보적으로 못됐다는 것 역시 팩트다.

이런 점은 백제와의 싸움에서도 그대로 이어가는데, 덕만 덕택에 부상병들도 살아남아 훌륭히 백제군을 관광보냈음에도 덕만이 대들었다는 이유로 지휘권을 잡자마자 덕만을 죽여버리려는 행동도 보였다.[6] 결국 용화향도는 이 인간 때문에 최후의 방패망이 돼서 죽다 살아났다.

그런데 백제와의 전쟁을 생각해 보면 정작 미실 측에게는 적당한 장기말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듯하다. 서라벌 10화랑 중 백제와의 전쟁에 참여한 화랑들 중에서 석품은 알천, 김유신과 함께 김서현 휘하에 임명되었는데, 애초에 김서현 부대는 설원이 전장에서 죽도록 작전을 짰던 부대이다. 김유신과 용화향도의 미친 듯한 활약에 힘입어 살아남았기에 망정이지, 현실이면 알천, 유신 그리고 석품과 그의 낭도들 모두 전멸당했을 것. 이런 점을 볼 때 미실 측에서는 석품의 청룡익도가 전멸해도 괜찮다는 마인드로 그를 김서현 휘하에 임명한 격이 된다.

대놓고 적대하는 유신과 토호 세력이었던 알천만 배치하기는 뭐하니 미실 측 화랑 가운데서도 누군가를 끼워넣어야 하는데, 다른 10화랑에 비해 가문이 미천한 석품이 적격이었던 것. 자신의 사람은 끔찍히 아끼지만 또 버릴 때는 냉정하게 버리는 미실의 잔혹함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품은 미실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자기가 그렇게 적개하던 김서현에게도 전쟁터에서나 군영에서는 군말없이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던 것을 보면 상관에게 전적으로 복종하는 석품의 성격 및 미실에 대한 충성심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미실 말만 들으면 자기의 신변과 출세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미실 측에서 명하는 온갖 나쁜 짓은 죄다 실행했다. 미실의 명에 의해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덕만을 악착같이 찾아다닌 것도, 일식 계책 때 비담의 화형을 집행하려 했던 것도 이 인간[7]이었다. 풍월주 비재 때는 비담이 옆에서 도발하자 바로 넘어가서 노발대발하다 비담에게 1차 예선 탈락했는데, 바로 보종에게 비담이 다리를 다쳤다고 꼰지르는 치사함도 보였다.

결국 미실의 군사정변 때 맹활약(?)을 하는데, 상대등 세종을 안 죽을 만큼 찌른 다음 세종이 시해당했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그 후 군사정변 동안 두문불출하며 덕만을 찾거나 반대파를 죽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이런 조작 장면을 바로 옆에 있던 덕충에게 걸리는 바람에 미실파의 신의를 잃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한 축을 차지하게 하였다.

미실 덕분에 호의호식하기 때문에 그 은혜로움은 잊지 않는 듯하고, 그것으로 자신이 그간 한 못된 짓을 보상받으려는 심리도 있다. 그런데 다른 화랑들은 자신과 같은 개인적인 안위가 아닌 화랑 대의적인 관점으로 미실을 섬겼기 때문에 결국 이 사건을 곱게 보지 않는 여타 화랑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었다.[8] 그리고 주진공 시해 임무도 실패하면서 미실과 함께 대야성으로 피신하는데, 이 때 칠숙과 대화하던 도중 "대의보다는 새주란 말이냐?"라는 칠숙의 질문에 "전 그 정도 그릇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심경을 표현한 명대사를 남기기도 한다.
칠숙: 대의보단.. 새주라는 거냐?
석품: 송구합니다. 허나 저는 그 정도 그릇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칠숙: ...나도 그렇다.

결국 미실 사후 칠숙의 투항 거부에 동참하고 대야성에 병력을 이끌고 싸우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버려도 되는가?"라는 알천의 말에 "자네 또한 자네가 믿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는가?!"로 대응하며 굿 포스를 보여줬다. 결국 칠숙의 부재를 알아채고 알천이 낚였음을 눈치챈 순간, 알천의 칼에 스스로 자기의 목을 그어 자결했다.
칠숙: ..칠숙의 난이다.
석품: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칠숙: 뭐라?
석품: 칠숙과... 석품의 난입니다. 공과... 함께할 것입니다!
너희들의 충절! 화랑의 본으로 남을 것이다!! 전원 돌격하라!!!
알천: 새주의 명을 따르게! 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가?
석품: 새주님 덕에 화랑으로 태어났다. 새주를 위해.. 화랑으로서 죽는 것이 영광이지 않는가?
알천: 진정!!! 이대로 목숨을 버려도 좋다는 것인가!!
석품: 자네도!!! 자네가 믿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지 않는가!!

전체적으로 못되게 굴긴 했지만 본인이 충성을 지키기로 한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충성을 보인다. 미실에게는 물론이고 보종에게도 절대적인 충성과 의리를 보인다. 이서군에서 보종이 다쳤을 때 대신 나서기도 하였고, 자신이 풍월주 비재에 탈락하자 바로 보종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했고, 설원과 세종이 훗날 오해로 인해 싸움 직전까지 갔을 때 다른 화랑들은 보종을 돕는 걸 주저했지만 가장 먼저 보종을 지지해 줌으로써 다른 화랑들이 보종을 지지해 세종을 납치하는 것을 도왔다. 위에 나온 것처럼 미실 본인에게만 충성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석품이었다.

이게 정말 대단한 게, 심지어 남편인 세종도 미실이 왕이 되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지는 늘 왕위에 욕심을 가지고 미실을 이용하려 했으며, 그 설원마저도 세종에 비해서는 미실을 충실하게 따랐으나 미실이 김서현을 탐내자 질투하였고 심지어 사다함의 매화까지 탐낼 정도로 잠시 일탈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아들들인 하종과 보종은 이 점에서는 엄마라 딴 마음을 먹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버지들의 이익에 따라 미실을 힘들게 했다. 그런데 석품은 오로지 등장시부터 죽을 때까지 미실이었다. 그 충성심 높은 칠숙도 한때 소화 때문에 흔들렸다는 걸 생각해 보면 미실에 대한 석품의 충성은 가히 서라벌 최고라고 자부할 만하다.

여담으로 서라벌 10화랑 중에서도 의외로 굴욕이 많은 화랑 중 하나이다. 아, 물론 삽질 대마왕 대남보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작중 덕만파 화랑 3명에게 유일하게(...) 모두 패배한 경험이 있다. 김유신은 서라벌 입성 시 제대로 패줬으나 이서군에서는 그 기억만 가지고 싸우다가 제대로 털렸고, 병부령 설원, 그때 가장 강했다는 보종, 청룡익도와 일월성도 사람들을 데리고도 덕만을 못 잡은 건 덤 비담에게는 비재에서 하필 첫 라운드에서 만나 털리면서 가장 빨리 탈락한 화랑(...) 중 하나였고,[9] 마지막으로 고문 부상에서 회복이 덜 되었을 알천에게도 역시 패배한다. 이렇게 굴욕 자체는 많기는 하지만 서라벌 10화랑 중에서 가장 자신의 의지가 잘 표현되고 멋지게 죽음으로 그간의 굴욕을 만회했다.

여담으로 10화에서 덕만(성골 및 공주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혈통은 확실히 성골이었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10] 하극상으로 시작해 칠숙과 석품의 난에서 하극상으로 덕만과의 관계를 마무리 지은 유일무이한 캐릭터다.


[1] 단, 이건 석품 역의 홍경인이 워낙 동안이라서 그렇다.[2] 혹은 보종 이전 칠숙의 후계자의[3] 김유신 역시 10화랑이 되기 전, 전시에 비천지도 휘하에 편제되어 활동했다. 그 시점으로는 유신도 비천지도의 일원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4] 하다못해 알천도 "토호 귀족 출신"이라고 언급되는데 그마저도 없다는 말이다.[5] 이렇기에 나름 올곧은 화랑이었던 알천마저도 용화향도를 벌레 보듯이 대했다. 왕실편이었던 임종 빼고는 사실 다 싫어한 것이다.[6] 물론 군법상 아주 틀린 행동은 아니었다. 전시에 항명을 하고 게다가 상관에게 불복종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군의 기강이 흐트러지며 통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워낙 극단적인 상황이었고 분명히 공이 있는 덕만이기에 어지간해선 눈감아 줄 여지 또한 충분했다.[7] 또한 제일 먼저 일식을 알아챘다.[8]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다른 10화랑과는 달리 집안의 재력이 그닥인 듯하다. 미실 덕에 컸다는 것을 보면 가난한 집안 출신에서 미실의 도움을 크게 얻은 모양. 자세히 살펴보면 미실을 따르는 것이 마치 어머니를 따르는 듯하고, 보종을 큰형처럼 따르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9] 비담을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부상을 입혀서 보종에게 이기지는 못하게 하겠다는 계획이었으나 현실은 그냥 털리기만 했다. 묘사를 보면 비담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실실 웃으면서 제압한다.[10] 그렇지만, 머리가 헝클어지고 멍이 들어 있었던걸로 봐서 덕만에게 신나게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