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서 마시는 술집
주사거배 - 신윤복 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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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서서 마신다'하여 '선'술집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조선 후기에 백성부터 관리까지 즐겨 이용했던 술집의 한 유형으로, 반드시 서서 마셔야 했으며 앉아서 마시면 건방지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조선의 선술집은 술값만 받고 안주값은 따로 받지 않았으며 안주를 손님이 마음대로 집어먹을 수 있도록 했다.
서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사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선술집 형태의 포장마차가 많았다. 분식 포장마차처럼 의자 자체가 없는 형태로, 소주를 잔 당으로 파는 '잔술'[1] 은 당시 선술집의 특색이다. 퇴근길 소주 두세 잔에 안주를 집어 먹으며 몸을 녹이는 일용노동자들이나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주 고객이었다.
이런 역사적인 부분을 미처 모르고 의자조차 없이 술을 마시는 술집은 없으니 어원이 잘못되었다며 지적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 # 비슷한 이치로 현대에는 이러한 술집이 없다는 부분이 후술할 오역의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간사이 지방에 선술집 문화가 아직 남아 있으며, 간토 지방을 비롯한 타 지방에도 센베로(1000엔 이하로 간단히 마실 수 있는 형태의 음주)가 중심이 되는 술집에는 선술집 문화가 남아 있다. 이들은 '타치노미(たちのみ, 立ち飲み 또는 立ち呑み)'[2] 또는 '카쿠우치(角打ち)'[3]라고 불리는데, 일반적으로 술집이라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주점 방식의 선술집은 타치노미라 하며, 술을 사갈 수 있는 주류 매장 안에 한 켠에 서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은 카쿠우치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중년층 이상의 샐러리맨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으나, 주머니 가벼운 샐러리맨들이나 관광객들이 와서 한 잔 하고 가기도 한다.
의미 상 일본의 앉아서 마시는 술집이라는 뜻의 이자카야와 정반대이지만 이자카야를 선술집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국에서 '선술집 바가지'로 번역된 드라마 居酒屋 ぼったくり(이자카야 봇타쿠리)가 대표적. 한자만 봐도 선술집이 아닌 이자카야지만 번역가가 관련 지식이 없는건지 오역하고 여태껏 고쳐지지 않았다.
2. Tavern(태번)의 오역
일단 오역 부분을 설명하려면 태번의 의미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서양 판타지에 등장하는 Tavern은 대개 술과 음식을 판매하면서도 숙박시설의 기능도 갖추고 있다. Inn과 거의 동의어나 다름없다. 현대 배경작에선 Inn이 더 많이 쓰이기는 하나 Tavern도 여전히 쓰인다. 창작물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술과 음식을 판매하며 뒷편에 숙박용 객실도 딸린 식당은 여전히 주로 태번이라 부른다.
단, 그렇다고 태번에 숙박업소가 꼭 딸려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숙박이 주가 아니거나, 숙박업을 중단했거나, 아예 처음부터 숙박기능이 없는 곳도 저런 이름을 달고 있는 곳이 있다. 대신 숙박 기능이 없는 곳은 이벤트 공간 등 다른 부가기능을 달고 있는 곳이 많다.
그런데 서구권의 이러한 업소에서는 바 형태로 서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 많기는 하다. 비단 바 형태가 아니더라도 테이블과 의자를 아주 높게 만들어두어 걸어다니던 사람도 자유롭게 합류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있는 술집도 많이 존재한다. 이런 술집 내지는 식당들 중 상당수가 Tavern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보니, 이걸 선술집으로 번역하는 용례가 생긴 모양. 혹은 사전의 오역[4] 때문에 이를 누군가가 쓴 뒤로 점차 양판소 작가 사이에서 암묵의 룰로 정해졌을 수도 있다.
문제는 선술집이라는 단어는 서서 술을 마시는 업소라는 것만 의미할 뿐, 상당수의 서양식 태번이 숙박시설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은 놓쳐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업소라고 해도 선술집처럼 반드시 서서 술을 먹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므로 숙박을 떼어놓고 생각해도 여전히 선술집이 정확한 번역이라 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마침 대한민국 내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선술집이 아예 전멸해버리다시피 했으니, 관용적으로 태번=선술집으로 번역을 해도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준다든지, 전통적인 의미의 선술집을 운영하는 사람이 항의하거나 지적하는 일도 없어서 어느새 굳어져버린 번역이 되었다.
이렇게 Tavern을 선술집으로 번역하면서 1번 항목의 선술집이 서서 술 마시는 곳이라는 정의를 모르는 사람이 많으며 심한 경우에 선(鮮) 같은 한자로 오해 하기도 한다.
시대물이나 판타지물의 경우 가장 적절한 번역이라면 과거의 태번과 거의 똑같은 역할을 했던 조선시대의 주막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숙박이 주가 된 경우라면 배경과 묘사에 따라 여관, 여인숙도 사용가능하다. 현대물의 경우 위에 언급된 대로 숙박의 기능이 없거나 약한 곳이라면 그냥 "바", "술집", "식당", "비스트로"등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문제는 '주막'이 현대 한국에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현대물이면서 식사, 술, 숙박을 동시에 해결하는 곳'이라면 완벽한 번역이 애매하다는 점이 있다. 물론 현대 한국에 주막이라는 이름을 붙인 술집은 많으나 그런 곳도 숙박은 하지 않으며, 상호의 일부로만 기능할 뿐 따로 "주막"이라는 일반 명사를 대화에서 사용하는 일도 없다. 이렇게 1:1대응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 때문에 그냥 "태번"이라는 음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도 그냥 '태번'을 표제어로 사용한다.
하여튼 이렇게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다보니, 검증된 교수나 전문 번역가들이 투입되는 문학 번역작들은 이런 차이를 이해하고 가급적 제대로 된 번역 단어를 사용하는 반면, 장르문학판, 특히 라노베나 웹소설 쪽에선 번역이고 창작이고 잘못된 단어를 남용하고 있다.
무협소설에선 '객잔' 혹은 '객주(客酒)'로 쓰기도 한다.
엘더스크롤 시리즈에서의 Inn은 서양 판타지의 전형적인 Tavern이다. 주인이 수다 떨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흘려주기도 하고 식사, 술,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하였듯 둘은 거의 동의어나 다름없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부분.
Tavern의 여종업원에 대해서는 포털에서 'Tavern maiden'을 검색할 것. 어린 여급은 성추행에 시달리다가 주인공이 구해줘서 뿅가버리는 풋사과나 억척스럽고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상에다 경우에 따라 색기를 띤 색기담당 이모같은 이미지로 묘사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주모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
3.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의 건물
영웅을 고용하는 곳이자 그 외의 팁을 제공해주는 건물. 시작시에 웬만하면 지어져 있으며, 안 지어져 있어도 매우 싼 비용에 지을 수 있다. 영웅 고용은 뭐 당연한 거고, 팁은 한 달에 한 번씩 바뀌는데 그 내용이 가히 가관이다.후한 팁을 제공한 후 바텐더는 속삭였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후한 팁을 제공한 후 바텐더는 속삭였습니다.
보리섬은 고립된 곳입니다.
보리섬은 고립된 곳입니다.
물마법을 마스터한다면 적에게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마법을 방어하는 마법도 있지요!
불마법을 마스터한다면 적에게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마법을 방어하는 마법도 있지요!
후한 팁을 제공한 후 바텐더는 속삭였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입니다.
이렇게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의미심장한 팁 아닌 팁을 속삭여준다.오늘은 어제의 내일입니다.
'성궤는 북동쪽에 있습니다', '궁극의 아티팩트는 초원에서 발견됩니다'같이 제대로 된 팁도 가끔 나오지만, 대부분 구라다. 게다가 '블랙 드래곤이 타이탄보다 강력할지는 모르나, 타이탄조차도 혼자서 대천사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같은 혀 꼬부라진 듯한 문법구사라든가, '오직 천사와 대천사만이 검술로 나가를 능가할 수 있습니다'와 같이 순식간에 자이언트/타이탄을 뻘쭘하게 만드는 중상모략적인 발언을 하여 플레이어를 더더욱 혼란에 빠뜨린다.
'일반 궁수는 한번 공격하지만 에라시아의 궁수는 두번 공격합니다'같은 진짜 사실도 말해주나,[5] 그다지 게임에 도움 안되는 매우 기초적인 것. 어찌보면 뜬소문이 사정없이 돌아다니는 선술집의 컨셉으로 맞춘 것일지도 모른다.
결론은 영웅만 뽑고, 팁은 그냥 심심풀이로 보는 게 좋다.
하지만 이게 아주 쓸모없는 요소는 아닌데, 그건 바로 맵 에디터에서 소문을 직접 쓰는 기능 때문. 다시 말해 제작자가 직접 힌트를 줄 때 쓰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게임 내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맵 중에서도 특정 맵에서는 저런 소문이 안나온다. 그리고 외국의 맵 제작자들도 소문을 통해 힌트를 주는 경우가 꽤 많은 편.
두번째 예시처럼 설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게임엔 지장없다. 그냥 설정 알아두라고 이러는 듯.
히어로즈 5에서는 250 골드라는 약간의 금액을 지불해야 팁을 들을 수 있는데, 팁의 내용은 3편보다는 나아졌지만 기본적 시스템에 대한 암시가 고작이거나 별 의미없는 소리가 많기 때문에 안 듣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