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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white><tablebgcolor=#fff,#1f2023> 파일:문화부 심볼.svg이달의 문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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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 당시 기관명은 문화부(1990~1993) → 문화체육부(1993~1998) → 문화관광부(1998~200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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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 신윤복
申潤福
성명 신윤복(申潤福)
아명 신가권(申可權)
본관 고령 신씨 (高靈 申氏)[1]
출생 1758년(영조 24)
사망 1814년(순조 14) 추정 (향년 56세)
국적 파일:조선 어기.svg 조선
자 / 호 덕여(德如) 또는 입부(笠父) / 혜원(蕙園)
직업 화가
부모 부친 - 신한평(申漢枰, 1726[2] ~ 1809?)
모친 - 전주 이씨
형제자매 형 - 신인권, 신의권, 신응권, 신양권
남동생 - 신윤도
여동생 - 김인욱의 처, 청주 한씨 한승묵의 처
1. 개요2. 생애3. 작품 목록4. 논란
4.1. 모호한 성별
5. 대중매체에서6. 가족

[clearfix]

1. 개요

KBS 역사스페셜 – 신윤복은 왜 여자를 그렸나
조선 영조, 정조 시기의 화가.

2. 생애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불리며 한편으로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과 함께 '삼원(三園)'으로 불리기도 했다. 신숙주의 동생 신말주(申末舟)의 11대손이기도 하다. 신윤복의 집안은 대대로 화공을 세습했는데 종증조부 신세담, 종조부 신일흥(申日興), 아버지 신한평(申漢枰)[3]도 도화서 화원이였다. 신윤복의 형제로는 신인권(申仁權), 신의권(申義權), 신응권(申應權), 신양권(申亮權) 등 4명의 형과 남동생 신윤도(申潤濤), 성명 불명의 여동생이 2명 있었다. 어렸을 적 이름은 '가권'이였는데 훗날 '윤복'으로 개명한다.

김홍도가 풍속화만 두고 보았을 때 서민의 생활을 주로 그렸다면 신윤복은 양반가의 생활을 주로 그렸으며 특히 여성의 생활상이나 남녀가 어울려 노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 김홍도와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김홍도는 풍경을 거의 그리지 않았지만 신윤복은 자주 그렸다. 김홍도는 왕을 상징하는 색인 빨간색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신윤복은 빨간색을 사용해 풍자했다. 기생[4]과 양반들이 주요 모델이였기에 신윤복의 풍속화 모음집인 <혜원전신첩>은 양반 문화와 복식 연구에 있어서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일부 사극 제작 과정 영상을 보면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며 가체의 형태 등을 참고하는 모습도 보인다. 몇몇 작품에서는 동일 인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기생(흰 저고리+검붉은 깃+파란 치마)과 젊은 남성(초립+선홍색 도포)인데 신윤복의 이웃일 가능성도 있다.

3. 작품 목록

국보 제135호 <혜원전신첩>으로 남아있다.

4. 논란

4.1. 모호한 성별

  • 사실 신윤복이 남긴 그림 이외에 신윤복에 대한 자료는 부족하다. 그 때문에 여성을 주로 그린 신윤복이 여자가 아니냐는 설이 있다. <바람의 화원> 소설판부터 아는 사람은 아는 설이었으나 소설이 드라마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으며 영화까지 나오면서 일반인들에게 보편화했다.

    그러나 신윤복은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신윤복의 가계도와 신윤복 가문의 족보를 보면 남자로 확인되는 상황. 신윤복이 여자라는 주장은 화풍과 스타일은 여성미가 느껴진다, 섬세하다 등으로 매우 빈약하다. '기록이 없으니 이렇게 상상해볼 수도 있지 않나' 딱 그 정도의 수준이다.

    모 역사서에서 신윤복이 도화서 화원에 임명됐다가 쫓겨난 이유가 화원으로 생활하던 중 여자인 게 들통나서라고 하는 설도 있는데 만약 신윤복이 여자고 그 상태에서 화원 생활하다가 들통났다면 단순히 화원에서 쫓겨난 것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모든 관직에 대한 최종 인사권을 가진 임금을 기만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단순히 화원 하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것을 떠나서 나라가 발칵 뒤집힐 대사건이다.[5]
  • 김홍도와는 달리 현재까지 초상화는 남아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그렸다는 미인도 한 점은 신윤복의 자화상이 아니다.

5. 대중매체에서

  • 2008년 개봉한 영화 <미인도>에서는 배우 김규리가 연기했다. 실제 신윤복은 자살하고 그 누이가 남장을 하여 신윤복 행세를 한다는 설정이다.
  • 소설 <색, 샤라쿠>에서는 신윤복이 정조와 김홍도의 명령을 받아 일본스파이로 갔는데 그가 바로 도슈사이 샤라쿠라는 내용이다. 신윤복이 '윤복' 대신 아명 혹은 본명으로 전해지는 '가권'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6. 가족

  • 현조부 : 신극해 - 현조모 : 금산 이씨
    • 고조부 : 신청 - 고조모 : 연주 현씨
      • 증조부 : 신세만 - 증조모 : 진주 강씨
        • 조부 : 신덕광 - 조모 : 용궁 김씨
          • 부 : 신한평 - 모 : 전주 이씨
            • 형 : 신인권
            • 형 : 신의권
            • 형 : 신응권
            • 형 : 신양권
            • 제 : 신윤도
            • 매 : 고령 신씨 - 매제 : 김인욱
            • 매 : 고령 신씨 - 매제 : 청주 한승묵
        • 종조부 : 신일흥
      • 종증조부 : 신세담


[1] 귀래정공파 19세 권(權) 항렬.[2] 1735년 설도 있다.[3] 신한평이 <연려실기술>의 저자 이긍익의 아버지 이광사의 초상을 그린 것이 지금도 남아있다.[4] 춘화도도 많이 남겼다. 이 점에서도 운우도첩을 그린 김홍도와 라이벌이다.[5] 또다른 설은 춘화를 그리다가 발각되어 내쫓겼다는 설이다. 사실 화원 인물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은데 김홍도만 해도 당시에 상당한 그림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임금의 초상을 그리는 어용화사로도 채용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