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8-04 18:56:18

성삼문


死六臣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유성원 유응부 이개 하위지
<colbgcolor=#c00d45,#94153e><colcolor=#fff> 조선 예조참의 증 이조판서
충문공(忠文公)
성삼문
成三問 | Seong Sam-mun
<nopad> 파일:성삼문 표준영정.jpg
정부표준영정 제64호 <성삼문>
출생 1418년
충청도 홍주
(現 충청남도 홍성군)
사망 1456년 6월 8일 (향년 38세)
한성부
(現 서울특별시)
묘소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산58
시호 충문(忠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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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00d45,#94153e><colcolor=#fff> 본관 창녕 성씨[1]
근보(謹甫), 눌옹(訥翁)
매죽헌(梅竹軒)
부모 부친 - 성승(成勝, ? ~ 1456)
모친 - 죽산 박씨(竹山 朴氏) 박첨(朴襜)의 딸
형제자매 남동생 - 성삼빙(成三聘, ? ~ 1456),
성삼고(成三顧, ? ~ 1456),
성삼성(成三省, ? ~ 1456)
부인 아주 신씨
연안 김씨 김차산(金次山)
자녀 3남 3녀
장남 - 성맹첨(成孟瞻, ? ~ 1456) 김차산 소생
차남 - 성맹년(成孟年, ? ~ 1456) 김차산 소생
3남 - 성맹종(成孟終, ? ~ 1456) 김차산 소생
장녀 - 성효옥(成孝玉) 김차산 소생
차녀 - 성씨(1439 ~ 1489) 박림경(朴臨卿)의 처 김차산 소생
3녀 - 엄정구(嚴鼎耉)의 처 김차산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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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성삼문이 등장한 창작물4. 여담
4.1. 절명시4.2. 강희안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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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1418년 출생으로. 본관은 창녕이었으며, 자는 근보(謹甫), 는 매죽헌[2],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생을 마감한 사육신 중 한 명이다.

2. 생애

성승과 박첨의 딸 죽산 박씨의 장남이었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은 사육신의 반열에는 들지 않았지만, 역시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계획에 동참했었다.[3] 부자가 한꺼번에 세조에게 반기를 든 셈이라 결국은 형제들도 다 죽고 집안이 쫄딱 망했다. 학자의 이미지가 강한 성삼문이지만 아버지 성승은 물론이고 할아버지 성달생까지 모두 무장이었는데 이 집안의 무인적인 풍모가 성삼문의 강직한 면에 영향을 준 것 같다.

외가인 충청도 홍주 출생이다. 이름이 특이한데 낳을 때 공중에서 '낳았느냐?'라는 소리가 세 번 들렸다고 한다. 세 번째 질문에서야 비로소 아이를 출산했기 때문에 이름이 '삼문'(三問: 세 번 물어봄)이 되었다는 기이한 설화가 전해진다. 장남이어서 동생들도 다 '삼'자 돌림이 되었고 그래서 다들 이름이 특이하다.[4] 성삼문이 태어난 뒤 점을 보자 충신이라 나와서 그의 할아버지 성달생이 집안 말아먹을 녀석이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자신이 모시는 군주에게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있어야 비로소 충신이 되는 것이니 자연히 그럴 수밖에... 훗날 충신이라서 집안을 말아먹게 되었다. 이런 말을 한 성달생은 이성계와 공모하여 우왕창왕 부자를 몰아낸 '흥국사 9공신' 중 한 명인 성석린의 동생 성석용의 아들로, 우왕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우왕, 창왕, 공양왕의 비극적인 최후와 태조 이성계의 찬탈,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왕씨 몰살, 최영정몽주를 비롯한 고려 충신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충신들이 떼죽음당하며 고려가 어떻게 망하는지 지켜본 사람이었으니 충신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5]

세종 재위 시절 과거에 장원 급제했는데, 글씨를 잘 쓰며 문장에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적에, 당시 명나라의 음운학 분야 권위자였던 한림학사 황찬이 귀양와 있었던 요동에 13번이나 왕래하며 《훈민정음》 창제에 공헌했고,[6] 집현전 학사 등을 역임했다.

세조가 계유정난(단종 1년 10월) 이후 발표한 정난공신 명단에는 성삼문이 수충정난공신에 포함되는데, 이후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는 인물들 중 같이 포함된 인물은 수충협책정난공신 박팽년, 충청도 도절제사에 임명된 성삼문의 부친 성승, 수사헌 장령이 된 유성원, 중훈대부를 더하게 된 이개 등이 있다.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선양을 받은 공적으로 내린 좌익공신 3등으로 성삼문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와 같이 이름을 올린 인물로는 이휘가 있다. 계유정난에 대해서는 집현전 학자들 역시 최소한 암묵적으로 동조했다는 평도 있다. 실제로 박팽년의 지위는 신숙주와 맞먹고, 폭넓은 인사 조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계유정난 직전까지 기성 대신들에게 반감을 품고 있던 성삼문 등 집현전 출신 관료들을 회유하기 위한 세조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瑢)의 아들 이우직(李友直)은 마땅히 베어야 합니다. 무릇 역적은 수종(首從)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까지 베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종범(從犯)이 되어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수악(首惡)의 자식이겠습니까? 더구나 이우직의 목숨은 성산(聖算)과 비슷하니 더욱이 죽이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의(大義)로써 결단하시고 율(律)에 의하여 구처(區處)하시어, 사람들의 의혹을 끊으소서.
단종실록9권, 단종 1년 11월 26일 무인 2/2 기사 / 1453년 명 경태(景泰) 4년, 정분·조숙생·이석정 등을 엄벌할 것에 관한 성삼문 등의 상소문#

사실 성삼문은 계유정난 직후 안평대군은 죽이라면서 자신이나 계유정난에 참여하지 않은 여러 대신들이 공신에 오르는 건 옳지 않다는 말을 했긴 했지만 이른바 사육신 가운데서는 계유정난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한 축에 속하는 인사다. 이 당시 성삼문은 반대파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도 보이지 않았다. 정분을 향해 "반드시 사형에 처해 저잣거리에 내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특히 안평대군의 아들 이우직에 대해서는 "수괴의 자식이니 마땅히 목을 베어야 한다"며 연좌제를 엄격히 적용해 씨를 말릴 것을 왕에게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계유정난(1453년 10월)이 일어난 지 불과 한 달 뒤의 상소를 보면 성삼문은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을 명백한 역당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잔당을 색출해 모조리 죽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시점의 성삼문은 단종을 압박하여 수양대군의 쿠데타 명분을 강화하고, 수양대군의 정적들을 철저히 숙청하는 데 앞장서는 돌격대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성삼문은 당시 처벌의 형평성 문제를 아주 예리하게 파고 들었는데 "죄가 무거운 자(정분)는 살고 죄가 가벼운 자(허후, 지정)는 죽었는데 이게 무슨 법이냐",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죽였으니 법의 적용이 이랬다저랬다 한다"며 조정(대신들)의 일관성 없는 판결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법과 원칙 앞에서 역적들의 처분은 예외가 없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논리주의자의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또 이 당시 상소문을 보면, 그는 하급 관리나 백성이 상관이나 수령을 고발하는 행위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역모를 고발했다 하더라도 무고일 경우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상하의 질서를 엄하게 하여 기풍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하극상을 극도로 혐오하며 기득권 사대부 중심의 질서를 철저히 수호하려는 보수적인 엘리트의 시각을 보여주기도 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어린 단종을 향해 "왜 우리(대간) 말은 안 듣고 대신들 말만 듣느냐", "왕이 결단하지 못하겠거든 우리를 대신들과 함께 불러서 직접 논쟁하게 해달라"며 상당히 공격적이고 거침없는 태도를 보이며 자신의 주장이 100% 옳다는 강한 확신에 차 있었다. 사육신이라는 후대의 평가를 지우고 이 기록만 본다면, 1453년 계유정난 직후의 성삼문은 쿠데타(계유정난) 직후 승자의 편에 서서, 패배한 정적들의 씨를 말려야 한다고 어린 왕을 매섭게 몰아붙이는 냉혹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강경파 사간원 관리에 가까웠다.[7]

실제로 계유정난 이후 성삼문을 포함한 집현전 출신 관료들의 승진은 빨라지는데 계유정난 이전 정4품 시강관에 있었던 성삼문은 계유정난 이후 사간원의 종3품 우사간으로 승진한 후 11월 다시 좌사간으로 승진했다. 1454년 1월 단종의 비를 들이는 문제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좌천되었지만 1454년 6월 집현전 부제학이 되면서 정3품 당상관의 직에 처음 오르게 되었는데 8월 예조참의(정3품)를 거쳐 1455년 6월 승정원 동부승지로 직이 바뀌었다.

이후 성삼문은 승정원 우부승지로 임명되었고, 좌부승지는 한명회가 임명되었다. 이후 세조가 왕위에 오른 다음 추충정란좌익공신(推忠靖亂佐 翼功臣)에 임명되면서 다시 한명회의 전 직책인 좌부승지로 승진했다. 승정원에서 1칸씩 승진하고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때는 묘하게 성삼문이 한명회의 직책을 따라서 승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적극적으로 반정에 참여했던 신숙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36세에 당상관에 오른 성삼문의 승진 속도도 느리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한 단종이 세조에게 선위하는 장면에서 성삼문이 옥새를 끌어안고 울어서 세조에게 찍혔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 내용은 정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장면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다음과 같은 짧은 기사만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또 명하여 재촉하니 동부승지(同副承旨) 성삼문(成三問)이 상서사(尙瑞司)로 나아가서 대보를 내다가 전균으로 하여금 경회루(慶會樓) 아래로 받들고 가서 바치게 하였다.

실제로 이 시기까지 가면 세조의 회유책도 많이 줄어들지만 그럼에도 사육신 사건에 연루된 이들 중에서는 성삼문과 이휘만이 3등 공신에 오르게 되었다.# 사육신이라는 충신과 절개의 상징성을 내려놓고, 계유정난 직후부터 사육신 사건 직전의 성삼문의 모습만 두고 평가하자면 되레 매우 차갑고 냉혹하며, 타협을 모르는 초강경파 또는 계유정난으로 숙청된 인사들을 향한 집요한 정치 공세자에 가깝다.[8]

이후 성삼문은 단종이 폐위되자 그를 복위시킬 생각을 품고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을 모았다. 사육신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김문기, 그리고 사육신에 속해 있지는 않으나 아버지인 성승, 고모부인 조숭문, 결국 이들을 배신하게 되는 김질 등이었다. 이들은 세조를 폐위시키고 상왕이 된 단종을 복권시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거사의 내용은 명나라 사신의 환송연에서 별운검[9]으로 서게 되는 유응부와 성승이 세조와 그 일파 등을 죽이고 명나라 사신에게 단종 복위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는 것이었다.[10] 그러나 환송연 당일 이상한 낌새를 눈치를 챈 것인지 세조가 별운검을 축연 자리에서 빼버렸는데, 성삼문은 반대했으나 결국 별운검은 없는 것으로 통과되었다. 거사를 치르기로 한 이들은 망설이다가 훗날을 기약[11]하며 일을 미루고 말았다. 남효온의 소설 《육신전》은 이 장면 묘사도 쓸데없이 자세하다. 이때 유응부가 그래도 한명회부터 베어버리고 들어가서 거사를 강행할 것을 주장했으나 성삼문이 반대해서 이루지 못했다.[12] 이때 사람들이 미적미적거리는 꼴을 보며 일이 제대로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김질이 장인인 정창손에게 가서 이 일을 죄다 털어놓았고, 결국 이들의 모의는 이대로 발각이 되었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점은 첫 국문에서 함께 모의한 자들의 명단을 성삼문이 털어놓았다는 점이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0206002_002 심지어 단종도 같이 모의했다고 일러바친 것도 성삼문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0206007_001

주동자들은 끌려가기 전에 가족과 함께 자결한 유성원을 제외하고 모두 끌려가 극형을 받았다.[13] 함께 모의했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삼문은 고문 후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에 처해졌다. 사건이 컸던 만큼 성씨 집안이 아예 풍비박살이 나서 아버지 성승, 밑에 동생들, 슬하의 아들들이 멸족당했음은 물론 여자라서 살아남은 부인 및 딸들도 노비가 되었다.[14][15][16] 집안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둘째 아들만이 몰래 도망쳐 성씨를 바꾸고 살아서 지금까지 집안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성삼문의 아내는 차산(次山), 딸은 효옥(孝玉)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들은 박종우[17]에게 주어졌다가 성종 6년(1475년)에 석방되었는데 계유정난이 1456년이니 거의 20년 만의 일이었다. 딸 성효옥의 생몰년도는 나와 있지 않으며, 노비가 될 당시 혼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복위시키려던 단종마저도 이 일에 연루된 것이었다. 단종이 연루되었다는 말 자체가 성삼문의 입에서 나왔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 목숨 걸고 비밀로 붙였어야 했으나 결국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사육신을 미화하는 소설인 《육신전》에는 계속 세조가 친국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고, 단종의 이름을 말하는 장면도 당연히 없다. 사실 세조가 직접한 친국은 첫째날뿐이었고, 둘째날 이후에는 구치관이 국문했다. 《육신전》의 사료엄밀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고려하면 무슨 세조에게 낚였거나 해서 이성을 잃고 이런 소리를 했을 확률은 0이나 마찬가지다. 단종의 이름을 불은 것은 국문 거의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때까지 형식상이나마 상왕 대접을 받고 있었던 어린 단종은 아예 폐위되었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가 안 좋았던 전형적인 예였다고 할 수 있다.

훗날 숙종 시절에 단종이 신원되면서 성삼문도 같이 복권되었고, 영조 시절에는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아버지 성승 등 희생당한 다른 이들과 함께 김시습이 몰래 시체를 수거해 노량진에 묻었는데, 현재 사육신묘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3. 성삼문이 등장한 창작물

  • 1984년 MBC 특별기획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제3부 설중매〉에서는 배우 임채무가 연기했다.
  • 1990년 KBS 월화드라마 〈파천무〉에서는 배우 이문환이 연기했다.
  • 1994년 KBS 대하드라마 〈한명회〉에서는 배우 백윤식이 연기했다.
  • 1998년 KBS 대하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배우 박진성이 연기했다. 왕의 비서직인 승지로서 수양대군의 회유를 받으면서도 의지할데 없는 단종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단종 복위 시도가 발각된 뒤에는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세조에게 절대 굽히지 않는데 거열이라는 끔찍한 처형을 당하기 직전에도 절명시를 읊으면서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 2007년 KBS북한과 공동 제작한 방송80년 특별기획드라마 〈사육신〉에서는 북한 배우 박성욱이 연기했다.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선 굵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시청률이 낮았다. 박성욱의 말에 의하면 배우 본인이 사극에서 주인공을 처음 맡으니까 조선시대를 모르는 측면에서 몹시 당황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본 연구를 해도 처음에는 연기도 잘 안 되어서 연출자에게 비판도 받았다. 그 이후 박성욱은 그 당시의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했고 그렇게 연기를 하다 보니 점차 익숙해져 갔다.
  • 2008년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젊은 배우 박철호[18]가 연기했다. 집현전 학사 시절의 풋풋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신숙주가 세조의 편에 서기 전까지는 절친이었던 신숙주와 콤비를 이루며 명랑하고 발랄한 모습을 보인다.
  • 2011년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중년 배우 박철호[19][20]가 연기했다. 정종과 김승유가 참여하는 사육신 사건과 관련되어 등장했는데 적은 출연 분량에도 성삼문의 의기와 절개를 잘 표현해냈다.
  •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배우 현우가 연기했다. 괴짜이고 장난끼가 가득하지만, 매우 총명한 인물로 한글 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그려졌다.

4. 여담

  • 성삼문의 증조부 성석용은 개국원종공신이며, 영의정 성석린(성삼문의 종증조부)의 동생이다. 다른 종증조부 성석인의 아들 성억(성삼문의 재종조부)의 딸은 성녕대군의 부인이다(성삼문의 재종고모). 성억의 동생인 성엄의 아들, 성봉조(성삼문의 재종숙부)는 세조의 동서(정희왕후의 형부)였고, 성엄의 손자인 《용재총화》를 지은 대제학 성현과 연산군대 영의정을 지낸 성준은 모두 성삼문의 8촌 동생이다.
  • 성삼문의 3명의 고모 중 한 명인 창녕성씨(성달생의 딸, 성승의 누이)는 한혜에게 시집갔는데, 한혜는 놀랍게도 한명회의 당숙부(5촌)이다. 즉 한혜의 아들들인 한계미(세조의 또 다른 동서이자 정희왕후의 또 다른 형부), 한계희, 한계순은 성삼문의 고종사촌들이다. 이들은 모두 좌익, 익대, 좌리공신에 봉해져서 세조~성종대의 훈구대신들이었다. 또 한 명의 고모는 농은 조원길의 손자인 조숭문에게 시집갔는데 조숭문은 병마절도사로 재직하던 중 처조카 성삼문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아들 철산과 함께 처형당하였다.
  • 기존의 강직한 충신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로서는 의외겠지만 실제 역사 속 성삼문은 평소에는 밝고 유머러스한 성격이었으며 실없는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절개를 지켜야 하는 때가 오면 누구보다 굳은 의지와 절개를 보여주는 외유내강형 인물.[21] 사실 계유정난 때 3등 공신에 책봉돼서 미래가 보장됐으므로 가만히 있었으면 자손 대대로 잘 먹고 잘 사는 게 가능했다.
  • 성삼문이 사망하고 몇 년 후 세조 4년 9월에 성삼문을 죽인 세조와 그 신하들은 거하게 술판을 벌였는데 거하게 취한 정인지가 세조에게 반말을 찍찍하여 경악한 신하들이 "정인지는 성삼문이랑 똑같은 역적이니 목을 베어 죽여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정인지와 오랫동안 같이 일한 그의 동료들이 그냥 처벌해라도 아니고 몇 년 전에 죽은 반역자 성삼문과 비교하며 목을 베어 죽여야 한다고 할 정도면 정인지는 세조에게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왕을 상대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폭언 내지 욕설을 한 듯하다. 정인지는 정말 역모를 꾸민 것도 아니고 공신이라 세조의 용서를 받아 별다른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흥미롭게도 이후에 성종 시절, 유자광이 한명회를 저격한 적이 있었는데[22] 이때도 한명회는 성삼문, 남이, 이시애를 역적으로 거론하며 이런 역적들이 난을 일으킬 때마다 자신을 해하려 했다고 상소를 올렸다. 이 점을 보면 사육신들 중에 성삼문이 대표격으로 여겨진 모양.
  • 세종 시절 이성계의 팔준마를 소재로 찬문을 써서 1등으로 뽑힌 적도 있었다. 이때 신숙주와 다른 집현전 학사들도 찬문과 찬시를 썼지만 1등은 성삼문이었다고 한다.
동문선 제44권 / 표전(表箋)

집현전 진 팔준도 전(集賢殿進八駿圖箋) /성삼문(成三問)

하늘이 도와 임금을 내시니 성인은 천 년의 운수를 맞추셨고, 땅에서 쓰이는 것은 말[馬] 같은 것이 없으며, 신물(神物)은 한 시대의 재능을 바쳤기로, 감히 새 그림을 만들어서 예감(睿鑑)에 올리옵니다.

그윽이 생각하오면, 왕자의 작흥(作興)에 있어어도 역시 축산(蓄産)에 힘입어 성공하였습니다. 촉한(蜀漢)의 왕은 적로(的盧)를 타고서 능히 단계(檀溪)의 액을 면하였고, 금(金) 나라 태조는 자백(赭白)을 타고서 곧장 흑수(黑水)의 깊은 물을 건너갔으니, 진실로 큰 업이란 돌아갈 데가 정해져 있사오매, 미물(微物)도 또한 그 힘을 분발하는 것이옵니다.

우리 태조(太祖)께옵서 용맹은 하늘에서 타고나시고 덕은 오직 날로 새로우시매, 고려의 운수가 끝날 무렵에 외부의 적이 자주 틈을 노리니 나라를 위하여 적개심을 품고 백성 보살피기를 상처입은 것을 대하듯 안쓰러워하셨습니다. 의기(義旗)를 한번 돌이키자 백성은 화난을 면하게 되었고, 신과(神戈)를 사방으로 휘두르매 삼한(三韓)은 청명한 세상을 이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원근(遠近)이 지극한 인(仁)을 당적(當敵)할 길이 없었지만 근골(筋骨)은 먼저 크나큰 임무에 부지런하셔서, 친히 시석(矢石)을 무릅쓰시매, 몸은 상처에 피곤하였습니다.

이 시절을 당하여 세상에 이름난 인재만 용의 비늘에 붙어 절개를 다한 것이 아니오라, 기르는 짐승 같은 천물(賤物)까지도 제 몸을 바쳐 수고를 맡을 것을 알아서, 혹은 사냥터를 달리기도 하고, 혹은 싸우는 진중을 출입하여 주선(周旋)하는 데 힘을 다하고 걸음걸이는 사람을 따르는데, 그 크고 건장한 체격은 이미 익숙한 모습을 볼 만하고, 달리는 곳에는 앞설 놈이 없어 참으로 사생(死生)을 의탁할 만하더니, 마침내 그 장기를 발휘하여 큰 업을 이룩하는 데 도움되었으니, 어찌 영걸(英傑)만이 유독 능연각(凌煙閣)에 오르리오. 권기(權奇)로 소릉(昭陵)에 참열하게 된 것을 믿을 만하옵니다.

삼가 생각하오면, 도(道)는 생성(生成)에 흡족하시고, 공은 조화(造化)에 참예하시고, 선대의 뜻을 잘 계승하시고 선대의 일을 잘 기술하시어 삼가 수성(守成)만 하시고, 선대의 공을 계승하시고 선대의 정책을 드러내어 창업(創業)이 쉽지 않음을 생각하시며, 사랑은 견(犬)ㆍ마(馬)에게도 버리지 않으시고, 신의는 돈(豚)ㆍ어(魚)에까지 미치며, 특히 윤음(綸音)을 내리시어 도찬(圖贊)을 지어 올리게 하셨습니다.

신 등은 모두 조전(雕篆)의 기술로써, 외람되게 문한(文翰)의 직을 맡아온즉, 하물며 이 칭송이야. 바로 직분이옵기로 삼가 사적에 실린 것을 상고하고 겸하여 부로(父老)의 말을 채택하여, 화사(畵師)로 하여금 모형을 그리게 하고 졸한 글을 엮어서 공적을 기록했사오니, 터럭이 꼬부라진 한혈(汗血)은 완연히 당시의 용모와 같고, 늠름한 자태와 높은 공로는 거의 뒷사람의 안목을 놀라게 할 것이며, 상서로움은 하도(河圖)와 더불어 나란히 가고 노래를 지으면 천마가(天馬歌)를 누추하다며 차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한가한 틈이 나시오면 한 번 보아 주시옵소서. 그 덕을 칭찬하고 그 힘을 칭찬하지 않은 것은 선니(宣尼 공자(孔子))의 말씀을 따랐고, 아들에 전하고 손자에게 전하여 길이 성조(聖祖)의 공을 살필 수 있사옵니다.
  • 세종이 총애하는 신하였으며 훗날 세종이 어린 세손의 앞날을 걱정하여 세손을 지켜달라고 고명을 남긴 문신들 가운데 하나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다. 우선 고명은 죽을 때 손을 잡고 부탁하는 것 같은 그림이 아니라 정식으로 신하들을 모아놓고 하는 절차로 《조선왕조실록》에 그 과정까지 등재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세종에게 고명을 받았다고 인정된 신하는 황보인, 김종서, 정분 정도로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등의 이름은 없다. 무엇보다 세종의 후대는 단종이 아니라 문종이고 왕이 죽으면서 후대가 되는 아들이 아니라 그 손자를 부탁하는 것은 아들을 금방 죽을 징검다리로 취급하는 굉장히 불길한 행동이기 때문에 이를 행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문종이 몸이 약했다한들 왕에 오를 때는 30대 중반의 한창 나이였으며 문종이 40도 채우지 못하고 죽어버려서 문제였지 10년만 왕위에 있었어도 단종은 장성한 이후 즉위했을 것이다. 게다가 세종이 승하할 당시 성삼문은 고작 30대 초반의 젊은 관료에 불과했다. 세종 사망 이후부터 문종 즉위 시기 관직을 보면 황희가 사직한 이후 영의정은 하연인데 문종 초기에 사직했다. 세종 말년의 우의정은 황보인으로 하연이 퇴임하자 영의정이 되었다. 세종 말기 좌의정은 남지인데 문종 초에 병으로 사직했다. 삼정승 바로 아래가 종1품인 좌우찬성인데 좌찬성 박종우는 문종 즉위 이후 정승이 되지 못하고 함길도 도체찰사가 되었다가 계유정난에 협력하여 정난 1등 공신이 된다. 우찬성이 정분으로 남지가 사직한 이후 김종서의 천거로 정승직에 오른다. 김종서는 세종이 사망하던 시점에서는 평안도 도체찰사이지만 문종 즉위 후에 세종의 빈전에 곡할 때에는 우찬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까지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고명대신 후보로 모두 정1품과 종1품인데 정승과 그 후보군인 찬성이며 이 시기 성삼문은 집현전 직전으로 정4품이었다. 그럼 문종이 단종을 부탁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는데 문종은 당시 어의종기 치료를 잘못하는 바람에 치료 시기를 놓쳐서 죽기 전에는 유언도 제대로 못 남기고 급사했다. 사실 이때 고명을 했어도 성삼문은 고명대신이 되었을 가능성이 극히 낮은데 이때도 성삼문은 4품이었기 때문이다. 단종 즉위 후에야 신숙주의 뒤를 이어서 종3품 직제학에 오르고 성삼문이 정3품 이상 당상관까지 오르는 것은 계유정난으로 고위직들이 쓸려나가고 수양대군이 관련 인사들을 포섭하느라 관직을 뿌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일화가 창작된 것은 소위 말하는 그림이 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며 세종이 죽으면서 젊은 관료를 붙잡고 손자를 부탁하는데 이때 성삼문은 단종을 위해서 죽고 신숙주는 배신해서 세조 편에 선다는 형태로 대비시키기 위한 목적인 것이다. 이 때문에 박팽년을 높이고자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여기에 박팽년은 추가하지 않는데 이 경우 대비 구조가 2:1로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 2025년 5월 27일 지역명물로 그를 상징하는 오동나무가 베여 논란이 됐다. #

4.1. 절명시

〈臨死賦絶命詩〉
擊鼓催人命 울리는 북소리가 목숨을 재촉하여
回頭日欲斜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는 기운다
黃天無一店 황천길엔 주막 한 곳 없다고하니
今夜宿誰家 이 밤을 어느 집에서 묵어야하나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하노라
주려죽을진들 채미(採薇)도 하는 것인가
비록애 푸새엣 것인듯 그 뉘땅에 났는가[23]
이 몸이 주거가셔 무어시 될고하니
봉래(蓬萊)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어야 이셔
백설이 만건곤(滿乾坤) 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24]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한 시조들이긴 한데 정말 성삼문이 지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애당초 조선에서 개인의 시조나 가곡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한 게 조선이 제2의 중화라는 소중화사상이 발생한 조선 후기부터이며 그 이전에 지어진 작품들은 개인 문집에 명확히 전해오는 것이 아닌 이상 저자가 불분명하다. 수양산과 봉래산이 들어가는 저 2수는 1728년 김천택이 편찬한 진본 청구영언에서부터 성삼문이 지은 것으로 등장한다. 역적의 글은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소각하는 게 원칙이란 것을 고려하면 저 작품이 정말 성삼문이 지은 것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 시조들은 실존 인물 성삼문을 평가할 때가 아니라 조선 후기 사육신이 어떤 위상을 갖고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용도로 바라보는 게 타당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청구영언에서 작자 미상으로 수록된 시조들이 병와가곡집, 가곡원류 등 후대의 저작으로 가면서 유응부, 이개, 박팽년 등 다른 사육신의 작품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사료에 따라 동일한 시조의 저자가 다르게 기록된 경우도 존재한다. 그리고 시조의 저자를 정하는 과정에 남효온의 육신전이 만들어낸 인물상이 강하게 작용하는 걸 볼 수 있다.[참고]

4.2. 강희안 관련

고사관수도로 유명한 세종의 처조카 강희안도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잡혀왔으나, 평소 친분이 있었던 강희안을[26] 살리기 위해 성삼문이 그의 연루를 부인하여 살았다고 한다. 이후 강희안은 평소 천시하던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고. 그런데 문제는 이 내용도 육신전에만 나온다.

실제로 성삼문과 강희안 기사를 시기별로 분류해 보면 알 수 있는데, 사육신 사건이 불거진 것은 세조 2년 6월 2일이다. 그런데 성삼문이 한참 고문을 받고 있던 6월 2일 강희안은 예조참의로 승진한다. 성봉조·홍원용·강곤·박형·봉석주·안숭직·강희안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강희안이 해당 사건 관련해서 처음 언급된 것은 세조 2년 7월 1일 기사이다. 권기와 최정강이 역모와 관련해 이계전·김인 등의 처벌을 청하나 불윤하다. 그런데 성삼문은 동년 6월 8일에 이미 처형되었다. 의금부에서 성삼문 등의 반역죄를 고하니 연루된 자들의 처벌을 명하다. 사실 강희안이 연루된 것은 불고죄, 그것도 정말 단순한 사건이었다. 고변 내용이 다음과 같다.
강희안(姜希顔)은 척리(戚里)로 주상을 가까이 모시고 있으면서 이개(李塏)의 ‘인심(人心)이 흉흉하다.’는 말을 듣고서도 못들은 체하고 피하여 갔을 뿐이요, 즉시 아뢰지 않았습니다. 또 성승(成勝)의 집에서 박팽년(朴彭年)과 하위지(河緯地)가 함께 서로 술마시는 것을 보았는데도 어찌 알지 못했다고 하겠습니까?
강희안(姜希顔) 같은 자는 범연하게 공사(供辭)에 관련된 다른 사람과 비교가 아니됩니다. 일찍이 이개(李塏)의 ‘인심(人心)이 흉흉(洶洶)하다.’는 말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또 역도(逆徒)들이 성승(成勝)의 집에 모여서 모반을 꾀하던 날에도 역시 참여하였고, 또 성삼문(成三問)을 끌고 함께 이웃집으로 들어갔으니, 어찌 그 음모를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강희안이 처벌 받지 않은 것은 혐의가 기껏해야 불고죄(그것도 민심이 흉흉하다 정도의), 혹은 성승의 집에서 술마셨다 정도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친구 아버지 집에 모여서 술 마신 것이 역적 모의가 되고, 요즘 민심 안 좋다는 말을 들은 것이 역적의 근거가 되었다. 이때 고발된 사람 중에서는 이개의 숙부였으나 세조에게 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좌익공신에 임명된 이계전 같은 인물도 포함되어 있고, 박팽년이 충청도 관찰사를 지내던 당시 하급 관직으로 박팽년의 신임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안철손이 포함되는 등, 조선 시대에 역모 사건 하나 터지면 수백 명이 죽어나가는 것이 이런 식으로 엮어들어가기 때문이다. 고발하는 사람들은 자기는 연결고리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고발 당한 사람들의 빈자리를 차지 하기 위해서 무조건 사소한 일로 고발을 하는 것이고[27], 조선시대 왕들은 이 범위 줄이느라 진땀을 뺀다.

이후에도 강희안은 호조 참의, 중추원 부사, 인수부 부윤 등을 지냈다. 강희안은 성종 7년에 죽었는데, 자손이 없었기 때문에 친척 중 누구가 강희안의 집안 제사를 이을 것인가로 조정에서 논의한 기록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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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손 황수신 황효원 홍윤성[10] 김질[11]
[1] 1504년 갑자사화로 제명, 1506년 중종 시기 복권
[2] 1458년 6월 29일 세조에 의해 책록
[3] 1466년 연회에서 세조에게 양위를 종용한 혐의로 제명
[4] 1456년 7월 3일 세조에 의해 3등에서 2등으로 책록
[5] 1455년 10월 22일 세조에 의해 책록
[6] 1456년 단종 복위 운동으로 제명
[7] 1699년 숙종 때 복권
[8] 1691년 숙종 때 복권
[9] 1504년 아들 이세좌와의 연좌로 인한 제명
[10] 1455년 11월 12일 세조에 의해 책록
[11] 1456년 7월 3일 세조에 의해 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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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ackground: #ed1c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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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ackground: #da29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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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캐나다 국기.svg|width=23]] '''캐나다 한국어 문학''': 테레사 현{{{-2 (판문점에서의 차 한잔 · 평화를 향해 철마는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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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px 4px; background: #da25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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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베트남 국기.svg|width=23]] '''베트남 한국어 문학''': 응웬티투번{{{-2 (400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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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white><tablebgcolor=#fff,#191919> 파일:문화부 심볼.svg이달의 문화인물
(1998~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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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월
신윤복
2월
안향
3월
이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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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명
5월
이익
6월
송흥록
7월
조철호
8월
윤봉춘
9월
한성준
10월
정태진
11월
최제우
12월
이순신
1999년
1월
이중섭
2월
혜초
3월
유형원
4월
최한기
5월
김창숙
6월
권율
7월
맹사성
8월
황현
9월
김시습
10월
최세진
11월
정부인 안동 장씨
12월
이승훈
2000년
1월
남궁억
2월
나혜석
3월
김육
4월
서경덕
5월
진감국사(혜소)
6월
하규일
7월
정인보
8월
김좌진
9월
김수영
10월
류희
11월
김창하
12월
장승업
2001년
1월
김부식
2월
최용신
3월
강항
4월
함석헌
5월
지눌
6월
이병기
7월
이현보
8월
오세창
9월
허균 · 허난설헌
10월
설총
11월
의천
12월
송만갑
2002년
1월
정약종
2월
김환기
3월
이상재
4월
박두성
5월
박수근
6월
조지훈
7월
성삼문
8월
박효관
9월
김병연
10월
신숙주
11월
김승호
12월
손진태
2003년
1월
안확
2월
양주동
3월
이동백
4월
양팽손
5월
정지용
6월
정몽주
7월
김장생
8월
박세당
9월
유정
10월
월명
11월
이인성
12월
유길준
2004년
1월
조희룡
2월
신흠
3월
이항로
4월
이경석
5월
의상
6월
백광홍
7월
이첨
8월
김창조
9월
조헌
10월
최항
11월
장욱진
12월
박두진
2005년
1월
정정열
2월
이예
3월
강경애
4월
신동엽
5월
임윤지당
6월
김종직
7월
강정일당
8월
이규보
9월
나철
10월
이승휴
11월
효명세자
12월
최북
※ 선정 당시 기관명은 문화부(1990~1993) → 문화체육부(1993~1998) → 문화관광부(1998~2005)였다.
이달의 문화인물(1990~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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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승총(震乘總)
{{{#!folding [ 본기(本紀) ] 권1기
,제1대 「태조기(太祖紀)」, ,제2대 「정종기(定宗紀)」, ,제3대 「태종기(太宗紀)」, ,제4대 「세종기(世宗紀)」,
이단 이경 이방원 이도
권2기
,제5대 「문종기(定宗紀)」, ,제6대 「단종기(端宗紀)」, ,제7대 「세조기(世祖紀)」, ,제8대 「예종기(睿宗紀)」,
이향 이홍위 이유 이황
권3기
,제10대 「연산기(燕山紀)」, ,제11대 「중종기(中宗紀)」,
이융 이역
권4기
,제12대 「인종기(仁宗紀)」, ,제13대 「명종기(成宗紀)」,
이호 이환
권5기 권6기 권7기
,제14대 「선조기(宣祖紀)」, ,제14대 수정기, ,제15대(중초본, 정초본) 「광해기(光海紀)」,
이연 이혼
권8~9기
,제16대 「인조기(仁祖紀)」,
이종
권10기
,제17대 「효종기(孝宗紀)」, ,제18대(개수록) 「현종기(顯祖紀)」,
이호 이현
권11~12기 권13기
,제19대(보궐정오) 「숙종기(肅宗紀)」, ,제20대(수정록) 「경종기(景宗紀)」,
이순 이윤
부록
금상(今上) }}}{{{#!folding [ 평전(評傳) ] 평전
이용 · 김종서 · 황보인
,「부록 사육신(死六臣)」, ,「부록 생육신(生六臣)」,
성삼문 · 박팽년 · 하위지 · 이개 · 유성원 · 유응부 김시습 · 원호 · 이맹전 · 조려 · 성담수 · 남효온 }}}{{{#!folding [ 부록(評傳) ] 저자 · 부록
이민보,저자, · 당파원론 · 국조연대 · 선원록 · 호송 금부도사의 작가 · 김지남 }}}

[1] 회곡(문숙)공파 9세[2] 훗날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운동가였던 윤봉길 의사는 스승인 매곡 성주록이 호를 지어 주었는데 성주록의 호 '매곡'에서 '매'를 땄고, 성삼문의 호인 '매죽헌'에서 '헌'을 따서 '매헌'이라 지었다고 한다.[3] 양운검의 한 분으로 모신다.[4] 삼빙(三聘: 세 번 부름), 삼고(三顧: 세 번 돌아봄), 삼성(三省: 세 번 살펴봄)[5] 다만, 성달생의 직계손은 성삼문의 단종복위사건으로 몰락했지만, 그의 형제 등 방계 가문은 훈구 가문으로서 잘 나갔다[6] 《훈민정음》보다는 이를 이용한 《동국정운》의 한자음을 정립하는 데 공헌했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7] 역설적이게도 이때 수양대군의 정적(안평대군, 김종서 파)을 철저히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 법의 잣대와 명분이, 불과 3년 뒤(1456년)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했을 때 본인과 그 일족을 멸문지화에 이르게 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8] 물론 사육신 사건 이후에는 이들의 공신 작호가 떨어지고, 같은 3등 공신이었던 정창손이 2등 공신으로 오르고, 사육신 사건을 고변한 김질이 3등 공신에 오르게 된다.[9] 연회에서 왕을 양 옆에서 호위하는 직책.[10] 만약 거사를 성공했으면 그걸 목격하고 황제에게 보고 들은 걸 전해야 했을 명나라 사신들, 그리고 명나라 황실의 장래도 참으로 볼만했을 것이다. 상왕이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통해 금상을 처단하고 왕위를 되찾는다니 형인 영종이 목숨이 위태로울 때 제위를 먹튀하고는 조카마저 내쫓아 버린 경태제가 이들을 퍽이나 기특해했겠다. 수양대군은 경태제의 등극을 알리는 칙사들을 앓아누운 아버지 세종과 형 문종 대신 접대하고, 경태 연간에 사신으로 명나라에 들락거려 안면도 있던 사이였다. 그나마 세조 입장에서는 이듬해에 명나라의 태상황탈문의 변을 일으켜 천순제로 복위했어도 다른 압박은 없었던 게 다행이었으나 결국 그 해를 넘기기 전에 조카인 단종를 죽이고 만다.[11] 세조가 농사 일을 보러 갈 때를 노리려고 했다는 말이 국문장에서 나온다.[12] 그래서 국문을 받을 때 유응부가 성삼문을 향해 "너는 을 읽었지만 꾀가 없으니 짐승과 다를 바 없다!" 또는 "더벅머리 겁쟁이 선비 놈들과 거사를 치른 것이 일생 일대의 실수다!"라고 일갈했다고 한다.(유응부는 성삼문의 부친인 성승의 친구라서 나이 차이가 아버지뻘이었다.)[13] 《조선왕조실록》에는 국문 기록과 성삼문 등이 행한 진술 위주의 기록만 존재하지만, 소설 《육신전》에서는 성삼문이 세조를 끝까지 왕으로 인정하지 않아 '전하'가 아닌 '나리(나으리)'라 불렀고, 유난히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세조가 "네가 지금 나를 '나으리'라 하는데 그러면 내가 준 봉록은 왜 먹었느냐?"라고 묻자 "나으리가 준 녹(봉급)은 하나도 먹지 않고 우리 창고 안에 고이 쌓아 두었소이다"라고 대답했는데 조사해 보니 과연 그랬다더라는 식의 일화가 추가되어 있다. 함께 동문 수학했던 신숙주가 세조와 함께 서 있자 세종의 고명을 받들지 않은 변절자라며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는 것도 소설 《육신전》에만 전하는 이야기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단종 복위 운동을 모의하며 "신숙주는 나와 좋은 사이지만 죽어 마땅하다"라고 했다고 김질의 고변에 나온다. 근데 이 말은 신숙주에게 직접 한 말이 아니라 일종의 뒷담화 식으로 동료들에게 한 말이다. 딱히 신숙주에게만 포인트를 준 것은 아닐 텐데도 이야기가 너무 두고두고 남는 바람에 신숙주는 지금까지 변절자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숙주나물이 신숙주와 엮이는 것은 실제 사육신의 정변 시도가 있고도 몇 백년 뒤인 조선 후기의 일이었다.[14] 기존의 문서에는 먼 친척들도 화를 입었다고 되어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성삼문의 집안은 개국공신 성석린의 집안이기도 했고, 그 범위를 넓게 보면 방계 친척들은 오히려 세조의 찬위에 협조하거나 정난공신들과 혼맥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성삼문의 재종숙(7촌)인 성봉조는 세조의 동서였다. 화를 입은 사람들은 성달생(성삼문의 조부)의 직계손, 즉 성삼문 입장에서는 사촌 범위 이내였다.[15] 성삼문 이외에 박팽년의 집안도 범위를 넓게 보면 방계 친척 중에서 세조 찬위에 협조해서 잘 나간 사람이 있는데 다름 아닌 박원종의 아버지인 박중선이다. 박팽년의 집안도 넓게 보면 명문가였던 박석명의 집안이었다. 이개의 경우만 봐도 이개 자신은 사육신이었지만 숙부 이계전과 이계린은 조카와는 반대로 세조를 지지했다. 이개의 집안도 증조부가 고려의 유학자인 이색일 정도로 명문가였다.[16] 사실 이 정도만 돼도 이 좋은 것이었다. 연산군 때는 여자고 먼 친척이고 멸족했으니 말이다.[17] 태종의 딸 정혜옹주와 결혼한 부마였다. 결혼한 것이 14살 때였는데 정혜옹주가 3년 만에 죽었기 때문에 재혼했다. 세종 때는 호조판서, 문종 때는 정승 후보군인 우찬성까지 올랐고, 계유정난에도 적극 참여해서 정난1등 공신이기도 했다.[18] 영화 〈해바라기〉에서 김래원한테 포켓 나이프 뽑고 덤벼들다가 팔모가지 부러진 역할을 했다.[19] 2008년 KBS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성삼문 역을 맡았던 배우 박철호와 동명이인.[20] 같은 시기를 다룬 왕과 비에서는 성종의 총애를 받는 신진관료 허종을 연기했다.[21] 대왕세종에서 박철호가 연기한 젊은 시절 성삼문이 그의 실제 성격과 매우 가깝게 묘사되었다.[22] 이유는 친정 관련.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그만두자 반대의견이 올라왔는데(사실 이건 의례상 행하는 것으로 덥석 받아들면 모양새가 좋지 않아서 왕과 신하는 한번 이상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때 한명회 역시도 반대의견을 올렸는데 그 정도가 좀 지나쳤다.[23] 수양산 : 백이, 숙제가 절개를 지켜 은거하다 굶어 죽은 곳. 수양 대군을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 이제 : 백이와 숙제. 채미 : 고비를 뜯음. 푸새 : 산과 들에 저절로 나서 자라는 풀 (녹봉을 의미). 백이와 숙제는 구차하게 연명하며 살았으나 나는 녹봉도 받지 않고 절의를 지켰다라는 의미.[24] 봉래산 : 중국의 전설상의 산. 낙락 장송 : 가지가 길게 축축 늘어진 키 큰 소나무. 백설 : 수양 대군과 간신 비유. 만건곤 : 하늘과 땅에 가득함.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여도 홀로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처럼 세조와 배신자들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절의를 지키겠다는 결의가 담김. 육신전에 의해서 이미지가 성립된 이후에 추가된 이야기에서는 세조는 태종의 「하여가」로 성삼문의 마지막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다. 위 시조는 세조의 「하여가」에 화답한 성삼문의 「충의가」로 묘사된다. 저 시조 자체가 뒤에 억지로 붙여 넣은 것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고려하면, 시조를 붙여 넣으면서 배경을 추가한 접착제 역할이라고 보면 되겠다.[참고] 문헌 신성환, 「사육신 담론의 전변과 조선 후기 시가의 수용 양상」 (민족 문학사 연구, 2011년)[26] 강희안을 놀리는 시를 지었을 정도였다.[27] 위에 언급된 안철손을 고발한 것은 그 동복동생인 안신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