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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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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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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이헌구, 익평군, 김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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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묘 배향 18현을 겸하는 6인(동배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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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의 부마
흥안군(興安君) 경무공(景武公)
이제
李濟
<nopad>파일:개국공신이제.jpg
출생 생년 미상공식
1365년(공민왕 14)족보 기록
사망 1398년 10월 15일[1]
(음력 태조 7년 8월 27일)
부모 부친 - 이인립(李仁立, 1333 ~ 1387)
모친 - 혜령옹주(惠寧翁主)
형제자매 남동생 - 이발(李潑, 1372 ~ 1426)
부인 경순공주[2]
자녀 슬하 (1남)
(양자) - 이윤(李潤)
본관 성주 이씨
봉호 흥안군(興安君)1392년(태조 1년 8월 7일)
시호 경무(景武)

1. 개요2. 생애3. 기타4.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여말선초왕족. 고려 말의 권신이인임의 조카로, 조선 개국공신이다.[3]

2. 생애

이성계경순공주와 결혼했고 1392년 여름 음력 4월 이방원, 의안대군 이화를 포함한 여러 명과 함께 정몽주를 죽이는 일에 대해 모의했으며, 같은 해 음력 7월 17일 이성계가 왕에 올라 조선건국된 후, 음력 8월 7일에 흥안군에 봉해지고 의흥친군위 절제사가 되었다.

음력 8월 20일에 개국공신 1등에 책봉되었고, 1393년 음력 3월 18일에는 남은, 이지란 등과 함께 왜구를 막기 위해 경상도에 파견되었으며, 음력 10월 17일에 우군 절제사가 되었다. 1395년 음력 4월 4일에 감정에 따라 서부령 권상을 때린 일이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했으며, 1398년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이방원 일파의 공격을 받아 살해당했다. 자신은 세자의 매형이므로 무사하지 못할 것을 알고 칼을 들고 싸우도록 허락해 달라고 태조에게 청했다. 당시 의흥친군위 절제사로서 중앙군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그였기에 맞서 싸운다면 해볼만 했을 것이다. 박위 등 친위병력 지휘자들도 상황을 살피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방원에게 붙은 태조의 이복동생 이화의 비협조와 내부 교란으로 무력 대응은 수포로 돌아갔다.

살해당하기 전에 경순공주가 이방원의 일파에 가담하면, 반드시 살 것이라 했지만 이를 듣지 않았다. 방번과 마찬가지로 그도 이방원을 지지했으면 적어도 목숨은 건졌을 거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다만 본인은 이방석의 매부였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겼고, 아예 대놓고 이방원과 싸우게 해 달라고 한 만큼 더더욱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4]

슬하에 자녀가 없어서 사후 세종의 명으로 동생 이발(李發)의 아들인 이윤(李潤, 1398~1456)을 양자로 들였다.[5]

3. 기타

  • 봉호와 이름의 한국 한자음은 후에 잠깐 왕위에 있던 선조의 서자인 흥안군과 같다. 단, 한자는 다르다. 선조의 서자의 이름은 '제(瑅)'이고, 본 문서에서 다루는 인물의 이름은 '제(濟)'이다.
  • 이제와 관련해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물로 국보 제324호 이제 개국공신교서가 있다.
  • 후손인 경무공파는 주로 경상남도 서부 지역인 하동군, 남해군, 산청군, 진주시, 사천시에서 은근 볼 수 있다.
  • 그 외에 진주시에 성주이씨 경무공 종친회관이 있다.

4. 대중매체

  •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배우 이경영[6]이 연기했다. 비중은 딱 경순공주의 남편에 불과했으며 잠깐씩 등장하였기 때문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경순공주로부터 "정안군에게 가담하라"는 설득을 받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으며 "무안군과 함께 살려주겠다"는 정안군의 말에 감사하며 달아나던 중 회안대군에게 목숨을 잃는다.
  • 2021년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는 배우 장태훈이 연기했다. 정몽주 척살에 동의하거나 정몽주 척살 이후 공양왕을 겁박하여 왕명을 받아내고 장모인 강씨를 도와 궁궐 내의 소식을 전해준다. 조선 건국 이후 처남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자 정도전과 함께 그의 지지자로 활동하며 이방원을 견제한다.[7]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어떻게든 군사를 이끌고 대응하려고 하지만 주변의 반발로 실패한다. 결국 처남들인 이방번이방석이 모두 죽은 17회에서 아내 경순공주가 이방원에게 직접 가서 잘못을 빌면 용서해 줄거라고 필사적으로 설득하는데도 용서를 빌지 않았고, 끝내 이방원이 보낸 박포가 들이닥쳐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자 정안군에게 똑똑히 전하라며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다가 아내의 눈앞에서 살해당한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개국 편과 태조, 정종실록에서 등장하는데 개국 편은 거의 단역에 불과해서 별다른 비중이 없었고 태조, 정종실록에선 그나마 간간이 등장하는데 1차 왕자의 난때 이제가 장인어른인 이성계에게 “전하! 왕자들이 군사를 일으켜 봉화백남은 등을 베었으니, 장차 신에게도 화가 미칠 것이옵니다. 나가 싸우도록 해주소서!”라고 말하며 이성계에게 부탁했지만 이성계의 이복동생인 이화가 “내부 문제인데 서로 싸울 게 무언가?”라고 이제를 말리면서 결국 무력대응을 접어야 했고 상황이 종료된 후 집에 있었는데 이방원의 군사들이 이제의 집을 찾아와 이제를 베어버리면서 등장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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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율리우스력 10월 7일.[2] 태조의 장녀.[3] 이인임의 동생인 이인립(1333~1387)의 장남으로, 동생 이발(李發, 1372~1426)이 있다.[4] 이래서인지는 몰라도 태조는 이방번과 이방석과 함께 이제의 죽음까지 꼭꼭 기억해두었다가 소요산까지 나가서 불사를 지내는 것에 대해, 태종이 조심스레 만류하자 "내가 불교를 좋아하는 건 두 아들과 한 사람의 사위를 위해서다"라고 말한 뒤 "우리들도 이미 서방정토로 향하여 있다!"라고 일갈했다. 그만큼 두 아들 못지않게 사위의 죽음이 원한으로 맺힌 것.[5] 『세종실록』 80권, 세종 20년 3월 15일 기해 1번째기사[6] 2021년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는 이방석의 장인인 심효생 역.[7] 여기서 장모인 신덕왕후가 살아생전 내내 이방원을 견제하고 죽이려한 걸 언급하며 그 뜻을 받들어 이방원에게 누명을 씌어서라도 죽여야 된다는 지나친 발언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