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08:42:59

이방석(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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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의 팔남이자 초대 세자
의안대군 이방석
宜安大君 李芳碩
파일:이방석 세자책봉_1080p.png
캐릭터
<colbgcolor=#A60C0C,#360505><colcolor=white> 신분 조선국파일:조선 어기.svg 왕세자(8회 ~ 17회)
등장회차 1회 ~ 17회
배우
김진성[1] (아역: 장재하)

1. 개요2. 극중 행적
2.1. 조선 건국 전2.2. 조선의 첫번째 세자가 되다2.3. 믿었던 어머니의 죽음, 흔들리는 지위2.4. 이복형과의 갈등2.5. 권력에 대한 욕망 앞에 비명없이 가버린 차기 왕재2.6. 사후
3. 극중 묘사4. 인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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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등장인물로 이성계신덕왕후 강씨 사이의 차남이며 전체로 보면 여덟째 아들로 조선의 첫 번째 왕세자[2]이다. 포천 전장(田莊)에서 우왕과 최영의 지시로 잡으러 온 병사들을 피해 가족들이 도주할 때 이방원이 직접 업고 갈 만큼 각별히 챙기는 막내동생 포지션이다.

2. 극중 행적

2.1. 조선 건국 전

부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자 우왕이 개경에 남은 이성계의 가족들을 모두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방원이 가족들을 데리고 피신할 때 직접 업고 피신한다. 이성계가 개경에 돌아온 후 조촐하게 차린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때까지만 해도 화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1392년 아직 10살의 나이에 이미 부인 류씨를 두었으며[3] 이복형 이방원이 총대를 메고 가족을 모두 죽이려하는 정몽주를 대낮에 암살하는 바람에 아버지 이성계에게 버림받게되자 강씨 소생들은 아버지를 걱정하는 동시에 아버지의 눈에 본격적으로 띄게된다.

2.2. 조선의 첫번째 세자가 되다

어머니께 네가 왕이 될 거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자신이 막내인데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자 전하께서 알아서 하실 거라는 답변을 받는다. 이후에도 강씨에게 절대 아버지를 거역하지 말고, 서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 드리라는 말을 듣자 이방원 형님처럼 열심히 하겠다면서 이방원 형님을 전하께서 많이 칭찬하지 않느냐라는 말을 한다.[4] 그러자 강씨에게 이방원은 이미 아버지의 눈 밖에 났다며, 단 한번도 이성계를 거역해선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강조받는다.

태조의 저택에서 아내, 형과 누나, 매형과 같이 즐겁게 잡담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이방원을 보고 놀란다. 이방원 역시 자신들을 보고 놀라면서 너희들이 왜 여기있느냐고 묻자, 이성계가 낙마한 이후부터 여기서 머물고 있다고 말한다. 이때 강씨 소생의 다른 자녀들은 이방원의 눈길을 피하는데 방석 혼자만 멀뚱멀뚱 이방원과 눈을 마주친다. 어린 막내라서 사정의 심각함을 모르는 듯하다.

후에 세자로 책봉되면서 왕비로 책봉된 어머니와 같이 궐에 입성하게 되고,[5] 궐 앞에 대신들과 마중나와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서 입성한다.

2.3. 믿었던 어머니의 죽음, 흔들리는 지위

숙부들과 같이 온천으로 휴양을 떠나는 태조를 강씨와 함께 배웅한지 얼마 후, 이방원 일파의 수상한 움직임에 강씨와 정도전이 예의주시했지만 이방원의 처 민씨가 시선을 돌리는 덕분에 아무 일 없이 넘어갔다.

그러다 아내인 세자빈 류씨가 내시와 간통을 벌이고 이를 들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류씨가 화가 나서 류씨의 처소에 들이닥친 어머니 강씨에게 아들이 사내 구실 못했다는 디스를 해서 굴욕을 당한다. 하지만 아내에게 호감은 있었는지, 류씨가 궐에서 쫓겨나게 되자, 어머니 강씨에게 이제 류씨를 만나지 못하는 거냐고 물었으나 강씨에게 그런 사람은 다시 만날 필요가 없다며 앞으로도 당당하게 다녀서 사람들이 무시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을 듣는다. 결국 류씨를 잊고 심효생의 딸과 재혼하게된다.

이후, 명나라에 갔다 살아 돌아온 이방원과 만나자 걱정했다고 말해준다. 이방원 역시 방석의 말을 살갑게 받아주지만 이후 닥칠 파란을 생각하면 참 묘하게 다가오는 장면.

새 수도 한양으로 천도한지 얼마 지나지않고 강씨가 천벌을 받은듯 병이 위독해지자 남편 이성계에게 세자를 지켜줄 것을 간절히 부탁하였고, 이때 승려들과 함께 기도하던 이방석은 늦은 시각 어머니 신덕왕후의 처소로 왔으나 결국 어머니가 죽자 형제들과 함께 통곡하고, 시체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좋은 곳에 가기를 기도한다.

장례를 치른 후 중전의 처소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아버지 태조의 명을 어기고 처소에 들어가 어머니가 베고 있던 베개를 끌어안고 자고 있었으나, 태조 역시 부인인 신덕왕후를 잃은 슬픔과 아들 방석에 대한 안타까움이 내재되어 있던 터라 방석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신덕왕후에게 왜 우리를 두고 떠났냐며 슬퍼한다.[6]

세월이 흐른 후 방석은 어느 정자에서 정도전에게 왕이 되기 위한 가르침을 받는다. 정안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정도전의 물음에 최영의 군사들이 들이닥칠 때 자신을 업어가면서까지 지켜주었고, 자신을 가장 많이 생각해주는 좋은 형님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정도전은 이방원의 진짜 속마음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웃지 못하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2.4. 이복형과의 갈등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절에 공양을 드리러 가는 도중, 군사를 훈련 중이던 이방원과 만나게 된다. 이성계가 칼을 뽑아들며 이방원을 죽이려하자 아버지의 앞을 가로막으며 이방원을 보호해주는 바람에 이성계는 이방원을 또 한번 숙청할 기회를 놓치자 이방석 역시 자신의 명을 재촉하는 결과만 낳았다.

신덕왕후의 3년상을 마친 후, 여전히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떨쳐내지 못하는 가운데 있다. 환궁하는 길에 아버지가 자신을 격려하면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만졌는데, 부왕의 손이 불처럼 뜨겁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리고 환궁하는 길에 부왕이 쓰러지는 것을 보게 된다.

아버지가 깨어나길 바라는 가운데, 어느정도 병세가 진정되었을 무렵, 이방원이 이성계의 건강 상태를 보기 위해 찾아온다. 방석은 이방원에게 아버지는 홍건적도 왜구도 이긴 명장인데 어찌 이리 되셨냐며 한탄하자 이방원은 왕이라도 세월을 이길 순 없는 것이라고 답해주면서, 이럴 때일 수록 단단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충고를 굉장히 무서운 얼굴로 해준다.

이방원이 떠나려는 찰나, 방석은 그를 멈춰 세우고, 세간에 자신과 이방원을 비교하는 말들이 돈다는 것, 그리고 이방원에 자신의 세자 자리를 노린다는 사실을 자신도 알고 있으며, 하지만 형님도 제 나이 때는 지금같지는 않지 않았냐고 하며[7] 자신이 미숙한 건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이지 형님 나이가 되면 자기도 형님처럼 될 자신이 있다면서 자신을 믿어달라고 호소한다.[8]

그러나 이방원은 냉정하게 자신이 저하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렇게 부탁을 하는게 아니라 자신을 바로 베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고, 방석이 그건 짐승의 방식이라고 반박하지만, 이방원은 사람도 짐승이고 서책을 읽는다고 짐승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며, 힘을 통해 가장 강한 자를 왕으로 골라내는 것이 왕실의 의무라고 매몰차게 대답한다. 그러자 방석은 이방원이 정말로 자신을 죽이고 세자 자리를 차지할 것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2.5. 권력에 대한 욕망 앞에 비명없이 가버린 차기 왕재

마침내 이방원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거사를 일으키자 담 너머로 이방원의 군세를 보고는 겁을 먹고, 자신들은 세자의 명을 따를테니 명을 내려달라는 조영무의 청에도 자신은 군사를 다뤄본적 없다고 자리를 피해버린다.[9][10]

어머니가 죽은 후에 제일 많이 의지했던 정도전마저 송현방에서 심효생 등과 함께 참살되고 사태가 위태로워지자, 동북면 절제사인 동복형 방번에게 도와달라 청하지만, 방번이 "세자의 자리는 본래 중전마마의 적장자인 제 것이었는데 제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저하의 목숨은 저하가 지키십시오"면서 방석의 청을 냉정하게 거절해버리자 망연자실한다.[11] 어전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있지만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이성계만 바라보았고 이성계마저 직접 칼을 들고 이방원과 대면했지만 결국 그의 군사들에게 제압되고 말았다.

이후 방석을 폐세자시켜 서인으로 강등시키고 궐 밖으로 내보내라는 이방원 측의 압박에도 어떻게든 막내아들을 지키려는 이성계가 이를 거부하자, 도리어 상황이 더 악화되면 아버지에게까지 직접 화가 미칠 수 있으니 저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나가겠다고 한다. 이후 폐세자된 몸으로 궐을 나서던 중 병사들이 붙잡으려 하자, 단호하게 내 발로 갈테니 손 대지 말라며 위엄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유배를 당하던 길에 이방원을 만나 자신도 잘할 수 있는데, 왜 자신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냐며 울분을 터트린다.[12] 물론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 이방원은 오히려 폐위된 이방석을 더 이상 세자 저하라는 존칭으로 부르지도 않고, 존댓말도 하지 않고 옛날처럼 반말로 방석이 말한 모든 걸 자기 스스로 하고 싶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야망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그럼 결국 형님의 욕심이었던 겁니까! 형님은 폭군이 될겁니다! 백성을 도륙하는 미치광이가 될겁니다! 조선을 망친 대역죄인이 될겁니다!

이 말을 들은 방석은 이방원에게 대의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때문에 자기 자리를 뺏은 것이냐며 비난하고, 뒤이어 형님은 폭군이 될 것이고 미치광이가 될 거라고 저주를 퍼부은 후 결국 군사들의 칼에 등을 베여 죽는다.[13]

2.6. 사후

살아남은 형제들 중 실질적 맏형인 이방과가 즉위한 후, 이방원이 친형제들인 이방의와 이방간마저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방석이의 저주대로 폭군이 되는 건가보다"라며 자조한다.

세월이 흘러 3대 국왕이 된 이방원의 장남 세자 이제가 아우인 충녕대군에 세자 자리를 위협받는 상황이 되면서 그를 압박하는 존재가 되었다. 폐위된 세자에겐 오로지 죽음밖에 없다는 선례가 바로 이방석이기 때문. 아예 세자가 직접 모후인 중전 민씨에게 세자 자리에서 폐위된 자가 어떻게 되는지 의안군(이방석의 군호)을[14][15] 보면 알지 않냐고 말한다. 다만 대립 구도는 이방석과 이방원, 양녕과 충녕은 비슷하면서도 결말이 다른데 양녕은 이방석처럼 폐세자가 되어 궁에서 추방되었으나 충녕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양녕의 폐위명분을 내세웠고 폐세자가 된 양녕을 끝까지 비호해 주었다.

3. 극중 묘사

동시대를 다룬 드라마 정도전에서도 그러했듯 어리숙하지만, 실록에서 묘사된 것처럼 개초딩스러운 행보를 보이지는 않았다. 이방원처럼 되고 싶다는 나름의 목표도 품고 있었으며, 흑화한 이방원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는 강단 있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정도전에서 나이도 가장 어린데다 별다른 공도 없으면서, 패기 있게 정안군에게 덤볐던 이방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정도전에서의 이방석은 대놓고 세자 자리는 자신의 것이니 당연히 자신이 세자가 돼야 한다고 나대는 느낌이 강했고, 형들보다 자신이 더 대단하다며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면서도 정도전의 꼭두각시라는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그러나 태종 이방원에서의 이방석은 자신이 형들보다 부족하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고 있고[16] 이를 스스로도 인정하지만 세자 자리는 자신이 임명받은 자리이기 때문에, 자신의 것이라고 확실하게 표현하면서도 비록 지금은 형들보다 자질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노력해서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패기있게 형들에게 대들려고 한다기보다는 자신을 돕지 않은 채 철저히 외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자신을 미워하기까지 하는 형들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이 더 큰 것으로 묘사되었다.[17] 물론 이건 이방석 혼자만의 생각일 뿐 이성계의 안위를 위해 온갖 고생을 다했는데 가장 막내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긴 걸로도 모자라, 그동안 세운 공로마저 아버지에 의해 철저히 부정당한 형들에게는[18]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일 수 밖에 없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면 바로 동시대를 다룬 역대 사극에서 묘사된 이방석 중에서 제일 무게감 있게 연출되었다는 것. 사실 실록에서처럼 경망스러운 태도로 묘사되진 않더라도 그간 미디어에서의 이방석은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 같이 굵직한 인물들에게 치여 아역배우가 연기하는 병풍 수준의 비중을 가진 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본작에선 이방원을 어렸을 때부터 무척 따르고 의지했으며, 나름 세자 자리에 대한 책임감도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나온다. 일찍 사망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부왕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 세자에서 폐위되어 궁 밖으로 나가는 등, 부모에 대한 효심도 각별하다. 16회에서 무인정사 때 이방원의 군세를 보고 겁을 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도망치지는 않았다.

용의 눈물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석은 아역 배우가 맡다보니 이방원 앞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다가 비참하게 참살당했고[19], 정도전의 이방석은 '나를 어찌하려는 것이냐'고 긴장된 얼굴로 병사들에게 말하다가 그게 유언이 되어 비명도 없이 단칼에 살해당했다. 본작의 이방석은 이전처럼 끌려와 죽는게 아니라, 실록의 기록대로 귀양가던 중 은밀하게 살해되는 것으로 묘사되며, 자신도 이방원보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기어코 자신의 자리를 빼앗는 거냐며, 이내 자신의 자리를 탐하는 이방원은 폭군이 될 것이라는 저주를 내뱉고는 이방원 측 병사의 칼에 베여 비명도 내지 못한 채 죽었다.

작중에서의 묘사만 놓고 보면 불쌍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어린 막내인데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개념이 있는 모습을 보였고 형들에게 기어오르는 일도 없었으며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욕심 때문에 그렇게 따르던 형들에게도 버림받고, 심지어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동복형에게도 한마디 듣고 버림받았다.[20]

4. 인간 관계

4.1. 이성계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매우 존경하며 어릴 때부터 잘 따랐다. 이성계 역시 모든 자녀를 통틀어 가장 막내인데다, 자신의 눈밖에 날 일도 하지않은 이방석을 각별히 아꼈다. 이방원을 비롯한 한씨 소생의 아들들이 정몽주 척살로 이성계에게 버림받은 뒤부터, 그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아버지의 편애를 받기 시작했다.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왕실 종친들과 조정 대신들의 반발을 사면서까지, 자식들 중 가장 막내인 방석의 세자 책봉을 무리하게 관철시킬 정도. 방석 역시 지지세력이 모조리 쓸려나간 1차 왕자의 난 이후 이성계의 안위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참살당할 것이 확실시 된 폐세자와 출궁을 자처할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극진한 효심을 보인다.

이방석의 죽음은 이성계에게 있어 살아도 산 게 아닌 고통이자 최후에 이방원을 용서하고 국왕으로 인정하기 전까지, 원한에 몸부림치며 마지막까지 조사의의 난을 일으키며 발악할 정도로 이방원에게 대항한 원흉이기도 하다.

4.2. 이방원

이복 형제지만 조선 건국 전까지는 사이 좋은 형제였으며 위화도 회군 당시, 이방원이 어린 방석을 직접 업고 가족들을 데리고 피신시킬 정도였다. 이후에도 정몽주가 전주 이씨 가문을 모두 죽이려하자 자신이 총대를 매고 정몽주를 죽임으로서, 가족들을 또 한번 구하고 조선 건국에 앞장서면서 매번 가문의 위기에서 자신과 가족들을 구해준 사람이 되었다. 이방석 역시 이방원을 좋은 형이라고 생각하며 잘 따랐으나, 조선 건국과 자신의 세자 책봉 후로 사이가 틀어진다. 이방원이 야망을 드러내자 그를 두려워하고 자신이 이방원보다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세자 자리를 어떻게든 지키고자 자신도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결국 역심을 품게 된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폐세자가 된 방석을 참살하면서 이 형제관계는 비극으로 끝난다.

4.3. 신덕왕후

아버지 못지않게 어머니를 잘 따랐고 신덕왕후 역시 장남인 이방번이 아닌 이방석을 세자로 내세우면서 우선시했다. 죽기 직전에도 이성계에게 이방석의 안위를 부탁했을 정도였고, 이방석도 죽은 어머니를 매우 그리워하면서 빈 자리를 크게 느꼈다.

비단 가족간의 애정뿐만 아니라 신덕왕후는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된 근본적인 이유이자, 그의 부족한 정통성과 지지세력을 보장해주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그런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이방석의 세자 지위가 흔들리게 되었고 결국 그 틈을 노린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면서, 이방석은 폐세자된 뒤 참살당하고 서자로 격하되었으며 신덕왕후 역시 첩으로 격하되고 무덤마저 헐어지면서 모자가 사후에 나란히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4.4. 이방번

유일한 친형. 하지만 방번은 신덕왕후의 장남인 자신을 제치고, 동생이 세자가 된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방석도 무리한 세자 책봉으로 이복형들에게는 물론 친형에게도 미안함을 느꼈다. 결국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형에게 군사들을 이끌어달라고 부탁하지만, 방번은 매정하게도 세자 저하의 목숨은 스스로 챙기라고 외면하면서 갈등이 폭발한다. 이후 방석은 이방원에게, 방번은 이방간에게 각개척살을 당하면서 친형제 모두 비참하게 죽는다.

4.5. 정도전

신덕왕후가 죽은 후에는 정도전에게 의지했고 정도전 역시 신덕왕후의 유언대로 이방석을 보호했다. 그러나 본인의 오판으로 자신과 이방석 모두 이방원 손에 살해되었다.

[1] 본작이 KBS 대하드라마 세 번째 출연이다. 대왕 세종으로 데뷔했으며, 대왕의 꿈에서 문무왕의 어린 시절을 맡았다.[2] 사후 태종 때는 군호 없이 시호만 주어져 소도군(昭悼君)으로 불리게 되었고,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의안대군(宜安大君)으로 증작(贈爵)되었다.[3] 성장한 이방번과 이방석 역을 맡은 배우들이 모두 성인인지라 실제 인물들의 당시 나이와 너무 나이차가 큰 것 아니냐는 반응도 많지만, 32회로 끝나는 드라마임을 고려한다면 짧은 기간에 두 배우를 기용하는 것은 촬영도 힘들고 시청자들의 혼란도 더 커질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많다. 당장 방번, 방석만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배우들이 실제 인물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4] 실제로 이성계는 이방원의 과거 급제에 대해 가문의 자랑이라고 생각하며 엄청 좋아했었다.[5] 이때 형들이 화를 낼까봐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신덕왕후가 '자신이 살아있는 한' 지켜줄테니 마음 놓으라며 안심시킨다. 물론 이 다짐은 신덕왕후가 살아있을 때까지만 지켜진다.[6] 훗날 원경왕후를 잃은 세종을 태종이 위로하지않고 국왕답게 일어서서 정사에 돌보라고 일갈하는 것과 대조된다.[7] 이방원을 무시한 발언이다. 무인정사 당시 이방석의 나이는 17세로, 이방원은 그 나이에 무려 고려 최연소로 과거에 급제하여,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해보였다. 이방석은 실록 기록으로나 극중 모습으로나 그 어떤 공석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보인 바 없다.[8] 하지만 이 대화가 나오는 시점에서 부왕 이성계가 건강 악화로 쓰러져 조정이 지도자 유고에 준하는 상태이고, 최악의 경우 이성계가 그대로 죽는다면 세자인 방석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왕으로 당장 즉위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제대로 된 세자라면 자기가 좀더 장성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할 여유 없이, 곧바로 차기 군왕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입증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방석의 호소는 자신이 군주로서 아직 미흡하다는 걸 자인하는 동시에, 상황의 엄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무책임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9] 상식적으로 조영무가 이방석에게 군사전략이나 용병술 따위를 기대했을리도 없으며 그렇다고 직접 칼을 들고 싸우기를 기대한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기껏해야 뒤에서 병사들의 뒤에서 함께 해주거나 원경왕후가 그랬던 것처럼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길 바란 것이겠지만 이방석은 그조차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행동으로 조영무는 이방석 대신 이방원을 선택하게 된다.[10] 24회에서 조사의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이방원이 직접 나서고 심지어 선봉에 서서 싸운 것과도 대비된다. 이방원 역시 문신 출신으로 무력은 보잘것 없고 이방과(태종 이방원)에게는 허구헌날 두들겨 맞는 신세지만 자신이 칼을 잡아야 할 때 주저한 적은 없었다.[11] 이에 굉장히 슬픈 눈빛으로 거의 울먹일 듯 쳐다보지만 제대로 반박조차 하지 못한다. 이 드라마 한정으로는 이방석은 자신이 형들을 제치고 무리하게 세자 자리에 올랐다고 최소한의 인지는 하고 있다. 문제는 이 동복형제 사이가 갈라진 원인도 신덕왕후가 자기가 큰아들을 고려 왕족 집안과 결혼시켜놓고는 조선 건국되자마자 고려 왕족 집안 사람과 혼인했다고 세자 후계에서도 밀어내버렸으니 방번에 배반은 당연한 결과였다.[12] 정작 자신이 16회에서 관군들의 지휘를 포기하는 바람에, 조영무가 결국 정안군을 선택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방원이 개인의 야망 때문에 세자 자리를 노린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이방석도 그 자리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13] 이방원은 방석의 친형 방번은 유배를 보내되 진심으로 살려주려 했던 것과 달리, 이방석은 기다렸단 듯이 궐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로 살해했다. 애초에 신덕왕후의 강권으로 무리하게 세자에 책봉되어 왕실에 분란을 일으킨 원흉 중 하나인데다, 비록 실력으로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으나 입지상으로는 이방원에게 가장 큰 정적이었으니 당연한 일.[14] 사실 이방석을 의안군으로 부르는 건 고증 오류다. 사후 태종 때는 군호 없이 시호만 주어져 소도군(昭悼君)으로 불리게 되었고,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의안대군(宜安大君)으로 증작(贈爵)되었기 때문.[15] 양녕대군한테는 엄연히 숙부임에도 아버지의 뜻이었는지 숙부라고 부르지도 않는다.[16] 신덕왕후에게 자신이 세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놀라는데 이에 신덕왕후가 조용히 시키며 "방번이가 듣는다" 라고 하자 "방번 형님이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되묻는다. 이 말은 방번은 둘째치고 아예 세자 자리는 자기 것이 아니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말이다.[17] 즉, 마치 형들에게 자신을 인정해 달라고 애걸하는 느낌.[18] 이 드라마에서는 이성계가 신의왕후의 아들들을 아들이 아닌 그저 신하로만 대하려고 하는 모습이 유난히 강하다.[19] 그것도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이방원이 직접 칼로 참살했다.[20] 도와달라고 하자, "그 자리는 원래 어머니의 장남인 내 꺼였어. 근데 네가 뺐었잖아. 그런 내가 왜 널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해? 그러니 네 목숨은 네가 스스로 지켜"라는 식의 비꼬는 말만 들었다. 어머니의 삽질로 믿을 사람이라고는 매형인 흥안군 이제 한 사람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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