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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간(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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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의 사남
회안대군 이방간
懷安大君 李芳幹
파일:이방간 _10화_1080P.png
캐릭터
<colbgcolor=#A60C0C,#360505><colcolor=white> 작호 회안군 (懷安君) → 회안공 (懷安公)
신분
등장회차 1회 ~ 20회
배우
조순창

1. 개요2. 캐스팅3. 극중 행적
3.1. 위화도 회군, 아버지와 형들과 함께 종군한 무인3.2. 형제들과의 갈등의 시작3.3. 역성혁명, 왕자가 된 기쁨도 잠시3.4. 아버지와 동생들에 대한 원망에 술독에 빠지다3.5. 무인정사3.6. 2차 왕자의 난, 그리고 몰락3.7. 이후
4. 극중 묘사5. 인간 관계

[clearfix]

1. 개요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이성계와 한씨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 아들.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등장인물로,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의 사남으로, 조선의 개국공신과 정사공신으로 최종 작호는 회안대군(懷安大君)이다.

2. 캐스팅

이방간 역을 맡은 조순창은 1980년 생이고, 이방원 역을 맡은 주상욱은 1978년 생으로 주상욱이 2살 형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실제로는 연하인 조순창이 연상인 주상욱의 형을 맡았다.[1]

또한 동 시대를 다룬 <정도전>에서는 후에 태종 재위 후기에 숙청당하기 전까지 태종의 가신이었던 이숙번을 맡았으나 본 작에서 정태우가 연기한 이숙번과는 적대관계로 나왔다.[2] 또한 정도전에서 하륜을 맡은 이광기와는 같은 태종의 가신으로 우호관계였다가 징비록과 본작에서 연이어 적대관계로 변질되었다.[3]

3. 극중 행적

3.1. 위화도 회군, 아버지와 형들과 함께 종군한 무인

이 당시부터 이방의와 함께 이성계 휘하에 종군하고 우왕의 감시에서 탈출한 이방우, 이방과과 진지에서 다시 만난 후 아버지와 함께 개경 전투에 참가했다.

3.2. 형제들과의 갈등의 시작

회군파를 돕겠다는 이방원의 요청을 거절한 이성계가 방원은 무장인 자신들과 다른 길을 걷길 원한다고 밝히자, 아버지가 떠난 뒤 방원이 늘 편애를 받는다며, 그가 문과에 급제한 후로 방원은 아들이 아니라 빈객이라며 불만을 드러낸다.[4] 이후 우왕의 저택 습격이 일어난 뒤,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사건에 대해 논하던 중에도 당장 가서 죽여버리자고 주장하다가 방과가 그건 아버지가 결정할 일이라고 하자, 아버지 때문에 가족들이 다 죽을 뻔한 것이 아니냐고 투덜거리다 이 말에 분노한 방과에게 질책당하다 결국 형에게 주먹으로 맞기에 이르고, 이에 격분한 나머지 대도까지 빼어들며 방과와 대립하려다가 이를 본 이성계에게 방과와 더불어 지휘봉으로 두들겨 맞고 질책당한다.

그후 방원이 우왕의 사주를 받고 이성계를 제거하려는 자객들의 칼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가 복귀했을 때 혼자만 그를 반기지 않았고, 이후 이성계를 지지하는 사대부들의 회합에 방원이 집안 대표로 참석하자 형들 앞에서 불만을 터뜨렸다가 방과에게 질책을 받는다. 자꾸 입 밖에 내서 깨지지 말고 속으로 삭히라는 방의의 충고에 이미 속이 썩어 문드러졌다며 듣지 않는다. 폐가입진이 이뤄진 뒤에는 방과, 방의와 함께 축배를 들었고, 이후로는 방과, 방의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3.3. 역성혁명, 왕자가 된 기쁨도 잠시

정몽주가 실권을 잡았을 때, 모친 한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 형제들과 급하게 말을 달려 포천으로 향했지만, 상복을 입은 여동생들을 보고 방우에 이어서 빈소에 들어서고, 장례 내내 방원 못지 않게 흐느끼는 모습을 보였다.

그 후 선죽교에서 정몽주가 피살되자 이전과는 다르게 대의를 위해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에게 자신은 절대 못할 위험한 짓을 가족들을 위해 해준 것이라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드러내면서 두려움에 제정신이 아닌 방원을 다독여줬고 형인 방의와 함께 가별초를 이끌고 선죽교에 가서 정몽주의 목을 효수한다.[5] 허나 이 일로 아버지의 눈밖에 나서 저택의 출입을 금지 당하자 대체 아버지가 원하는 게 뭐냐며 분개한다. 이후 아버지의 마음을 풀기 위해 다른 형제들과 저택을 찾아오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이젠 부자간의 인연이라도 끊는 것이냐며 성질을 내고 가버린다.

3.4. 아버지와 동생들에 대한 원망에 술독에 빠지다

이성계가 옥새를 받고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차후 형제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자신이 왕자가 된 것이냐고 재차 물으며 이 상황이 꿈 같아서 불안하다고 말하면서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단, 사실인지 확인해주겠다며 자신의 얼굴을 꼬집으려는 이화상을 굳은 얼굴로 제지하는 것은 덤. 하지만 대관식 날 자신들을 궁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이성계의 조치를 보고 자신과 형제들이 궁궐에서 잔치한다고 기웃거렸다가 군졸들한테 쫓겨나는 거렁뱅이같다며 울분을 토한다.

이방원으로부터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었다는 말을 듣고 화풀이를 하는 듯 철퇴로 허수아비의 머리를 내리치며[6] 어차피 우리들은 버림받았으니 계모의 자식들 중 한 명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란 분노를 드러내기만 할 뿐 이성계를 설득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후 이방원의 아들이 죽어서 방원이 그 관을 지게에 지고 매장을 위해 집을 나서는 모습을 형들과 같이 서서 안타깝게 바라본다.

그 후로 형 방의와 술을 마시며 혼자만 가별초를 하사받은 방원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는데, 배 아픈 것보단 모두가 배고픈게 낫다며 훗날의 암시를 한다.

3.5. 무인정사

사병들을 훈련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중에 방의가 몸을 사리라는 충고를 하자 "아버지가 버티고 있는데 변란을 일으킬 리가 있느냐"며 "형제 중에 미친 놈이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냐"고 쏘아붙인다. 그러다 얼마 후, 이방의를 찾아가 대놓고 자기를 세자로 밀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야심을 드러낸다. 방의에게 방원을 견제해달라고 하는 걸로 보아 방원을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보여줬다.

1397년, 사병혁파가 통과되자 사병들을 해산하라는 명령에 불복하고 있다가 조영무가 나서자 기가 꺾이면서 사병들을 해산하고 후에 찾아온 이방의와 함께 푸념했다.

정도전은 이방원뿐만 아니라 한씨 소생 아들들 모두 경계하고 사병혁파로 끝내지않고 이들을 제거하기위해 이성계의 병문안을 미끼로 불을 모두 소등한 깜깜한 밤에 궁궐로 불러들였고 이때 낌새를 눈치챈 이방원이 이방의, 이방간을 데리고 도주하고 조영무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직후 무인정사를 일으킨 이방원의 부탁을 받고 이방의와 함께 이방과를 데리고 도성을 탈출한다.

그날 밤 정도전을 제거하고 정사을 장악한 이방원의 거병에 한몫 끼여들기 위해 방의와 함께 자신의 사병들을 이끌고 우격다짐으로 합류한다. 정작 방원이 정사군의 책임자로서 명령을 내리니까 우릴 아랫사람 취급한다며 시덥지 않아 한다. 그리고 방번이 그냥 유배를 떠나자, 사병들에게 명령해[7] 백주대낮에 한양 한복판에서 방번을 죽이고, 이로 인해 항의하는 이방원과 대립하는데, 사람 죽이는데도 명분이 필요하다는 이방원의 주장에 이방간은 이방원을 권력에 눈이 먼 짐승이라 모독하고 명분 찾는 행위를 조롱한다.

파일:(17) 이방원 VS 이방간.png

그러나 이방원이 정말 자기가 명분같은걸 무시하고 권력을 위해 형제마저 죽이는 짐승이 되길 원하냐며 윽박을 지르자 기세에서 밀린다. 결국 둘이 서로 멱살을 잡기까지 이르나 방원의 분노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탓에 눈가에 서슬 퍼런 칼날이 점점 더 드러나며 방간의 기가 죽기 시작했고, 이를 공포 서린 얼굴로 바라보던 이방의의 필사적인 설득에 방원이 한 발 물러서며 갈등은 잠시 봉합된다.[8][9]

3.6. 2차 왕자의 난, 그리고 몰락

이방과가 정종으로 즉위할 때, 방의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는데, 살아 있는 아버지를 대적하는 일을 과감하게 저지르고 또 성공해버린 방원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이 방원의 바로 윗형이라서 가장 잘 안다면서, 자신이 어린 시절 두들겨패도 피투성이채로 끝까지 지독하게 덤벼들었던 것이 방원이라며 아주 위험한 놈이니 자신이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후 사병을 훈련시키는 데서 습사를 하고 있는 아들 맹종을 보고는 방원이 언젠가 자신을 칠 것이며, 그 전에 자신이 먼저 쳐서 방원을 제거하고 왕좌를 얻으려 한다고 선언하고, 우리가 성공하면 자신은 왕이 되고, 아들인 맹종은 세자가 될 것이라면서 아들에게 따라줄 것을 요구하였고, 아들이 따르겠다고 하자 흡족해한다.

얼마 후, 공신 책봉에 불만을 품고 팽당한 박포를 찾아가 그를 포섭했다. 이후 거사 전날, 왜 왕이 되려는지 묻는 아들 맹종에게 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깐 노린다고 답한다. 만약 자신이 변방의 농부였다면 생각조차 못 했겠지만 자신은 왕자의 위치에 있으며, 누구는 만 명을 죽여도 불가능하지만 자신은 단 한 명만 제거하면 왕이 될 수 있으니 어찌 욕심이 안 나겠냐고 답한다. 그리고 거사일이 되자 맹종을 방원의 집에 보내 상황을 염탐한 뒤 그의 방비가 생각보다 허술하다는 것을 알고 휘하 세력을 모아 마침내 모반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는 이방간의 오산이었다. 방원의 세력은 방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고 방원 역시 형을 쓰러뜨리기 위해 거병을 했다. 거기다 합류하기로 한 형 방의가 끝끝내 합류하지 않는 바람에 그러잖아도 열세였던 방간군은 참패하고 말았고, 이 아무 의미없는 싸움에 민간에도 많은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다.[10] 결국 조영무, 이숙번[11] 등이 이끄는 군사들에 의해 제압당해 항복하고, 자신을 찾아온 방원에게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느냐고 한 소리 듣는다. 백성들까지 죽은 광경에 잠시 당혹스런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자신도 그저 왕이 되고 싶었을 뿐이라며 방원에게 가식 떨지 말고 죽이라고 말하며 체념한다.

이에 방원은 먼저 왕실에 들르고 온 뒤 죽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방원은 용포 차림의 정종에게 손쉽게 제압당하고 그의 일갈로 정신차리게 된다.[12]

3.7. 이후

저택에 연금되어 자기 집이 하루만에 감옥이 되어 버렸다며 자조한다. 아들 맹종이 우리 이제 죽는 것이냐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은근히 드러내자 허세를 떨며 삶에 너무 미련가지지 말라는 말을 남기지만, 맹종이 방으로 들어간 후에는 그 방을 쓸쓸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내비친다.

이후 이방의가 오자 왜 도와주지 않았냐며 따져묻는다.[13] 하지만 방의가 이방원이 두려웠다면서 무릎까지 꿇으며 사과하자 더 따져묻지 못한다.[14] 이후 방간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 방과와 방원의 의지에 따라 박포가 모든 혐의를 다 뒤집어 쓴 뒤 처형되고, 자신과 아들 맹종도 아예 처벌을 안할 순 없었기에 함께 귀양을 가게 되는 선으로 마무리된다.

그나마도 이방원이 노비와 전답을 주며 재산까지 마련해 보내줬기에, 유배보다는 조용한 곳에서 살도록 배려를 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배를 가기 직전 방원과 만나 자신을 살려준 사실에 고마움을 표한다. 이에 이방원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둘째 형인 이방과의 뜻이라며 얼버무리지만. 이방간은 이방원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시한 뒤 좋게 헤어진다.

이렇게해서 이방간의 서사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실존 인물 문서에도 나오지만, 아들과 유배지를 떠돌다가 이방원이 죽기 1년 전인 1421년(세종 3) 유배지였던 홍주목(현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드라마가 태종 즉위 이후에는 이방원 직계 쪽으로 초점이 맞춰진 탓에 언급 자체가 없어진 채 20회에서 퇴장했다.

4. 극중 묘사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독특하게 대도를 등에 매고 다니며 사용하는데,[15] 성격이 거칠어 자주 과격한 말과 행동을 일삼으며, 수틀리면 형인 방과에게도 칼을 들이댈 만큼 몹시 성급하고 다혈질스런 성격이다. 방과뿐만 아니라 방우나 방의에게도 대드는 모습이 자주 나오고, 동생인 방원과 사촌동생이라 볼 수 있는 이화상에게도 시종일관 하대하고 윽박지른다. 가끔씩 철퇴를 쓰는 장면도 나온다.

2차 왕자의 난 전후로 이방원의 부정적인 거울로서의 일면이 드러나는데, 2차 왕자의 난에서 그의 행적은 이방원이 우려하던 최악의 형태나 다름없다. 용상에 눈이 멀어 자신의 가족들을[16] 반란에 끌어들였다가 실패하면서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고[17], 결국 자신은 역적으로 기록되었고 후손들까지 자신의 사후에도 영원히[18] 역적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사실 이방과와 이성계의 반응이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이 둘에게 가장 욕 먹어야할 놈이 바로 이방간이다.

당시 이방과는 이방원에게 아버지와 화해를 종용하며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이방원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고,[19] 이성계는 이성계대로 이방과에게 양위하여 왕이 된 아들 이방과의 위치와 당시 상왕이 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이방원을 견제 중인 상황이었다. 비록 조선의 실권이 이방원 손에 있었지만 용상을 차지하지 못하면 큰 의미는 없었다. 게다가 이방원 역시 이복형제는 그렇다 쳐도 같은 어머니 소생의 친형을 베어버릴 상황도 못되었다. 그래서 이방원도 이방원대로 이숙번 등의 자기 휘하 사람을 이용해서, 이방과 쪽 사람들을 내쫒는 방법으로밖에 견제하질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간의 반란으로 친형제마저 서로 칼을 목에 겨누는 상황이 와버렸고, 친동생마저[20] 이방원에게 처형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 이방과는 무너져버렸다. 결국 가족간의 살육을 막기 위해 이방과는 기존의 선언마저 철회하고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줬고, 이 때문에 이방과를 이용해서 이방원을 견제하려던 이성계의 계획도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아들 하나 막고 있는데 다른 아들이 설쳐댔다.

심지어 이방간이 난을 일으킨 이유마저 자신도 왕이 되고 싶은데, 유력한 후계자가[21] 손아랫 동생인 이방원이라는 사실에 배알이 꼴렸기 때문이다. 이런 치졸하고 어이없는 이유로 왕실을 다시 한번 피바람 속으로 몰아넣었으니, 혈육의 골육상쟁에 진저리를 치던[22] 이방과와 이성계에게 죽을 때까지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특히 이성계에게는 이복 동생인 방번의 죽음까지 포함해서 욕을 먹을 처지인데 이성계는 1차 왕자의 난이 끝나고 이방과를 다음 세자이자 다음 왕으로 올려놓으면서 방번의 귀양을 인정했었다. 이유는 한성에서 목에 칼 겨눠진 상태로 살얼음판 걷는 것보다 지방에서 있는 게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과 이방석이야 세자이고 정적이니까 죽였다고 쳐도 아무 상관없는 이방번까지 죽이기야 하겠냐라는 이유였었다. 즉, 안 죽여도 될 애를 죽이기야 하겠냐는 이유였는데 이방간 이 놈이 자기도 뭐 하나 세우겠다는 이유 붙여서는 안 죽여도 될 이방번을 죽여버렸으니 한씨 소생 자식 중 가장 큰 대못을 박은 꼴이 되었다. 심지어 공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적인 이유로 이복동생을 죽인거니 더 할 말이 없다.

학문에 밝고 정치력도 높은 동생에게 열등감을 느꼈다는 점에서 이방원의 장남이자 자신에게는 조카인 양녕대군과 겹친다. 이방간과 양녕대군 둘 다 버릇없이 행동하다가 몰락하게되는데 그나마 이방간은 이방원에게 자신을 살려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남기고 헤어진 뒤, 평민으로서 조용히 살다갔지만 양녕대군은 자신의 자리를 뺏은 세종에게 진심으로 태평성대를 기원하면서도 부왕인 태종과 동생 세종이 죽은 후, 조카 세조와 함께 계유정난으로 권신이 되는 대조되는 행보를 보였다.[23]

5. 인간 관계

5.1. 이방원

8형제 중 유일하게[24] 과거 급제한 이방원에게 열등감을 느낀 한편, 정몽주 척살과 1차 왕자의 난 등 위기의 순간에 한배를 타게되면서 그에게 은혜를 입은 적도 몇 번 있었다.[25] 언제부턴가 사람 죽이기 껄끄러워한 이방원이 점차 가차없는 괴물로 변한 것이 누구보다 경계하고 본인도 용상에 대한 욕망때문에 최악의 형태로 대립하게되었다. 그러나 이방원이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이방과의 설득으로 이성을 찾은 후 마지막 자비를 베풀자 형으로서 미안함을 드러내고 씁쓸하게 끝났다.[26]

5.2. 이성계

처음엔 같은 무인으로 위의 세 형들 못지않게 처음에 아버지를 매우 존경했다. 그러나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인 이후로 이성계가 한씨 소생을 박대하고 이방석을 세자로 세웠기 때문에 이방원 못지않게 불만을 품었다. 결국 신덕왕후 소생의 이복동생 이방번을 독단으로 죽이면서, 이방원 못지않게 이성계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다.

5.3. 이방의

아버지와 바로 밑 동생과의 사이가 험악한 상황에서 이방간이 유일하게 의지했던 가족. 작중에서 이방의와 세트로 엮이는 일이 많았고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이방의를 찾아가 도움을 받거나 그에게 자신과 함께할 것을 부탁했고 이방의도 마지못해 그의 청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2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을 상대하는 것이 두려워 이방간과 함께하지 못하고 이 둘의 관계도 비극으로 끝났다.

[1] 여담으로, 동시대를 다룬 퓨전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이방원을 맡은 유아인이 이방간을 맡은 강신효보다 나이가 많았다.[2] 뿐만 아니라 <정도전>과 본 작품에서는 이지란 역을 맡은 선동혁도 조순창이 고등학생 때 방영되었던 <용의 눈물>에서 이숙번 역할을 맡았다.[3] 조순창: 정운(징비록)-이방간(태종 이방원) ↔ 이광기: 고니시 유키나가(징비록)-정도전(태종 이방원)[4] 차후 그의 행동에 화가 난 방과를 진정시키기 위해 방의가 말했듯 방우, 방과는 작은 어머니인 강씨와 비슷한 연배고, 방의조차 방원보다 7살이나 많아서 아버지가 방원을 따로 챙겨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반면, 이 쪽은 겨우 3살 차이나는 바로 윗형이어서 그랬던 것인지 그에 대한 콤플렉스가 무척 심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5] 당시 이방원은 충격으로 인해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고, 방의와 자신이 서둘러 그를 효수해 목을 걸어서 한순간에 역적으로 바꿈으로서 가족들은 물론 이성계 일파까지 한번에 다 살려낼 수 있었다. 그러나 본인도 이런 상황을 씁쓸하게 여기는지라 방원이 무리하게 정몽주의 효수 장소에 가자 만류를 했음에도 기어이 간 방원을 안타깝게 여기는 표정을 짓는다.[6] 방간의 성격이 불같은 성격인 만큼 분노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7] 이를 들은 박은이 정안군의 의사와 맞지 않다며 반대를 표하자 이를 형제간의 합의라 우기기도 한다.[8] 방간이 방원에게 내뱉은 독설은 머지 않아 훗날의 자신이 한 짓과 다를 바가 없다.[9] 다만 방간의 독설은 방원한테 반면교사가 된, 아픈 말도 많다. (임금에게 무기를 겨눈 이상) 어차피 역적이란 말은,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반란이며, 이왕 정변을 일으킨 이상 더 나은 정치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방원에게 평생 동안 주게 되었다. 그리고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죽여댄 네놈이 백성의 눈치는 왜 보는 거냐는 말은 방원이 이후에 숙청의 정도를 조절하느라 숙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방간과 방원의 차이점은, 방간은 자신의 말 그대로 짐승이 되는 길을 이행해 패자가 되고 자손이 수백 년간 평민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며, 방원은 그 말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가기틀을 세우고 왕권을 강화시켜 세종이라는 명군을 키워냈다는 것이다.[10] 이 때문에 민심을 달래기 위해 2차 왕자의 난의 주동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11] 참고로 정도전에선 조순창 본인이 이숙번이었다.[12] 이방과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정종은 오랫동안 아버지와 전장을 누빈 무인이기때문에 출중한 무력을 갖춘 반면, 이방원은 고려 시절에 문관으로 지내다 무인정사 이후로 겨우 칼을 잡다보니 경력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13] 이때 아들까지 죽게 만들었다며 분개한다. 무신경한 듯 보였지만 나름대로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요소.[14] 이방간이 이방원을 공격한 근본적 이유도 결국 이방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방의를 탓할 수가 없는 것.[15] 다만 이건 초반 한정으로 2차 왕자의 난 때는 그냥 환도를 쓴다.[16] 특히 아들.[17] 빈말로 이방과가 세자 책봉과 양위를 대가로 이방간의 목숨만을 살려달라며 부탁하지 않거나, 이방원이 형제간의 정을 버렸다면 이방간과 그의 아들인 맹종은 얄짤없이 처형당했을 것이다. 이방원의 죽음으로 끝난 드라마에선 나오지 않운 일이지만 방간과 방원 모두 죽은 후 맹종은 끝내 사약을 받아 죽어 아버지의 헛된 야심 때문에 결국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18] 엄밀히 말해서는 한 250년 정도. 이방간의 후손은 숙종 대에 복권되기 전까지 왕족으로서 당연시되는 병역 면제 혜택도 못 받고, 오히려 조상이 폐서인이라는 이유로 노역까지 나오면서 거진 평민으로 대우받고 있었다.[19] 당시 정안대군이 문무의 실권을 모두 장악한 상황에 정종 마음대로 원자를 책봉해서 왕위를 물려준다는 건 말이 안된다. 그저 드라마로만 이해하는 편이 옳다.[20] 심지어 무리한 세자 책봉으로 분란을 일으켰다지만 가만히 있었는데 이방원의 난으로 강제로 폐위되어 참살당한 이방석과는 달리, 이방간은 스스로 주축이 되고 아들까지 끌어들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기에 공식적인 대역죄인으로 처형당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21] 애초에 1차 왕자의 난, 이방석의 폐위와 참살, 이방과의 세자 책봉 모두 이방원이 관철한 일이니 그가 후계자로 확정된 상황이었다. 조정 대신들부터 궁녀와 내관들도 이방원을 가히 왕세자나 다름없이 대우했고.[22] 이성계는 작중에서 대놓고 혈육의 죽음을 기피한다고 언급됐고, 이방과의 모습을 보면 그 역시 아버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23] 물론 양녕대군은 여전히 대군 신분 자체는 보존받았기에 어느정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회안대군은 유배를 당한대다가 그 가문 역시 사실상 종친으로 대우도 못받았기에 무엇을 할 힘 자체가 없었다.[24] 굳이 따지자면 유일하지는 않다. 다만 요절한데다 그에 따라 쌓은 실적도 없어서 언급조차 매우 적으며 결정적으로 동복 형제들과는 화목했다.[25] 일례로 정몽주 척살 때는 이방원이 집에서 쫓겨난데다 자기 때문에 다른 형들이 아버지인 이성계에게 미움을 산 거 같아서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만큼은 이방간도 이방원에게 날을 세우지 않고 오히려 자기였다면 거기까지는 못 했을거라며 대신 총대를 쥔거나 다름없는 이방원에게 감사와 위로를 했었다. 또, 이방원의 아들이 죽었을 때도 형들과 같이 찾아가 안타까워해줬다.[26] 이방간이 하차한 20화 엔딩다큐에선 라이벌 이지만 사이가 각별한 형제라고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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