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태종 이방원(드라마)/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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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 최영 · 조민수 · 변안열 · 김저 · 정득후 · 곽충보 · 최유경 · 고려 군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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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의 등장인물 중 고려시대에 살았던 인물들을 소개하는 문서.2. 왕실
2.1. 우왕
배우 | |
임지규 扮 |
1회에서 이성계가 요동 정벌을 위해 출정한 와중에도 개경을 비우고 서경의 별궁에서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이성계가 출전하지 않으면 이렇게 벨 것이라며 죄 없는 환관을 살해하는 등[1] 폭군의 면모도 보인다. 이 때 아버지가 환관에게 살해당했던 과거[2]를 언급하는데, 이 사건으로 인한 자신의 두려움을 드러내며 최영에게 늘 그랬듯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지켜달라 당부한다. 이후 이성계의 회군이 시작되었을 때, 요동 정벌군을 이탈한 최유경으로부터 그 소식을 보고받은 뒤 인질로 잡았던 방우, 방과 형제와 이화상 등을 끌고 오라고 하지만 이미 도망친 뒤였기에 최영과 함께 급히 개경으로 환궁하는 것과 동시에 이성계의 다른 식솔들을 잡아들이라 명한다.
2회에서는 결국 왕궁까지 점령당하고 최영이 잡혀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이후 이성계와 조민수가 시키는 대로 둘을 충신으로 인정하고 시중으로 임명한다. 그러나 궁 내에 무기를 들여 환관들을 무장시키고 이성계 일파를 처단하러 나선다. 조민수와 변안열의 집을 먼저 찾았으나 부재 중이라 이성계의 집을 습격[3]하는데, 사실 이성계도 부재 중이었지만 모르고 이성계를 찾아대며, 그 곳을 지키는 조영무의 가별초와 싸우다가 이방원과 조영규의 지원군이 나타나 형세가 불리해지자 도주하지만 결국 포위당하고 만다. 이방원이 나타나 어찌 충신의 집을 공격하냐고 따지자, 분노를 드러내며 너희 일족을 용서하지 않고 멸족시키겠다고 저주를 토해내고 물러간다.[4] 이후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되는데, 이를 담당한 곽충보에게 화풀이를 하지만 그의 충성심을 눈여겨 보고, 유배지인 여주에서 김저와 정득후를 시켜 곽충보와 협력해 이성계를 죽이라 지시한다.
하지만 바로 그 곽충보의 밀고로 인해 3회에서 이성계의 암살은 실패하고, 오히려 자신과 아들 창왕이 폐가입진으로 인해 신돈의 핏줄로 몰리게 된다. 이방과의 발언에 의하면 상왕 자리에서마저 폐위되어 강릉으로 유배갔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4회에서 공양왕의 교지로 참수당해 죽는다. 처형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성계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다가, 칼에 등을 베이고 마지막 확인사살로 등 뒤를 찔리면서 잔혹하게 처형당한다.[5]
이후 4회에서 이방원이 공양왕을 독대하며 "자중하시지 않으면 신우와 신창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라고 협박함으로써 언급이 되고 17회에서 1차 왕자의 난 과정중 이방간이 이방번을 죽인 이후 이에 항의하는 이방원에게 "신우와 신창의 목을 벤 게 네놈이 한 짓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언급된다.
2.2. 창왕
배우 | |
기은유 扮 |
2회에서 왕위에 오르며 등장하는데 나이가 어렸던 관계로 옆에 모친이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 보고 있었다. 결국 3회에서 폐가입진으로 인해 신돈의 핏줄로 몰려 폐위된다. 울먹이며 말을 타고 궁을 떠나다 궁으로 들어오는 공양왕과 스쳐 지나가는 연출은 당시 힘없는 고려 왕실의 비극을 상징하는 명장면이다. 4회에서 공양왕의 명으로 참수당한다. 그간 여말선초를 다룬 사극에서는 어린아이인 것을 감안하여 베는 묘사를 한 적이 없고 사약을 내려서 죽이는걸로 연출되었는데, 본 드라마에선 피는 많이 튀지 않으나 직접적으로 베는 묘사가 등장했다. 어린 아이가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울먹이며 눈을 꼭 감은 채로, 칼에 베여 그를 돌보던 여종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 참혹한 장면을 연출했다.
2.3. 공양왕
배우 | |
박형준 扮 |
고려의 국왕으로 즉위한 이후 황룡포를 입고 정비 안씨와 독대하게 된다. 이때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 오른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정비 안씨에게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왕위에 오른 것이지만, 절대 꼭두각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왕씨로서 태조 대왕에게 부끄럽지 않게 이성계의 손아귀에서 고려를 지키겠다고 한다. 또한 이성계에게 용상을 넘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결국 3회 막바지에 이색과 변안열을 이성계파 대신들이 이성계에게 주자고 주장하던 조정의 두 수장이라 할 수 있는 관직인 판문하부사와 영삼사사를 각각 임명하고, 이에 이성계파 대신들이 반발하자 왕이 관직 하나 임명하는 일에 이성계의 허락이 필요하냐고 역으로 화를 낸다. 뒤이어 이성계에게 왕은 자신이고 이성계는 자신의 신하임을 강조하며, 굴욕을 주는 모습으로 카리스마를 드러낸다.
그러나 4회가 시작하자마자 아버지가 면전에서 굴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분개한 방과와 방원이 군사를 동원하여 왕궁을 돌아다니게 하면서, 겁을 주고 아예 방원과의 독대에서 신우와 신창과 같은 꼴이 될 거라는 경고를 직접적으로 듣는다. 게다가 이미 조정은 정몽주같은 소수를 제외하면 이성계 일파로 채워져있었던 터라, 그들에 의해 자신이 직접 임명한 이색과 변안열이 일제히 탄핵당한다.[8] 결국 방원의 협박에 굴복하여 이색과 변안열의 탄핵을 받아들이고, 폐위되어 유배된 우왕과 창왕까지 참수하게 한다. 이후 이성계가 동북면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좋아하지만, 정비 안씨의 곧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불안에 떤다. 이성계가 복귀한 이후 본인을 지지하는 세력이 부족해 정도전 일파가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준다. 하지만 이내 정몽주가 세력을 모아 돌아오자 이방원에게 더 이상 꼭두각시 노릇을 하지 않겠다며 이방원에게 전한 이후 정몽주의 손을 잡는다. 이후 이성계가 낙마사고를 당하자 정몽주가 정도전 일파를 제거해야 한다고 간청하고, 처음에는 하려는 마음을 먹었지만 이성계가 이방원에 의해 힘겹게나마 개경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9] 주저한다.
그렇게 번뇌하다가 8회에서 정비 안씨의 설득에 마음을 굳히며 정몽주를 부르라고 하지만, 정몽주는 이미 이방원 일파에게 살해당한 후였고 뒤늦게 후회하지만 이미 늦은 상태. 이때 묘사가 처절한데 처음에는 누가 감히 고려의 재상을 백주대낮에 철퇴로 때려죽이냐며 부정하다가,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와 정몽주를 찾으며 수시중[10]의 뜻대로 하라고 대답해줄테니 제발 한번만 더 청해달라고[11] 울부짖는다. 끝내 정몽주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주저앉는다. 뒤이어 온 이방과, 이화, 이제에게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할 수 없이 정도전 일파를 석방시키고 정몽주 일파를 체포하라는 명을 내린다. 9회에서 공양왕이 폐위되어 원주로 유배를 떠났다는 나레이션의 언급과 함께, 고려가 멸망하고 본인은 가족들과 함께 백성들의 통곡을 들으며 개경을 떠난다. '군신 동맹제의'는 생략되었다.
정도전의 공양왕은 끝까지 겁쟁이인 척하며 한 방을 노렸다면, <태종 이방원>에서의 공양왕은 이성계를 두려워하지만 처음에는 이를 애써 감추며 이성계 일파에게 당당히 맞섰다. 하지만 등장만 화려했을 뿐이고 이성계가 동북면을 떠나는 것을 두고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거나 정몽주에게 '그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등 정치적으로 미숙하고 나약한 면을 보여주어 사실상 정도전 이전 매체에서의 공양왕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주로 왕년의 청춘스타나 현대극 전문이라는 이미지였던 배우 박형준이 사극에서 통할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많다.[12] 특히 유튜브의 공양왕 등장 클립에 달린 댓글들을 봐도 박형준의 연기에 대해선 호의적인 반응이 많은 편.
2.4. 정성군
배우 | |
강현욱 扮 |
7회에서 명나라에 가 있었다가 돌아오는 설정으로 첫 등장을 하는데 이 때 마중을 나온, 이성계를 비롯한 신하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이성계에게 "전하께서 오래 사실 것 같으니 만약 그대가 내가 즉위할 때까지도 살아 있다면 지금처럼 잘 보필해 달라"고 말한다.[13] 이후 이성계의 배웅을 받으며 개경으로 돌아간다. 9회에서 부모와 함께 쫓겨나 원주로 가는 장면에서 잠깐 비춰졌다. 짧은 출연에도 애칭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왕돌이(...). 이름이 왕석이라 생긴 애칭이다.
2.5. 정비 안씨
배우 | |
김보미 扮 |
3회에서 김저-정득후 사건을 일으킨 우왕의 행동에 어이없어하며 근비를 질책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우왕에 이어 창왕마저 폐가입진으로 폐위시키라는 교지가 이성계 일파에 의해 내려지고 옥새를 찍기를 강요받자, 소리조차 제대로 못낸 채 오열하면서도 차마 이성계의 강요를 거부하지 못해 교지에 옥새를 찍어 창왕을 폐위시킨다. 5회에선 이성계가 동북면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공양왕에게 들었음에도 "내부 갈등이 아닌 개인의 결단만으로 돌아갔다면 어차피 개경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미 이성계의 대업에 올라탄 사람은 많고, 혼자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비관론을 내놓았고 실제로 이성계는 개경으로 돌아왔다.
이후 이성계가 낙마로 인해 부상을 입어서 정치 활동을 못하게 되자, 그의 수족들을 쳐낼 수 있다는 사실에 공양왕과 함께 기뻐한다. 하지만 이성계가 이방원 등의 도움을 받아 개경으로 돌아오고 이를 들은 공양왕이 두려움에 빠져 이성계 일파를 죽이라는 명을 내리지 못하자, 그에게 무릎까지 꿇고 정몽주의 청을 들어달라고 청하여 결국 공양왕의 마음을 다잡게 만든다. 그러나 이미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참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되자, 그대로 주저앉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며 슬퍼한다. 그 뒤 9회에서 공양왕을 폐위한다는 교서를 내릴 것을 주청하는 신하들에게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며 차라리 날 죽이라고 외치지만[14], 정도전의 "조서를 받을 때까지 피의 살육을 계속하겠습니다. 조정엔 고려를 수호할 신하도 없습니다. 지체할 이유도 없으니 대세에 순응해 목숨을 보전하십시오. 이제 고려는 끝났습니다"라는 협박에 눈물을 흘리며 굴복하고 만다.
이후에는 등장이 없으나, 실제 역사에 비추어보면 그녀는 망국의 왕비 치고는 비교적 유복한 여생을 보내며 장수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개국 이후, 의화궁주(義和宮主)로 강등되지만 매우 후한 예우를 받았으며 태종실록에도 그녀의 음주 기록이[15] 기록되어 있을 만큼 매우 후한 대우를 받았다. 그녀가 사망한 것은 무려 1428년(세종 10년)으로, 이 드라마의 주인공 이방원보다 무려 6년을 더 살았다.[16]
배우 김보미는 동 시기를 다룬 〈용의 눈물〉을 비롯해 〈왕과 비〉, 〈명성황후〉, 〈대왕 세종〉에서 상궁 역을 맡은 바 있다. 〈용의 눈물〉만큼은 아니어도 정도전에서는 어느 정도 연령을 반영한 데 비해 본작의 정비 안씨는 1958년생 배우 김보미가 연기해서 다시금 연령이 어긋나게 되었다.
2.6. 근비 이씨
배우 | |
배유리 扮 |
창왕의 모후. 2회에서 갓 즉위한 창왕을 걱정스럽게 보는 장면으로 첫 등장했으며 3회에서 우왕의 이성계 암살 실패 후 창왕에게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는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 전부이다.
3. 관료
3.1. 정몽주
자세한 내용은 정몽주(태종 이방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고려의 마지막 충신 포은 정몽주 圃隱 鄭夢周 | |
[[정몽주(태종 이방원)|]] | |
배우 | |
최종환 扮 |
3.2. 이색
이색 李穡 | |
배우 | |
남명렬 扮[17] |
2회에서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조민수와 손 잡고 창왕을 옹립한 것이 정도전의 입으로 언급된다. 이후 3회에서 이방우와 정몽주가 같이 있는 자리에서 이성계 가문의 속셈을 알려주며 첫 등장하고, 이후 공양왕에 의해 중용되며 본격적으로 이성계 일파와 대립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4회에서 이방원의 압박을 받고 버티지 못한 공양왕이 그를 포기함으로써 조정에서 끌려나가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후 5회에서 유배지로 온 정몽주에게 이성계를 상대하고 고려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긴 했지만, 정도전 일파에 의해 윤이와 이초 사건에 연루되어 권근과 함께 고문을 받고 청주옥에 갇히게 된다. 이후 많은 비가 내려 관아가 물에 잠겼지만, 커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 생존할 수 있었다.[18] 이후 조정에 복귀해 이성계의 낙마 사고 이후 조준 등 이성계를 따르는 문신들의 탄핵을 주도한다. 정몽주 사후 등장은 없고, 이방과에 의해 유배 가게 된다고 언급된다.
3.3. 김진양
김진양 金震陽 | |
배우 | |
강봉성 扮 |
공양왕 시기 정몽주와 더불어 정도전 일파와 대립하지만 선죽교 사건 이후, 유배형에 처해지고 조선 건국 후에는 개국공신들에 의해 장살을 당하는 인물이다. 5회부터 좌사의로 등장하는데 이성계 일파의 움직임을 보다못해 다른 대신들과 사직을 하려 했다가 그 자리를 찾아온 정몽주와 만나게 되고, 이후 공양왕과 독대하고 출궁하는 이방원과 정몽주의 대화 중 그 자리에 정몽주의 당여 중 한명으로 등장하여 정몽주의 옆에 선 모습을 보여준다. 이방원과의 대화가 끝난 뒤 정몽주에게 전쟁을 할 때 치욕스러운 것은 싸우지도 않고 패하는 것인데 싸울 자리를 찾아, 기쁘다고 말하며 정몽주 일파 중 가장 적극적으로 이성계 일파와 대적하는 면을 보이며 정몽주와 뜻이 맞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정몽주를 따라 청주에 왔다가 이색과 권근 등이 석방된 뒤로는 마음을 다잡은 정몽주의 명령에 따라 정도전에 대한 탄핵 상소를 내며 정도전을 귀양 보낸 것에 이어 나머지 개국파 대신들에 대한 탄핵도 주도한다. 그러나 8회에서 해주에서 돌아온 이성계의 저택으로 가서 진심을 확인하려던 정몽주에게 경고하며 가지 말 것을 조언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참살되면서 체포되어 이방과에 의해 고문을 당하고, 정몽주가 자신을 사주하여 일을 벌였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이미 죽은 정몽주에게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여준다.
3.4. 서균형
서균형 (배우 불명)
4화에서 공양왕의 명을 받고 유배된 우왕의 처형을 집행하기 위해 강릉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우왕이 이성계에게 저주를 퍼붓자, 병사에게 "뭣들 하느냐! 어서 집행하라!"라고 소리치며 그의 처형을 명령한다.
3.5. 정몽주파 대신
정몽주파 대신 (김진국 扮)[19]
5회부터 등장하며, 정도전 일파에 밀려 의견을 펼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정몽주가 마음을 고쳐 이성계 일파 척결에 나서자 함께 동참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진양과 달리 명확한 배역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이 인물이 귀족이라는 점을 보아 모티브가 우현보로 추정된다.
3.6. 고려 문관
고려 문관 (이재욱 扮)[20]1~2화까지 잠시 등장하며 1화에서 이방원을 붙잡고 고려 군관에게 "이자가 이방원이오!"라고 소리치다가 밀려 자빠진다. 2화에서 다시 복귀한 이방원이 가져다 준 인사 서류들을 검토하겠다고 말하면서 퇴청하는 이방원을 바라본다. 극에서 상세한 설명은 안나오지만 귀족이라는 점을 보아 이림[21]으로 추정된다.
4. 무장
4.1. 최영
최영 崔瑩 | |
캐릭터 | |
<colbgcolor=#a60c0c,#360505><colcolor=#fff> 봉호 | <colbgcolor=#fff,#111>철원부원군(鐵原府院君) 무민공(武愍公) (사후 추증) |
신분 | 문하시중 겸 팔도도통사 |
등장회차 | 1~2회 |
배우 | |
송용태[22] |
앞으로, 어찌 되는 것인가, 이성계 장군? 그대가 왕이 되는 것인가?
1회에서 서경에 머물면서 이성계가 출정한 와중에도 서경에서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는 우왕에게 이성계의 출전을 강요하기 위해 자신을 위화도로 보내줄 것을 간청하나, 아버지가 시해당한 트라우마를 벗지 못한 우왕은 거절한다. 이후 이성계가 회군하자 급히 개경으로 귀환해 개경의 인력과 물자를 끌어모아 이성계의 군세에 맞선다.
그러나 결국 2회에서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우왕의 앞에서 끌려간다.[23] 이후 귀양을 가고 얼마 안 있어서 처형되는데, 이 역시 작중 이성계와 방원의 대화 사이에 짤막하게 표현했고[24], '무덤풀 유언'은 생략되었다.
4.2. 조민수
조민수 (박상조 扮)[25] - 고려 말의 무신.이성계와 함께 위화도 회군을 일으켰다가 권력 투쟁에서 패배했다. 작호는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 사극에서 보통 회군 내내 이성계에게 끌려다니는 걸로만 묘사되던 조민수였지만, 이번 드라마에서는 이성계와 대등한 위치임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으며, 개경을 앞두고 동서로 갈라지면서 이성계와 서로 건투를 빌어주고 최영을 제압한 뒤에 이성계에게 이대로 있으면 역적이 되어버리니 물러나자고 제안하는 등으로 주체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하지만 분량 문제 때문인지 이후 행적은 급히 처리됐는데, 이색과 협력해 창왕을 옹립한 것은 정몽주의 언급으로만 넘어가 버리고, 그 뒤 바로 조준에게 탄핵받아 쫓겨나며 극에서 퇴장한다. 마지막으로 이성계에게 "내 뒷조사를 한 것이오? 그대는 얼마나 깨끗하다고 이러시오!"라고 악담을 퍼붓는다.
4.3. 변안열
변안열 (임병기 扮)[26] - 고려 말의 무신.1회부터 등장했으나 우왕의 이성계 저택 습격에 대해 조영규에게 보고 받았을 때 우왕이 자신과 조민수의 저택도 갔었다는 얘기에 조민수와 함께 놀라면서 우왕의 행동을 문제를 삼은 것 이외에는 비중이 없었던 중에 3회 후반부에 공양왕에 의해 영삼사사로 임명되고, 이에 이성계를 왕권으로 압박하는 공양왕에게 반발하는 이지란을 이색과 더불어 비판하면서 이성계 일파와 본격적으로 대립할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바로 다음 회에서 이방원으로 압박을 받은 공양왕이 이색과 그를 포기함으로써 무기력하게 탄핵된다. 이후 5회에선 직접적인 등장은 없지만 정도전 일파에 의해 사형되었다.
4.4. 김저
김저 (최은석 扮) - 최영의 조카.이성계의 암살을 시도하나 실패해 고문을 받던 도중 인두를 들이댄 이방과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배후를 실토한다.
4.5. 정득후
정득후 (조수혁 扮)[27]김저와 함께 이성계를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조영무의 앞에서 칼로 목을 그어 자결한다.
4.6. 곽충보
곽충보 (최영 扮)[28]2회에서 우왕을 유배보내는 담당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우왕에게 "가지 않으면 더 큰 화를 입으시게 됩니다."라고 충고하고, 이를 겁박하는 거냐고 화내는 우왕에게 무릎까지 꿇어가며 충성심을 표시하여 우왕은 순순히 말에 오른다[29]. 이 일로 곽충보를 믿게 된 우왕은 김저와 정득후에게 곽충보와 함께 일을 도모하라고 명한다. 실제로 곽충보는 처음에는 우왕의 명을 받들어 김저와 정득후와 협력해, 둘이 이성계를 암살하면 군사를 이끌고 이성계 일파를 제압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으나, 고민 끝에 작전 시간 직전에야 대궐에서 마주친 이방원에게 사실을 털어놓는다.
기록에는 처음부터 거짓으로 협력하고 이성계에게 밀고한 것으로 나오지만 여기서는 곽충보가 우왕에게 충성한 건 맞으나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정도의 충성심은 아니어서 마음이 바뀐 것으로 나온다. 우왕이 곽충보를 믿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인 듯하다.[30] 여담으로 인물 문서에도 나오지만,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벼슬살이를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는다.
4.7. 최유경
최유경 (이창 扮)제2차 요동정벌 당시 서북면 조전사로서 위화도 회군이 일어나자 이를 우왕과 최영 측에 보고한 인물. 그러나 이러한 행적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건국된 뒤에도 이성계에 의해 관료로 다시 등용된다.[31] 이후 태종 때까지 관료로서 일하게 되는 인물인데, 1회에서 위화도 회군이 결정되자 이방원에게 도망가라는 이성계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가던 가별초 전령을 죽이고 역사대로 서경으로 달려가 우왕에게 회군 소식을 알린 것이 전부이다.
4.8. 고려 군관
고려 군관 (조상기 扮)[32]왕명을 받아서 이방원을 비롯한 이성계의 식솔의 행방을 쫓는 인물. 결국 이방원과 가족들을 찾아내고, 자신을 회유하려는 이방원의 말을 무시하고 그와 싸우다가 칼을 놓치고 쓰러진 이방원에게 칼을 겨눈다. 이후 이방원을 처치하려던 순간에 강씨에게 단검으로 옆구리를 찔리게 되고, 이에 분노하여 강씨의 목을 조르던 사이 다시 일어난 이방원에 의해 칼에 베어 죽임을 당한다.
5. 그 외 인물
5.1. 고려 유생
고려의 유생 (김주영, 문학진 扮)4화에서 첫 등장. 우왕과 창왕이 유배지에서 참수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리 왕씨의 혈통인 것마저 부정당한 채 폐위되었다지만, 엄연히 국왕이었던 자를 잔혹하게 죽인[33] 이성계 일파에게 반감을 가지고 온건파가 되면서 궐 앞에 시위를 벌이며 조선 건국을 반대한다. 정몽주가 자신들이 시위하는 자리에 나타나자 바로 일어나 이제라도 저희들과 뜻을 함께하여 이성계를 몰아내자고 하지만, 정몽주가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고 아무말 없이 그냥 떠나버리자 이대로 이성계의 개가 되실 작정이냐고 그를 원망하며 울부짖는다. 8화에서 정몽주마저 대낮에 이방원과 조영규에게 참살당하자 선죽교에 버려진 그의 시체를 목도하고 스승님이라고 절규하면서 달려가지만, 칼을 든 조영규와 조영무와 가로막히고 그들을 죽일듯이 노려보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방의와 이방간이 병사들을 이끌고 당도하자 그대로 도망친다. 이후 공양왕마저 폐위되어 유배를 떠나는 모습을 보며 통곡한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인 12회에서 이씨 왕실에 대한 반감으로 동료들과 함께 개경을 빠져나오다가, 반대로 과거 시험을 보러가기 위해 들어가는 이숙번을 보고 뭐하러 도성에 들어가는 거냐고 묻는다. 이숙번이 과거를 보러 간다고 대답하자 그 과거에 응시하겠다는 말이냐며 다그치고, 이숙번이 3년만에 돌아온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라는 거냐고 반문하자 3년이 아니라 30년만에 과거라도 거부해야 마땅한 시국이 아니냐고 분노한다. 이내 부끄러운 짓 하지말고 개경 밖으로 멀리 떠나 이 역적들이 물러갈 때까지 산중에서라도 함께 은거하자고 고려에 대한 충성을 강요한다. 그 말에 이숙번은 산골짜기에 처박힐거면 아예 처음부터 사냥을 배울 것이지, 글공부는 뭐하러 했냐며 대놓고 비웃으면서 갈 거면 당신들이나 가라며 자신은 생각 없다고 한다. 결국 이숙번의 멱살을 잡으며 그럼 네놈은 기어코 역적의 신하가 되겠다는 거냐며 제발 정신 차리라고 분노한다. 당연히 이숙번도 가만있지 않고 유생 패거리 전체를 혼자서 제압하며 "당신들이나 좀 정신 차리시오. 당신들처럼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선비들이야. 왕씨면 어떻고 이씨면 어때? 나라만 잘 돌아가고 나만 잘 살면 되지! 아, 괜히 급제할 자신 없으니까. 에으, 이 한심한 것들... 참."라고 일갈한다. 이렇게 이숙번과 시비가 붙다가 나가 떨어진 장면을 끝으로 퇴장하였다.
5.2. 우왕의 내관
우왕의 내관 (김명중 扮)위화도 회군 직전 우왕이 환관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 겁먹는 것으로 첫 등장. 이후 우왕이 유배되었을 때도 끝까지 따라가 그의 집사 노릇을 한다. 하지만 이성계 암살 시도가 실패하면서 창왕과 함께 신돈의 자식으로 몰린 우왕이 유배지에서 끔찍하게 처형당하자 이를 보고 경악하는 모습으로 퇴장.
5.3. 위화도 회군을 목격한 병사
졸던 병사 (김성우 扮)[34]이성계가 위화도를 출발하여 개경으로 향하는 것을 성곽에서 목격한다.
[1] 실제로 우왕은 요동 정벌군이 위화도에 주둔하고 있던 시점에 풍월루에서 뜬금없이 환관 대호군 김길상과 호군 김길봉을 죽이는 등 자기가 그냥 기분나쁘다는 이유로 연달아 살인을 자행했었다.[2] 다만 대사처럼 환관인 최만생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공민왕을 직접적으로 죽인 이들은 홍륜을 비롯한 자제위였다. 당시 최영은 탐라에서 일어났던 목호의 난을 진압하던 중이라 공민왕 시해 당시 개경에 없었다.[3] 조민수와 변안열의 집을 찾았던 것은 사건이 벌어진 이후 조영규에게 보고를 받은 회군파 장수들 입에서 나왔다.[4] 정작 본인과 아들 창왕은 신돈의 사생아로 몰려 고려의 왕통인 것마저 부정당한 채 비참하게 처형당했고,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아예 이성계 일가에 의해 왕씨 제거까지 일어난 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5] 참수형이 상당히 처참하게 연출되었는데 등이 칼에 베여 쓰러져서도 저주를 멈추지 않자, 다시 칼로 찍히고 피거품을 물고 움찔거리며 저주를 퍼붓다가 또 한 번 칼로 찍혀 확인사살 당해 죽는다.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벌인 것에 대한 처참한 결과인 셈.[6] 이성계의 아들 이방번의 아내와 이방우의 둘째 며느리가 공양왕의 동생 귀의군 왕우의 딸이다. 나중에는 공양왕과 귀의군의 아버지 정원부원군 왕균의 딸(공양왕의 누이)이 이방간의 맏이 이맹종과 혼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이 건국된 이후 이방번은 바로 이 공양왕의 조카사위라는 관계 때문에, 조선의 첫 왕비 신덕왕후의 맏이였음에도 후계자 구도에서 제껴졌다. 물론 대놓고 혼인관계를 거론하진 못하고 성격 핑계를 댔다.[7] 그런데 입궁하는 날에 창왕이 출궁을 하게 되는데, 두 행렬이 겹쳐졌을 때 그가 울면서 떠나는 창왕의 모습을 쳐다보는 연출이 들어간다.[8] 이색은 조민수와 결탁하여 신돈의 핏줄인 창왕을 옹립한 혐의, 변안열은 유배된 우왕의 사주로 이성계 암살에 가담한 혐의로 탄핵당한다.[9]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양왕은 이성계가 가마에 앉아 멀쩡하게 도성 백성들 사이를 지나왔다고 보고받았다.[10] 수문하시중의 준말로 정몽주의 생전 마지막 관직.[11] 정몽주는 몇번이나 공양왕의 처소 앞에서 무릎 꿇고 개국파 관료들을 참형에 처할 것을 청했지만 자신이 용기가 없어 그러지 못했음을 후회했다.[12] 특히 직전작인 아모르 파티 - 사랑하라 지금에서 맡은 배역이 찌질한 불륜남이라서 더욱 이런 변신이 긍정적으로 와닿았을 것이다.[13] 이를 옆에서 지켜 본 이지란과 이화가 수군거리며 불평하는 내용에 따르면 왕위 자리를 넘보지 말라는 뜻으로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작품 외적으로도 다큐멘터리 3일에서 왕석의 배우인 강현욱이 세자가 이성계에게 모욕을 주는 장면이라고 언급되어 이러한 의도로 말했을 가능성이 100%이다.[14] 이는 용의 눈물(7회)에도 거의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아마 작가가 이 대사를 조금 다르게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15] 이명덕(李明德)에게 하교하기를, “의화궁주(義和宮主)가 늙고 병이 있어서 약주(藥酒)를 떠나지 않는다. 이제부터 묵은 술을 쓰지 말고 새 술을 바치도록 하라.”하였다. 궁주(宮主)는 전조(前朝) 현릉(玄陵)의 정비(定妃) 안씨(安氏)였다. - 『조선왕조실록』「태종실록」36권 18년 8월 6일 7번째 기사. 날마다 술 1병씩을 의화궁주(義和宮主) 안씨(安氏)에게 내려 주었으니, 곧 전조(前朝)의 공민왕의 정비(定妃)다. - 『조선왕조실록』「태종실록」29권 15년 5월 25일 4번째 기사.[16] 공민왕의 비로 간택되었을 때의 연령을 15~20세 정도로 추정하면 사망 당시의 나이는 77~82세이다.[17] 각본을 맡은 이정우의 전작인 〈조선 총잡이〉에서 개화파의 거두인 현암을 연기했다.[18] 청주 관아 쪽에서 역적으로 몰리고 있는 이들인만큼 풀어주지 말까 고민도 했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냥 풀어준 듯하다.[19] 〈징비록〉에서는 의병장 심대승 역을 맡았고 〈순금의 땅〉에서는 강진만 역을 맡았다. 이원발 배우의 유튜브 영상을 통해 출연 사실이 밝혀졌다.[20] <정도전>에서도 정몽주가 선죽교 가기 전 따르는 하인역으로 출연 했었다.사실 사랑과 전쟁 전문 배우로 더 인지도 있다 한때 TV유치원 하나둘셋에서 깜빡이형으로 등장했었다[21] 참고로 근비 이씨의 아버지로 우왕의 장인이자 창왕의 외할아버지다.[22] 〈정도전〉에서는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참여했던 배극렴 역을 맡았는데, 이번엔 이성계와 대치하는 역할을 맡았다. 여기에 〈태조 왕건〉과 연결한다면 궁예를 축출한 고려의 개국공신 홍유가 이번엔 궁예에 맞서 고려를 지키다 쓰러지는 배우 개그가 성립한다.[23] 〈정도전〉에서는 유사부자 수준으로 묘사되어 마지막엔 이성계가 맞대결로 승부하고 나중엔 옥까지 찾아와 작별 인사를 할 만큼 각별한 사이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여기선 다수의 병사들에게 대치하다가 한쪽 눈이 안 보일 정도로 부었을 만큼 처참하게 당하고, 최영과 각별한 사이였다는 것도 이성계의 회상 한 줄로 넘어간다.[24] 정확히는 이성계와 이방원의 대화에서 처형 당하는 장면이 지나가듯이 나왔다.[25] 5번째 KBS 대하드라마 출연이자, 이 작품으로 〈대왕 세종〉 이후 13년 만에 연기자로 복귀했다. 태조 역의 김영철과는 〈태조 왕건〉에서 궁예와 내군장군 은부역으로 주종 관계 였는데 이번에는 최후엔 정적이 되었으니 이것도 나름 배우개그.[26] 한 때 임병기가 조민수 역을 맡았다고 잘못 알려졌으나 이원발 배우가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변안열 역을 맡았다고 밝혔다. 〈징비록〉에서는 김명원을 연기했으며, 이 작품이 무려 18번째 KBS 대하드라마 출연이다. 〈태조 왕건〉에서는 신덕, 〈야인시대〉에서는 박헌영으로 나왔는데 둘 다 본작에서 이성계를 연기한 김영철과는 적대관계로 나왔다.[27] 〈안시성〉에서는 파소부관 역을 맡았다.[28] 〈정도전〉에서는 황거정 역이었다.[29] 이전 장면에서 공요군을 직접 지휘하겠다는 충신 최영의 말을 따르지 않아 이렇게 됐다며 후회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 일로 인해 심경의 변화가 생긴 듯하다.[30] 〈용의 눈물〉은 가장 오래전 작품임에도 가장 파격적인 각색을 해서 우왕이 정말 순수한 선물로 날 없는 칼을 선물한 것을 방원이 곽충보를 협박해서 시퍼런 환도를 주고 우왕이 암살을 사주했다며 고변하게끔 시킨다. 그 다음엔 정득후에게 사람을 보내 사냥을 갈 거니까 환도와 활을 가지고 오라 전한 다음 환도를 가진 정득후가 도착하자 이것이 암살모의 증거라며 뭔 말을 하기도 전에 죽여버린다. 뒤이어 김저를 체포해 옥에서 교살한 다음 증언을 꾸며서 숙청을 벌인다. 〈정도전〉은 기록과 별 차이 없이, 이성계 제거를 명받은 김저와 정득후가 동조할 사람을 찾다 곽충보를 찾아가고, 곽충보가 고변하는 걸로 정리했는데 곽충보의 등장 자체가 그 한 장면 뿐이라 중요한 사건이라 언급은 하고 넘어갔다에 가깝다.[31] 위화도 회군부터 김저 사건, 윤이이초지옥을 거치면 집권에 위험이 될 만한 사람들(최영, 변안열, 정지 등)을 다 처리한 이성계는 나머지는 포용하려 애썼다. 옛 왕조에 충성을 지켜 초야에 묻히든, 왕조 교체를 인정하고 출사하든 선택할 기회를 줬다. 이색, 우현보, 설장수 등 온건파 56인을 바다에 던져서(擠之於海) 제거하자는 공신들의 의견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왕씨 제거 때도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며 대상자를 나름대로 줄여줬다.[32] 〈야인시대〉에서 상하이 조 역으로 당시 김두한 역을 맡았던 김영철과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33] 사실 우왕과 창왕의 처형을 명한 건 공양왕이고 오히려 이성계는 정몽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미 폐서인이 된 사람들이 무슨 위협이 되냐면서 끝까지 처형을 멈추려고 했다.[34]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졸던 병사로 출연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