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4 15:30:20

근비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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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670000> 우왕 비 공양왕 비
근비 이씨
1
순비 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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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위된 왕비
근비
시호 <colbgcolor=#ffffff,#191919>없음[1]
존호 근비(勤妃)
본관 고성 이씨(固城 李氏)[2]
왕자 왕창(王昌)
생몰연도 ? ~ ?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고려 제32대 군주였던 우왕의 제1비. 본관은 고성.

2. 생애

이림남양 홍씨 홍승연(洪承演)의 딸 사이의 2남 3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우왕의 왕비가 된 것은 이인임의 입김이 들어간 결과였는데, 당시 고려의 세도가였던 이인임은 자신의 고종사촌 이림의 딸이 되는 근비를 우왕의 왕비로 입궁시켜 자신의 지위를 더욱 단단히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인임의 의도대로 궁궐에 입궐한 그녀는 우왕의 아들인 왕창을 1380년 출산했고 이인임의 세도는 더 강화되었는데 이인임이 몰락한 후 그녀의 입지에 대해서는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1388년 위화도 회군이 일어나 남편 우왕이 이성계 일파에게 폐위된 후 창왕이 옹립되었으며 그 모후인 근비는 왕대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불과 1년 뒤 창왕마저 폐위되면서 근비의 아버지 이림은 충주(忠州)로 귀양을 갔다가 그 곳에서 병사했고 우왕과 창왕은 모두 처형되었다.

그 후 그녀의 삶에 대해서는 정사에 적혀진 것이 없으나 조선 전기의 문신 이륙(李陸)이 쓴 야사 <청파극담>에 의하면 근비는 우왕과 창왕이 사사된 뒤에도 개경에서 살았다고 한다. 집에는 살 한 폭이 부러진 병풍이 하나 있었는데 시비가 그걸 고치려 하면 "선왕(우왕)이 친히 부러뜨린 것이니 고쳐서는 안 된다"고 반대해서 부러진 병풍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우왕의 기일이 되면 제사를 지냈고 영비 최씨와 함께 정절을 기려 수신전을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의경세자조선 예종의 외외증외고외고조이모할머니[3]이다. 즉 창왕예종미토콘드리아는 동일하다.

3. 대중매체에서

파일:attachment/정도전(드라마)/등장인물/고려 지배층/정도전_근비.png
  • 2014년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배우 서이안[4]이 연기했다. 대체로 이인임의 인척이었기 때문에 이인임의 의도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인임에게 "우왕이 정비 안씨의 처소를 너무 자주 들락거리는거 같다"고 말하는데 이미 무슨 일이 있는지 직감한 모양이다. 심지어 이인임과 함께 정비의 처소를 찾았을 때도 우왕이 뒤늦게 찾아와 술판을 벌이려고 해 결국 눈물 크리. 견디다 못한 정비가 "비구니가 되겠다"며 떠나려 하자 아직 정신 못차린 우왕은 "대체 어머니가 왜 떠나려 하신답니까"라고 이인임에게 묻는데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그녀는 설움을 참지 못하고 빠져나온다. 위화도 회군 이후 아들인 창왕을 살리기 위해 우왕이 폐위되자 창왕을 돌보며 이성계의 동정을 얻는 방식을 포함해 이런저런 일들을 꾸미며 영광을 되찾으려 한다. 하지만 이성계에 의해 고려 왕조가 절단날 것을 두려워한 정몽주가 폐가입진의 논리를 내세워 창왕을 버리자 결국 아들 창왕과 함께 폐위된다.

파일:태종 이방원 근비이씨.jpg
  • 2021년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는 배우 배유리가 연기했다. 2회에서 갓 즉위한 창왕을 걱정스럽게 보는 장면으로 첫 등장했으며 3회에서 우왕의 이성계 암살 실패 후 창왕에게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는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 전부이다.


[1] 남편 우왕이 신돈의 핏줄로 반역열전에 수록되어 그녀 역시 시호가 없다.[2] 도촌공파. 도촌공(桃村公) 이교(李嶠)의 손녀이다.[3] 외할머니의 외외이모할머니[4] 배우의 발성으로 호불호가 갈렸는데 짜랑짜랑한 목소리 때문에 몰입이 안 되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되려 귀엽다고 평가한 사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