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31 13:20:41

의도는 좋았다

1. 설명2. 철학적 관점에서3. 예시4. 예외5. 관련 문서

1. 설명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1]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 유럽 속담[2]
지옥은 선의로 가득 차있거나 욕망으로 가득 차있다.
- 프랑스 신학자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에서 기원
the attempt to make heaven on earth invariably produces hell
- 〈열린사회와 그 적들〉 2권[3][4]
Some of the worst things imaginable have been done with the best intentions.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것들 중 일부는 좋은 의도에서 생겨나지.
- 앨런 그랜트[5]
All bad precedents begin as justifiable measures.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고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클리셰의 원형 중 하나로 주로 경제, 복지, 사회정책에서 쓰이며 그 외 창작물에서도 나온다.

멸망에 처한 세계인간들을 구해내거나 혹은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어떠한 장치를 만들거나 시스템, 계획 등이 나와 있지만 어떠한 이유로 의도와는 다르게 나아가 안 그래도 안 좋았던 세계를 더 막장으로 치닫게 하거나 자신들의 계획에 이용하는 등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고의가 아니라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현실에서는 주로 높으신 분들의 안일한 탁상행정과 판단, 당연히 그렇게 논리가 이루어지겠다고 생각하며 'A를 하면 어떻게 되니까 당연히 B가 되겠지'라는 생각이 대부분이거나 이론적으로 볼 때 더없이 완벽할 것 같은 생각을 철저한 준비도 없이 이론만 믿고 바로 시작해버릴 때 쉽게 일어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너무나도 크기 때문. 그 외에는 해외에서 먼저 도입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을 자국의 실정에 맞게 현지화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들여오다가 실효는 별로 거두지 못하고 부작용만 커져서 오히려 없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앞의 두 경우 모두 의도는 좋았으나 과정이 안 좋은 경우에 해당하며, 사전적 의미의 설레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와 1:1 대응은 아니지만 약간 비슷한 속담으로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도 있다.

이 경우에는 이걸 계획한 사람이 을 먹어 피해를 보기도 한다. 물론 동정적으로 바라봐주는 시선들도 있긴 하다. 좋은 의도로 한건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고 비아냥거리기만 하는것은 지나친 결과지상주의라는 비판도 있고, 또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 결국 도태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계획을 실행한 결과, 해악이 너무나도 안 좋아 그 정도가 심해지게 되고, 사전에 그러한 결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었는데 듣지 않아서 나온 결과라면 변호의 여지도 없다. 그리고, 출처 미상의 글처럼 본인 뇌 속에 선의로 느껴졌으나 타인에게는 최악의 악의로 다가올 수 있다. 항상 의도가 좋다고 생각하기 전에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런 짓을 잘 하는 사람들이 주로 탁상에서 공부만 오래한 사람들인데,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까 인간사 돌아가는 것에 대해 너무 순진하게만 파악하기 때문이다. 공부 및 이론무쌍인 인간들의 특징이 의욕만 넘쳐서 일을 벌여놓는 습성이 강하고, 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의 특징은 반대로 어떤 일을 할때 조심스럽고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거의 대부분의 이 상황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 부재와 자신의 방식이 옳다는 맹목적인 확신, 그냥 비슷하게만 처리하면 된다는 안일함, 똑같은 행동이 같은 결과를 내지 않는 이유인 상황 변화에 대한 이해 부족, 내 생각대로 하면 된다는 강제적인 처리 방식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진짜 도움을 주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 도움을 줄 때 어느정도 동의를 얻고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누군가를 돕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꽤나 있는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을 중요시하는게 아니라 내가 남을 돕고 있다는 자기 만족감이 우선인 전후가 뒤바뀐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고 남이 거부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직접 악의를 뿌리는 사람보다 알아채기 힘들게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이 열심히 하면 할 수록 주변 사람들은 에너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특히 부모님들 중에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자원봉사자에게서 이런 패턴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항상 계획에 어떤 불순한 의도가 들어가 있지 않은지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토론을 해야 하고, 폭넓은 시각으로 일을 검토해야 한다. 대부분 이렇게 의도는 좋았다라고 시행한 일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결과가 적지 않으며, 또한 그 결과물 또한 어마어마한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며, 이후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백 번 말해봐야 입 아프지만, 현실이 만화나 영화가 아닌 이상 예방보다 더 좋은 해결책은 없는 법이다. 다만 사람은 전지전능하지 않기에 계획 당시의 지성으론 생각할 수가 없는 부분[6]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나쁜 결과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중과부적으로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 문제다.

아래 두 문서는 의도가 좋았으나 결과가 시궁창이 된 여러 사례들을 정리했다.

2. 철학적 관점에서

모든 기예(技藝, techne)와 탐구(methodos), 또 마찬가지로 모든 행위와 선택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좋음을 모든 것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옳게 규정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1.1-
“선(善, 좋음)의[7] 근거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가욕구적 이유이며 악은 선에 반대 대립되기 때문에 어떤 악이 악인 한 자연적 욕구에 의해서도 동물적 욕구에 의해서도 의지인 지성적 욕구에 의해서도 욕구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악은 우유(偶有)적으로 욕구되는데 그것은 그런 악이 어떤 선을 수반하는 한에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어떤 욕구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 자연적 능동자가 박탈(결여)이나 부패(파괴)를 지향하지 않고 형상(形相, 이데아를 말함)을 지향한다. 이런 형상에는 다른 형상의 박탈이 결부된다. 그것은 또한 어떤 것의 출산을 지향하는데 이런 출산은 다른 것의 파멸인 것이다. 사자가 사슴을 죽이는 것도 음식을 지향하는 것인데 그 음식에 동물의 살해가 결부된다. 마찬가지로 간음자가 지향하는 것은 쾌락인데 그 쾌락에는 죄과(罪科)의 추악함이 결부된다.
어떤 선에 결부되는 악은 다른 선의 박탈이다. 그러므로 악이 그것에 결부된 좋음(善)이 그 악에 의해 박탈되는 선 이상으로 욕구되는 것이 아니라면 악은 비록 우유적일지라도 요구될 수 없을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1.19.9-
좋은 의도였다면 나쁜 결과를 가져왔어도 용서할 수 있지만, 좋은 목적을 가지고 나쁜 수단을 써서는 안된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중결과의 원리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낸다.
-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추상적인 선을 실현하려고 하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라.
칼 포퍼, 추측과 논박

철학 사상마다 다를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애초에 사람은 '나쁜 의도로' 무언가를 행한다는게 불가능한데, 이는 "선(善, 좋음)은 모든 것이 욕구하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에 기반해있다. 언뜻 보면 모든 이가 선을 원한다는 말은 뜬금없어 보일 수 있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는 간음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간음자가 원하는 것은 '쾌락'이며 쾌락은 그 자체로는 분명히 '좋은 것'이라는 점을 그는 지적한다. 간음을 저지르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쾌락'이지 '죄과의 추악함'은 아닐 것이니까. 물론 '가정 파괴'나 '사회적 평판의 추락' 등도 아닐 것이다.

윤리학적으로 잘잘못을 살펴보자면 대표적으로 공리주의의무론, 덕 윤리학의 태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공리주의는 결과론이기에 결과론적으로 재앙을 불러왔으니 틀렸다는 입장이지만, 덕 윤리라면 그 사람은 선하니 비난할 수 없다는 입장일 것이고, 의무론이라면 결과를 떠나 그 행위 자체가 옳은 일인지를 따질 텐데, 사실 의무론도 일단 좋은 의도로 일을 하는게 중요하다고 여기고, 방법이 다른 상황에서 잘못된 결과를 이끄는게 아니라면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3. 예시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현실의 사례에 대한 내용은 의도는 좋았다/현실예시 문서를, 창작물의 사례에 대한 내용은 의도는 좋았다/창작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4. 예외

정반대로 크게 의도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무지막지하게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세한 건 결과는 좋았다 문서로.

의도는 좋았다 예시들 중에서 시간이 흘러 다시 한 번 재평가를 받기도 한다.

5. 관련 문서



[1] 이 격언은 사람에 따라 용법과 해석이 조금씩 다른데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 하나는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 오히려 지옥처럼 끔찍한 결과를 불러온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리 좋은 의향과 계획이 있어도 그걸 막상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라는 뜻이다. 본 문서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쓰였다.[2] 본격 천사악마와 적그리스도가 지구멸망 막는 소설 〈멋진 징조들〉에서는 이건 거짓말이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얼어죽은 방문 외판원들로 포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3] 1권의 9장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Even with the best intentions of making heaven on earth it only succeeds in making it a hell—that hell which man alone prepares for his fellow-men 국내판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최선의 의도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단지 하나의 지옥, 인간만이 그의 동포를 위해 준비하는 그런 지옥을 만들 뿐이다.[4] 이것과 비슷한 의미로 Those who promise us paradise on earth never produced anything but a hell라고 했다고 한다. 번역하자면 지상낙원을 약속한 자들은 지옥만을 만들어냈다. 존 위노클이 쓴 In Passing: Condolences and Complaints on Death, Dying, and Related Disappointments의 144쪽에 나온다.[5] 조수인 빌리가 벨로시랩터의 알을 훔친 걸 들키고 나서 '최악의 결정이지만 좋은 의도(연구비를 충당하려고)에서였어요' 라고 변명하자 던진 말이다. 그랜트 박사는 이 말을 하면서 이 공원을 만든 사람들이나 너나 별 다를 바가 없다고 쏘아붙인다. 즉 쥬라기 공원 자체가 '좋은 의도에서 생겨난 최악의 것들' 중 하나라는 것. 실제로 쥬라기 공원을 만든 존 해먼드 (영화판)은 아이처럼 순수한 이상을 가진 인격자이지만, 이 공원을 둘러싼 사람들의 욕심과 야망으로 여러 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를 만들어낸 꼴이 됐다.[6] 예컨대 선대에는 딱히 문제될 것이 없었는데 후대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7] 여기서 말하는 善은 '좋음'이라는 의미로 파악하는게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