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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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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결과주의
2.1.1. 상황주의2.1.2. 행위 공리주의 vs. 규칙 공리주의2.1.3. 행위와 무위 구분의 무용
2.2. 쾌락주의
2.2.1. 양적 공리주의 vs. 질적 공리주의2.2.2. 비-쾌락주의적 공리주의
2.3. 도덕적 지위2.4. 개인과 집단
2.4.1. 평등한 분배
2.5. 사상적 의의
3. 비판론
3.1. 공리주의는 너무 느슨하다3.2. 공리주의는 너무 가혹하다3.3. 공리 괴물
3.3.1. 반론
3.4. '행복의 총합'이 존재할 수 있는가3.5. 고급 입맛3.6. 대체 무슨 결과?
3.6.1. 반론
4. 옹호론5. 더 읽어볼 만한 글6. 대중적 인식7. 창작물에서의 공리주의
7.1. 사례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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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1]
최대 행복의 원리
- 제러미 벤담
/ Utilitarianism

고전적인 규범 윤리 이론 중 하나. 대표적인 사상가로 제러미 벤담과 제임스 밀, 그리고 그의 아들인 존 스튜어트 밀 등이 있으며 경험론이 득세했던 영국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이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명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공리주의자에게는 최대 다수가 최대 행복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 ''하고 '정의'로운 행동이라는 뜻이다. 다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은 "다수"와 "행복"이라는 두 가지 변수를 설정하고 있어서, 두 가치를 조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공리주의는 "행복"이라는 한 가지 척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따라서 "최대 행복의 원리"가 더 정확한 (또는 오해의 소지가 적은) 표현이다.[2]

공리주의에서의 공리(利)는 공공의 이익을 뜻하는 공리(利)와 의미가 전혀 다르다. 공리주의의 공리는 곧 효용(utility)을 의미한다.

2. 상세

2.1. 결과주의

공리주의는 결과주의의 한 종류이다. 결과주의란 "가장 좋은 결과를 불러올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윤리이론인데[3], 이때 말하는 "가장 좋은 결과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답한다면 공리주의이다.[4] "가장 좋은 결과"의 다른 대답으로는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의무론과 대비되는 이론이다. 결과주의는 가장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 예상되는 행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의무론에서는 내 행위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해야 하는 (또는 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어린 히틀러
단 한 번 시간 여행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행선지는 1900년 오스트리아린츠다. 요컨대 어린 아돌프 히틀러를 죽일 기회가 주어졌다. 시간 여행 사정상 '아돌프를 올바르게 키워서 독재자가 되는 것을 방지한다', '오스트리아의 정치경제 상황을 개선시킨다' 같은 선택지는 불가능하다. 어린 아돌프는 아직 그 어떤 범죄도 저지른 적이 없지만, 이대로 제노사이드를 벌일 것은 분명하다고 가정하라. (더불어 히틀러를 죽여도 다른 독재자가 필연적으로 출연한다든가, 나비효과로 더 끔찍한 재난이 벌어진다든가 하는 것은 없다고 가정하라.) 곧 어린 아돌프 1명을 죽이면 수 백만의 사람을 살릴 수 있다.
현 상황에서 어린 아돌프를 죽여야 할까? 죽이는 것이 옳은가? 공리주의자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이며, 1명의 행복보단 100만 명의 행복이 더 가치있기 때문이다. 반면 의무론자는 (다른 가정이 없다는 하에서) 무고한 소년을 죽이는 것은 그르다는 이유에서 반대할 것이다.

2.1.1. 상황주의

상황주의란 정해진 원칙 없이 그때그때의 판단을 따른다는 것이다. 공리주의가 지키는 원칙은 단 한 개 뿐이다. 행복을 극대화하는 행동을 하라. 이 원칙 외에는 어떤 원칙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건 없다. 살인 금지, 약속 지키기, 이웃 돕기 등의 원칙은 근본 원칙으로부터 파생된 원칙일 뿐이고, 상황에 따라 폐기가 가능하다. 같은 행동이어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나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1.2. 행위 공리주의 vs. 규칙 공리주의

고전적 공리주의가 '어떤 행위가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를 옳고 그름의 척도로 삼는 행위(act) 공리주의인 반면, '어떤 행위 규칙이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주는가'를 옳고 그름의 척도로 삼는 규칙(rule) 공리주의도 있다.

규칙 공리주의는 의무론과 곧잘 비교된다. 가령 의무론자가 자연권 등에 기반한 정언적 규칙 준수를 주장한다면, 규칙 공리주의자는 자연권 같은 것은 허상이며 대부분의 의무론 역시 규칙을 통해 행복한 결과를 추구하는 규칙 공리주의로 해석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규칙 공리주의에 대한 주요 비판점으로는 비일관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다는 점, 고전 공리주의나 의무론과 실질적으로 다를 게 없거나 오히려 효용 면에서 뒤떨어질 수 있고 군말(끝없는 규칙 수정)만 붙는 형식이 될 수 있다는 점, 규칙 수용 면에서 친숙한 쪽으로 편향되기 쉽다는 점 등이 있다.

2.1.3. 행위와 무위 구분의 무용

공리주의자는 "행동을 하는 것"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사이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부모가 아기를 집에 두고 밖으로 나간 후 일주일 뒤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기가 죽어있었다고 하자. 이 경우 아기에게 물리력을 행사해서 죽인 건 아니라고 하더라도, 죽음의 원인은 부모가 행위를 하지 않은 것(아기를 돌보지 않은 것), 부작위에 있다. 공리주의자는 이 경우 "죽이는 것"과 "죽도록 방치한 것"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다른 예시로는 트롤리 딜레마를 꼽을 수 있다. 공리주의자의 입장에서는 레버를 당기나(행위) 당기지 않으나(무위) 한 쪽을 살리고 다른 쪽을 죽인다는 점에서 같기 때문에 한 사람을 살리겠다고 다수를 죽이느니 다수를 살리고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을 택하게 된다.

2.2. 쾌락주의

고전적 공리주의는 쾌락주의의 일종이기도 하다. 이는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5]
  • 쾌락주의: 행위의 결과의 가치는 온전히 그 행위가 불러오는 쾌락(/행복)과 고통(/불행)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공리주의는 쾌락주의의 실현을 위한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쾌락주의(Hedonism)는 행복(happiness)이 곧 "좋은 것"(good)으로 규정하며, 따라서 "행복의 최대화 = 좋음의 최대화 = 도덕의 실현"라는 간단한 이치 하에 나온 것이 공리주의다. 공리주의는 행복을 절대적 가치로 두기 때문에, 공리주의 하에서는 행복의 희생은 존재할 수 없다. 이는 공리주의가 쾌락주의의 확장인 만큼, 쾌락주의 논리 그대로, 행복을 좋은 것(good)으로 두는 한, 행복을 훼손 하는 모든 것은 좋지 않은 것(bad)이기 때문이다. 즉 의 문제는 행복과 불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행복(쾌락)의 최대화보다는 불행(고통)의 최소화를 주장하는 소극적 공리주의(Negative Utilitarianism)도 포함된다. 소극적 공리주의는 쾌락과 고통의 인식론적 도덕 비대칭성을 해결하려는 수정 공리주의다. 독일의 법철학자 아르투어 카우프만 등도 소극적 공리주의를 법의 지도원리로 긍정했다.

소극적 공리주의에 대한 주요 비판점으로는 소극적 공리주의를 강경하게 적용하면 자살이나 학살, 세계멸망을 옹호하고[6] 본질적으로 잘못된 세상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 온건하게 수정하다 보면 기존 공리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고 실천이 모호해진다는 점 등이 있다.

2.2.1. 양적 공리주의 vs. 질적 공리주의

제레미 벤담이 제안한 최초의 공리주의에 따르면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은 '쾌락의 양'이 전부다. 이런 입장을 "양적 공리주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쾌락도 질이 높은 쾌락과 질이 낮은 쾌락으로 나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말초적인 육체적 쾌락에 비하여 셰익스피어 비극을 읽으면서 얻는 쾌락은 질이 높은 쾌락이라는 것. 이처럼 공리주의는 단순한 쾌락의 양이 아니라 질 또한 고려해야한다는 입장을 "질적 공리주의"라고 부른다.

2.2.2. 비-쾌락주의적 공리주의

쾌락주의를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 비고전적 공리주의도 있다. 이를테면 피터 싱어가 한때 받아들였던 "선호 공리주의"에 따르면 쾌락은 행복의 전부가 아니며, 설령 쾌락이 어느 정도 희생된다 한들 '자신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키는 것이야말로 '행복'에 대한 적합한 정의에 해당한다. 따라서 비고전적 공리주의가 옳다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쾌락의 극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선호 공리주의에 대한 주요 비판점으로는 효용을 크게 저해하는 비합리적이거나 반사회적인 선호에 대한 보정이 애매모호하다는 점이 있다.

2.3. 도덕적 지위

윤리학의 핵심적 문제 중 하나는 "우리는 어떤 대상에게 도덕적 책임을 지는가?"이다. 이를테면 땅바닥의 돌멩이에게 도덕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은 지극히 희박할 것이다. 이 문제를 "도덕적 지위" 문제라고 부른다. 요컨대 돌멩이는 도덕적 지위가 없는 것이다.

공리주의를 받아들일 경우, 곧 "쾌락 및 불행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도덕적 지위의 요건의 전부라는 점이 따라나온다. 그런데 쾌락이나 고통은 , 고양이, 인간을 제외한 수많은 동물들 또한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7] 그렇다면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 또한 충분히 도덕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제러미 벤담 같은 공리주의의 주창자부터가 염두에 두었던 귀결이며, 곧 동물권을 옹호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현대 공리주의자인 피터 싱어동물권, 자선 기부 같은 여러 현실적 주제에 대해서 논쟁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2.4. 개인과 집단

공리주의에서 옳다고 여기는 것은 개인 행복 총합의 최대화다. 그러므로 '개인의 집단' 정도의 의미를 넘어서는 '공공'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공의 행복'은 '∑개인의 행복'과 같은 뜻이며, "모든 개인의 행복(이익)의 총합"을 넘어서는 공공의 행복이란 없다. 따라서 집단이 그 구성원들의 행복의 총합과는 다른 어떠한 별개의 가치를 가질 수는 없다. 한 행동으로 초래될 개인의 불행이 그로 인해 얻어지는 집단의 행복보다 크다면, 이익을 얻는 쪽이 한 가족이건 도시이건 국가이건 간에 상관없이 그 행동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집단의 행복은 개인들의 행복의 합이다'라는 정의가 전제되어 있으며, 이 정의는 '집단은 개인의 합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을 함축한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공리주의는 개인주의를 전제로 한다고 볼 수도 있으며, '개인이 집단에 속해있다.'라는 집단주의를 전제로 하는 전체주의와는 상반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 곧 어떤 의미에서 공리주의는 절대 '개인의 행복보다 공공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사상이 아니다.[8]

단 고전적 공리주의는 "몇몇의 개인"을 희생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수의 개인"에게 득이 되는 선택지가 있다면 그런 선택지가 도덕적으로 올바르다고 본다. "전체주의"나 "개인주의"의 정의 방식에 따라 이는 어떤 의미에선 전체주의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이해할 여지도 있다.

2.4.1. 평등한 분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에 의하면 한 개인의 효용만 증가하더라도 사회 총합의 '최대행복'은 증가한다.[9]

다만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받아들일 경우, 공평의 분배를 주장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부자에게 부를 분배하는 것에 증가하는 한계효용은 적지만, 그 부를 가난한 자에게 분배한다면 부자의 경우보다 한계 효용이 크다. 따라서 공리주의가 평등의 필연적 조건은 아니나, 현실적으로 공리주의자는 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른 평등한 분배를 지지한다.

쉽게 말해 억대 연봉자가 1만 원을 받아서 느끼는 행복보다 연봉 100만 원인 사람이 1만 원을 받아서 느끼는 행복이 크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공리주의자라 하더라도 평등한 분배를 지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10]

2.5. 사상적 의의

공리주의 사상가 밀을 공부하면 알 수 있듯 공리주의는 당시 유럽을 휩쓴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성립하는 사상이며, 따라서 무작정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공리주의의 등장이 당시 자유주의 사상이 놓치고 있었던 공공의 이익을 일깨우는 계기로 작용하여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공리주의는 '개인의 행복 추구를 기초로 하여 입법과 행정을 운영할 것[11]은 을 주장하며, 이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에 부합하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활동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이는 영국에서 19세기 선거권의 확대를 비롯한 노동자의 권리 확대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지는 복지국가의 형성으로 나타났다.

물론 엄격한 공리주의자에게는 자유, 재산권 등 현대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침해 불가능한 것으로 여러 가지를 포함하여 그 어떠한 것도 '행복'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닐 수는 없으므로 경우에 따라 이러한 가치들을 부정하기도 한다. 다만 공리주의적으로 이상적인 체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서 그 어떤 공리주의자도 이 세계 완벽한 공리주의의 실현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진화심리학적인 시각에서, 의무론에 입각한 도덕적 결정자가 신뢰 또는 선호되도록 적응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을 따른다면, 공리주의의 수행적 의미에서 의무론을 효용으로 인식하고 포용할 수 있다. 다만 이 주장을 수용할 경우 공리주의의 수행 방법이 더욱 모호해질 가능성이 있다.

현대의 수정 공리주의들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고전적(전통적) 공리주의와 차별화하여 (의무론적)직관에 반하는 어떤 지점을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은 고전적 공리주의의 상위호환이 아니며, 그러한 판단 절차를 덧씌우는 것으로 효용 면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는 것도 아니면서 새로운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점이 다시 비판받는다. 때문에 고전적 공리주의 역시 완벽하게 대체되지는 않은 실정이다.

20세기 초부터 공리주의는 다양한 개선이 시도됐다.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고전적 공리주의가 제안한 견해, 특히 쾌락주의 가치 이론에 대해 완전히 동의하는 철학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공리주의보다는 보통 '결과주의'로 칭해지게 되었다. 고전 공리주의는 도덕 철학뿐만 아니라 정치 철학과 사회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끼쳤다. 제러미 벤담이 던진 "그것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정책 형성의 초석이며, 완전히 세속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다. 이렇듯 정책 형성에 대한 접근 방식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고전 공리주의의 최대 의의라고 할 수 있다.

3. 비판론

흔히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논리 구조를 띈다.
공리주의에 따른다면 우리는 p라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p라는 행동은 상식적으로[12] 옳지 않은 행동이다. 그러므로 공리주의는 틀렸다.

물론 이 경우 공리주의자가 '직관과 반대되지만 실제로 p라는 행동은 옳은 행동이다'라고 할 경우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것은 피할 수 있겠지만 비상식적인 윤리적 결론을 도출하게 될 수 있고, 이는 공리주의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실제로 공리주의자 피터 싱어는 "만약 어떠한 개인이 한 명의 소년을 극심한 고통에 빠뜨려서 소년의 희생으로 인류 전체를 구할 수 있다면 공리주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도덕적 직관에 반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힘든 결정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답했다.

한편 대표적인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은 해당 구조는 'p라는 행동은 옳지 않은 행동이다'를 보이기 위해 사용된 논리를 공리주의로 환원시킴으로써 실제로는 '공리주의에 따른다면 우리는 p라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를 입증할 뿐이라 보았다.

3.1. 공리주의는 너무 느슨하다[13]

행복한 마을
모든 마을 사람들이 매우 행복한 마을이 있다. 그런데 이 마을에 한 가지 비밀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의 행복이 한 아이의 불행을 통해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불행한 아이는 마을의 숨겨진 지하 창고에 갇혀서 학대를 당하고 있다. 학대를 하지 않으면 마을의 평화는 유지되지 않는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불행한 아이의 존재 자체를 모름으로써 마을의 행복은 유지될 수 있었다. 이제 아이를 학대하는 일이 온전히 당신에게 주어졌다 하자. 당신은 계속 아이를 학대해서 마을의 행복을 유지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마을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죄없는 아이를 학대하는 것에 불편해 한다. 그러나 공리주의자라면 아이의 불행과 마을의 행복을 비교해볼 것이다. 만약 마을이 지구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현재 세상처럼 전쟁과 빈곤이 만연한 세상을 만드느니 아이를 학대해야만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때로는 아이를 학대해도 되며, 학대 여부는 아이를 학대한 결과를 계산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의 이런 함의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표명했다.

보다 현실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인종차별 희생양
1950년대 미국 남부의 어떤 마을에서 백인 여성이 강간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흥분한 백인들은 단체로 흑인을 공격하려 하고 있고, 사태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몇 명이 죽고 여러 사람이 다칠 것이 분명하다. 당신은 이를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만약 당신이 무고한 흑인 한 명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면 당신은 오직 한 사람의 희생으로 다수의 목숨을 지킬 것이다. 이 경우 위증을 통해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이 옳겠는가?
위 사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리주의자라면 위 상황에서 거짓말로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킬 것이기 때문에 공리주의는 틀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사고 실험이므로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문제임은 감안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제시된 정보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확실히 예측할 수가 없다. 만약 죄를 뒤집어 씌웠는데, 나중에 범인이 자백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인종 갈등이 격화되고 사법 질서가 신뢰를 잃지 않을까? 그러므로 공리주의자는 위증을 통해 단기적으로 좋은 결과가 확실히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장기적인 결과까지 고려해서 신중하게 행동할 것이다. 이처럼 공리주의에서 도덕적 판단은 그 상황의 결과에 대한 최선의 예측에 의존하는 것이 공리주의 입장에서의 방어가 될 수 있다.

삼국지의 조조 같은 인물이 냉혈하게 묘사되지만, 사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이들이 진정한 공리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를 희생할 때 그 소가 위의 예처럼 사람의 목숨이라면, 아무리 다수가 득을 본다고 하더라도 소의 희생을 쉽게 이행할 수 없다. 즉 그 '소'가 더 큰 '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3.2. 공리주의는 너무 가혹하다[14]

"당신이 기부 천사라면"
당신은 매달 월급의 큰 부분을 떼서 자선 단체에 기부를 하는 착한 마음씨의 소유자다. 남의 시선을 신경써서 생색을 내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봉사활동도 열심히 다닌다. 그러다가 문득 보니 평소에 입고 다니는 티셔츠가 목이 한참 늘어난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딱 이번 한달만 평소보다 2만 원을 덜 기부하고, 그 2만 원으로 보세 티셔츠를 사입기로 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말라리아 치료제는 2만 원이다. 즉, 당신이 2만원을 덜 기부한 것으로 어떤 환자 한 명은 치료받을 수 있었으나, 치료받지 못하게 되었다.

위 사례에 따르면, 당신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음에도 방치한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저 티셔츠 한 벌 샀을 뿐이다" 라고. 분명히 이 판단은 어딘가에서 죽어가는 환자의 목숨보다 티셔츠를 우선시한 비합리적 판단이다. 그렇다고 이런 주장을 당신은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것을 개인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자신은 그렇게 큰 행동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극단적인 억지라고 단번에 일축될 것이다. 주변 일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극단적 예시를 두고 비합리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대체 누가 이 공리주의를 따르겠는가? 이런 크고 부담감 느끼는 일은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우선 피할 것이다.

공리주의가 자기중심적 사고를 간과했다는 점은 따로 있다. 이 일을 당신 개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당신은 그 환자들에게 특별히 손해를 가한 것도 없고 물론 득을 가한 것도 없다. 따라서 이는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을 공리주의적으로 해석하면, "당신은 선의를 베풀어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 애초에 전제 조건으로 깔려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베푸는 것을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할 수 있으면 베푼다는 것을 전제로, 할 수 있을 때까지 베푸고 난 그 상태를 기본으로 생각한다.

더욱이 아래 시나리오를 고려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지수
지수는 자기 아이에게 학대를 일삼는 끔찍한 인간이다. 어느 날 그 자녀가 말라리아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근데 마침 지수는 자기 티셔츠 목 부분이 늘어났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가 무슨 고통을 겪건 아랑곳하지 않고 지수는 새로 2만원 짜리 티셔츠를 사입었다.

또 공리주의에 따르면, (이전까지의 행동들에 대한 평가와는 독립적으로) 당신이 2만 원을 주고 티셔츠를 산 것과 지수가 2만 원을 주고 티셔츠를 산 것은 도덕적으로 동등하다. 둘 모두 각각 새로 티셔츠를 장만했다는 행복을 얻었고, 그 대가로 한 명의 사람이 말라리아로 고통을 겪으며 사망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의 행동이 지수의 행동만큼이나 극악하다는 결론은 너무 가혹해보인다. 이 둘이 같다고 보는 것은 극단적인 면모에서 비롯된 폐해이다.

이로부터 따라나오는 귀결은 '행하지 않는다고 비도덕적이지는 않지만, 만약 행한다면 대단히 칭찬받을만한(supererogatory) 행위'가 개념상 부정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스파이더맨이 목숨을 걸고 수십 명의 목숨을 살려내는 영웅적 행적을 펼쳤다고 하자. 공리주의에 따르면 스파이더맨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도덕적으로 숭고하거나 영웅적인 것은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여전히 허용될만한 행위' 또한 부정된다. 이를테면 지나가던 시민 A는 어린아이 한 명을 구해냈지만 목숨을 걸고 5명의 목숨을 살려내는 행위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유력한 형태의 의무론에 따르면 시민A는 자신이 해야 할 의무 이상을 충분히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공리주의에 따르면 시민A는 비도덕적이다.[15]

3.3. 공리 괴물

로버트 노직'공리 괴물(utility monster)' 사고실험을 제안한다: 공리 괴물은 행복을 느끼는 데에 한계치가 없다고 하자. 만약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불행해지는 대신, 공리 괴물의 행복을 무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행복의 총량은 상승하게 된다. 따라서 공리주의는 모든 사람이 불행해지는 대신 공리 괴물의 행복을 무한으로 올리는 것에 찬성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조리해보인다.

이때 공리주의가 특별히 누군가의 행복을 가치있게 여긴 건 아니다. 공리주의는 같은 행복이면 그것이 왕이 느끼는 것이든 거지가 느끼는 것이든 동등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리 괴물의 경우 공리 괴물의 행복과 일반인의 행복을 같게 취급했으나, 공리 괴물의 행복이 다른 모든 사람의 불행보다 양적으로 우세했던 것이다.

스웨덴 출신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그의 논문 Sharing The World With Digital Minds에서 제시한 예측에 따르면 미래에 나타날 초지능은 공리 괴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보다 쾌락의 효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수 있다.

3.3.1. 반론

말이 공리 '괴물' 이라서 그 한 사람의 행복도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나머지 사람들의 공리를 몰아주는 것이 부당해보일 수 있지만, 만약 이 공리 괴물의 정체가 '충분한 보행 능력과 노동 능력이 없는데, 충분한 약물만 있다면 치료가 가능하긴 하나 그 약을 구매하기 위한 거금이 필요한 환자' 였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수익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나머지 사람' 들의 수익의 일부, 즉 행복도의 일부를 희생시킴으로서 이 환자에게 거액의 자금을 조달해 환자는 병을 고치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됨으로서 행복도가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과된 부담을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극도로 상승할 수 있게 된다면 [16], 이것은 의견이 무척 갈릴 수는 있을지언정 통념상 무조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될까?

비록 엄격한 한 명은 아닐지언정, 사실 '행복도 몰아주기' 식의 접근은 사회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주 거칠게 보자면 한국의 장애인 수는 100명 중 5명꼴이며, 장애인들 중 상당한 수가 빈곤한 환경에 처해있다. [17]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명 중 95명이 낸 세금들을 써가며 이 5명의 장애인들을 돕는 것은 일반적인 통념상 전혀 부당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실제로도 많은 국가들은 다수의 행복도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소수를 구제하기 (즉 그들의 고통을 확연히 줄이고 그들의 행복도를 대폭 늘리기) 위한 제도들을 시행하고 있다.

3.4. '행복의 총합'이 존재할 수 있는가

공리주의는 사회 전체의 정의를 판단할 때 서로 다른 사람들 각각의 이익(행복)과 손해(불행)을 총합해 최대 행복이 되는 경우를 지향한다.

존 롤스는 이 공리주의적 총합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데, 각 사람은 각기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는 개별 주체이기 때문에 임의로 서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더하는 것(Interpersonal Aggregation)은 불가능하며 이는 사회 전체의 사람들을 하나의 개인처럼 묶어 버린 것이라고 비판한다.

3.5. 고급 입맛

와인 구매를 위한 예산 10만 원이 준비되어있다. 이때 다음 두 가지 예산안이 있다.
* 일반인 10명에게 1만원짜리 와인을 한 병씩 돌린다: 일반인은 1만 원 이상 와인은 구별을 하지 못한다.
* 고급 입맛 1명에게 10만원짜리 와인을 한 병 준다: 고급 입맛은 비싼 와인도 그 값만큼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따라서 10만원짜리 와인을 마실 때 1만원짜리 와인을 마실 때의 10배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후자가 전자에 비해 나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고급 입맛이라는 이유로 주어진 예산을 독차지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봐도 괜찮은가?[18]

다음은 고급 입맛 문제에서 파생되는 긴절성(緊切性; urgency) 문제의 예시다.
  • 부유한 부모의 의향 때문에 어릴 때부터 철저한 미식가로 양육된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물떼새 알과 관련한 미식에 세계 최고로 정통하며, 매일 물떼새 알을 음미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다. 그런데 부모의 사업이 망하여 더 이상 물떼새 알을 맛볼 형편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칠 수 없는 것과 같으며 다른 음식은 그녀에게 아무런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공동체는 이 여성이 비싼 물떼새 알을 살 수 있도록 다른 평범한 식성의 구성원에 비해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해야 하는가?
  • 아사 위기에 놓인 가난한 남성이 있어 한정된 예산으로나마 식비를 지원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남성은 자신의 소원은 죽기 전 성지 순례를 해보는 것이라면서, 이왕 자신에게 배당될 지원금이면 성지 순례 여행 경비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한다. 이 남성이 성지 순례 여행을 떠났을 때 단순히 아사를 면하는 것보다 더 행복하고, 위 요청을 거부당했을 때 아사하거나 자살하는 것보다 더 괴롭다면 여행비를 우선으로 지원해야 하는가?
  • 방금 사고를 당해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각각 두 다리, 한 다리, 한 손가락이 영영 불구가 될 갑, 을, 병이 있다. 그런데 하필 병원은 사정상 단 한 명만 먼저 이용할 수 있는 상태다. 따라서 한 명이 치료받으면 나머지 두 명은 불구가 될 것이다. 일반 인식에 따르면 가장 긴절(緊切)한 사람은 갑이다. 하지만 병의 배우자인 갑은 자신보다는 유망한 피아니스트인 병이 먼저 치료받길 간절히 바라며 차례를 병에게 양보하겠다고 말한다. 이에 을은 자신보다 더 심각해보이는 상황의 갑에게는 양보할 수 있어도 자신보다 경미해보이는 상황의 병에게는 양보할 수 없다고 항의한다. 이 때 병이 을보다 우선되어야 하는가?

3.6. 대체 무슨 결과?

상기한 바처럼 공리주의는 결과주의의 일종이다. "결과"라는 말이 '끝'이라는 요소를 포함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공리주의는 '그 끝이 좋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라면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끝낼 수 있을 지 몰라도, 현실은 그런 끝이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어린 히틀러, 1000년 후
어린 히틀러를 살해함으로써 홀로코스트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서기 3000년 경에 한 독재자 때문에 핵전쟁이 일어나서 전 인류가 멸망할 위기에 처했다. 그 핵전쟁의 원인은 "1000년 전 시간여행자아돌프 히틀러라는 아이를 죽였기 때문에 이런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 밝혀졌다.[19]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히틀러가 없어서 죽지 않고 살았는데 그 사람의 후손이 나중에 히틀러를 뛰어넘는 독재자가 절대로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렇게 1000년 후까지 고려할 경우, 공리주의에 따르면 어린 히틀러를 살해한 것은 극악한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시간 범위를 넓히면 넓힐수록 이 결과도 얼마든지 재차 뒤집힐 수 있다.
어린 히틀러, 8000년 후
서기 3000년 핵전쟁에서 극소수의 인류가 살아남아 서기 10000년 경에는 수 천개의 은하 문명이 번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밝혀지길, 서기 3000년 핵전쟁이 없었더라면 서기 10000년 현시점에서 전 은하 문명이 멸망했을 것이었다.[20]

이렇듯 행위 사전에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고려 범위에 따라 결과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3.6.1. 반론[21]

  • 위 비판은 공리주의가 "이러이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해서 답을 줘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애초부터 그런 '결정 절차'가 아니다. 공리주의는 '어떤 행위가 좋은 행위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객관적 답을 주면 될 뿐, 반드시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은가'라는 질문에 답을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22]
이런 [공리주의적] 절차가 모든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마다 사전에 엄격히 준수되어야 한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23]
제러미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 고전적 공리주의는 행위의 실제 결과를 기준으로 그 옳고 그름을 따진다. 하지만 주관적(subjective) 공리주의에 따르면 행위의 옳고 그름은 실제 결과가 아니라 그 행위를 할 때 어떤 결과를 의도했느냐에 달렸다. 따라서 주관적 공리주의가 옳다면 어린 히틀러를 살해한 것은 '최대 행복'을 의도했던 이상 잘못된 것이 아니다.

4. 옹호론

공리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리주의를 포함하는 보다 넓은 범주인 결과주의에 대한 옹호 논변들이 활용될 수 있다.
  •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규범 윤리 이론은 거의 없다. 그런데 "더 좋은 세상"은 명백하게 결과주의적인 척도다. 따라서 윤리적 판단에서 행위의 결과에 대한 고려는 반드시 필요하다. 의무론에 대한 현대적 정의가 "행위의 결과가 전부는 아니다"라는 점 또한 이를 대변한다. 따라서 결과주의는 규범 윤리에서 디폴트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 결과주의 윤리학자들은 '경쟁 이론인 의무론이나 덕 윤리학 등이 각종 윤리적 사례에 대하여 비일관적인 결론을 내놓거나, 아니면 Ad Hoc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공격을 펼친다. 만약 이런 공격이 성공적이라면, 결과주의 윤리학은 다른 경쟁 이론에 비해서 이론적 완성도가 높은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철학 및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결과주의 윤리학을 참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생긴다.

5. 더 읽어볼 만한 글

6. 대중적 인식

좋은 의도였다면 나쁜 결과를 가져왔어도 용서할 수 있지만, 좋은 목적을 가지고 나쁜 수단을 써서는 안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중결과의 원리
"열차 사고로 다섯 명이 죽는 걸 막기 위해 한 명을 밀어야 하는가?"로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는 공리주의를 소개할 때 쓰이는 대중적인 예제다.

공리주의는 행복을 도덕의 유일한 기준으로 보며, 상기한 바처럼 자유천부인권은 그 자체로는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옆 동네프로이트에 맞먹는 엄청난 어그로를 자랑한다. 고등학교 도덕 교과서를 비롯하여 공리주의를 가볍게 다루는 대중적 서적에서 공리주의를 때리는 것도 그런 이유.
  • 실제 공리주의를 실현하는 것에 관해서 아주 많은 논점이 제기될 수 있다.
    • 공리주의를 엄격하게 실현하려면 일단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만 남기고 전 재산을 빈민들에게 기부해야 할 텐데, 현대에 가장 극단적인 공리주의자로 꼽히는 피터 싱어조차도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거기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것은 딱히 인간만을 한정하지 않기 때문에, 야생동물이나 소나 돼지, 닭과 같은 가축의 행복을 인간의 행복과 동등하게 고려한다고 생각하면 사실상 인류가 존속할 수 없다.[24]
    • 하지만 자유를 옹호한다고 자유지상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자유지상주의를 논박하는 근거로 자유주의자를 비난할 수 없듯이, 공리주의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도 약간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 다른 사람의 행복을 느껴볼 수 없는 상황에서 여러 사람의 행복을 어떻게 비교할 것인가?
      • 세익스피어를 읽으면서 얻는 행복과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위키질을 하면서 얻는 행복은 동등할까? 양적 공리주의의 대답은 'Yes'이지만, 여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적 행복과 육체적인 행복을 같은 것으로 취급할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되며, 동물의 행복도 고려해야 할지도 문제가 된다.
      • 질적 공리주의가 옳다면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이 위키질을 하며 얻는 쾌락보다 질적으로 우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판단하는 근거로, '많은 사람들이 두 개를 놓고 더 많이 선호하는 쪽을 질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한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며, 학생들이 심슨가족과 셰익스피어,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 생각하는가 거수를 하게 한 결과 셰익스피어가 우세했지만[25], 자유시간에 뭘 하고 싶은가에 대해선 심슨가족 시청이 우세했다고 한다. 밀은 인간에게 돼지와 달리 질적으로 우월한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고, 이는 환경이나 개인의 상황에 따라 말라버리기도 쉬운 능력이라고 하며, 그런 사람들로서는 차선책으로서 양적으로나마 우월한 저속한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고 하며 주위에서 숱하게 볼 수 있는 '우월한 쾌락을 두고서도 저속한 쾌락을 추구하는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 어쩌면 밀은 그런 의미에서 성과 위주적인 현대 사회 문화를 공리주의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할 지도 모른다.
  • 주관적 공리주의를 받아들인다면 상황에 따라서는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을 저울질해야 할 때가 생기는데, 어디까지의 미래를 고려대상에 넣어야 하는지,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을 같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라면 이자율 혹은 할인율을 적용해야 하는지, 한다면 몇 %로 정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 '공리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실제로는 공리를 저해할 것이다' 라는 식의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대다수가 집단 내의 소수를 제거하는 것에 계속적으로 찬성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전체 집단이 붕괴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공리주의자라면 나치의 행태를 묵인하는 것이 미래에 불러올 일들을 모두 고려하여 생각해본 후, 나치에 대항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결국 이 주장은 '공리주의를 시행할 때에 조금 더 똑똑하게 결과를 계산해야 한다' 라는 조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행위 공리주의 대 규칙 공리주의' 논쟁이 촉발되는 지점.
  • 상기한 "공리주의는 느슨하다" 비판의 예시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소수의 행복'은 조금 침해될 수도 있다는 것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다수를 위해 소수의 자유를 희생하는 행위는 언제나 일어나고 다른 도덕 원리로도 정당화된다. 대표적인 예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부 범죄자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는 감옥. 그리고 공리주의는 기본적으로 최소의 희생을 주장하게 되니 다른 도덕 원칙에서의 선행에서 더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목표를 갖게 된다. 다른 도덕 원리는 결과적으로 희생자가 몇인지 상관을 안하기 때문에 적은 사람을 구하는 방법이라 해도 비판할 수 없기 때문. 결국에는 정도의 차이인데, 공리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조금 '덜 절실한' 상황에서까지 다수를 위한 정책을 지지한다.
  • 개인의 행복 추구에 법률이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공리주의'를 '이기주의'와 혼동하면 안 된다. 공리주의는 모두가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이지, 혼자만의 행복을 추구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다. 도덕과 법률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과하게 추구하여 타인의 행복과 충돌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즉 토머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불행한 소수의 행복 추구를 법이 막는다는 등 구체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법률에 관한 비판은 가능하겠지만 법의 기본적인 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공리주의에 반대된다.
  • 공리주의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완벽한 절대자나 완벽한 시스템이 생산과 분배를 비롯한 모든 것을 매우 적절하게 조절하는 사회지만, 이는 공상의 영역이다.[26] 공리주의는 다른 도덕 윤리와 마찬가지로 여러 면에서 현실과 타협을 이루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근본적인 논쟁거리들을 제쳐놓고 보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이념은 일상적인 수준에서는 문제시 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판단의 수준에서 혼자만 잘 되려는 것을 나쁘게 본다거나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선호한다거나 불행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보는 보편적인 윤리의식이 공리주의와 부합한다.
  •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공리주의가 상황에 따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해 허무주의와 함께 엮이며 무언가를 지키려는 의지를 약화하는 것으로 악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매우 완벽하고 틀림없는 잣대를 따르는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희생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용납되겠지만, 원칙적으로는 그 희생을 미리 막는 것이 더 이상적이므로 권장된다. 마찬가지로, 딜레마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할 선택이라면 처음부터 막아서 최선의 과정과 절차를 방해할 것을 치우는 것이 옳다. 예컨대 기근이 닥쳐서 식인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기근이 오지 않도록 막거나 미리 식량을 축적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27]
  • 최근 인터넷 상에서 물결처럼 번져나가는 코로나 19 백신 반대 운동 또한 공리주의의 비판과도 일치한다. 백신의 인과성 입증 불허는 백신이 절대다수에게 주는 안전이라는 공공의 이익이 소수의 부작용 또는 사망사례보다 크다는 공리주의적 논리에 의거한다. 보편적으로 대한민국을 포함한 대개의 국가들은 공리주의에 따라 부스터샷을 비롯 백신 패스를 사실상 반강제로 도입 중이며 이러한 흐름에 반대하는 자들이 파고드는 공리주의의 맹점 중 하나가 바로 '절대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가 희생될 수는 없다' 는 반론이다. 실제로 백신 거부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으며 개중에는 공리주의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28]도 있지만, 공리주의적 논리와 연관된 백신 거부자들은 "부작용 인과성 인정을 해주면 백신을 맞겠다." 또는 "인과성을 인정받아도 백신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 때문에 맞을 수 없다." 로 갈리고 있다. 전자의 경우 백신을 이미 맞은 피접종자들에게서도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나 한 번의 인과성 인정이 차후 백신 개발을 저해하는(또는 공리주의의 지속을 방해하는) 공리주의적 논리에 의거해 어쩔 수 없이 접종하거나 거부하는 경우이며, 후자의 경우 인과성 인정과는 별개로 공리주의에 의한 피해 또는 손실이 자신(소수)에게 올 가능성이 있다고 받아들이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7. 창작물에서의 공리주의

"네놈들 권력자는 언제나 그렇지! 다수를 구하려고 어쩔 수 없이 소수를 희생한다고, 그렇게 자신들을 정당화하지! 하지만 네놈들 자신이, 네놈들 부모형제가 소수에 들어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더냐!"
다나카 요시키 - 은하영웅전설
어떤 사상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인물을 그려내는 것이 흔한 창작물에서는 공리주의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인물을 그리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정상적인 공리주의의 화신은 슈퍼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같은 고전적 질서 선 주인공에 가까운데, 흔히 말하는 "모두를 구하겠다"나 "그 누구도 희생하게 만들지 않는다" 같은 이상주의적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 물론 이는 엄밀히 말하면 지극히 기초적인 도덕과, 그 고결한 선함을 극단화한 것에 가까운지라 공리주의와 엄밀히 궤는 달리하지만, 공리주의 자체가 상기했듯 "행복의 최대화 = 좋음의 최대화 = 도덕의 실현"이라는 기초적 쾌락주의 도덕을 기반으로 하다보니 비슷한 경우.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100명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1명의 낙오자를 만들 수 있다", "소수를 희생시켜 다수의 행복을 추구한다" 같은, 전체주의에서나 볼 법한 주장을 공리주의로 착각하고 주장하는 질서 악 빌런들이 나오는데, 이는 공리주의에 대한 크나큰 왜곡이다. 상기했듯 초기 공리주의조차 여성인권, 동물권에 관심을 갖곤 했으며, 현대적인 자유주의민주주의 사상이 발달한 것과 공리주의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 당장 공리주의의 시초인 벤담부터 박애주의 운동을 지지하며 소수 특권 계층의 행복보다 다수 민중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9]

존 스튜어트 밀은 리버럴 페미니즘의 사조이기도 하며,[30] 현대적인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역사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저작인 <<자유론>>의 저자이다. 실제 공리주의는 그 어느 철학보다 100명의 이득을 위해 1명이 희생하는 것보다 101명이 행복한 게 공리적으로 맞다를 긍정하는 이론이며, 이는 고등학교 수능 윤리에서조차 함정이라고 넘어가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배운다[31]. 물론 효용성의 문제로 희생이 불가피할 때 그 희생이 필요하다고 긍정할 수는 있겠으나, 전제는 어디까지나 불가피할 때지, 무조건적으로 희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것은 결국 전체주의로 수렴하며, 희생한 시점에서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결국 악인임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극단적이고 왜곡된 인물상으로 묘사하는 편이라 서브컬쳐를 아는 공리주의자들에게 이는 공리주의가 아니라 '기리쓰구이즘'이라면서 까인다. 이런 캐릭터들은 대개 질서 중립적 성향이거나, 악용하거나 심하면 질서 악에 속하는 유형이다.(이 경우에 속하는 인물은 ※) 이러한 공리주의가 “왜곡”인 이유는, 상기한 공리주의의 비판론들은 어디까지나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공리주의 논리의 결점을 제시하는 논증일 뿐, 실제 공리주의 지지자들이 “소수 약자를 박해하기 위해” 공리주의 사상을 고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왜곡된 공리주의적으로 행동한 악역에게 제 3의 길을 선역이 제시하면서 이기는 게 있다. 이 제 3의 길을 제시하기 전까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다가[32] 더 나은 결과가 나와 작품의 갈등을 고조시킨다.[33] 보통은 앞서 말했듯 제 3의 길을 통해 희생을 부정하는 결말로 나아가지만, 드물게도 주인공도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희생하는 선택을 하거나, 제3의 길을 선택했음에도 더 나쁜 일이 발생하는 것도 존재한다. 세카이계 스토리가 이러한데, 결국 세계와 히로인 한 명 중에서 히로인을 고르고 세계가 파멸에 치닫는 경우다.

조금 다른 범주의 왜곡으로 공리주의의 적용대상을 포유류로 확장하거나, 지구 전체로 확장해서 인간이 동물 혹은 지구에 암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을 멸종시켜야한다는 악당이 등장하는 창작물도 많다. 그러나 실제 공리주의는 상기했듯 행복의 희생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이 역시 공리주의라 할 수 없으며 그냥 에코파시즘에 가깝다.

아래의 목록을 열람할 때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가상의 인물이 자신이 공리주의자임을 밝히거나 작가가 스스로 그것을 알리는 경우는 당연히 드물다. 즉 상술한 언행들이 공리주의에 대한 작가나 캐릭터의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작가가 전체주의와 같은 다른 사상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인지 판단할 근거는 보통 없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고 서브컬쳐에 공리주의를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공에 대고 주먹을 휘두르는 꼴일 수도 있다.

7.1. 사례

  • 나이트런 - AL※, 앤 마이어※: 이쪽의 경우 51%를 위해 49%를 내줄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이는 괴수와의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인지라 애매하다.

8. 관련 문서



[1] 이 구절은 벤담이 사용한 후 유명해졌기 때문에 벤담의 언급이 원조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미 '허치슨(Francis Hutcheson 1694~1746)'의 미와 덕 관념의 기원에 관한 연구(1726), '베카리아(Cesare Beccaria 1738~1794)'의 범죄와 형벌(1764)에 나왔다.[2] 예를들어 사치품으로 집을 도배해놓을 정도로 경제적 능력이 막강한 9명의 부자와 한 끼 먹기도 힘든 1명의 극빈자가 있을 때, 9명의 부자가 1명의 극빈자를 돕는다면 9명의 부자의 행복도는 조금씩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1명의 극빈자의 행복이 그것을 만회할 정도 이상으로 늘어난다면 비록 다수의 행복은 감소했지만 행복의 파이 자체는 커졌기에 이는 공리주의적으로 옳은 일이 될 것이다.[3] 보다 엄밀하게는 '행위가 도덕적인지 아닌지 여부는 온전히 그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4] 쉽게 말해 가장 좋은 결과=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면 공리주의이다.[5] 쾌락주의는 어감에서 주는 억양이나 세간의 오해와 다르게, 맹목적으로 쾌락을 탐닉하는 사상이 아니다. 여기서 쾌락이라 함은 1차원적인 쾌락이 아닌 평화와 평안, 마음의 안정 등 말 그대로 좋은 것(행복의 최대화)를 하나의 용어로 일컫는 것이다.[6] R. N. Smart의 자비로운 세계 파괴자The benevolent world-exploder 논변.[7] 데카르트 같은 경우에는 이에 동의하지 않으나, 현대에 이를 받아들이는 논자는 거의 없다.[8] 이건 사실 수능 윤리 시험에서도 나온다. 즉, 개인의 행복을 경시했다는 식으로 나오는 선택지는 틀린 거다.[9] 예를 들자면 평등의 실현에 앞서 그 평등이 쉽게 저해되고 그런 것을 막을 만한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평등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꺾고 현실에 만족하도록 만듦으로서 행복을 늘릴 수도 있다.[10] 경제학에서는 공리주의 SWF의 최대값은, (효용함수가 concave하다고 가정한다면), [math(\mu_A=\mu_B=\mu_C=\cdots)]일 때, 즉 모두가 평등해질 때 달성된다고 표현한다.[11] 근본적으로 제레미 벤담은 법학자이자 철학자로서, 공리주의를 창시하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쓴 책은 정부이다. 즉, 공리주의는 엄밀히 말해 개인의 가치관이 아니라 법철학과 행정철학의 영역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12] 또는 특정 이유에 의해[13] IEP 항목 참조.[14] IEP 항목 참조.[15] 다만 아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이 성인 5명을 구하는 것보다 가치가 있고, 둘 중 한 쪽만 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공리주의의 시선에서도 도덕적이긴 하다. 물론 여전히 보편적인 도덕관과는 차이가 있지만.[16] '나머지 사람' 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모두 건강하며, 그들의 가정들 또한 큰 위기가 없다고 가정한다[17] 코로나 시절 초창기임을 감안할지라도 2019년 기준 장애인 빈곤율은 약 절반에 육박하는 40%대 중후반이었다 #.[18] 심지어 고급 입맛을 가진 1명 쪽이 단지 입맛 하나만 까다로운, 전자의 일반인 10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일 경우 이는 일반인 10명 만족시키기 VS 일반인 1명 만족시키기의 양상이 된다. 입맛이 고급이라고 해서 무조건 상위 계층, 고소득 및 고학력자인 것은 아니므로 이러한 경우를 간과할 수 없다. 후술되어 있는 긴절성 문제의 예시 중 첫 번째가 이를 증명한다. 즉 입맛만 까탈스러운 현재 일반인 신분인 사람 1명을 위해 또 다른 일반인 10명의 만족을 배제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19] 설명하자면 핵전쟁을 일으킨 독재자의 조상은 홀로코스트 희생자였다. 원래대로라면 조상이 홀로코스트로 죽어서 당연히 1000년 후의 후손인 독재자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는데 홀로코스트가 일어나지 않는 바람에 원래대로면 죽어야 할 조상이 살아서 대를 이어 3000년경 시점에 핵전쟁을 일으킨 독재자가 존재할 수 있던 것이다.[20] 설명하자면 핵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더 발달돼서 은하 문명을 만들 수 있었다는 말이다.[21] SEP 항목 참조[22] 이런 형태의 반론은 공리주의가 행동 지침(규범 윤리)으로써 효용적이라는 장점을 다소 희석시키는 문제가 있다. 피터 싱어의 경우 초기에는 공리주의를 공격하는 여러 딜레마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에 그쳤지만, 후기에는 심정적으로 어려운 선택이더라도 희생시키는 게 옳다는 쪽으로 선회한다.[23] “It is not to be expected that this process should be strictly pursued previously to every moral judgment."[24] 단, 의무론 역시 엄격하게 실현하면 인류가 존속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공리주의는 일시적인 인구 억제면 몰라도 이미 80억이 넘는 쾌고감수능력자(인류)를 멸종시키는 것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극한 상황에서 은밀한 살인이나 식인을 통한 생존번식에 대해서 의무론보다는 공리주의가 더 관대하게 접근할 수 있다.[25] 여담으로 일부는 심슨 가족의 세태풍자적인 요소를 들며 심슨가족에서 셰익스피어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다.[26]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소수의 대행자에게 권력을 위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엘리트주의, 대의민주주의). 그리고 애초에 인사를 제대로 검증할 완벽한 시스템이 없는 이상, 그냥 유력자의 양심과 능력(직관력, 통찰력 등)을 믿어야 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때 자신도 모르게 미래 불확실성을 악용해서 자신에게 편하거나 익숙한 이기적 행위에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불편하거나 생소한 도덕적 실천을 회피하는 핑계로 삼을 위험이 있다. 또한 소시오패스에게 편법적 사익 추구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권력에 중독되어 언젠가를 위한 불확실한 공익 대신 당장 확실한 자신이 속한 이익 집단의 이익을 핑계로 타락할 위험도 있다. 정확하게 배상자를 추산할 수 없는 비개인적 피해, 그러한 피해를 낳는 도덕적 해이 역시 이런 식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27] 문제는 우리가 존재하고 종을 이어나가는 한, 어떤 식으로든 개체의 희생이 없을 수는 없고, 단시일 내 해결도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희생을 피하기 위해 쾌락 생산보다 고통 예방에 가산점을 주면, 이번에는 모든 존재의 자기복제를 차단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공리주의적으로 옳게 된다.[28] 대표적으로 음모론을 신봉하는 사람들.[29] 또한 벤담의 공리주의는 벤담부터가 법학자였던만큼 법철학적인 면모가 강하며, 따라서 국가 행정 시스템이 멀쩡하게 돌아갈 때 정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기초전제로 둔다. 즉 적어도 벤담에 한정했을 때 공리주의 철학의 주체는 민간의 개인이 아닌, 정부와 공무원에 한정한다. 실제로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도덕과 입법의 기초'라고 주장했다.[30] 게다가 존 스튜어트 밀은 자기보호와 해악 방지의 원칙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당사자들의 물리적-도덕적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31] 실제로 '공리주의에 대한 해석으로 올바른 것은?' 이라는 문제에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긍정한다'라는 지문을 골랐다가는 오답이다.[32] 예를 들어 마을 모두가 죽지 않기 위해 아이가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든지. 이러면 아이를 제물로 바친 악역을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게 된다.[33] 서브컬쳐의 공리주의의 왜곡이 심각한 것이, 진짜 공리주의라면 제물이 없는 제3의 길이야말로 진짜 공리를 위한 것이라고 긍정하는 게 맞지 자기가 옳다며 고집부리는 것은 그저 옛 방식에 집착하는 적폐가 될 뿐이다.[34] 카츠라기와는 반대되게 키류 센토최악의 악역을 제외하면 아군, 적 모두를 구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35] 정확히로는 1,000년 후인 31세기에서 보내왔던 미래의 에이스다.[36] 태모신교와의 싸움을 위해 몇몇 캐릭터가 죽는데도 불구하고 인과율이 망가진다며 내버려둔다. 그래서 일부 등장인물은 이런 면 등을 들어 데바림들을 깐다.[37]한 사람 빼고.[38] 본편에선 개인의 행복을 완벽히 침해하는 시스템을 계속 끌고가더니 반역의 이야기에선 공리주의에 완벽히 부합하는 개량형 시스템을 호기심 하나 충족시킨답시고 원환의 섭리를 무너뜨리려다 실패, 결국 마왕의 노예로 전락하는 촌극을 보여준다.[39] 재밌게도 드물게도 희생과 공리주의를 긍정하는 결말을 내놓았다. 또한 작중 내에서도 계속 큐베와 마도카가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비슷하다는 연출을 보여주며, 심지어 마법소녀 중 유일하게 큐베를 직접적으로 적대하지 않는다.[40] 6편 이전까지의 시리즈에서는 임무 중 간접적으로만 그의 성품이 어떤지 연출했으나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에서 IMF 전체가 CIA에게 의심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도 고군분투하여 끝내 아포슬의 계획을 저지하는데 성공하자 에리카 슬론이 결국 에단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한 사람의 생명도 수 백만명처럼 여길 줄 아는 요원이 이 세상에 필요하다'며 에단을 재평가함으로써 직접적으로 공리주의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연출한다.[41] 공리주의라기보단 직접적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무기를 다루는 마리아와 달리 의학의 특성상 많은 사람을 살리고 인류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며 인체실험을 즐기는등 정당화하는 것에 가깝다.[42] 핵전쟁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모종의 계획을 통해 뉴욕 시민 수백만명을 죽이고 관련자들도 제거[43] 공리주의가 정식 신념이지만, 정도는 장병 개개인마다 다르긴 하다.[44] 겉으로는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왕국과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이 크다.[45] 참고로, 죠죠에서 말하는 '악'이란 목적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고 짓밟는 행위이고, 설령 목적이 좋았다 해도 그 과정이 좋지 않다면 이는 악으로 분류한다. 즉 소수가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게 전부 망하는 것보단 합리적일진 몰라도 그것은 불합리한 악이라는 전제하에 7부는 이야기가 흘러간다.[46] 수단과 방법이 잘못된 경우라 철권 8에서 캐릭터가 망가졌다는 평을 받는다.[47] 쿠베라 리즈란 사이로페, 메나카처럼 공리주의하고는 거리가 먼 경우도 어느 정도 있기는 있다.[48] 다만 이둘은 서로의 방법과 그 대가와 윤리적인 문제차이로 상당히 다른방향으로 공리주의를 실현하려 했다 즉 반대성향.[49] 세상의 평화를 위한답시고 당시 거의 수명이 다해가던 2대 교황 크레이슐러에와 무작정 대련을 벌였다. 이때 한 말이 가관인데, 당신 한 사람의 희생으로 세계를 구할 수 있으니 올바른 정의이다라는 논리를 펼친다.[50] 단, 그리드는 템빨신이 된 이후에 한해서. 그 전까지는 파그마에 비하면 공감능력이 좋은 데다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약자들을 배려하는 면모가 강해서 공리주의자라고 볼 수가 없다.[51] 다만 이쪽은 마키아벨리군주론에 가깝다. 자신의 나라와 시민들을 위해 현실과 타협한 현실적인 군주[52] 공리주의자의 예시가 될 뻔했으나, 자기 책략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 공리주의자가 아니라 인간 말종임이드러났다. 제갈량인 줄 알았는데 괴벨스였어[53] 이익형량이라는, 현대 공리주의에서 배제된 대상 사이를 비교해 더 나은 이익을 선택하는 초창기 공리주의의 문제를 그대로 수용하는 시대착오적인 사상을 20세기에 갖고 있어 현대의 공리주의자들이라면 에미야 키리츠구를 공리주의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이후 창작물에서 공리주의라고 착각되는 바람에 문서 전체가 오염됐다. 다만 본인도 이런 본인의 문제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기는 한다.[54] 이게 극단적으로 치솟을 경우 어린 아이를 고문해야 하는 SCP-231 같은 경우가 된다. 인류의 존속을 위해 공리주의로 소수가 희생되는 경우가 흔하다. 아주 가끔 인류 자체가 더 큰 악이라 인류를 희생시키기도 하는데, 이마저도 공리주의에서 비롯됨을 생각하면...[55] 연합은 변칙적인 존재의 파괴로 인류 보호를 주장하기 때문에, 변칙들을 공격하느라 연합의 초능력자, 과학자등 여러 인재들을 희생한다. 재단과 별 다를게 없지만, 파괴에 사용되느냐 격리에 사용되느냐 차이.[56] 대의 사상을 따른다.[57] 카오스로부터 인류 전체를 보호하고 아엘다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인류제국의 품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소수의 인류세력과 사이커들은 철권으로 무자비하게 짓밟았고 최후에 가서는 황제 본인의 원대한 계획이 끝내 파멸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을 희생하여 황금 옥좌에 착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