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04:31:08

초월주의

1. 개요2. 상징3. 특징4. 역사5. 인물
5.1. 초월주의 동호회
5.1.1. 설립자5.1.2. 멤버
5.1.2.1. 남성5.1.2.2. 여성
5.1.3. 동호회를 탈퇴한 인물
5.2. 동호회 소속이 아닌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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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Kindred Spirits painting.jpg 파일:Morning,_Looking_East_over_the_Hudson_Valley_from_Catskill_Mountains.jpg
<rowcolor=#1f1202> 애셔 B. 듀런드의 그림[1] 프레더릭 에드윈 처치의 그림[2]
History is an impertinence and an injury; our religion, we have not chosen, but society has chosen for us. Society everywhere is in conspiracy against the manhood of every one of its members.
역사는 인간에게 무례하고 상처를 줍니다. 인간의 종교는 인간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인간을 위해 선택한 것입니다. 온 사회가 모든 구성원의 인간다움에 반대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 랠프 월도 에머슨 #
초월주의( / transcendentalism)는 미국에서 일어난 낭만주의 운동의 일부[3]로서, 1820년대와 1830년대 사이 미국 뉴잉글랜드의 사상가들이 매사추세츠 주의 케임브리지에서 소개한 사상이다. 초절주의라고도 한다. 대표적으로 주장한 인물로는 랠프 월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이 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생겨난 미국의 첫 철학 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인간과 자연에서 본질적인 선함이 존재하며, 인간은 "자기신뢰"와 독립을 해야 최상의 상태일 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성적인 개인의 자율성 및 자립에 대한 주장과 자연에 대한 접근 방식은 후대 미국의 실용주의자유지상주의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처음에는 칸트와 낭만주의 철학에서 시작했으나 미국의 상황에 적용되면서 미국에서 초월주의라는 말은 일정한 체계를 갖춘 철학사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문명비평이나 문학운동에 가까워졌다.[4] [5] 특히, 기존 종교에서 주장한 천국 등 이상향을 믿는 것이 아닌, 개인의 일상에서 신성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물리적 현상과 영적인 현상은 하나의 역동적인 과정이며, 별개의 존재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2. 상징

파일:Houghton_MS_Am_1506_(4)_-_Cranch.jpg
<rowcolor=#1f1202> 초월주의의 상징, "투명한 눈알."
초월주의의 상징은 "투명한 눈알"이다. 투명한 눈알의 개념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자연>에서 언급되었다.
In the woods, we return to reason and faith. There I feel that nothing can befall me in life—no disgrace, no calamity, (leaving me my eyes,) which nature cannot repair. Standing on the bare ground—my head bathed by the blithe air, and uplifted into infinite space—all mean egotism vanishes. I become a transparent eye-ball; I am nothing. I see all. The currents of the Universal Being circulate through me; I am part or particle of God.
숲에서, 우리는 이성과 믿음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나는 인생에서 어떤 것도 내게 떨어질 수 없다고 느낀다 — 치욕도, 재앙도, (내 눈을 남겨두고,) 자연이 고칠 수 없는 것이다. 맨땅에 서있는 — 내 머리는 밝은 공기에 잠겨서 무한한 공간으로 떠오른다 — 이 모든 것은 이기주의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투명한 눈알이 된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 우주의 존재의 흐름은 나를 순환한다. 나는 신의 일부이거나 입자이다.
랠프 월도 에머슨, 《자연》 #

투명한 눈알은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신과 세계에 대해 좀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머슨은 종교인들,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 과학자들, 혹은 권력자들이 개인이 자연과 초자연적 현상을 이해하는 것에 간섭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3. 특징

다음은 초월주의의 특징이다.
  • 영적인 경험은 조직화된 종교에서가 아닌 개인에서 경험을 얻을 수 있다.
  • 통찰력과 경험은 논리보다 더 중요하다.
  •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다. 하지만, 사회와 제도들에 의해 타락할 수 있다.
  • 사회는 개인의 자립과 독창성을 꺼린다. 이에 순응하지 않으면서 구법이나 옛 학문에 무작정 얽메이지 않고 자기 신뢰를 해야 한다.

4. 역사

1820년대와 1830년대 사이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미국 전국에서 다양한 예술가들이 초월주의에 영향을 받아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영국독일낭만주의,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성경비평, 데이비드 흄회의론, 임마누엘 칸트이성주의, 그리고 정신과 영혼에 대한 힌두교의 문헌 우파니샤드불교[6]에서 영향을 받았다. # [출처1] 초월주의는 훗날 유니테리언 등의 종교적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초월주의자들은 불교도 초월주의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재해석해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미국발 영성가들의 저서를 읽어 보면 불교가 강조하는 무집착과 현상(dhamma) 이해보다는, 자연주의, 현존, 행복 등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큰데, 이 역시 초월주의의 영향 때문이다. 불교는 열반 이외의 세상으로부터 궁극적인 만족을 찾을 수 없다고 보지만,[8] 초월주의는 세상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그러기를 설한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퍼진 불교 관련 동기부여 문구들도 미국식 초월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5. 인물

5.1. 초월주의 동호회

Transcendental Club

1836년 9월 8일 초월주의를 처음 주장한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프레데릭 헨리 헤지, 조지 리플리, 조지 퍼트넘과 함께 메사추세츠 주의 케임브리지에서 설립한 동호회이다. 이후 19세기 중반 뉴잉글랜드의 작가들, 철학자들, 사회운동가들, 정치인들, 지식인들이 모여서 초월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5.1.1. 설립자

  • 랠프 월도 에머슨 (1803~1882) - 미국의 철학자, 시인, 수필가. 초월주의를 처음 주장한 사상가이다.
  • 프레데릭 헨리 헤지 (1805~1890) - 미국의 유니테리언주의 목사. 에머슨의 동료이자 사상적 동지.
  • 조지 리플리 (1802~1880) - 미국의 개혁가, 유니테리언주의 목사, 언론인. 에머슨의 동료이자 사상적 동지. 초월주의 동호회 첫 모임 장소를 보스턴의 자신의 집에서 할 수 있게 마련해 주었다. 1840년대 아내 소피아 리플리와 함께 유토피아적인 농촌공동생활체 "브룩팜"을 설립했다.
  • 조지 퍼트넘 (1807~1878) - 미국의 유니테리언주의 목사. 에머슨의 동료이자 사상적 동지.

5.1.2. 멤버

5.1.2.1. 남성
5.1.2.2. 여성
  • 마거릿 풀러 (1810~1850) - 미국의 언론인, 편집자, 비평가, 번역가, 여성 권리 운동가. "초월주의 동호회"에 참여한 첫번째 여성이다.[9] 최초의 미국 여성 종군 기자이다. 제1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 당시 이탈리아에 가서 혁명가 주세페 마치니 밑에서 여성 종군 기자로 활동했으며, 26세의 이탈리아 귀족 지오반니 오 솔레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 이후 오 솔레의 아이를 낳았으나 1850년 미국 뉴욕의 파이어아일랜드에서 타고 있던 배가 난파를 당하면서 연인과 아이와 함께 사망했다.
  • 엘리자베스 파머 피바디 (1804~1894) - 미국의 교육자. 1834년 "초월주의 동호회"의 멤버 아모스 브론슨 올컷과 함께 보스턴에서 학교 "템플 스쿨"을 설립했으며, 1860년 미국의 최초의 유치원을 설립한 인물이다.[10]
  • 엘렌 스터지스 후퍼 (1812~1848) - 미국의 시인. 캐롤라인 스터지스 테판의 언니이다. 결핵에 걸려서 36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 캐롤라인 스터지스 테판 (1818~1888) - 미국의 시인이자 화가. 엘렌 스터지스 후퍼의 여동생이다.

5.1.3. 동호회를 탈퇴한 인물

  • 존스 베리 (1813~1880) - 미국의 시인, 수필가, 성직자, 신비주의자. 그는 양극성 장애로 고통받았으며, 1838년 한달 동안 보스턴의 매클레인 정신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에머슨과 아모스는 그의 초월주의적인 사상을 알아보고, 초월주의 동호회와 함께 활동하면서 시를 썼다. 그러나 베리의 시의 편집을 맡은 에머슨이 시의 일부를 수정하자 실망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후 1830년대와 1840년대 사이 에머슨과 초월주의 동호회는 베리의 시와 수필을 읽으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839년 9월 은퇴를 하고 여동생 리디아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880년 쓸쓸하게 죽었다.
  • 오레스테스 브라운슨 (1803~1876) - 미국의 지식인, 사회 운동가, 설교자, 노조 조직책, 작가. 원래는 초월주의를 충실하게 따르는 인물이었지만 1843년 봄 보스턴 교구의 가톨릭 주교를 만난 이후 1844년 10월 20일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이후 소피아 리플리 등 초월주의를 따르는 인물 중 일부를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했으며, 초월주의를 처음 주장한 에머슨을 "철학자가 아닌 일개 시인에 불과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
  • 소피아 리플리 (1803~1861) - 미국의 여성 권리 운동가. "초월주의 동호회"의 설립자 조지 리플리의 아내이다. 1840년대 남편 조지와 함께 유토피아적인 농촌공동생활체 "브룩팜"을 설립했다. 오레스테스의 설득을 듣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5.2. 동호회 소속이 아닌 인물

초월주의 동호회에 소속된 적은 없지만 동호회 인물들과 사상적으로 관계가 깊으며, 초월주의 사상을 따른 인물들이다.
  • 루이자 메이 올컷 (1832~1888) - 미국의 시인, 소설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이웃이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학교 학생. 동호회에 직접 참여한 적은 없지만 소로의 제자였으며, 부친 아모스가 동호회의 멤버였다.
  • 찰스 티모시 브룩스 (1813~1883) - 미국의 독일어 저작물 번역가, 시인, 유니테리언주의 목사. 초월주의 동호회 인물들이 출판한 잡지 <The Dial>에서 자신의 신학주의적인 글을 실었다.
  • 윌리엄 엘러리 채닝 2세 (1817~1901) - 미국의 시인. 미국의 유니테리언주의 신학자 윌리엄 엘러리 채닝의 조카였다. 초월주의 동호회의 멤버 마거릿 풀러의 여동생 엘렌 풀러와 결혼했으며,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동갑이며, 소로에게 "직접 숲에서 집을 만들고 혼자서 자립하는 것"을 조언한 인물이다. 소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채닝 2세는 소로에게 "이 땅에서 내가 한때 '브리어스'라고 불렀던 이 들판 외에는 너를 위한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차라리 그 위로 나가서 오두막을 짓고, 거기서 네 자신을 산 채로 집어삼키는 거대한 과정을 시작해. 그 외에는 다른 대안도, 다른 희망도 보이지 않아."라고 말했다. [11] 초월주의 동호회 인물들이 출판한 잡지 <The Dial>에서 자신의 시집을 실었다.
  • 존 설리번 드와이트 (1813~1893) - 미국의 최초 고전 클래식 음악 비평가, 유아교육기관장. 1840년대 초월주의 동호회 설립자 조지 리플리와 아내 소피아 리플리가 설립한 농촌공동생활체 "브룩팜"에서 유아교육기관장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고전 클래식 음악을 잡지에서 비평했다.
  • 윌리엄 헨리 퍼니스 (1802~1896) - 미국의 유니테리언주의 목사, 신학자, 노예제 폐지론자, 개혁가. 공립학교 보스턴 라틴 스쿨 재학 시절 랠프 월도 에머슨의 학교 동급생이었으며 절친한 친구였다.
  • 월트 휘트먼 (1819~1892) - 미국의 시인, 수필가, 언론인. 1855년 6월 문집 Leaves of Grass에서 이후 "Song of Myself"로 알려지는 이름 불명의 시를 실었는데, 랠프 월도 에머슨의 호평을 받았다. 휘트먼의 작품은 초월주의 동호회 멤버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멤버들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아모스 브론슨 올컷이 휘트먼과 자주 교류했다.


[1] Kindred Spirits (1849)[2] Morning, Looking East over the Hudson Valley from Catskill Mountains (1848)[3] Eclectic and cosmopolitan in its sources and part of the Romantic movement, New England Transcendentalism originated in the area around Concord, Massachusetts, and from 1830 to 1855 represented a battle between the younger and older generations and the emergence of a new national culture based on native materials.#[4] 사상사(思想史)의 계보로 따지면 신플라톤파나 칸트 철학의 영향을 받아 개인에 내재하는 신(神)에의 귀일,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위 등을 기본적인 교의(敎義)로 삼았으나 이윽고 남북전쟁(南北戰爭:1861∼65) 전야, 산업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한 사회의 진로가 명확해짐에 따라 점차 쇠퇴하였다.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이 대두될 때까지 미국사상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일정한 체계를 갖춘 철학사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문명비평이나 문학운동에 가까웠다. #[5] 초절주의: 보통 에머슨(R. W. Emerson)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낭만주의 운동을 가리킨다. 선험주의, 초월주의라고도 번역된다. 선험주의라고 할 때에는 칸트나 셀링(F.W.J. Schelling)의 선험철학을 가리킨다. 미국이 독립되기 이전인 식민 시대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상계의 중심은 뉴잉글랜드였었는데, 이곳은 퓨리타니즘(Puritanism)의 아성인 동시에 상공업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조건 아래 '퓨리타니즘의 세속화'가 미국 사상사의 라이트 모티프(Leit Motiv), 즉 중심 주제가 되었다. 18세기 중기에 있어서의 에드워즈(J. Edward)의 대각성운동이나 독립전쟁 이후의 계몽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유니테리언(Unitarian)파-기독교의 정통 교리인 삼위일체에 반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신성만을 인정하는 종파-에 이어서, 초절주의는 '퓨리타니즘의 세속화'를 한층 촉진하였다. 물론 초절주의와 독일의 선험철학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칸트는 가능적 경험을 넘어서는 것, 다시 말하면 감성적 직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초감성적인 것을 우리 경험에서 독립되어 그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초월이라고 했다. 그것은 현실과 대립되는 물자체(Ding an sich)로서 우리의 인식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존재다. 그는 경험인식을 성립시키는 주관의 선험적 조건, 다시 말하면 직관형식이나 순수 오성 개념 또는 통각 등을 초월론적 혹은 선험적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6] 다만 이 당시의 불교는 힌두교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에머슨은 바가바드 기타를 '불교 문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출처1] Miller, Perry, ed. (1950). The Transcendentalists: An Anthology. Harvard University Press. ISBN 9780674903333.[8] 단, 선불교는 현세긍정적인 면이 상좌부 불교보다 강하여 초월주의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9] 에머슨의 동호회는 처음엔 남성들만 참여했다.[10] 피바디 이전에는 미국에서 6살 이전의 아이를 가르치는 교육 시설이 없었다.[11] 출처: Channing, W. Ellery. William Ellery Channing Letters, 1836-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