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21:40:59

서프러제트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동명의 영화에 대한 내용은 서프러제트(영화)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페미니즘 기호 화이트.svg 페미니즘 관련 문서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분파 원류 페미니즘 · 자유주의 페미니즘 (차이 페미니즘) · 래디컬 페미니즘 (TERF · TIRF · SWERF ·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 문화적 페미니즘) ·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트랜스페미니즘) · 사회주의 페미니즘 (아나카 페미니즘) · 보수주의 페미니즘 (안티포르노 페미니즘 · 페모내셔널리즘) ·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 성 긍정 페미니즘 (립스틱 페미니즘) · 종교 페미니즘 (불교 페미니즘 · 기독교 페미니즘 · 이슬람 페미니즘) · 그 외 (제국주의 페미니즘 · 파시스트 페미니즘)
주장하는 이론 강간 문화 · 디폴트 여성 · 미러링 · 상호교차성 · 성인지 감수성 · 성차별 · 성 상품화 · 성적 대상화 · 양가적 차별 · 여성혐오 · 여성폭력(여성살해) · 여성 서사 · 유리천장 · 젠더 권력 · 젠더블라인드 · 핑크 택스
관련 문서 페미니스트 (남성 페미니스트 · 영페미) · 운동 · 도서 · 영화 · 역사 (1세대 · 2세대 · 3세대 · 4세대) · 여성 단체 · 여성 정책 · 여성사 · 여성주의 성 전쟁 · 68운동 · 서프러제트 · 비혼 비출산 · 탈코르셋 운동 · 토플리스 운동 · 쿠투 운동 · 페미위키 · 부모 성 함께 쓰기 · HeForShe · FPOV
비판 및 논란 · 속어 안티페미니즘 · 페미나치 · 여성 우월주의 · 루이스의 법칙 · 남성혐오 · 자국 이성 혐오 · 뷔페미니즘 · 만물여혐설 ·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 페미니즘은 지능의 문제 · 쿵쾅이 · 여쭉메워 · 트페미 · TERF의 섬 }}}}}}}}}

1. 개요2. 배경3. 전개4. 평가
4.1. 계급적 문제
5. 유사 사례6. 여담7. 출처8.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wuuumen.jpg
20세기 초 영국에서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여성들을 지칭하는 용어. 영어 단어 suffragette는 참정권을 뜻하는 단어, suffrage에 여성형 접미사 -tte가 붙어서 만들어졌다.

2. 배경

빅토리아 시대 영국 정부의 민주주의는 돈 있는 남성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초기 참정권은 일정한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낼 수 있는 자산가 남성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이후 영국 정부는 보수당자유당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몇 차례 법 개정을 통해 참정권을 확대했지만 그때마다 언제나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자는 주장은 무시되곤 했다. 1860년대부터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여성의 참정권을 꾸준히 의회에 상정하였지만 매번 부결되었다.

참지 못한 여성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아무 것도 이루어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영국 정부의 합법이란 것은 여성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3. 전개

1903년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자신의 세 딸과 함께 WSPU(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 여성사회정치연맹)를 조직했고 서프러제트라는 명칭은 이때 명명되었다. 초기에는 평화시위를 했지만 1908년부터는 과격 시위를 선택했고 이후 많은 여성들은 수시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나기를 반복하면서 시위를 이어나갔다.
우리들 여성 참정권운동가들은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대한 임무일 것이다. 그 임무란, 바로 인류의 절반을 해방 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방을 통해서 인류의 나머지 절반을 구하는 것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1]

1913년 여성사회정치동맹 소속의 에밀리 데이비슨조지 5세의 경마장에 뛰어들어 1인 시위를 벌이다가 말에 치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의 처리 문제에서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하여 에밀리 데이비슨의 장례식은 거대한 시위행렬로 변했고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은 본격화되었다. 시위는 극단화되었고 곳곳에서 남성들의 상징이라고 여겨지던 건물들이 파괴되고 불타기 시작했다. 영국의 경찰서는 여성 시위자들로 넘쳐났다.

1914년 점차 영국 정부와 합의안을 만들어 가면서 시위는 사그라들었지만 이는 여성 근로자의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는 합의안이었다. 하지만 당시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해 여성운동가들은 종전 후에 다시 논의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받아내고 운동을 일시적으로 접었다. 이 흐름에 동참한 것은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그의 장녀 크리스타벨만이었고 차녀 실비아와 삼녀 올리비아는 좀 더 다른 형태의 여성운동을 모색하여 당시까지도 참정권을 획득하지 못했던 노동자들과 여성 전체를 위한 운동에 투신했다. 실비아와 아델라는 제1차 세계 대전제국주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전쟁에 참가한 영국 정부에 반대하여 반전운동을 펼쳐나갔고 노동자 계층과 연대하여 새로운 여성운동을 개척했다.

1918년 2월 영국 정부는 인민대표법을 성립시켜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였는데 전쟁 기간 동안 노동력을 제공한 여성들의 공과 무시할 수 없게 성장한 여성들의 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주어진 불완전 선거권이었다. 이는 영국의 보수 정당이 지속적으로 여성의 참정권 요구를 거부해 와서 대부분의 여성들, 특히 20대 여성들이 보수정당에 대한 비토 정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으로 참정권을 가진 남성 인구의 상당수가 사망한 상황인 것도 있어서 영국의 보수 세력들은 어떻게든 선거에서 불리한 구도를 피하려 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성에게 불완전한 선거권을 지급했다.

1928년 인민대표법은 남녀 동일하게 21세부터 선거권을 가지도록 개정되었다. 마침내 영국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은 완전 평등 참정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동자인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인민대표법 제정 한 달 전에 사망하면서 이 모습을 볼 수 없었다.

4. 평가

4.1. 계급적 문제

남성 특권에 맞선 투쟁에서는 사자처럼 행동하는 부르주아 여성들은 대부분 참정권을 얻고 나면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반동 진영의 유순한 양이 될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유명한 여성 공산주의자였던 로자 룩셈부르크는 서프러제트 운동을 비판하면서 이 문단 상단에 서술된 말을 남겼다. 실제로 이 운동은 상류층 여성을 위한 운동이라는 한계도 있었기 때문이다.

5. 유사 사례

미국에서도 19세기 수잔 B. 앤서니와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든을 중심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이 이루어졌다. 이들은 1872년 여성들을 투표장에 데리고 갔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벌금 내기를 거부했다.

6. 여담

여성참정권 100주년을 맞이한 2018년 2월 6일 영국 정부가 서프러제트들에 대한 사면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사

7. 출처

참고문헌 1
참고문헌 2

8. 관련 문서


[1] 1912년 10월 25일 연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