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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미니즘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 및 논란을 나열한 문서이다.대한민국 한정으로만 드러내는 경향(방향성 상실 등)은 하위 문서인 페미니즘/비판 및 논란/대한민국에 서술하길 바란다.
2. 역사적 흐름
페미니즘은 하나의 사상이자 이념(ideology)이기 때문에 논란과 문제점, 비판이 따라온다. 현대에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남녀평등을 위한 여권 신장이 아니라, 여성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여성우월주의로 변질되었다는 비판 측의 주장이 그 예시이다. 한국 내부에는 1970년대 말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한국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는 데 일조하였으며 1980년대 중엽에 발전하였다. 이 당시의 여성인권 인식은 가정폭력에 보호받지 못할 정도로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던 시기였기에 양성평등을 위해서라도 여성권 신장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노동운동에도 저학력층 노동자에 여성노동자들이 같이 들어가 있던 만큼 노동운동권은 여성운동권과 연대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는 운동권이 현대의 변질된 여성운동에 적대적인 입장을 보이기 힘든 입장을 가지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그렇다. 하지만 이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곡해하여 이용하는 여성인권단체 출신 정치인들과 어설프게 배운 페미니즘을 가부장적 사고와 연계시켜 레이디 퍼스트 형식으로 전파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어, 무조건 여성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쪽으로 발전하였다.
이제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페미니즘이 성역화되어 일체의 반론을 거부하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성차별주의자 혹은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저지른 각종 문제 행위들은 페미니스트와 관계 없는 단체들의 소행이라며 꼬리를 자르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일부 이단 문단 참조). 심지어 여성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면 광적인 남성주의 혹은 여성혐오를 신봉하는 사람으로 몰아 상대방을 마녀사냥하고 명백한 잘못을 옹호하거나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사건에 무조건적으로 여성의 편을 들어주는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풍토를 고집하는 것 자체는 잘못됐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런 사례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미국의 팀 헌트 경 여성비하 모함사건이 있으며, 국내의 사건으로는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가 주도한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이 있다. 멀리갈 것 없이 2017년 5월의 나무위키 내에서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승민의 20대 득표율에 페미니즘에 환멸을 느낀 남성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분석에 대해 '그럼 왜 여자가 설거지 하는 게 당연하다는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홍준표는 20대에서 꼴찌인가?' 라는 논리를 들이밀며 페미니즘 반대자 = 여성 차별주의자로 몰아세우려 했다.
결국 페미니스트들의 온갖 폐단으로 인해 아래 후술할 내용들을 비롯하여 페미니즘에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졌으며, 국내외 할것 없이 페미니즘의 이미지는 점점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유튜브에 페미니즘을 한글과 영어로 검색해 보면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이 훨씬 더 많다. 아무래도 긍정적인 면 보다는 병폐를 다루기 때문이다.
3.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비판 및 논란
해당 문단은 전세계적인 흐름에 대한 비판/논란을 언급한 문단이다. 즉 외국에서도 같은 경향이 나타난다면 여기에 추가하면 되며,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면 "대한민국에서" 문단으로 옮기면 된다.3.1. 진짜, 가짜 페미니스트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을 배려하고 여성을 위해 온갖 힘든일과 봉사를 마다하지 않는 남성'이나 '남성이 할 일도 할 수 있다며 도맡아서 하는 여장부'를 페미니스트로 생각한 경우가 많았는데, 페미니스트 입장에선 후자는 좁은 의미의 페미니스트일 뿐이고 전자는 오히려 페미니즘의 반대편인 전형적인 가부장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우월주의, 남성차별주의 등의 주장을 펼치는 자들은 '진짜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가짜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의 탈을 쓴~' 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또는 그렇게 자칭하는 자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사회적으로 올바른 주장을 펼친다' 라고 정의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그 예시로,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이 각각 '공산주의', '자유주의', '무정부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것처럼 페미니스트 또한 넓은 의미에서 단순히 '페미니즘'을 신봉하는 이들을 일컬을 뿐이다. 앞서 나열한 사상이 선악에 기반해 판단될 수 없는 것과 같이 페미니스트들의 주장 또한 단순히 '페미니즘에 기반한 다른 주장'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는 이상과 사상의 근본적인 차이이기도 하며, 생각하는 방식과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포함하는 '사상'으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즉, 페미니즘은 수단적 의미로써의 사상이지 궁극적 도달점으로써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페미니즘의 기반 이론이 그 주장의 온건함이나 (일반적인 의미의) 절대적 성 평등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에 기반해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 그의 주장이 도덕적인가, 사회적으로 올바른 의견인가, 성평등에 기반한 의견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접근 방식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실제로 페미니즘이 남성차별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음은 이미 문제시된 바 있다. 특히 현대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담론이 가부장제 기반 담론이기에, 이에 대해서 여성의 참여가 높고 논의 대부분은 여성 권리의 신장, 불평등의 해소에 대해 일어나기 때문에 여성 우월주의나 성별 편향적으로 매우 쉽게 빠질 가능성도 있다.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과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결별한 뒤에 나타난, 2파 이후 현대 페미니즘의 기본 전제는 '역사 이전부터 뿌리깊게 내려온 남성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이 존재한다'는 점을 가정하고 있다. 이는 가부장제(patriarchy)로 대표되는 개념이기도 하며 성 역할 고정관념과 같은 사상적 형태로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가부장제 등이 잔재한 사회적 구조 안에서 가부장적 사회를 살아가는 한 성차별은 피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해 성 역할에 근거한 사회적 고정관념을 해소하고 성적 불평등을 해소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있다.
페미니즘 분파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현대 페미니즘 분파가 여기까지는 기본적인 전제나 이론의 틀로써 인정한 바 있다. 이 중 페미니즘의 일파는 기존 가족 구조의 대체, 성 구분의 소멸 등으로 완전한 남존여비를 파괴를 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발생한 래디컬(radical) 페미니즘은 이러한 방식 중 급진적인 방식으로 이에 대한 해소가 더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수단으로 남성 도태(정확히는 남성성 도태), 여성우월주의의 전파 등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와 비판을 알고 싶으면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항목을 참고하면 된다.
한편, 사회주의 페미니즘 등에서는 다른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구조를 유지시킨 채 기존 사회관념에서 묵살되었던 여성 권리, 또는 성적 불평등에 기반한 권리를 신장시킴으로써 성 평등 구조를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권리는 인권, 경제권, 다른 사회문화적 권력을 포함한다. 그러한 방식을 유지한다면 언젠가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구조를 파괴하여 여성의 해방과 성적 불평등의 해소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조금 다른 맥락에서 대학을 포함해 각종 연구에서는 페미니즘을 활용하지만, 정작 본인은 실현할 의지가 별로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정치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잘 알려진 수필가이자 문예비평가인 록산 게이(R.Gay)는 자신의 저서 《나쁜 페미니스트》 에서, 소위 "진짜" 페미니스트와 "가짜" 페미니스트를 구분하려고 드는 페미니즘 내외부의 시각 자체가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페미니즘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의 유일한 것이 아니며, 각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개인적 특성에 맞게 자기만의 페미니즘을 꾸려가더라도 얼마든지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고, 또 그런 정체성이 존중받아야 한다고도 주장을 한다.
불행하게도 "페미니즘은 좋고 옳은 것"이라는 공식에 기반한 여성계의 편견, 관념과는 달리, 반사회적이라고 비판받는 대안 우파가 우파의 일부인 것처럼 반사회적인 측면 또한 페미니즘의 일부다. PC 운동, SJW 같은 것들이 가장 활발히 전개되는 집단은 바로 여성주의 단체이다.
쉽게 말해서, 흔히 생각하는 "(사상으로서의) 페미니즘은 좋은 것"이라는 대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대단히 불쾌한 일이지만, 여시나 메갈, 워마드 등이 보이는 양태 또한 분명 페미니즘이 맞다. 과격성 등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하며 옳고 그름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 진짜-가짜 페미니즘같은 구분이나 그에 의거한 비판은 페미니즘의 넓은 스펙트럼을 완전히 도외시한 빗나간 비판이 된다.
3.2. 여성 보호에 대한 반대
한국에서 무조건 여성을 보호하려는 사람을 페미니스트로 일반화해서 보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잘못된 것이다. 위에 열거된대로 페미니즘에서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약한 여성은 무거운 짐을 들면 안된다", "약한 여성과 (물리적으로) 싸워서는 안된다"는 등의 발언은 여성을 남성에게 의존하고 보호를 받는 약자로 간주하는 가부장제의 소산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페미니즘에서 여성에 대한 보호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성을 보호하려는 것 자체와 페미니즘이 일대일 대응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여성의 권리증진과 피해약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는 보호라고 볼 수는 있다. 다만, 그 주체가 남성이 부여하는 게 아니라 제도적 압력과 사회적 인식변화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몇몇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만든 여학생 휴게실은 많은 부분에서 남녀 학생의 차별이 개선된 지금에도 성추행의 위험으로부터의 자유, 여성의 흡연을 백안시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함축되어 있다는 이유로 아직 존재하고 있다.
주로 아마존 페미니즘 계열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스포츠에 참여해 신체를 단련하고 힘을 기를 것을 강조하며, 많은 경우에 군대 역시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현대에는 상당수의 국가에서는 직업군인으로 여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여성단체에서 여성의 평등한 군 참여 확대를 주장하며 운동을 벌인 바 있으며 심지어 일부 여성주의자들은 여성도 군대에 가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여성징병제에 찬성하는 것은 완전한 비주류이다. 만약 페미니즘이 권리와 의무가 같이 가는 것이라면 여성이 군대에 다녀오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많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2세대 페미니스트들을 중심으로 남녀평등 수정헌법 운동이 반짝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반페미니스트들 및 보수적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그 법이 통과되면 여자도 징집당한다고 약을 팔아서 침몰당한 적도 있다, 물론 여성징병 문제가 운동이 파토난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꽤 큰 영향을 미쳤다.
3.3. 집안일과 사회활동
“설거지, 세탁, 화장실청소, 기저귀 갈기 같은 집안일은 창조성도 필요하지 않고 더럽고, 명예도, 돈도 되지 않으며 일생을 바쳐도 역사에 이름도 남지 않고 존경도 받지 못하는 하찮은 육체노동이다.”
- 와카쿠와 미도리
- 와카쿠와 미도리
초등학생 2학년 아들과 4개월 된 딸을 키우는 38세의 전업주부의 경우 음식 준비 및 정리 시간 3시간 30분 *세탁, 다림질, 바느질 등 의류관리 1시간 30분 *청소 및 정리 40분 *시장 보기 등 가정관리 관련 물품 구입 30분 *가계부 정리, 은행, 관공서 일 보기 등 가정경영 30분 *미취학 자녀 보살피기 5시간 * 초등생 자녀 보살피기 2시간 *배우자 보살피기 20분으로 김씨의 1일 총 가사노동시간은 14시간. 이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432만 9000여 원이 된다고 한다.
-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산정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
-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산정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
대개는 밥을 먹기만 하는 쪽은 남성, 밥을 해야만 하는 쪽은 여성이다.
- 조주은
- 조주은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이 집안일에 종사하는 것을 남성중심사회와 가부장제의 억압으로 보고 있다. 가사노동이 '여자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겨지는 것 자체가 그 가치를 격하시키고, 여성을 집 안에 묶어놓고, 사회적 약자로 만드는 구조적 억압이라는 것. '가사일=쓸모없는 일'이라기보다는 '가사일=하찮은 일=근데 여자는 무조건 해야함 왜냐면 여자일이니까'라고 박혀 있는 사고방식 자체가 여성을 억압해왔다는 쪽이다. 다시말해 이렇게 구조화된 억압으로서의 가사일이 여성의 자아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는 주장. 따라서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이 집안일(사적 영역)에서 해방되어 자아 실현과 자기 가치의 발견을 위하여 사회활동(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런 기존의 관점은 이 역시도 가사노동이나 육아, 즉 돌봄노동을 하찮고 능력없는 여성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부딪히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남성이 여성의 사적 노동을 폄훼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 사실상 맞벌이 부부가 아니라면 출근을 하지 않는 쪽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해야한다.
하지만 '어떤 역할이 다른 역할보다 가치가 낮다는 것이냐'라는 것은 이슈의 본질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역할을 강요받아야 하느냐"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 제기이며, 이는 "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안일에선 소외된 채 가족 부양과 국가의 방위를 전적으로 책임지어야 하느냐 "라는 질문으로도 연장될 수 있다. 즉, 직업이든 집안일이든 성별에 의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역할에서 멀어지거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다른 역할을 강요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페미니즘에서는 돌봄노동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직업이 있는 여성 vs 전업주부의 구도를 폐지하려는 추세. 집안일과 주부를 가사노동과 가사노동 종사자라는 개념으로 대치시키는 것 역시 페미니즘의 과제 중 하나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사적 노동 자체에서 해방되는 것을 과제로 여겼다면, 지금은 사적 영역의 가치를 공적 영역에 맞먹는 것으로 회복시키는 것 역시 운동의 일환으로 편입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2번째 예시에 대해서는 논란이 꽤 많은데, 먼저 임금을 주는 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고, 저 모든 일들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보장도 없다. 또한 가족을 위한 헌신을 임금으로 어떻게 감히 환산할 수 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2번째 예시 같은 경우 정확하게 통계청급에서 통계를 내겠다고 해서 나온 것이 아닐 뿐더러 한 개인의 삶을 추산한 것이다. 즉,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논쟁이 벌어진다. 물론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양 선동하는 일도 당연히 없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432만 9000여 원이 된다고 한다."를 보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가사도우미 및 사기업에서 운영하는 가사도우미를 찾아 보도록 하자. 거짓말 안하고 저 가격에서 최소 2배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돈을 많이 벌면 가사도우미의 경쟁률이 몹시 높을 것이고 하려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돈 많이 못번다고 사람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웬만한 가사도우미들 보다도 가사일을 더럽게 못하는 경우가 몹시 많다. 즉 능력은 1도 없는데 저렇게 주장하는거 자체가 몹시 어리석은 짓임을 자신들은 모를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이 이러한 과도한 집안일 및 의무를 떠안는 것에 대한 개선은 필요하지만 이를 너무 깎아내릴 필요 또한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당장 그 힘들다는 일 아무도 안하면 그다음 집안이 어떤 꼴이 날지는 볼보듯 뻔하다.
3.4. 임신과 출산
여성억압의 원인은 생물학 즉, 언제나 여성의 운명이라고 해온 불공평한 임신에 있다.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급진적 페미니즘의 관점이 반영된 《성의 변증법》 에서는, 여성, 그러니까 생물학적으로 암컷으로서의 숙명인 임신과 출산, 그리고 거기에 이어지는 아동 양육은 여성의 자주적인 삶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즉, 임신과 출산을 여성만이 하므로 남성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임신과 출산은 공적 사회 영역에서 여성이 출세하는 데 방해가 되며, 아동 양육 또한 여성의 시간을 과도하게 빼앗아 여성의 사회 진출에 크나큰 장애를 만든다. 따라서 궁극적인 여성 해방은 과학적 방법(인공자궁의 개발 등)을 통하여 임신과 출산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1]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90년대 이후로는 인기가 시들한 상태이다. 현재 주류 페미니즘계에서는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노동이 아니라면 육아는 신성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더 크다. 당장 여성계에서 모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파이어스톤의 주장은 1970년대에 있었으나, 80년대 이후부터 많은 페미니스트는 그녀의 아이디어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실행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생물학적 억압에 초점을 맞춘 접근법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억압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서양에서는 이 논의가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이나 벨 훅스(Bell hooks)와 같은 페미니스트에 비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생식의 자유는 아이를 낳는 것, 낳지 않는 것, 그리고 아이를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키우는 것을 포함한다든가, 빈곤과 인종차별이 여성의 재생산 선택을 제한하는 문제를 강조했다. 임신과 출산은 억압의 원천이 아니라 선택권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독 동북아시아의 페미니즘이 임신과 출산에 부정적이며, 서양에서 용납하기 힘든 반출산을 '강요'하는 분위기까지 있다. 서양 주류 페미니즘은 임신, 출산은 그저 하든 말든 개인의 선택이고 그걸 택한 사람의 경험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을 강요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예를 들면 그레타 거윅 같은 페미니스트 영화 감독은 자식이 두 명 있다. 여성만 할 수 있는 생리적 경험을 부정적으로 보면 자승자박격으로 그동안의 여성의 삶의 의미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low birth rate'같은 '저출산'이라는 표현도 바꾸라는 요구도 하지 않는다. 유교적인 가족 문화의 잔재로 어머니 세대로부터 '출산의 어려움과 고됨, 의무성'이 구전되는 모습(한국과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 '남성의 일'에 대비한 낮은 사회적 인식)을 이어받았는데, 집단주의적인 문화도 강한 상태에서 이 틀에서 아직 벗어나지는 못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들에게 "엄마로서" 과도한 모성애 이미지가 부과되고 있다고 보는 페미니스트들은 존재한다. 서양 페미니스트들은 모성을 여성의 삶의 다양한 선택 중 하나로 존중한다는 입장을 가지는 경우가 현재는 주류이긴 하다. 그러나 '강요'를 거부한다는 사상에 의해 이들은 모든 여성들이 필연적으로 자식 사랑을 하는 게 순리라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제 아이가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아요, 제가 비정상인가요?" 라고 묻는 여성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사회가 강제로 주입한 의무감을 내려놓으라고 확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 모성애는 "모성신화" 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가끔 등장하는, 남성은 몰라도 여성에게는 필연적인 모성애가 있다고 주장하는 측에 대한 반기이기도 하다.
EDEN의 소피아 테오도레스가 이와 비슷한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한다. 해당 캐릭터는 인간의 신체를 하고 있을 때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전혀 사랑하지 못하고 방치하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입양시키는 인물이다. 그러나 뇌를 제외한 신체 전부를 기계로 대체한 이후에는 모성애 비슷한 것을 느낀 것인지, 혹은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인지 가상 가족 관계까지 형성하면서 부모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페미니즘과 비교해서 보면 꽤나 복잡미묘한 캐릭터.
3.5. 원시 시대는 모계 사회였다?
남성 사냥꾼이 먹여살리는 일부다처 부계 사회가 있었다는 기존 학설의 반박으로,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원시 공산주의'와 비슷한 설이며, 정확하게는 엥겔스가 주장한 모계 사회론을 받아들인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모계 사회가 있었으며 이것이 인간의 본래 사회 형태라고 말하는 것이다.다만 현대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원시 모계 사회', '군혼 사회'은 없고, 남녀 모두 비슷한 위치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실제로 수렵채집 사회에서도 일부일처제, 부계 사회가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으며, 이들의 수가 모계 사회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추정된다. 아래 역사학 부분 참조.
3.6. 남성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성별이 애초에 남성인 이상 여성만이 할 수 있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남성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지 않으며, 다양한 이유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남성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을 피하고 꺼리기도 한다.또한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에서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으며 잘못된 것으로 보기도 하며, 반대로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면 얼마든지 남성 페미니스트가 필요하다고 보기도 한다.
남성 페미니스트 역시 여성 페미니스트들처럼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 래디컬 페미니즘을 무작정 지지하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된다. 대표적으로 위근우 같은 인물이 있다.
남성 페미니스트, 남성 페미니스트(도서), he for she 문서 참고.
3.7. 현실과 이론의 괴리감
한마디로 말해 현실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 페미니즘 이론들을 토대로 사회운동, 시위를 하는 사람들과 페미니즘 이론의 근거를 논하는 학계, 학자들이나 칼럼 및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 사이의 괴리감과 거리감에 따른 논란. 물론 같은 학자들 및 기자들 간, 사회 운동, 시위자들 끼리도 괴리감들도 상당히 있다.그 외에도 페미니즘 이론가들의 담론과 그 과정에서 나오는 페미니즘의 부작용, 모순, 오류에 대한 이해를 모르거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채 페미니즘 담론에서 본인들에게 유리한 것을 취사선택하여 이를 토대로 사회운동,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 의해 생겨난 오해와, 모순들도 논란이 되었다.[2]
그밖에도 페미니즘은 현재 학자들이나 언론인들 개개인에 따라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는 논리와 주장들이 매우 다양하다. 때문에 한 쪽에서는 페미니즘은 남성 혐오나 차별, 비하 모욕 조장이 아닌 성 평등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퀄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실제로 현실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변호하는 일반 대중의 경우는 페미니스트는 남성 혐오나 차별, 비하 모욕주기가 아니라고 언급하지만 오히려 학자와 언론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주장하며 여성 위주의 페미니즘에 힘을 더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현실에 적용이 힘든 이론을 그대로 대입하는 경우도 많다. 성상품화같은 경우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본주의 시장에서 막는다는 것은 페미니즘국가라도 수립하지 않는 이상 힘들다. 그러다 보니 서양권에서는 포르노가 버젓이 유통되는데 2D 여성 캐릭터 벗은 몸이 검열되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일이 생긴다. 더군더나 한국에서는 기존 보수적인 사회상과 연관되어 성적인 것 자체를 악으로 취급하는 경향성 마저 보이고 있다. 성적대상화같은 경우 나쁜건 상대방의 동의가 없거나 강요, 혹은 범죄가 이루어지는 경우지, 남성의 머리 속 까지 검열하는 건 가능하지가 않다.
성욕이란 것은 본능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인데, 현실적으로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경계를 세워야 되는데, 무조건 안된다고 하면 현실성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반작용만 가져온다.
그리고, 스포츠계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현재 여자 축구계에서는 남녀 축구선수의 동등 임금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남녀 축구의 인프라 차이가 막대하기 때문에 이는 현실에 적용하기 힘든 이론 중의 하나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자 축구 문서 참조. 당장 같은 여자 축구에 열광할 여성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을지도 의문이다. 당장에 V-리그,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문서를 보면 알다시피 오히려 여자 배구가 여자 축구보다 남녀 팬들에게 인기가 더 많다.
또한, 어디까지나 페미니즘의 혜택을 보는 건 어느 정도의 힘이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괴리감은 국내 페미니즘 진영의 방향성 상실 중 반론 목차에서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3.8. 성소수자와의 관계
퀴어문화축제 등에서 자주 보이는 것처럼, 리버럴 페미니즘 혹은 TIRF 진영의 경우 성소수자 운동권과도 긴밀한 연대가 분명 존재는 한다. 이는 페미니즘이 섹슈얼리티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3][4]하지만 성소수자 운동 활동가들 중에는 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이들도 있는 반면 안티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이들도 있어 꼭 긴밀하다고만은 할 수 없으며[5], 반대로 성 소수자와 연대를 하거나 성 소수자 인권보호를 공론화하는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뒤에서는 트랜스젠더 혐오를 대놓고 선언하는 정당/인물들 역시 지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것은 한계레, 경향신문등 친페미니즘적 언론들도 마찬가지 인데 성과 관련된 문제에서 terf 성향의 인물들을 인용하는데 성엄숙주으로 갔을때 가장 쉽게 탄압을 받는 것은 성소수자 같이 비정형적 성행위를 하는 사람들이다라는 것은 과거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논쟁에서도 나온이야기다. 실제로 보수주의자들 기독교 우파들이 성교육과 도서관의 성교육 관련 도서를 검열하면서 내세우는 명분은 그것은 유해한 포르노라는 것이고, 이런 관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지식은 이상성욕을 묘사한 포르노가 되어 더욱 심하게 억압받게 된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성별 논란있던 운동선수를 서양의 진보 언론사들이 사실확인을 해가며 보도하는 동안, 이만 칼리프의 출신 국가가 LGBT의 존재가 범죄인 이슬람 국가인데다가 파리올림픽에는 트랜스여성 운동선수 자체가 없음에도 한국의 친페미적 언론사들은 기본적인 사실확인도 안한상태로 terf 트랜스혐오 선동을 그대로 전달하다가 한참후에 정정보도를 하기도 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우원재 같은 반페미니즘 유튜버가 빠르게 사실확인에 근거하여 비교적 중립적으로 사건을 설명하는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결국에는 성소수자 연대는 겉치레에 불과할 뿐 조금이라도 약자성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양성애자/동성애자/이성애자/무성애자/범성애자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활동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반목은 페미니즘을 고민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꽤 골치아픈 문제. 성 소수자 운동가들과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이성애 중심의 가족 구조와 사회 구조를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뜻을 같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주류 사회와 투쟁하여 권리를 쟁취한다는 '전략적 목표' 때문에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정치적 동맹'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운동권의 연대와는 별개로, 성소수자 운동에 끼어드는 페미니스트들을 안 좋게 보는 성 소수자들도 상당히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트위터 페미니즘으로 대표되는 TERF가 혐오대상으로 삼고있는 트랜스젠더 중에도 래디컬 페미니즘만을 배척하는 케이스도 있으나 페미니즘 자체를 배척하는 케이스도 존재하며, 시스젠더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PC통신의 시작과 함께 대두된 부녀자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을 시작으로 몇십년의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네이트 판 아웃팅 사건/메갈리아 게이 비하 및 아우팅 시도 사건 등을 겪으며 여성에 대한 공포를 가지거나, 과하게 나갈 경우 가해세력으로 일반화하여 이성애자 여성을 혐오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였고 이의 연장선으로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경우 또한 존재하는 편이다.
반대로 메갈리아나 워마드로 대표되는[6] 래디컬 페미니즘이나 그 하위분파인 TERF가 페미니즘의 주류에 가까워짐과 동시에[7] 같은 성소수자 운동권에서의 연대 유지를 위한 무리수에 의해[8] 페미니즘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성 소수자 역시 계속해서 생기고 있는 상황이다.
남녀관계 자체를 남성의 여성 지배로 파악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랑을 하겠다는 뜻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레즈비언이 되겠다 주장하는 일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도 존재한다. 본인은 헤테로섹슈얼이지만 페미니즘을 실천하기 위해 호모섹슈얼처럼 행동하겠다는 의미인데, 이는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취급하며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호모포비아들에게 크나큰 빌미를 내어주는 혐오행동일 뿐이다.
3.8.1.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핍박과 멸시
자세한 내용은 TERF 문서 참고하십시오.3.9. 강간의 해결에 대한 방법론적 문제
페미니스트는 강간을 성욕 및 정신병과는 별개로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보고 있기에 교육을 통해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범죄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강간의 심각성에 대한 경시와 관대한 처벌을 통해 구현된 "강간 문화"가 사회문화적 요인으로서 존재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이 즐겨쓰는 가부장적 사회의 프레임에 합치한다. 이렇게 페미니스트는 강간을 젠더 이슈로 해석하기에 성범죄에 대한 교육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강간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성들에게 조심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Teach Men Not To Rape) 한다는 주장이다. 기존의 성교육에서는 강간을 단순히 여자가 조심해야 하는 것으로만 몰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에 따른 결과로 강간 피해자에 대해 "그러게 왜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녀?" 혹은 "그러게 왜 야한 옷을 입었어?" 등의 언행으로 상처를 더하는 2차 가해가 빈번했다. 심한 경우는 성희롱으로까지 번지는 이러한 2차 가해는 21세기에 들어서도 해결되지 않은 사회적 문제다. 강간의 도덕적 범죄적 책임이 가해자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여 사회적으로 2차 가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성폭행에 관한 교육에 변화가 필요하다.[9]여기에 대해서 "왜 남성들에게 강간의 책임을 지우는가? 차라리 '사람들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가르쳐라(Teach People Not to Rape)' 가 낫지 않은가?" 라고 반문하거나, 혹은 "흑인들에게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고 가르쳐라", "무슬림에게 테러하지 말라고 가르쳐라" 라고 말하는 것도 정당화되느냐고 반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두 가지 반응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만,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는 이것이야말로 강간 문화에서 예상되는 가장 대표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이 강간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앞뒤 맥락 다 잘라버리고 슬로건 하나만 던져놓은 것도 상당 부분 사실이다.) 아마도 페미니스트들은 전자의 반응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도 '괜찮아, 남자가 싫다고 말하는 건 사실 내숭떠는 거니까 억지로 섹스해도 돼!' 라고 가르치던가? 여성들에게도 상대방의 의사를 거슬러 섹스하는 게 여자다운 여자라고 가르치던가?"[10] 그리고 후자의 반응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흑인들에게 재산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에게 '그러길래 왜 거기다 주차를 했어? 왜 거기다 상점을 차렸어?' 라고 비판하던가? 세계무역센터 옆을 지나가다 변을 당한 사람들에게 '그러게 왜 하필 그 시간 그 장소에 거길 지나갔어? 알아서 몸조심을 했어야지!' 라고 비판하던가?"
페미니즘 진영의 방법론이 거창한 사회문제를 다루기 위한 방편으로 고작 '의식 고양'이니, '대중 계몽'이니, '차별적이지 않은 일상언어'니 하는 것들만 내놓는다는 지적은 사회적으로 정말 많은 의의가 있으며 굉장히 건설적인 논쟁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왜 모든 남자들을 죄다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가느냐", "흑인이나 무슬림에게도 그럴 셈이냐" 라고 항의하는 것은 거의 생산적인 논의가 불가능하게 만든다. 오히려 이런 식의 주장은 우리 사회 전체의 공공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방어적 반응에 가깝다. 그보다, 이미 숱하게 많은 지식인들이 강간 문제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대응방식이 부적절하다는 측면을 지적해 왔으며, 특히 보수주의적 관점에서 볼 경우 '강간 우범군일지라도 교육하고 계몽하면 얼마든지 교화될 수 있다' 식의 주장은 인간관 수준에서 공격받을 여지가 다분하다. 그 외에도 강간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가해자군을 교육하느니 차라리 여성들이 피해 상황에 처했을 때 호신 방법이나 자구책을 알려주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은가 하는 문제,[11] 강간 피해자들의 삶을 지나치게 눈물과 비극의 서사로만 프레임화함으로써 이들이 젠더 위계와 지배체제를 교란할 권력을 갖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탈권력화를 초래한다는 문제 등의 비판이 매우 많이 제시되었으나, 이에 대한 페미니즘 진영의 답변은 모두를 만족시키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4. 대한민국의 경우
자세한 내용은 페미니즘/비판 및 논란/대한민국 문서 참고하십시오.
[1]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1세대 여성운동이 시작된 계기가 콘돔의 발명과 상용화에 있다고 생각한다.[2] 당장 페미니즘 시위에서 자주 등장한 남성 비하 차별 혐오 발언들만 해도 학계 페미니즘에선 남성혐오와 비하, 차별에 대해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있었더라도 이러한 페미니즘 학자들은 다른 페미니즘 학자들에 의해 거세게 비판받았다.[3] 애초에 젠더학의 가장 큰 세 갈래는 여성학, 남성학, 퀴어학이다.[4] 실제로 페미니즘에서 정의하는 분파에 따라서 여성혐오에 동성애 혐오도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존재한다.[5] 다만, 2019년의 퀴어문화축제 대리모 논란 등을 보면 페미니스트 연대세력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는 경우는 운동권 내에서 집단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해당 케이스가 메이져해지기는 힘든 것으로 보여진다.[6] 대부분의 단체가 그러하지는 아니하지만, 심지어 성소수자 운동권과 연대세력인 여성인권단체 중 일부마저 이들을 두둔하기까지 해 상황이 더 복잡하다.[7] 네이트 판 등에서의 아웃팅을 시작으로 트랜스여성의 여대 입학 논란까지[8] 예를 들어 2019년 서울 퀴어문화축제의 대리모 논란의 경우, 옳고 그름을 떠나 어느정도의 지속적 논의가 필요한 주제에 대해 초창기에는 의견 보류를 하는 형식으로 대응을 잘 한 편이었으나, 계속된 페미니즘 단체의 항의에 의해 자신들이 대표해야 할 성소수자의 의견취합과정 없이 연대세력인 페미니즘 세력의 의견만을 수용하는 결말을 내는 등 비판의 여지가 생기기도 하였다. 물론 해당 부분은 클로짓이 대다수일 수 밖에 없는 '성소수자'가 신뢰 가능한 모집단으로 통계를 낼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섣불리 언급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대표성을 깨뜨리는 문제가 되어버린다.[9] 어떤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다. 예를 들어 절도를 예방하려면 문단속을 잘 해야 하고 뻑치기를 당하지 않으러면 밤늦게 술취해서 으슥한데 혼자 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범죄 자체의 책임은 가해자에게 있는 것이지 피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학교로 치면 왕따도 잘못했으니 그것도 왕따 탓이라고 주장하는 꼴이다. 이 부분에서 옛날의 관점의 문제는 피해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의 관점은 아예 조심할 필요가 없다는 식이라는 문제가 있긴 하다.[10] 첨언하자면 이것은 특히 미국에서 효과적인 논변이다. 미국에서 흔히 이상화되는 남성성은 우리나라 사회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꼴마초라고 느껴질 정도로 무지막지한 폭력성과 야수성을 드러낸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흔히 말하는 "고개 숙인 가장", "축 처진 아버지의 어깨" 같은 표현들에서 보듯이 남성성이 훨씬 더 고된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 대신 군사독재의 영향으로 인해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의 경향이 상당히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 진중권이나 박노자 등도 이를 지적해 왔다.[11] 심지어 극단 페미니스트 측에서는 피해자의 자구책이나 안전책을 언급하는 것 만으로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등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도 하여 대화를 더 어렵게 만든다. 피해자 측에서 최소한의 경계 및 예방을 할 수 있는 법을 가르침과 동시에 범죄의 책임은 무조건적으로 가해자에게 있다는 점 또한 확실히 알리는 교육이 가장 균형잡힌 형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