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5:55:34

확증 편향

확증편향에서 넘어옴
1. 개요2. 통념3. 원인4. 사례
4.1. 나무위키
5. 관련 어록들6. 기타7. 관련 문서

1. 개요

/ Confirmation Bias, Myside Bias

자신의 견해 내지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

유사어로 불완전 근거의 오류(the fallacy of incomplete evidence), 체리만 집어 먹기(cherry picking), 불리한 증거 무시하기(suppressing evidence) 등이 있다.

2. 통념

확증편향은 사람들이 어떻게 자아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피드백을 얻기를 열망하고 이끌어내려 한다.

연구자들의 비유는 다음과 같은데, 거만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이 파티에 도착하면,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하는 지인들을 찾고, 대화 중에는 존경될 것으로 기대되는 바에 따라서 자신의 관점과 영향력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파티 후에 그 사람은 자신의 영향력이 약했던 대화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지배했던 대화의 내용과 그 설득력에 대해서를 훨씬 잘 기억하게 된다. 이렇게 확증편향이 자기상을 확증한다.#

일상에서도 종종 "인간은 진실을 믿지 않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망상과 연관이 되어버리면 경우에 따라선 자칫 일이 커지거나 극단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불러오기도 한다.

3. 원인

확증편향에 빠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안정성을 추구하기에, 정서 불안을 이유로 자기자신에게 화살을 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려면 자신도 그 대상으로 포함하여 지금까지 스스로가 해온 행동과 그 행동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자기판단의 원인과 결과 모두를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우 자신의 생각이 그릇되어 있거나 비뚤어져 있음을 인정하게끔 한다. 그렇기에 자기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에서는 현타라 불리우는 시간을 갖게 되며, 자아성찰이라고 부르는 자기반성이 따라온다.

이는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과도 같다. 앎의 세 가지 단계와 같이,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한계를 넘어서서, 자기 행동을 타자화시켜 제 3자에게 자기 생각과 행동이 실제로 어떠한 모습인지 바로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와 현실에서 대화하는 것이 아닌 보고싶은 내용만 볼 수 있는 인터넷 특성상, 개인의 불호는 무시하기가 쉽다. 단체 카톡방,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논쟁이 일어나는 경우 자신의 의견을 관철해야 하는 자존심문제가 겹쳐져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더 나은 정보를 보다 더 제공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학자들은 보다 나은 교육이나 방송을 통해 잘못된 시각을 퇴출시키기를 바라고, 사회평론가들은 건강 보험이나 지구온난화 같은 이슈에 관한 정확한 사실과 전문가의 보고서를 대중에게 제시하는 방법으로 여론을 움직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그런 희망은 실제로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하는지에 관한 오해에 기초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간의 견해는 개인의 합리성보다 공동체의 집단사고에 의해 형성된다. 어떤 사람이 어떤 견해를 고수하는 것도 집단을 향한 충성심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사실을 늘어놓고 그들 개인의 무지를 들춰낼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주제에 관한, 길고 지루한 사실나열을 싫어한다. 또한 자신이 틀렸다거나 멍청함이 드러나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심지어 학자들도 집단사고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사실이 여론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학자들 자신도 집단사고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자연, 사회) 과학 공동체는 사실의 효력을 믿는 집단이다 보니, 이런 공동체에 충직한 학자들은 올바른 사실만 열거해도 토론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인터넷과 알고리즘 발달 영향으로 입맛이 맞는 영상만 시청자에게 보여줌으로써 확증 편향이 더 심해지고 있다.

4. 사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정부 내각, 기업, 군 지휘관, 단체장, 개인이 확증 편향의 오류에 빠져 많은 자충수를 두고 패착을 두었다.
  • 기상학, 생물학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정치인들이 기후변화와 유전자 변형 농작물에 관한 정책을 제안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헤아리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로 가득한 반향실(反響室)과 자기 의견을 강화해주는 뉴스 피드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믿음은 계속해서 공고해질 뿐 도전받는 일이 거의 없다.
  • 태평양전쟁의 일본군이나 피그만 침공 등의 실패에 대해 실패 당사자들의 기록을 보면 그 당시 정보상으로는 도저히 질 수 없는 수준이라는 내용이 상당수 등장한다. 그러나 정작 다른 기록을 보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명확한 정보가 수두룩한 상태였다. 또한 기업가들은 최선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기 위하여 최신의 경영 시스템을 활용하는 게 아니고, 자신이 선호하는 마케팅 전략이 옳다는 것을 증명받고 싶어서 최신의 경영 시스템을 활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자신과 의견이 유사한 다른 논객들과 많은 교류를 나누고 모임을 하지만,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만남을 최소화한다.
  • 인종차별주의자들 또한 확증편향에 빠져들기 쉬운데, 과거의 우생학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피차별인종이 열등하다는 전제를 깔아 놓고, 피차별인종에게서 보이는 백인과의 '차이점'을 '열등함'의 증거로 포장했다. 즉 자기들이 경멸하는 흑인이 열등하다는 증거('인종 서열'을 입증할 증거)를 찾고, 안 보인다면 만들어서라도 증명하려한 것이다. 우생학을 근거로 만들어진 혈액형 성격설도 비슷한 사례이다.
  • 편견을 가진 집단에서 무슨 사건사고가 일어났다 하면 해당 국가/민족 전체를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미리 일부드립으로 비꼬면서 일반화를 정당화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되는 개인/집단은 상대적 소수가 맞다. 하지만 상대적 다수는 뉴스를 거치지 않아서 묻힐 뿐이다. 이러한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려면, 사건사고의 주체(소수)가 누구인가를 봐야 할 뿐 말고도, 해당 국가/민족의 여론(다수)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총기 난사 범죄를 저지른 조승희는 한인 출신이지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그의 범죄를 부정적으로 본다. 따라서 조승희가 한국을 대변할 수는 없다.
  • 각종 음모론을 신봉하는 자들도 확증편향의 전형적 사례라 해도 무방하다. 아폴로 계획 음모론이나 지구 평면설을 믿는 음모론자들을 보면 객관적이고 명백하게 입증된 과학적 사실은 애써 무시하고, 아주 일부의 모호한 점만을 가지고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며 편향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눈으로 뻔히 보이는 증거들조차 왜곡된 것이라며 부정하고(예를 들어 지구 평면설에서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물체들, 고고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지구 곡률 등...) 자신들의 논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을 보면 확증편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유사과학 신봉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관상을 신봉하는 사람이 그 예시에 해당되는데, 사실 관상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절대로 없고 오로지 감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일단 관상은 성형수술로 고칠 수 있으며, 아름답고 좋은 얼굴을 가졌지만 학원폭력이나 마약 강간 등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의 예로 간단히 파훼된다. 특히 군대 이야기에서 이런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온다. 일종의 귀납적인 성향.
  • 누명 쓰기
    • 1961년 자로 영국에서 일어난 버킹엄셔 주 A6도로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인 A6 도로 살인사건은 확증편향의 폐해를 제대로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경찰은 그 당시에 제대로 된 증거 하나 찾지 못한 채 범인 식별 절차를 통해 이 사건의 목격자였던 발레리 스토리의 증언만으로 제임스 핸래티를 범인으로 간주하고 체포했다. 사람들은 그의 무죄를 주장하며 재수사를 요구했지만 제임스 핸래티는 1962년 4월 4일 자로 교수형을 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로 인해 경찰은 사건의 빠른 종결을 위하러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았고, 발레리 스토리 역시 불안정한 기억에 근거한 섣부른 증언으로 죄 없는 한 남자를 죽게 했다며 손가락질을 받고 언론과의 인터뷰도 거부한 채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1997년에 재수사가 실시되었다. 경찰이 사건 당일에 범인이 쓴 총을 감쌌던 손수건과 발레리의 속옷에 남은 체액에서 DNA를 채취해 제임스 핸래티의 시신과 그의 가족의 몸에서 채취한 DNA와 대조해 보았는데 DNA가 모두 일치했고, 이로써 죄가 없음에도 범인으로 무고하게 몰린 줄 알았던 제임스 핸래티가 진범임이 최종 확정되었다. 한 가지 기막힌 사실은 제임스 핸래티가 사형을 당하기 전날 부모님이 면회하러 온 때에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억울해하는 뻔뻔함을 보였다는 것이다.
    • 한국에서 비슷한 사례로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서 누명을 쓴 윤성여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윤성여는 일관되게 결백을 주장했으며 범행과정으로 밝혀진 내용도 허술한게 많았으나, 경찰, 검찰, 법원 모두가 확증편향에 빠져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말았다. 수감 이십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 1980년 자로 호주에서 있었던 딩고 사건도 확증편향의 폐해를 제대로 보여준 사건이다. 울루루에서 1980년 8월 17일에 생후 2개월 정도밖에 안 된 아기 아자리아 체임벌린이 딩고에게 잡혀가 죽은 사건이다. 호주 경찰은 그 당시에 부모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인신공양 의식을 위해 아기를 살해했을 거라 보았고 아기의 부모를 기소했다. 언론은 이 부부를 엽기살인마로 몰아가는 기사를 지속적으로 써댔고, 이 기사를 본 사람들 역시 아기의 부모인 체임벌린 부부를 비난했다. 게다가 딩고를 연구해 본 적이 없는 비전문가들이 마치 딩고의 습성을 잘 아는 것인 양 말도 안 되는 증언을 했다. 이 때문에 체임벌린 부부는 아이를 잃은 슬픔과 누명을 쓴 것에 대한 억울함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받아야 했다. 자세한 것은 딩고 사건 문서 참조.
  • 유권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정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유권자라면 그 정책을 지지하는 연구결과, 신문 기사나 칼럼 등을 읽으면 당연히 그러하다고 느끼는 반면, 그 정책을 비판하는 연구 결과나 기사 등을 읽을 때에는 불쾌감을 느끼거나 심지어(그 연구 결과 등이 올바른 방식과 근거에 기초해서 나온 편향성 없는 결과라는 전제 하에) 덮어놓고 '잘못된 것'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다.
    흔히 "내 주변에는 XX당을 지지하는 사람밖에 없어."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예시에 해당된다. 자기 정치성향과 완전 정반대인 사람과 친하게 지내겠는가? 아니면 정치성향이 같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겠는가? 특히 사람을 사귈 때 정치성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치성향이 완전 정반대면 그 사람과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을 멀리하고, 정치성향이 같으면 말이 잘 통하니까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
    이와 비슷하게, 언론의 경우에도 서로 다른 논조의 신문을 나란히 놓고 교차검증을 해보는 태도가 중요하다.[1]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도전적인 정보를 본능적으로 꺼린다. 그렇기에 확증편향을 이겨내고 올바른 지적 성실성(intellectual integrity)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현대의 비극적 피카레스크 작품들의 경우 주로 이 문제로 비극을 겪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비해 대단히 뛰어난 영웅적 인물이 주인공인 경우가 줄어들고 평범한 인간 군상에 포함되는 인물인 경우가 늘어난 것과 선악의 모호함이 더 고평가받는 경향성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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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나무위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비판 및 문제점/문서 서술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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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과거에 비해 상당히 비대해진 영향력을 가지게 된 나무위키도 이 확증편향의 문제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명확한 답안이 없고 전문성 없는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쉬운 사회/정치 분야에서 이런 경향이 돋보이는데, 특정 정치인 혹은 정치적 사건에 대한 문제점/비판 문서는 그 반대측 지지자들의 기여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특정 사회적 현상에 대한 문제점/비판 문서의 경우 그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측에 서있는 편집자들의 기여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견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취하는 성향"이라는 확증편향의 정의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여기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쉽게 횡행하는 극단주의, 반지성주의, 음모론 적인 주장을 펴는 기여자가 가세하면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5. 관련 어록들

"이들 보통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권위에 대한 믿음이 어찌나 단단한지, 다른 시대나 국가, 다른 집단이나 교회, 계급 그리고 정당 등이 자기 집단과 정반대로 생각해왔고 심지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 집단이 오류에 빠진 사람들을 바르게 이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p. 46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의견을 채택한 뒤에는... 모든 얘기를 끌어들여 그 견해를 뒷받침하거나 동의한다. 설사 정반대를 가리키는 중요한 증거가 훨씬 더 많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며... 미리 결정한 내용에 죽어라고 매달려 이미 내린 결론의 정당성을 지키려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기존의 견해들이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다."
워렌 버핏[2]
"이 시대의 아픔 중 하나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무지한데, 상상력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의심하고 주저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세상을 자신의 선입관에 맞춰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와 상반된 관점은 필연적으로 생각하는 수고로움을 동반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죠. "
(We all have a tendency to think that the world must conform to our prejudices. The opposite view involves some effort of thought, and most people would die sooner than think – in fact they do so.)
버트런드 러셀, 《The ABC of Relativity》(1925)
"만약 누군가가 유능한 교수라면, 그의 첫 번째 임무는 학생들에게 그들 자신의 가치입장의 정당화에는 불리한 사실들ㅡ즉, 학생의 당파적 견해에 비추어볼 때 학생 자신에게 불리한 그런 사실들ㅡ을 인정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모든 당파적 견해에는ㅡ예를 들면 나의 견해도 포함해서ㅡ이 견해에 극도로 불리한 사실들이 있습니다. 만약 대학교수가 그의 수강생들을 그것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한다면, 그는 단순한 지적 업적 그 이상을 행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너무나 소박하고 당연한 일에 대한 표현치고는 어쩌면 너무 장중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감히 그것을 '도덕적 업적'이라고까지 부르고 싶습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 pp.65-66
"제임스 핸래티가 다시 돌아와 자신이 범인이라고 털어놓아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거에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아요.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니까요."
A6 도로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발레리 스토리가 2002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
"현명한 자는 보는 걸 믿고, 겁쟁이는 믿는 걸 본다."
이오시프 스탈린[3]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펼치는 것이 인생의 낙이라고 하였다. 어느 때부터 신문에서 매일 담배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기사가 계속되자 그는 신문을 끊었다."
담배의 중독성에 관한 유머.[4] 비슷한 예로 김숙의 이 짤이 있다.
“누가 나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주는가?” 이 기준에 따라 ‘의인’과 ‘참언론’의 여부가 결정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런 기능에 충실한 ‘해장국 언론’을 갈망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당신은 이미 스스로 정해놓은 답을 찾는 ‘답정너 언론’을 열망하는 건 아닌가요? 물론 ‘진실에 대한 갈증’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진실 추구의 기본적인 자세는 확신을 유예한 가운데 다양한 정보를 많이 접하면서 냉정한 분석에 임하는 것이지요. 당연히 기레기라는 욕도 자제해야겠지요.
-강준만, 「기레기라고 욕하는 당신께
"한 가지 사건을 자기의 반대의 의견을 듣지 않고 결정하는 사람은, 이를테면 그의 의견이 정당했다 하더라도 정당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완고한 인간이 의견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의견이 그를 잡고 놓지 않는 것이다."
-알렉산더 포프(영국의 시인)

6. 기타

2010년대에 들어 구글이나 유튜브, SNS의 사용자 맞춤 알고리즘이 확증편향을 가속화한다는 비판이 있다.[5] 이른바 필터버블로서, 이들의 알고리즘은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줌'으로써 사용자를 잡아두는 용도로 쓰는 것인데, 이것이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하게 되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실제로 2010년대의 미국은 정치적 양극화와 반지성주의가 심해져서 사회적 문제로까지 떠오르게 된 상황이라고 한다.

확증편향이 굉장히 재미있는 주제이다 보니, 2014학년도 수능 영어 B형 36번에서 확증편향을 주제로 낸 지문이 등장했으며, 2020년도 지방공무원 9급 공채 시험 국어 B책 19번에서도 확증 편향을 주제로 한 추론 문제가 등장했다.

유사한 다른 개념으로 근접편향(proximity bias)이 있다. 이는 물리적, 심리적으로 자신에게 친숙하고 가까울수록 그것에 호의적인 정보만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Backfire effect도 같은 원인으로 발생하는데, 기존 믿음을 부정하는 사실을 접했을 때, 믿음을 바꾸는 대신 사실을 거부하고 오히려 기존 믿음을 강화하는 경향을 말한다. 뇌과학자들에 의하면 생각을 바꾸는 것이 뇌의 입장에서는 고통이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는 행동이라고 한다.

7. 관련 문서



[1] 다만 이런 경우엔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들은 빛 속에서 살 것이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어둠 속에서 살 것이다" 라는 김수환 추기경의 말처럼 보도하는 국내 세력 양측 다 권력과 연관이 생기면 올바른 진실을 보도하기 힘들어진다. 그럴 땐 권력과 거리가 먼 외국 언론의 기사를 찾아보든지 해야 할 것이다.[2] 게토레이, 테라노스 사건 참조[3] 트로핌 리센코 참조[4] 이쪽은 보기 싫은 것(담배의 해악)은 거부하는 소극적 확증편향으로 볼 수 있다. 적극적인 확증편향의 예로는 '봐라! 아무개는 담배 피고도 100살까지 살았다!'라는 기사를 제시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5]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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