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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스 John Rawls | |||
<colbgcolor=#314e92> 본명 | 존 보들리 롤스[1] John Bordley Rawls | ||
출생 | 1921년 2월 21일 | ||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 |||
사망 | 2002년 11월 24일 (향년 81세) | ||
미국 매사추세츠 주 렉싱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314e92><colcolor=#fff> 학력 | 켄트 스쿨 (졸업) 프린스턴 대학교 (A.B.) (1943년)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 / Ph.D.) (1950년) | |
경력 | 코넬 대학교 (철학과 / 부교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철학과 / 정교수)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 / 명예교수)[2] 옥스퍼드 대학교 (풀브라이트 장학 재단장) | ||
지도교수 | 월터 테렌스 스테이스 | ||
사상 | 자유주의 (미국)[3], 사회자유주의[4] | ||
직업 | 철학자, 윤리학자, 작가 | ||
키 | 192cm | ||
가족 | 배우자 마거릿 워필드 폭스(1949년 결혼 ~ 2002년 사망) 딸 앤 워필드 롤스(1950년 11월 20일생) 아들 로버트 리 롤스 아들 알렉산더 에모리 롤스 딸 엘리자베스 폭스 롤스 | ||
종교 | 무종교 (무신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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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40년 동안 '정의' 한 주제만을 파고든 정치철학자이자,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의 저자.20세기 중반까지 언어적, 개념적 분석에 치중하는 분석 철학(analytic philosophy)이 유행하던 영미 철학 지형에 『공정으로서의 정의(1958)』와 『정의론 (1971)』[5]이라는 걸출한 정치철학 텍스트를 발표하면서 윤리학, 정치철학에서 규범적 논의를 부활시킨 일등 공신이라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롤스가 정의론을 발표한 후 그의 프로젝트를 옹호하는 로널드 드워킨 같은 걸출한 자유주의 법철학자도 주목받게 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자유지상주의 진영의 로버트 노직과의 '자유지상주의-평등주의적 자유주의[6] 논쟁', 1980년대에는 공동체주의 진영에서 마이클 샌델이 존 롤스의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촉발된, 마이클 왈저, 찰스 테일러,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등과의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의 주역이었기도 했다. 이 논쟁은 원래 영미권, 그중에서도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논쟁이었음에도 후에 신실용주의(neo-pragmatist)를 대표하는 리처드 로티, 비판이론을 대표하는 하버마스도 참가했을 정도로, 서구 지성사의 메인이 되는 논쟁이므로 롤스의 파급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롤스라고 하면 『정의론』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 그의 저서 중에서 이 책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후기 롤스[7]의 저서인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 1993)』와 『만민법(The Law of Peoples, 1999)』도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전공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 나올 때마다 영미 정치 철학계에서 논쟁의 중심이 되었고, 그만큼 영향력이 컸음을 뜻한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롤스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그는 볼티모어의 저명한 변호사인 윌리엄 리 롤스(William Lee Rawls)와 여성 유권자 연맹의 지부장이었던 애나 에이벨 스텀프(Anna Abell Stump Rawls) 부부 사이의 다섯 아들 중 둘째였다. 롤스는 1928년 7세 때 디프테리아에 걸렸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2살 아래 동생 보비가 그의 방을 드나들다가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어 병을 앓다가 죽었다. 이듬해 겨울에는 폐렴에 걸렸는데, 또 다른 남동생 토미가 그에게서 전염돼 사망했다. 연속적인 형제의 상실은 "존의 어린 시절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었다.롤스는 볼티모어의 칼버트 학교를 졸업하고 코네티컷의 성공회 예비 학교인 켄트 학교에 등록했다. 1939년 졸업과 동시에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에 다녔고, 그곳에서 아이비 클럽과 미국 휘그-클리오소픽 협회에 가입했다. 그는 프린스턴과 코넬에서 공부했으며 그곳에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제자인 노만 말콤의 영향을 받았다. 프린스턴에서의 마지막 2년 동안에는 신학의 교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는 성공회 사제직을 위한 공부를 하려고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고민하는 와중에, 종교적으로 매우 강렬한 논문을 썼는데 이것이 수석논문이 되었다. 《죄와 믿음의 의미》라는 제목의 181페이지 분량의 긴 논문에서, 롤스는 "펠라기우스의 접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로 만들 수 있다"면서 펠라기우스를 맹비난했다. 그의 주장은, '능력의 불평등이 사회의 부의 분배에 대한 정당한 결정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비판한 카를 마르크스의 저서에서 부분적으로 도출된 것이다. 롤스가 무신론자가 된 후에도 그가 사용한 많은 펠라기우스 비판할때 동원된 주장은, 이후 쓰여진 《정의론》에서 반복된다. 그는 이 논문으로 1943년 프린스턴 대학 인문계열 학부에서 최우등 졸업을 한다.
2.2. 군 복무
롤스는 1943년 2월에 미 육군에 입대하였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그는 태평양 지역에서 보병 역할에 있으면서 뉴기니를 의무 순회하였고 여기서 동성 훈장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는 격렬한 참호전을 겪으면서 폭력과 유혈이 낭자한 충격적인 장면들을 목격했다. 그는 그곳에서 기독교 신앙을 잃고 무신론자가 되었다.일본이 항복하자 롤스는 맥아더 장군의 점령군 일원이 되었고, 상사로 승진했다. 그러나 그는 히로시마 원폭의 참상을 보고 군대에 환멸을 느꼈다. 군대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롤스는 자신의 친한 동료 병사를 징계하라는 명령에 '어떤 처벌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불복종했고 이등병으로 강등되었다. 그는 1946년 1월에 군을 떠났다.
2.3. 교수 생활과 제자 양성
1946년 초, 롤스는 도덕철학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프린스턴으로 돌아왔다. 1949년에는 브라운 대학을 졸업한 마가렛 워필드 폭스(Margaret Warfield Fox)와 결혼했다. 그들은 앤 워필드, 로버트 리, 알렉산더 에모리, 엘리자베스 폭스 등 4명의 자녀를 두었다.1950년, 《윤리적 지식의 근거들에 대한 연구》[8]라는 논문으로 프린스턴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린스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52년 미국 국비장학생 자격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잠시 있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유주의 정치이론가 이사야 벌린과 법률 이론가인 허버트 하트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코넬 대학에서 처음에는 조교로, 그 다음에는 부교수로 재직했다. 1962년 그는 코넬 대학에서 철학 정교수가 되었고, 곧 MIT에서 종신직 교수를 얻었다. 같은 해에 하버드 대학교로 옮겼고, 이후 계속 있으면서 하버드대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게 된다.
1960년대에는 흑인과 가난한 미국인들을 차별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베트남 전쟁 징병을 반대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갈등은 그로 하여금 부당한 전쟁을 무자비하게 추진하는 미국 정치시스템의 결함을 분석하고, 시민들이 정부의 지나친 정책에 양심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려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무렵에 펼쳐진 마틴 루터 킹의 흑인 인권운동 등에 롤스는 깊이 영향을 받았다.
1971년에는 이런 연구 결과들을 집대성한 그의 대표작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을 내놓았다. 여기에서 롤스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강조하여 학계에 수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롤스의 이 작품은 경제적 의미에서 명백히 '재분배주의'에 해당되는 것이었으며, 이는 학자와 정치인들 및 이 책을 읽은 대중들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주장은 자유지상주의자 로버트 노직과 공동체주의자 마이클 샌델과 같은 수많은 정치철학자들에게 자극을 주었고, 철학자들을 자유주의 논쟁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9년 롤스에게 국가예술훈장(National Medal of Arts)을 수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도덕적 요구 측면에서 뿐만아니라 논리적인 측면에서도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사회'를 증명함으로써, 존 롤스는 거의 혼자 힘으로 철학과 윤리학이라는 학문을 되살려 놨다."[9]
2.4. 말년
롤스는 '말더듬증'[10]과 '세상의 이목이 쏠리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으며,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중 지식인이 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주로 학업과 가족 생활에 전념했다.1995년 그는 몇 차례의 뇌졸중으로 고생했고, 이로 인해 자신의 일을 계속하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제 정의에 대한 그의 관점을 잘 보여주는 《만민법》을 완성할 수 있었고, 죽기 직전인 2001년에는 《공정으로서의 정의: 『정의론』 비판에 대한 응답, 그 수정》을 출판하였다. 그는 2002년 11월 24일, 8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매사추세츠의 마운트 오번 공동묘지에 그의 무덤이 있다.
3. 사상
후기 롤스인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는 『정의론』에서의 구상을 이어가면서도, 거기서 제시한 정의론이 어떤 인간 본성에 대한 특정한 가정[14]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입헌민주주의의 정치제도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것으로, 서로 다른 철학적, 종교적, 형이상학적 신념을 지닌 시민들 간의 '중첩적 합의'를 통해 자신의 정의론을 정초할 수 있다는 점을 논증한다.
3.1. 전기 롤스
3.1.1. 원초적 입장
정의란 무엇인가? 바로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 이다. 다시 말해 각자의 합당한 몫을 보장해주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15] 그렇다면 그 몫이 정말로 합당한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롤스는 그것을 ‘몫’에 대한 내용에서 찾기보다는 공정한 절차에 의한 합의에서 찾는다.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기 위해 롤스가 도입한 장치가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다.롤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이야기 하는 '사회'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는 사회를 하나의 협동 체계로 본다. 협동을 통해 각 개인은 사회를 이루고 살지 않을 때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하지만 협동을 통해 발생한 이익을 분배할 때, 각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상충한다. 이때 발생하는 문제가 정의의 문제다. 이때 정의의 핵심이 바로 '공정한 최초의 상황(원초적 입장)에서의 합의'이다. 롤스가 스스로 그의 정의관을 '공정으로서의 정의'[16]라고 부르는 이유다.
롤스에 따르면 이 원초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특정한 분배적 정의에 만장일치로 동의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분배 정의는 무엇을 분배하는가? 롤스에 따르면 기본가치[17]다. 이것들이 기본가치인 이유는, 개인이 어떤 삶을 살아가든[18] 필요로 하게 되는, 그래서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자 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기본가치를 분배하는 구조를 기본구조라 하며, 정의의 주제가 바로 이 '기본구조'다.
특히 이 기본구조는 인간들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그들의 인생 전망에도 영향을 미침으로써,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소망까지 정해주게 된다. 이러한 기본 구조 속에는 여러가지 사회적 지위가 속해 있으며, 서로 다른 지위에서 태어난 인간들은 정치 체제 뿐만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여건들에 의해서 어느 정도 정해진 서로 상이한 기대를 갖게 된다. 이런 식으로 사회 제도로 인해서 어떤 출발점에는 다른 출발점보다 유리한 조건이 부여된다. 이러한 것들은 특히 뿌리 깊은 불평등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은 지배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최초의 기회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능력이나 공적이라는 개념에 의거해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다. 사회 정의의 원칙들이 제일 먼저 적용되어야 할 부분은 어떤 사회의 기본 구조 속에 있는, 이와 같은 거의 불가피한 불평등인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원칙들은 정치 조직의 선택과 사회적 중요 요인들을 규제하게 된다. 한 사회 체제의 정의 여부는 본질적으로 권리와 의무가 할당되는 방식에 달려 있으며 사회의 여러 방면에 있어서 경제적 기회와 사회적 조건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기본 구조는 어떤 원칙을 따라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이 '두 원칙'이다. 따라서 롤스는 원초적 입장에서 자신의 두 원칙이 선택될 것임을 보이고자[19] 한다. 따라서 그의 논증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우선 자신의 원초적 입장이 왜 정당한지 보이는 것이고, 그 원초적 입장에서 왜 두 원칙이 선택되는지 보이는 것이다. 자세한 논증은 『정의론』 3장 참고.
원초적 입장은 일종의 사고 실험 장치이자 사회 구성원이 정의의 원칙에 합의하기 위해 수용해야 할 도덕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20] 이러한 원초적 입장을 특징짓는 조건은 중 하나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다. 인간 사회에 관한 일반적 사실법칙은 알고 있으나, 이러한 지식이 아닌 자신의 자연적 재능, 사회적 지위, 인생 계획, 자신의 가치관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인지적 조건이다. 다른 하나는 합의의 당사자들은 타인의 이해 관계에 대해서 상호 무관심한 합리적 존재라는 동기적 조건이다. 이는 서로 타인의 이해관계에 관심이 없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개개인은 타인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무시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1.2. 정의의 두 원칙
이러한 원초적 입장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롤스가 말하는 정의의 두 원칙에 합의하게 된다.제1 원칙: 평등한 자유의 원칙
각자는 모든 사람의 유사한 자유 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적합한[21] 전체 체계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제2 원칙: 차등의 원칙과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가지, 즉
그것이 정의로운 저축 원칙과 양립하면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득이 되고, (차등의 원칙)
공정한 기회 균등의 조건 아래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직책과 직위가 결부되게끔 편성되어야 한다.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
각자는 모든 사람의 유사한 자유 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적합한[21] 전체 체계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제2 원칙: 차등의 원칙과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가지, 즉
그것이 정의로운 저축 원칙과 양립하면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득이 되고, (차등의 원칙)
공정한 기회 균등의 조건 아래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직책과 직위가 결부되게끔 편성되어야 한다.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
제1원칙은 한마디로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집회의 자유, 선거의 자유, 공직 및 개인 재산을 소지할 자유 등 보통 헌법상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원칙이다. 롤스는 합의자들이 자유인이자 시민이기 때문에 기본적 자유권에 근본적인 이해 관심을 갖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를 최고차 이해관심이라 한다. 따라서 이러한 권리를 축소하는 것은 아무리 많은 경제적 이익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기본적 권리의 평등한 보장을 보증하는 제1원칙이 원초적 입장에서 합의되며, 제1원칙이 2원칙에 우선하게 된다.
제2 원칙은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정당화 조건을 설정하여 부정의한 불평등을 규제하는 원칙이다. 다시 말해 불평등은 반드시 정당화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정당화 요건은 다음과 같다. 그 사회의 최소 수혜자, 즉 가장 약자인 자에게 합당한 범위에서 가장 많은 분배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할 때에만 불평등을 허용한다. 모든 사람의 복지는 반드시 사회 협동 체제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득의 분배는 가장 곤란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포함해서 그 사회에 가담하는 모든 사람의 협력을 이끌어 내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차등의 원칙 덕에 처음에는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양쪽에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롤스의 자유주의는 순수하게 자유만을 주장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도 구별되며,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와도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자 롤스의 기획이 오히려 자유를 내세우면서도 분배 정의와 평등의 문제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려는 대담하면서도 대단히 체계적인 시도임이 알려지면서 양 진영에서도 롤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졌다고 한다.[22]
하지만 제2 원칙의 도출 과정은 처음 정의론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숱하게 논란이 되어왔다. 왜냐하면 그가 원초적 입장에 부과한 무지의 베일로 인해, 그 당사자들이 불확실성 속에서 어떤 선택 규칙을 택할지가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롤즈는 당사자들이 택할 합리적 선택 규칙은 최소 극대화 규칙이라고 한다. 그 사회의 최소 수혜자로 태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최소수혜자가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안전성을 극대화하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만족을 보호하는 규칙을 정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 회피적인 논증은 "무지의 베일 쓴 인간들은 왜 모험을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하사니, 공병호, 로버트 노직 등이 유명하다.
이에 대한 롤스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원초적 입장에서의 합의는 갬블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중요성을 갖고 있단 것이다. 평범한 도박에서는 올인하고 다털려서 알거지 돼도 다음이 있다. 나중에 돈벌고 다시 배팅해서 운좋으면 거하게 딸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사회 구조의 합의는 그런 게 없다. 한 번 망하면 끝이다. 앞서 정의의 주제가 '기본구조'라 한 부분을 생각해보면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운좋은 놈에게 몰아주는 원칙을 합의하고 무지의 베일 걷어봤더니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 기회도 제공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비참한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한다. 만일 애 낳으면 그 애도 똑같이 살다 가게된다. 따라서 이렇게 중대하고 비가역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원칙의 합의 과정에서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게 롤스의 설명이다. 정의 원칙이 분배하는 것이 기본 가치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그리고 차등의 원칙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 기본가치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정도로 확보할 수 있는 보호 장치임을 생각해 볼 때,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조금의 더 큰 이익을 위해 그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모험을 감행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과 관련된 두번째 답변은 공약의 부담에 의거한 논증이다. 공약의 부담이란 만일 약속을 한다면 그 약속의 내용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한 원칙에 합의했을때, 당사자들이 견디기 어려울 제도를 낳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제도 아래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어떤 조건 하에서 효용 원칙은 더 큰 사회적 이익을 위해서 자유의 심각한 침해를 정당화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이 진리인가를 따져 볼 필요는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정의관은 당사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을 결과를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만족을 확보해주는 두 정의 원칙이라는 대안이 이미 있는데 이런 조건을,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는 (보다 큰 경제적 이익과 같은)기회를 얻기 위해 받아들인다는 것은 현명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러한 사회는 안정적이지 않다.[23] 이러한 논리로 롤즈는 차등원칙의 가장 유력한 경쟁 후보인 사회적 최소치를 보장하는 복지국가도 거부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살아가긴 할 것이다. 하지만 운좋은 놈들의 이득을 위해 본인이 희생하고 있다고 사는 내내 불평과 한탄을 쏟아낼 것이다. 합의된 정의 원칙에 대한 존중을 찾기 어렵게 된다. 사회적 최저가 보장되어 있기는 하므로 삶을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 "이 사회는 행운아들을 위한 사회구나"하고 체념할 것이다.[24] 정의 원칙도 진심으로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롤스는 소위 복지국가가 차등 원칙이 구현된 사회의 이상에 부적합하다고 비판한다.또 하나의 중요한 논거는 정치적 자유의 공정 가치(fair value)가 훼손된다는 데에 있다. 복지국가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삶의 전망 자체를 다른 차원으로 가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아마도 정치적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에게 공무담임권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선거에 출마하려면 돈이 드는데다, 생계도 유지하기 힘들 것이 뻔할 텐데 말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공무담임권 같은 것 필요 없으니 월급 50만원 더 받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자인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게 공무담임권은 정말 '똑같은'가치를 지닌 가치인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롤즈는, 부자에게 공무담임권이 소중한 만큼, 가난한 사람에게도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소중한 가치가 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반면 차등 원칙이 구현된 사회는 그런 문제가 없다고 롤즈는 주장한다. 차등 원칙은 최소 수혜자(운이 나빠서 분배의 몫에서 가장 적게 가져가는 사람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한에서만 최대 수혜자의 이익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럼 "운 좋고 잘 타고난 최대 수혜자는?"이라고 물을 수 있는데 롤즈의 답변이 걸작이다. "그들은 이미 잘 타고난 데서 이득을 얻었으며, 재능을 개화시키고 개화된 재능을 발휘하여 남보다 우월한 돈을 벌어들이기를 장려하는 사회 원칙에 의해 또한 이득을 얻는다."[25][26] 결과적으로 행운아도 불운아도 모두 이득을 보기 때문에 진심으로 정의 원칙을 존중하게 된다는 게 롤스의 논지다.
3.2. 후기 롤스
전기 롤스와 후기 롤스를 나누는 분기점은 보통 1985년에 롤스가 발표한 논문 「공정으로서의 정의: 형이상학적이 아닌 정치적(Justice as Fairness: Political not Metaphysical)」으로 본다. 그리고 이를 1993년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집대성한다.두 텍스트에서 롤스는 『정의론』의 논의가 정의에 대한 포괄적 교설(comprehensive doctrine)과 순전한 정치적 구상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는 인상을 준다는 점을 인정한다. 포괄적 교설은 쉽게 말하면 개인이 갖고 있는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신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갑은 기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고 을은 불교적 신념을 갖고 있다면 둘은 서로 다른 포괄적 교설을 갖고 있는 것이다. 롤스는 입헌민주주의 사회에서 각 개인들이 서로 다른 포괄적 교설을 갖는 것을 하나의 거부할 수 없는 사실로 인정한다. 즉 롤스는 다원주의를 인정한다. 롤스는 이러한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특정한 포괄적 교설을 정치제도로서 강요하는 정치철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 대신 서로 다른 포괄적 교설들이 중첩되는 지점에서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를 도모해야 한다. 한마디로 사회 구성원들이 기독교를 종교로 갖든 불교를 종교로 갖든, 핵심적인 헌법상의 기본권들과 정치제도에 대해 대강 비슷한 이미지를 그리기만 하면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후기 롤스에서 강조되는 점은 여전히 옳음의 좋음에 대한 우선성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특정한 좋음(선)에 대한 선호를 토대로 하는 게 아니라, 옳음의 범위 안에서 시민들이 좋음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핵심적인 헌법상의 기본권과 정치제도에 대해서는 중첩적 합의를 이루어야 하므로,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길가는 아무나 잡아패도 된다"와 같은 '좋음'을 추구하는 것은 옳음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시민들에게 일종의 의무(폭력을 행사하지 말라는)로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기부를 많이 할 거야"와 같은 좋음은 물론 옳음의 범위 안에 있을 테니 허용될 것이고, 또한 그것은 의무로서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기부를 하든 말든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남겨놓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샌델 등의 공동체주의들과 확연히 대비된다. 공동체주의자들은 특정한 좋음을 미덕(virtue)이라 하여 시민들이 이러한 미덕을 갖출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편이기 때문. 샌델과 같은 경우에는 교육이나 지역 사회 등의 영역에서 시민들이 미덕을 적극적으로 배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거칠게 말하면 롤스의 경우에는 정치를 도덕과 '분리'하려는 데 반해, 샌델의 경우에는 정치를 도덕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주요 저서
제목 | 발간 연도 |
<colbgcolor=#fff,#1f2023>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 | <colbgcolor=#fff,#1f2023> 1971년 |
정치적 자유주의 Political Liberalism | 1993년 |
만민법 The Law of Peoples | 1999년 |
도덕철학사 강의[27] Lectures on the History of Moral Philosophy | 2000년 |
공정으로서의 정의 : 재서술 Justice as Fairness: A Restatement | 2001년 |
정치철학사 강의[28] Lectures on the History of Political Philosophy | 2007년 |
죄와 믿음의 의미에 대한 짧은 탐구[29] A Brief Inquiry into the Meaning of Sin and Faith | 2010년 |
5. 비판
비판에 앞서 우선 알아두어야 할 것은 존 롤스는 1921년 출생이며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에 활동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의 주장과 이론에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적절하다고 여겨질 만한 요소가 있을 수는 있으나 이는 그의 과오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에 가깝다.하버드 대학교 출신인 미국의 또 다른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는 롤스의 정의론을 현실적인 삶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것이라 비판한 바 있다. 그리고 마이클 왈저는 그의 저서 《정의와 다원적 평등》에서 "가족, 교회 등 공동체의 다양한 가치들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면 시장 중심인 자유주의의 전횡을 막을 수 있을 것" 이라 주장한 바 있기도 한데, 여기서 '시장 중심의 자유주의'에는 존 롤스가 주장했던 '평등적 자유주의'또한 포함된다. 게다가 그는 돈을 포함하는 하나의 가치를 중심으로 평등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평등적 자유주의가 강력한 국가의 개입을 불러일으킨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마이클 왈저 문서 참고.
또한 다른 관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존 롤스는 질서정연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렇지 않은 사회에 대한 원조의 의무를 짊어진다는 입장을 밝혔고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게 해야 '고통받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사회를 질서정연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은 정착되었으나 인권의식을 비롯한 시민의식이 미비한 특정 민주국가가 존재할 경우 해당국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사회를 스스로 고통받는 사회로 전락시키는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그 책임을 타국에 전가할 수 있게 해준다는, 그리고 원조를 받는 당사자들로 하여금 원조에 대한 감사함을 망각하게 할 수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그의 주장에 따르면 원조는 '당연한' 것이므로 원조를 베푸는 주체가 누구인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고마운 감정을 느끼거나 표출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며 원조에 있어서의 본연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존 롤스의 이론이 실현된다면 학계에서의 광범위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양극화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존 롤스는 자원 빈국이지만 질서정연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원이 썩어넘치지만 모종의 이유로 질서정연하지 못한 사회에 원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 세계의 자원 부국들이 모두 질서정연한 사회가 된다면 그 순간 한국, 일본, 타이완 등의 자원빈국들은 이들과의 경쟁에서 철저히 밀려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원조받은 국가들은 막상 자신들 때문에 한국의 5천만 국민, 일본의 1억 2천만 국민이 경제파탄과 식량난을 겪어도 이 두 국가가 민주적인 정치 선진국임을 언급하며 교묘히 도의적인 책임을 부정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는 양극화의 진정한 해결이라고 볼 수 없다. A는 B를 일방적으로 지원할 절대적인 의무를 짊어지지만 B는 이에 대해 감사해하지 않는 것은 물론 훗날 A의 처지가 악화되어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이를 외면할 수 있는 상황은 과연 공정한가?
종합하자면, 존 롤스의 해외 원조에 대한 관점을 포함하는 각종 이론들은 일상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점, 시장 중심 자유주의의 전횡을 방조한다는 점, 책임감과 부채의식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점, 원조의 본연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점,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자원 빈국들을 위한 후속 대처 방안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좌익 계열에서 존 롤스의 사상을 비판 할 때 칼 슈미트 의 사상이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정치철학이자 급진민주주의 사상가인 샹달 무페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녀는 <정치적인 것의 귀환>에서 롤스의 사상이 정치에서 일어나는 적대요소를 고려하지 못하기에 칼 슈미트의 자유주의 비판에 취약하다고 주장한다.
칼 슈미트의 사상을 이용해서 자유주의 정치를 비판했던 알랭 바디우와 슬라보예 지젝 또한 비슷한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롤스에 대한 급진좌파적 비판' 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30]
6. 여담
- 대중들의 인지도와 학계에서의 위상 모두 높았던 롤스지만, 정작 본인은 학문 활동을 제외하면 가족들과 주로 시간을 보냈으며 학과장, 총장, 학회장 같은 사람들한테 주목받는 자리는 극구 사양했다고. 현실 정치에 대해서도 웬만하면 노코멘트했다고 한다.
- 와텐버그: 여섯 문장으로 그의 사상을 말한다면?사무엘 프리먼: 미국의 자유주의자.[31] 그래서 헌법의 권리, 개인의 권리, 양심의 자유, 생각의 자유, 결사의 자유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지지합니다. 민주주의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입니다.
- 영국에서 『정의론』을 주제로 한 뮤지컬이 공연된 바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철학-정치학-경제학부(PPE)의 학부생들이 극본을 쓰고 같은 대학의 음대생이 곡을 썼다고 한다. 줄거리가 꽤나 괴악한데, 1971년[34] 하버드 대학교 교수 롤스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정치 철학에 흥미를 잃고 윤리적 상대주의에 빠진 학생을 보고 고민하다가, '공정(Fairness)'라는 이름의 아리따운 여성에게 반한다. 그런데 갑자기 하버드대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타임 볼텍스가 열리고 '공정'이 거기에 빨려들어간다! 롤스도 그녀를 구하기 위해 타임 볼텍스에 뛰어든다. 도착한 곳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피레우스. 그곳에서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정의에 관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렇게 시간여행을 하면서 롤스와 공정은 차례로 홉스, 로크, 루소, 마르크스 등을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좌절과 역경을 겪지만, 도중에 칸트를 만나 의무론적인 힘을 얻고 여기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무지의 베일'을 구상해내 정의론을 완성하게 된다. 악당으로 등장하는 아인 랜드와 로버트 노직의 방해를 이겨내고 마지막에 롤스와 공정이 포옹을 하면서 극이 마무리된다. 여러모로 이쪽 분야 전공자나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웃음을 금할 수 없는 괴악한 센스와 훌륭한 고증을 자랑한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백과 참고.
-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교적 쉽게 설명해주고, 무지의 베일을 소재로 한 실험까지 다룬 다큐멘터리 EBS 다큐프라임 - 법과 정의 2부가 있다. 롤스의 정의론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시청을 권장한다. 또한 다큐 중간중간 위에 서술된 정의론 주제 뮤지컬 영상이 삽입되어 있다.
- 『정의론』을 하루에 10분씩 읽으면 명상의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주장만 놓고 보면 개드립처럼 들리지만, 위 주장을 한 사람(변호사 겸 법학박사. 후에 방통대 법학과 교수가 되었다)이 롤스의 숭배자이기 때문에(정의란 무엇인가 문서 '기타' 항목 참조) 진담으로 한 말이다.[35]
- 말년에 롤스는 좀 더 좌클릭했는데,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시장사회주의가 자신이 주장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
- 2017년 수능에서 전체 이의 제기 중 1/4이 존 롤스 관련된 문제 하나에 몰렸다. 사회탐구 영역 생활과 윤리 8번 문항이었다. 한국사 복수정답, 물리1 전원정답, 국어 복수정답 논란 등 다른 이의제기 역시 많았었다.
그러나 정작 이 문항의 이의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롤스의 사진
- 생활과 윤리 과목에서 유독 많이 출몰하는 학자이다. 로버트 노직과 함께 단원 하나를 양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여 학생들을 고통에 빠트린다. 이는 학계에서의 정확한 위치를 반영하기보다는, 한국에서 영미정치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이 강한 대륙철학의 정치철학[36]을 반공주의 성향이 있는 나라인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기에는 뭐한 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생윤러들에게는 칸트와 함께 애증의 대상이다. 그도 그럴게 윤리학 분야에서는 워낙 중요한 인물인지라 무조건 볼 수 밖에 없으며, 수능 윤리에서도 칸트와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하여 피곤하게 만든다. 하지만 난이도 자체는 롤스가 더 어렵고 칸트보다도 많이 나온다. 이유는 칸트는 여러 영역을 다루어서 그렇지 그렇게 자세히 파고 드는 부분이 딱히 없지만, 롤스는 그렇지 않기에 내용 기준으로는 이쪽이 훨씬 난해하고 어려우며, 그가 다뤘던 분야또한 칸트보다 그리 좁지는 않아, 다양한 방면으로 문제를 꼬아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킬러문제의 주인공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 이렇기에 많은 문과 학생들이 생윤을 고를지 다른 과목을 고를지 고민하게 하는 최대의 변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혹시라도 이 본문을 읽고 이해가 도무지 안 된다고 생각되면 진지하게 다른 과목을 고민해보자. 물론, 여기 있는 내용이 모두 생윤 교과서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해도 실제 수능에서 나오는 문제는 절대 쉽지 않고, 애초에 개념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신중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 도덕윤리과 임고생에게도 롤스는 애증의 대상이다. 매년 한 문제씩은 출제되며, 그 난이도 또한 쉽지 않게 나오는데다, 공부해야 할 분량 또한 타 학자에 비해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모든 내용은 물론 이보다 더 넓은 범위의 내용을 훨씬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원서 텍스트와 함께 빠짐없이 알아야만 한다. 『정의론』과 『정치적 자유주의』는 줄줄 꿰고 있어야 하며, 최근들어서는 『만민법』에서도 문제가 나오기 시작하여 임고생들의 롤스 사랑은 더해갈 전망이다.
7. 관련 문서
- 임마누엘 칸트
롤스의 이론이 빚지고 있는 가장 주요한 선대 철학자. 그 방대한 『정의론』에서도 인물 중 가장 많은 인용 횟수를 자랑한다. 그 다음 가는 인용 횟수를 자랑하는 인물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존 스튜어트 밀. - 마이클 샌델
상술한 공동체주의의 주요 논자 중 하나. 한국에서는 『정의란 무엇인가』 때문에 대중 정치 철학 저술가로 이름이 높지만, 학계에서는 롤스 자유주의 기획에 대한 중요한 비판자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이 내용이 담긴 텍스트가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Liberalism and the Limits of Justice, 1982)』. 한국에서는 『정의의 한계』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 마이클 왈저
지금까지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왔던 롤스의 정의론을 현실적인 삶과 동떨어진 곳에서의 추상적인 정의론이라고 비판하고, 공동체의 문화적 특수성과 차이를 고려한 다원적 정의론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정의론에서 논의하는 복합적 평등론은 현대의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사회에 대한 공동체주의적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 정의
롤스가 평생 관심을 가진 주요 토픽. - 공리주의
롤스가 『정의론』에서 주요 논적으로 삼고 있는 이론이다.[37] - 시민 불복종 운동
『정의론』에서 시민 불복종이라는 주제를 의외로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다루고 있다. - 정치철학
-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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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 발음은 [rɔːlz\](롤즈)이다. 황경식 前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롤스의 사회정의론 국역본을 최초로 펴내면서 롤스의 이름을 "롤즈"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용례의 표기 원칙 제6장: 표기의 원칙에 "어말의 -s[z\]는 ‘스'로 적는다."라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인 William James[d͡ʒeɪmz\]를 "제임스"로 표기하는 용례에서와 같이 현행 교과서와 EBS 교재상에서는 "롤스"라는 표기가 통용된다.[2] 제임스 브라이언 코넌트 대학교 명예교수[3] 특히 현대자유주의[4] 말년엔 더 좌경화하여 자유사회주의 성격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다.[5] 국역본에는 오역이 너무 많아서 원문 읽기를 권장한다. not을 빼먹고 번역한 게 몇 군데인지 셀 수도 없다. "Titian"(티치아노의 영어식 표기)을 "타이탄"이라고 하지를 않나. 다만, '사회정의론'이라는 번역서명은 초월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책의 주제 자체가 사회정의에 국한되어 있다.[6] 존 롤스의 정의론은 '분배정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평등주의적 자유주의(liberal egalitarianism)'라고 불린다.[7] 학자들은 보통 『정의론』의 롤스를 전기 롤스, 『정치적 자유주의』 이후의 롤스를 후기 롤스로 나눈다. 왜 그렇게 나뉘는지는 후술.[8] 《A Study in the Grounds of Ethical Knowledge: Considered with Reference to Judgments on the Moral Worth of Character》[9] "Almost single-handedly John Rawls revived the disciplines of political and ethical philosophy with his argument that a society in which the most fortunate help the least fortunate is not only a moral (requirement) but a logical one."[10] 롤스로부터 감염된 두 형제의 죽음으로 인해 야기됨.[11] 롤스는 소득에 따른 누진세가 아닌 소비에 따른 비례과세를 주장했다. 롤스가 비례과세(소비세)를 주장한 이유는 소득세보다 소비세가 부의 보유를 장려하고 소비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세를 정당화하려는 롤스의 이러한 시도는 롤스 그 자신의 전반적인 정의 이론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 비례세의 경우, 사실상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의 부담이 더 큼으로 역진세(degressive, regressive)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the tax rate structure Rawls supports is, in fact, not a proportionate one, but a degressive one. #)[12] 이러한 점에서 롤스는 절반은 능력주의를 인정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공동체주의자들은 그의 주장을 능력주의라고 지적하고,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그의 주장을 비(非)능력주의라고 지적한다.[13] 롤스의 재산 소유 민주주의는 '사후' 재산분배로 이루어진 복지체계가 아니라, 인생이 시작하는 시기의 기회의 평등을 세금을 통해 지원해주는 것을 말한다. 다만, '기회의 평등을 위한' 부의 분배를 긍정하는 것이지, 공산주의 식의 '결과의 평등'을 위한 부의 재분배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14] 롤스는 이를 포괄적 교설(comprehensive doctrines)이라고 부른다.[15] 롤스는 정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이 ‘전통’과 부합한다고 말한다. 『정의론』 p.44 참조[16] 그러나 당연히 공정=정의 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은유로서의 시'라는 말이 은유=시 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17] 기본적 자유, 사회적 지위, 소득과 부, 자존감의 사회적 기반[18] 이러한 설명은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이 무지의 베일을 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된다.[19] 계약론 전통을 따르기 때문이다.[20] 롤스에 대한 비판 중 일부도 이러한 원초적 입장이라는 가정의 합리성에서부터 비롯된다.[21] 하트의 비판을 수용해 가장 광범위한 체계에서 가장 적합한 체계(fully adequate scheme)로 수정하였다.[22] 이러한 제 2원칙이 분배와 관련되어 있기에, 경제학이 사회 후생의 논의 과정에서 롤스의 이름을 많이 접하게 된다.[23] 롤즈는 사회 제도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안정성을 이야기 한다. 예를 들어 오직 성인군자만이 따를 수 있는 사회제도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누구나 그것을 어기게 된다는 점에서 안정적이지 않다. 게다가, 누구나 어기는 규칙이, 애초에 규칙인가? 따라서 사회 제도는 따를 만 한, 또 따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바로 '안정성'이다.[24] 기본가치 중 하나는 '자존감의 사회적 기반'임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논증이 이해 된다.[25] 롤스는 잘 타고나면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원칙이 자연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재능은 자연적 사실이지만 재능으로 벌어들이는 부의 분배는 사회적 규칙이라는 것. 그가 사회를 하나의 협동체제로 생각한다는 것을 이해하면 납득할 수 있다.[26] '해야 한다'는 '할 수 있다'를 함축한다는 것이 거의 모든 도덕철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명제임을 생각해보라.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려면, 애초에 그것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어떤 자연적, 사회적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는가는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것'이라 한다. 그것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따라서 어떤 자연적, 사회적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운명이고, 재능도, 조건도 그 사람의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일에 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자연적인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좋은 재능을 '받아 마땅한(deserved)'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재능은 정의 원칙을 만족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한다.[27] 제자 바바라 허먼이 롤스의 강의를 편집하여 책으로 펴냈다.[28] 제자 사무엘 프리먼이 롤스의 강의를 편집하여 책으로 펴냈다.[29] 1942년 썼던 롤스의 학위논문이 사후에 출판되었다.[30] Slavoj Žižek, “Carl Schmitt in the age of post-politics”, Chantal Mouffe(Ed.), The Challenge of Carl Schmitt(Verso, 1999), 18~37쪽.[31] 여기서 말하는 자유주의는 맥락상 현대자유주의를 의미한다.[32] WATTENBERG: "Suppose we gave you six sentences and said 'what’s it about?' What’s the theory? And then you get six sentences." FREEMAN: "American liberal. So it supports a strong view of constitutional rights, personal rights, liberty of conscience, freedom of thought, freedom of association. Very strong view of democracy." #[33] 프리먼은 생전에 롤스와 사적으로 친구였다. 존 롤스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하다.[34] 『정의론』이 처음 출간된 해[35] 이에 대해서는, 명상의 효과가 있는 이유는 '정의론'을 읽다 보면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기 때문이라는 평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칸트의 영향을 받은 책답지 않게(?), 칸트처럼 차근차근 논리 전개가 이루어지는 책이 아니어서, 별도 해설의 도움 없이는 책의 논리 자체를 따라가기가 어렵다.[36] 미셸 푸코, 막스 호르크하이머, 루이 알튀세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같이 유럽 철학계에서 위상이 높은 유럽 정치철학자들은 강경한 공산주의/마르크스주의 성향을 띄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자본주의 체제나 학교와 같은 통제 사회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따라서 제도권 교육에서는 상대적으로 중도적인 자유주의 성향을 띄는 영미 정치 철학이 보다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37] 재미있는 점은 정작 공리주의의 주창자인 제러미 벤담도 존 롤스와 똑같은 좌파 자유주의자였다는 점이다. 다만, 사회자유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양자가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