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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00><colcolor=#000000,#dddddd> 프랜시스 후쿠야마 Francis Fukuyama[1] | |
본명 | 요시히로 프랜시스 후쿠야마 Yoshihiro Francis Fukuyama |
출생 | 1952년 10월 27일 ([age(1952-10-27)]세) |
미국 일리노이 시카고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배우자 로라 홈그렌 자녀 3명 |
학력 | 코넬 대학교 (고전학 / 학사)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 / 박사) |
직업 | 교수, 정치학자, 철학자, 정치경제학자, 작가 |
소속 | 스탠퍼드 대학교 국제학연구소[2] |
링크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교수.2. 생애
후쿠야마는 1952년에 미국 시카고에서 일본계 미국인 3세로 태어났다.[3] 코넬 대학교에서 고전학으로 학사 학위를,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에서는 새뮤얼 헌팅턴 등을 사사했다.후쿠야마는 동유럽의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기 시작한 1989년 <역사의 종말>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역사의 종말>에서 역사가 끝났다고 선언했는데, 여기서의 종말은 대재앙이나 묵시록적인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후쿠야마는 인류의 역사가 공산주의가 패배하고 자유(혹은 자본)주의가 승리함으로써 헤겔과 마르크스적 의미의 역사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즉, 후쿠야마가 주장한 <역사의 종말>은 냉전 종식 이후, 세계가 자유민주주의적 체제에서 더이상의 체제 발달 없이 사회가 유지될 것이라는, 더 나아가 미국 등 서방 자유민주 진영의 주도로 더이상의 큰 전쟁이나 대립 없이 평화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어찌보면 순진한 전망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1980년대 후반~1990년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1989), 소련이 해체되고(1991),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되며(1994), 북아일랜드 분쟁이 종지부를 찍는 등(1998) 굵직한 20세기 현대사의 여러 갈등들이 마침내 민주적으로 해소되는 듯 했다. 하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까지도 오슬로 협정(1997)이 체결되며 평화가 찾아오는 듯 보였다. 물론 천안문 사건(1989)이 보여주었듯 민주화의 목소리가 냉전적 프레임 아래 가로막히는 경우도 있었고, 보스니아 내전(1992~1995), 1차 체첸 전쟁(1994~1996), 르완다 학살(1994) 등 민족 갈등으로 인한 피비린내나는 분쟁 또한 일어났으나, 후쿠야마는 세계정신(weltgeist)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의 확립을 확신하며 역사의 종료를 선언했고, 또한 거대한 역사의 흐름 아래 이러한 문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서방의 시장경제가 세계에 퍼지며 사그라들 것이라는 낙관주의에 제1세계 진영은 흠뻑 취해 있었다. 후쿠야마를 위시한 여러 제1세계 석학들에게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는 헤겔이 나폴레옹을 '말을 탄 세계정신'이라고 일컬었을 때와 같은 도취감이었으리라. #
하지만 <역사의 종말>은 발표된 이후 학계에서도 다양한 논박이 오가며 논란이 되었고, 특히 후쿠야마 본인이 사사한 새뮤얼 헌팅턴은 오히려 <문명의 충돌>을 주장하며 후쿠야마 등의 낙관론에 강한 반론을 제기하였으며 그의 이론은 9.11 테러(2001)와 테러와의 전쟁이 일어나며 주목받기도 했다. 실제 21세기 들어서도 살아남은(?) 공산 국가임을 자처하는 중국이나 베트남, 특히나 중국의 경우에는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보이면서도 민주화를 거부하고 있으며 미국과 다시 냉전적인 대립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후쿠야마는 훗날 전형적인 마르크스적 자본주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로 자신의 이론을 사실상 철회하였다고 한다. 테러와의 전쟁, 대침체, 포퓰리즘의 부상 및 세계적 우경화, 그리고 2003년 이라크 전쟁 등 21세기 현대사에 비추어 보았을 때 후쿠야마의 이론은 틀렸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그의 이론은 탈냉전 시대 인류가 예상한 21세기 근미래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헤겔의 변증법적 사학 이론과 정치학 이론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인 시도이며, 이를 반박할 예시로 위에서 언급한 '중국식 사회주의' 등 현재 국제 정치의 지각 변동을 짚고 넘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후쿠야마의 이름과 <역사의 종말>은 대학교 학부생 정치학개론 수업에서 자주 언급되고는 한다.[4]
다만 그의 입장은 시대상에 맞춰서 계속 변해왔다. 《역사의 종말》 이후 변화해온 후쿠야마의 최신 입장을 잘 정리한 저서로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 있는데, 개인들을 점점 더 좁은 영역 속에 맥락화하며 파편화를 부추기는 좁은 정체성 정치[5]의 한계를 지적하고, 국민국가의 구성원들을 통합하는 더 넓은 정체성 정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을 현 시대의 중요한 과제로 평가하고 있다. 종결/완성된 최종 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부정했다기보단 그 상태에 도달하고 유지하기 위한 장애물들을 재인식했다고 볼 수 있을 듯.
가장 최신 저작인 《자유주의와 그 불만》에서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것을 왜곡하고 있는 요소들을 분석했다. 여기서 주목할만 한 점은 1970년대 자유주의 집단의 첨병, 소위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작은 정부'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는 점이다. 후쿠야마는 신자유주의가 자유주의 이념에 자체를 왜곡하는데 기여했다고 보고 있다. 이들 가치가 모든 사회적 연대를 폄훼하고, 정부의 기초적 역할조차 파괴하는 등, 자유주의의 기치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면서 정치적ㆍ사회적으로 양극화된 피폐한 현 사회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프랜시스 후쿠야마 사상의 특징은 그가 옹호하는 자유주의의 특성만큼이나 시대 상황에 맞춰 쉽게 변화하고 반성할 수 있는 유연성과 적응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역사의 종말》에 대한 꼬리표 때문에 끝까지 그를 불신하는 부류들은 그의 이런 기질이 기회주의자의 면모라 비판하기도 한다.
3. 여담
- 냉전기 직후 서방 지식인들의 오만에 가까운 자신만만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사람이라, 막상 본인도 그 시절 발표한 내용이 전적으로 틀렸으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수차례 언론과 저서에서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종말이 워낙 유명한 저서이며 2020년대 들어선 현대에선 각종 세계적 사회, 경제 문제에 대한 비판이 이런 90년대의 낙관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니 어쩐지 안 좋은 쪽으로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다. 막상 본인은 오히려 그 영향을 안 좋은 쪽으로만 받은 네오콘들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그 시절 주장을 철회했는데 말이다. 이런 면모 때문에 그의 학설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과는 별개로 개인에 대해서는 오히려 동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비판자들도 종종 있다.
- 슬라보예 지젝은 "심지어 후쿠야마 본인도 더 이상 후쿠야마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그의 이론의 한계를 비판했지만, 후쿠야마라는 인물 자체는 "솔직한 보수주의자, 우리(좌파)도 배울 점이 많은 남자"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20년 전에는 모두가 그를 비웃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좌파들도 자유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정부의 대안이 딱히 없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후쿠야마적(Fukuyamaistic)' 상태"라고 말했다. # # #
4. 같이 보기
- 미국의 보수주의
- 자유주의(국제관계학)
- 신보수주의 - 다만 신보수주의에 영향을 미쳤을 뿐, 신보수주의자는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5. 둘러보기
[1] 이름이 꽤나 특이한데, 성씨와 이름 모두 F로 시작하나 한글로 쓸 땐 이름은 ㅍ, 성씨는 ㅎ 표기로 옮긴다. 자세한 건 후술.[2]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3]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프랜시스 '푸쿠야마'가 맞는 한글 표기이다. 일본계 미국인이므로. 한국어에서 영어의 f는 'ㅍ' 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본어의 외래어표기법에서 영향을 받은것도 있고, 비 로마자문화권의 주민이 본인의 성씨 발음을 로마자로 옮겼다는 점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후쿠야마'로 굳어졌다. 비슷한 사례로 로버트 기요사키(Robert Kiyosaki)가 있는데, 영어의 k 발음인 ㅋ 표기가 아니라 외래어표기법처럼 ㄱ 표기로 옮긴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계 외국인의 경우에도 한국계 성씨는 킴, 리, 파크, 초이가 아닌 김, 이, 박, 최라고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고려인의 경우에는 러시아어 표기대로 읽는 경우도 많다. 예: 데니스 텐)[4] 사실 역사학계에서는 휘그 사관 비판론과 포스트모던의 영향으로 인해 헤겔-마르크스식 역사관 자체를 부정한 지 꽤 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후쿠야마가 역사학 등의 타 학문 트렌드에 둔감했던 것이 문제가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5] 후쿠야마는 진보의 정체성 정치는 물론 그 반대편에 있는 극우 민족주의 역시 좁은 정체성 정치로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