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1-07 21:23:46

과학철학

1. 개요2. 과학철학의 역사
2.1. 20세기 이전2.2. 20세기 전반2.3. 20세기 중반2.4. 20세기 후반 - 현대
3. 개별 과학의 철학4. 한국 현황5. 역사적 과학철학6. 과학철학 관련 정보7. 과학철학자 일람8. 과학철학 교양 강연

...대학교 3, 4학년 때 즈음에 <과학철학>이라는 수업을 듣게 됐어요... 그때 제가 '과학자, 공학자도 있지만, 과학과 기술에 대해서 성찰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죠.
- 장대익 #

1. 개요

科學哲學 / Philosophy of science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과학철학전공 소개 #
해당 과정 과학철학 담당 교수인 천현득 교수의 글이다.

과학의 근거, 과학적 방법, 그리고 영향력에 대한 철학의 한 분야. 주요 화두는 다음과 같다.
  • 과학의 자격
  • 과학적 이론들의 신뢰성
  • 과학의 최종 목적

다음 예시들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고전적인 문제들에 해당한다.
  • 과학과 유사과학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과학인 체 하는 것들을 구분할 수 있는 확고한 기준이 있는가? 칼 포퍼가 말했듯 과학은 정말로 반증가능한 것이 전부인가? 흔히 "구획 문제"라고 불린다.
  • 귀납법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데이비드 흄은 귀납 추론의 합리성을 보이고자 하는 일련의 시도가 순환논법임을 보이는데 성공한 것 같다. 그런데 경험과학은 귀납법에 의존하지 않는가? 피에르 뒤앙과 콰인이 말했던 것처럼 관찰·실험을 통하여 경험과학 이론을 결정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 과학의 목적은 "실재"를 규명하는 것인가?: 과학의 목표는 "우리 바깥에 실재하는 세계"가 어떠한지를 밝혀내는 것인가? 아니면 과학은 그런 것에 구애받을 필요 없이 관찰·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가지고서 그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하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충분한 것인가? 흔히 "과학적 실재론 문제"라고 불린다.
  • 환원주의?: 생물학화학으로, 화학물리학으로 환원된다는 것은 흔한 상식이다. 그런데 이 상식은 정말로 합당한가? 애초에 이론 간의 "환원"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2. 과학철학의 역사

들어가기 전에, 과학철학사에 대해 더 깊은 수준의 이해를 원한다면, 해당 주제에 대한 짧은 개론서인 앨런 차머스 저의 《현대의 과학철학》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2.1. 20세기 이전

서양 철학사에서 과학철학의 역사는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화두 중 하나는 "(ἐπιστήμη; epistêmê)"의 본성 및 방법론을 규명하는 것이었으며, 경험주의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앎"은 자연철학, 즉 현대의 경험과학을 포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4원인론이 그 대표적인 사례.

합리론경험론 논쟁으로 잘 알려진 근대 인식론 논쟁 또한 과학혁명 당대의 경험과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합리론에 입각하여 개진한 데카르트주의 물리학은 당대에 물리학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으며, 영국 경험론의 영향을 받은 아이작 뉴턴 또한 이에 맞서 《프린키피아》에서 직접 스스로의 과학적 방법론을 명시하기도 했다. 임마누엘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뉴턴 역학으로 대표되는 경험과학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나름의 논변을 제시하였다.

2.2. 20세기 전반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유럽에서 과학의 본성, 과학의 방법론 등을 둔 철학적 논쟁은 철학자과학자를 막론하고 널리 이루어졌다. 입자의 실재성을 둔 에른스트 마흐루트비히 볼츠만 간의 논쟁은 과학적 실재론 논쟁의 효시가 되었으며, 칸트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앙리 푸앵카레의 철학적 작업은 이후 과학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현대적 의미에서 "과학철학"이 철학의 한 분과로 성립하게 된 계기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논리 실증주의가 발흥한 것이다. 논리 실증주의에 따르면 자연과학명제들이야말로 (형이상학적 명제들처럼 무의미한 게 아닌) 경험적으로 유의미한 명제들의 대표다. 또한 이들은 개별 사실들에 대한 관찰 명제들로부터 같은 종류의 대상에 모두 적용되는 보편 명제로 나아가는 귀납추론과학의 본질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귀납을 과학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간주했다. 하지만 논리 실증주의는 "유의미한 명제는 논리적이거나 실증적이어야 한다"는 자신들의 신조 자체가 실증적이지 못하다는 점, 그리고 귀납논증에 대한 논리적 정당화가 힘들다는 점에서 난점에 처하게 됐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과학 연구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고, 마침 여러 논리 실증주의자들 또한 나치를 피해 유럽을 떠남에 따라 과학철학 연구의 중점 또한 영미권으로 흘러간다.

2.3. 20세기 중반

20세기 중반에도 다양한 과학철학적 주제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었으나, 이중에서도 특히 과학적 방법론, 혹은 유사과학에 관한 당대 여러 과학철학자들의 연구는 철학계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칼 포퍼가 제시한 반증주의는 논리 실증주의가 노출한 귀납논증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한 대안이다. 즉 귀납은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것과 달리, 단 하나의 사례만 있어도 가설에 대한 반증은 가능하므로, 곧 반증을 과학적 방법론의 본질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과학적 가설은 오류를 내포할 수 있다는 "가설의 오류 가능성"이란 개념과 경험에서 이론이 도출된다는 귀납주의자의 주장에 대해 "지구에서 측정된 금성의 크기는 일년 내내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당대에 관찰로 증명된 사실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1]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채택된 예를 제시하며 도입된 "관찰의 이론 의존성"이라는 개념을 수용하고, 이에 그치지 않고 과학유사과학 간의 "구획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한 포퍼는 사이비 이론들[2]은 바로 반증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과학과 구별된다는 유명한 입장을 제시한다.

칼 포퍼의 제자였던 임레 라카토슈는 포퍼로부터 계승한 규범적인 과학철학과 쿤의 역사적인 과학철학을 조화시키고자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를테면 라카토슈는 긍정적 발견법과 부정적 발견법으로 구성된 "연구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과학 활동을 파악하고자 했으며, 특히 후자의 부정적 발견법을 설명할 때 반증될 수 없는 연구 프로그램의 기본적 전제로서의 "견고한 핵"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반증이 무시"당하는 사례가 과학사에서 종종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여전히 과학이 진보하는지, 더 나아가 왜 이런 견고한 핵이 과학이 발전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지에 대해 해명하고자 하였다.

토머스 쿤은 논리 실증주의나 포퍼의 반증주의가 모두 "과학은 이런 것이며, 이래야만 한다"는 규범적인 내용을 제시하였다가 실패하였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에 반해 토머스 쿤은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통해 실제 과학사의 사회적인 측면을 토대로 한 접근법을 보여줌으로써 역사적 과학철학의 새로운 조류를 탄생시킨다.

다른 한편 파울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주술이나 미신보다 우위에 있는 유일무이하고 올바른 사고방식이다"는 발상 자체를 의심하며 "과학적 방법"에 대한 합리적 해명에 회의를 표하는 급진적인 견해를 제기하기도 했다.

2.4. 20세기 후반 - 현대

1970년대 이전까지의 "고전적" 과학철학은 위와 같이 칼 포퍼, 토머스 쿤 같은 학계의 거두를 중심으로 "유사과학", "과학적 방법론", "환원" 같은 거대 담론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후 과학 활동의 보다 다양한 면모가 주목을 받으면서부터 과학철학 분야는 하나의 학파나 도그마가 절대적인 주류가 되기보다는 다양한 문제의식과 접근법이 존재하는 복잡한 분야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시들은 다음과 같다.
  • 과학자사회가 어떻게 오류나 편향성을 보여주면서도 합리적인 합의에 이르게 되는지를 연구하려는 인지적 접근법 (로널드 기어리 등)
  • 과학철학의 규범적 차원을 포기하고 과학철학을 지식사회학의 일부로 받아들여 과학의 사회학을 시도하는 에든버러 학파. 이러한 입장은 과학기술사회학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 래리 라우든은 '공약불가능성' 개념에 기초한 토머스 쿤의 입장에 맞서 '과학 이론은 다층적이며, 패러다임이 폐기된다 한들 특정한 실험이나 명제는 부정되지 않고 누적되어 전달되기도 한다'는 입장을 제기했다. 이런 입장은 과학을 다양한 실체들의 구성물로 파악하고 그 관계를 탐구하는 구조주의 과학철학[3]의 흐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 이는 전통적인 과학적 실재론 논쟁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언 해킹은 실험을 과학철학의 중요한 주제로 놓음으로써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과 전통적인 방법론의 문제를 결합하고 있다. 솔 크립키언어철학 또한 과학적 실재론과 긴밀하게 얽혀 논의되기도 하였다.
  • 베이즈 정리 혹은 통계학 등을 이용해 귀납추론에 관한 입증(확증) 이론을 정교화하려는 노력. 이는 인식론의 하위 분과중 하나인 '형식 인식론'과 밀접히 연관된다.
    • 전통적 주제인 인과 역시 비슷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튜링상 수상자이기도 한 주데아 펄(Judea Pearl)을 비롯한 인접 분야 과학자들 또한 해당 논쟁에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과학철학의 주제와 접근법이 다양해짐으로써 생겨난 문제는 이 분야가 방대해지면서 난해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중후반까지의 과학사는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4] 1980년대 이후의 과학철학은 개론서로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과학철학의 대가들이 대부분 모여 쿤의 저술에 대해 논의하는 등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옆에서 보아도 알기 쉬웠지만, 그게 불가능해지고 있다. 앞에서 말한 대부분의 문제들과 학파들이 여전히 계속 발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3. 개별 과학의 철학

위와 같은 주제들은 '과학' 전체의 정체성을 다루는 소위 일반 과학철학(general philosophy of science)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과학 일반에 관한 문제들만이 아니라 현대 과학철학에서는 개별 과학 분야 각각에서 다루는 이론 및 논리에 대한 철학적 논의도 심도있게 논의된다. 즉 물리학, 생물학, 경제학 같은 것을 따로 따로 다루는 것이다. 이런 연구들을 통틀어 흔히 "개별 과학의 철학"이라고 부르고는 한다.

개별과학의 철학이 발달하게 된 배경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논리 실증주의부터 쿤에 이르는 시기에는 자연스럽게 물리학이 과학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인 양 암묵적으로 가정되었다. 하지만 여러 생물학자들은 대놓고 '생물학에는 패러다임 전환 같은 건 없었다.'고 비판했으며, 그 근거는 생물학이나 화학은 물리학에 비해서 훨씬 더 누적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개별 과학의 문제들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였고, 개별 과학 분야에서 연구를 하던 과학자들이 철학적/근본적인 문제들에 흥미를 갖고 철학에 투신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5]. 대표적인 개별 과학의 철학 영역은 다음과 같다:
  • 물리학의 철학: 물리학의 여러 근본적인 문제들을 따지는 분야. 양자역학의 해석이 대표적이다. 201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초끈 이론의 과학성에 관한 논쟁을 두고 물리학자들이 직접 포퍼 같은 과학철학 떡밥을 물면서부터(!!!) 이쪽 논의도 더욱 활발해졌다.
  • 생물학의 철학: 생물학의 여러 근본적인 문제들을 따지는 분야. 유전자 같은 개념적인 문제, 진화, 적응 같은 진화론에서의 개념들에 관한 연구가 주된 주제다. 관련 학술지인 Biology and Philosophy는 저명한 학술지 가운데 하나다.
  • 사회과학의 철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시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철학.
  • 수리철학: 보통은 과학철학에 포함되지 않는다. 항목 참조.
위에 언급된 분야만큼 주목도가 높지는 않지만, 그밖에도 화학의 철학, 심리학의 철학, 언어학의 철학(언어철학과는 다르다) 등을 과학철학으로 분류한다.

4. 한국 현황

철학과와 독립적으로 전공이 개설된 경우는 서울대학교고려대학교의 대학원 과정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 있고, 전북대학교에서는 과학학과가 정규 학과로 설립되어 과학철학을 주요 세부전공으로 다룬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에서는 철학과의 세부전공으로 다룬다.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는 과학철학, 과학사, STS를 중심으로 과학기술정책의 이슈를 다루며, 학부과정으로 개설된 과학기술정책부전공프로그램에서는 과학철학, 과학사 관련 과목들을 개설하고 있다. 소속 교수 중 과학철학 전공자는 그랜트 피셔 교수(영국)가 유일하다.

연세대학교에서도 '과학과 철학'이란 이름의 강의가 개설되어 있는데, 졸업요건과는 무관한 선택교양 과목으로 많은 학생들이 수강을 하진 않는다. 다만 과학 철학의 역사를 한번에 훑고 과학 철학에 대해 개괄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선 고무적이다. 기존에 철학전공으로 '과학철학' 강의가 개설된 적이 있었으나 해당 분야 전공 교수의 강의는 아니었다.[6] 그리고 2018년 1학기에 과학철학 전공 교수의 '과학철학'강의가 철학과 4천단위 전공으로 개설되어 학부 수준에서는 꽤 깊은 내용[7]을 다루게 되었다.

서강대학교에서는 과학사라는 제목으로 1학년 대상의 필수교양과목 중 하나로 개설되어 있다. 또한 한양대학교에서는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라는 과목을 전교생에게 의무적으로 이수토록 하고 있다. 물론 1학년 대상 과목이니 만큼 별로 심도있는 수준은 아니긴 하지만 꽤나 이례적이다.[8]

그 외에도 전공으로 이 수업이 열린 경우를 나열하자면 서울시립대학교경희대학교 철학과와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경상대학교 철학과, 경북대학교 철학과, 충남대학교 철학과, 충북대학교 철학과, 제주대학교 철학과, 부산대학교 철학과, 조선대학교 철학과 등에 개설돼있다.

과학사나 과학교육과도 심심찮게 연결되며, 과학 및 기술이 유용되는 구조와 그 구조를 형성하는 사회적 요인들을 연구하는 사회학 분과인 STS(과학기술사회학)은 과학철학 및 과학사와 함께, '과학'을 연구하는 분과학문 중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STS는 부산대 등에서 주전공 또는 제2전공으로 과정을 개설하기도 한다. 각 대학의 단과대에 '과학기술대학'이라는 학부가 있긴 하지만 이쪽은 STS를 다루는 학부가 아닐 확률이 높으므로 주의. 그냥 순수과학과 응용과학을 같이 가르치는 학부다.

개별적으로 탐구해보고 싶다면 20세기 후반까지의 동향을 다룬 입문서, 해설서나 몇 가지 주요 원전들은 번역되어 있으니 상황이 아주 암울한 것은 아니다.

5. 역사적 과학철학

영미권에서는 쿤 이후에 본격적으로 역사적 과학철학의 논의가 시작되지만, 프랑스에서는 그 이전부터 역사적 과학철학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9] 멀리는 프랑스사회학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 이론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하나, 칸트 철학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실증주의적 태도가 과학사, 과학철학의 연구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칸트 철학은 간단히 말해 초월적인 형식을 다룬다. 초월적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경험되지 않지만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말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감각이나 사고는 직관이나 개념이라는 '형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헤겔 철학이 등장한 이후 '역사성'이라는 게 문제가 된다. 두루뭉실하게 이야기하면, 칸트는 인간의 사고가 개념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헤겔은 개념이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실증주의적 태도는 이 문제를 과학이 역사적으로 변화하는데 어떻게 진리를 탐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발전시켰다. 어렵게 말해 이것을 역사적 아 프리오리라고 하는데, 간단하게 말해 과학적 진리의 역사성이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쿤이 패러다임을 고민하기 반 세기도 전에 프랑스 철학자들은 과학사를 통해서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신칸트주의의 영향 아래서 시작되었지만, 뒤에 에드문트 후설 등의 현상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쿠아레, 가스통 바슐라르 등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거장들이 나타났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과학이 직선적, 축적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이론과 나중 이론 사이에 본질적인 단절이 존재한다는 '인식론적 단절' 개념으로 유명하다. 쿤의 '패러다임 전환' 개념의 선구자라고도 볼 수 있는데, 바슐라르가 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극단적으로 쿤은 바슐라르의 짝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일단 쿤이 바슐라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쿤과 교류가 있었던 프랑스의 학자 쿠아레가 바슐라르의 이론을 쿤에게 소개해 주었으며, 또 쿤과 바슐라르가 직접 만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과 쿤의 '패러다임 전환'이 겉보기에는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상당히 다른 점이 많다. 예를 들어 쿤은 패러다임을 어떤 과학 이론 내에서의 '모범적인 문제풀이 사례'(범례, exemplar)로 정의했는데, 이는 바슐라르의 이론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또한 쿤은 '패러다임 전환'뿐만 아니라 '정상과학'에 대해서도 상당히 자세히 서술하는 등, 패러다임 전환만이 쿤 이론의 중심 주제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학자들은 쿤의 책 제목을 『과학혁명의 구조』가 아니라 정상과학의 구조 고 해도 될 정도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바슐라르가 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건 분명해 보이지만, 쿤 이론의 핵심적인 면까지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힘들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제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캉길렘인데 미셸 푸코가 그의 제자이다. 알튀세르도 바슐라르 밑에서 학위를 받았다(그런데 알튀세르의 회상에 따르면 논문 지도는 거의 안 했다고 한다). 한국에 소개된 이쪽 계보의 학자로 도미니크 르쿠르나 프랑스와 다고네 등도 있지만 알튀세르나 푸코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쪽 연구는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명이 야심차게 부푼 포부를 갖고 유학을 갔지만 결국 제대로 공부를 못했다(과학사, 과학철학 공부하러 갔다가 그냥 스피노자 전공으로 방향을 바꾼 경우도 있다. 따라 갈 수가 없어서). 알튀세르, 바슐라르 등을 번역해 소개하고 프랑스로 유학가 다고네를 주제로 (결국 과학철학을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못하고) 교육철학 주제로 공부한 사람도 있었지만 학문을 포기했는지 그냥 증발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지금 국내에 이쪽을 소개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없는 셈이다.

프랑스 과학철학계에서도 독특한 위치에 있는 게 미셸 세르인데, 몇 권이 번역되긴 했지만 그를 소화해 다루는 학자는 없다. 바슐라르의 제자로 과학철학 대신 상상력 이론으로 인류학 쪽으로 뻗어나간 게 질베르 뒤랑인데, 홍익대 불문학과의 진형준 교수가 뒤랑 전문가이다. 하지만 바슐라르가 과학철학 쪽 연구와 4원소의 상상력을 토대로 한 현상학적 시학을 결합하고 있던 반면에(시적 상상력이나 과학적 인식 모두 일상적인 사고방식로부터 비약하는 인식론적 단절을 필요로 한다는 관점이 있다), 뒤랑은 과학철학으로부터는 거리가 있고 진형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과학철학은 대충 생략하고 시학이나 미학에 집중하는 건, 바슐라르에 대해 연구하고 논문을 쓴 문학연구자들 모두에게 공통된다.

영미에서도 프랑스 과학철학 전통에 대해서 무지한 건 마찬가지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지하다기보다는 무관심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연구 주제와 접근 방식이 판이하게 다른 데다가, 영미 과학철학이 별 문제 없이 잘 굴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기 때문. 푸코가 유명해진 뒤에야 비로소 캉길렘이 소개가 되었고, 푸코 전문가들 중에서도 소수만이 이 전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참고삼아 푸코의 철학적 출발점을 이해하려면 한편으로는 이폴리트에게서 배운 헤겔 철학의 영향과 함께 캉길렘으로부터 배운 과학사적 인식론을 모두 섭렵해야 하는데,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영미권의 푸코 전문가로는 게리 거팅 정도만을 손꼽을 수 있다.

6. 과학철학 관련 정보

해당 항목 참조

7. 과학철학자 일람

  • 외국인 학자
    • 칼 포퍼: 대학에서 철학 외에도 수학, 물리학을 공부하였다. 과학철학에서 <반증주의> 이론을 주창하였다. 과학철학분야 유명 저서로는 《탐구의 논리(Logik der Forschung)》, 《추측과 논박 (Conjectures and Refutations)》, 《객관적 지식 (Objective Knowledge)》 등이 있다. 과학철학 분야 외의 저서 중에서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 매우 유명하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사회철학 서적이지만, <반증주의>로 대표되는 그의 과학관과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다.
    • 토마스 쿤: 패러다임 이론의 창시자로 가장 영향력있는 과학사학자 겸 과학철학자. 과학철학을 넘어 지성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는데, 이는 주저인 과학혁명의 구조가 20세기에 가장 많이 인용된 학술서라는 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물리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를 하였다. 과학철학에서는 칼 포퍼와 대척점에 있는 학자다.
    • 루돌프 카르납: 독일 출신의 과학철학자로, 모리츠 슐리크와 함께 논리실증주의의 리더격인 인물이었다. 철학은 과학을 엄밀한 논리적 기초 위에 놓는 작업을 하는 학문이라고 여기고 그러한 연구를 해나갔다. 카르납의 형이상학 비판은 분석형이상학이 완전히 자리잡은 현재에도 중요하게 고려하고 검토해봐야 할 입장으로 여겨진다. 확률 해석, 양상논리에도 업적을 남겼다.
    • 칼 구스타프 헴펠: 독일 출신의 과학철학자로 논리실증주의의 일원이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와 연구하였다. 주된 업적은 과학적 설명에 대한 표준 모형을 제시한 것과 과학에서 입증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한 분석이다. 오늘날의 과학철학에서 설명, 입증에 대한 연구는 헴펠의 연구결과들을 계승, 보완, 비판하는 작업에서 비롯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증과 관련해서는 헴펠의 까마귀라는 역설로 유명하다. 한국계 미국 철학자 김재권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였으며, 김재권은 자신의 철학 스타일이 헴펠에게 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 이언 해킹: 실재론 vs 반실재론 논쟁에서 실험이 실재론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50주년 기념판에 서문을 쓰기도 했다. 연구 주제가 굉장히 넓은 것으로 유명한데, 영미철학 계통의 과학철학, 프랑스철학 계통의 과학철학, 통계학사, 정신의학사, 언어철학, 수리철학 등 정말 다양하게 연구했다. 콜라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재직했는데, 콜라주 드 프랑스의 교수직은 프랑스 지성계의 최고 영예로 받아들여지는 만큼, 이 자리가 영미권 출신인 해킹에게 돌아간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낸시 카트라이트의 전남편이기도 하다.
    • 라카토스 임레: 헝가리 출신의 과학철학자. 헝가리 이름은 우리나라처럼 성을 앞에 쓰기 때문에 '라카토스'가 성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철학자에게 수여되는 '라카토스상'이 만들어졌다. 포퍼의 반증주의와 쿤의 패러다임 이론을 절충시킨 이론을 내놓았다. 즉, 쿤처럼 과학 이론의 급격한 변동을 인정하면서 포퍼처럼 과학의 합리적인 성격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칸트의 말을 살짝 바꾼 '과학사 없는 과학철학은 공허하고 과학철학 없는 과학사는 맹목적이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 파울 파이어아벤트: 무정부주의적 과학철학 이론을 주장한 학자. 과학적 방법이란 것은 특별히 존재하지 않다, 즉 '어떤 방법이든 가능하다(Anything goes)'라는 주장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정해진 과학적 방법이 과학자의 창의성을 억압한다는 관점이 깔려 있지만, 특유의 선동적 문체로 인해 반과학주의, 반지성주의, 상대주의를 대변하는 학자로 많이 오해된다.
    • 낸시 카트라이트: 물리법칙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물리법칙이 참인 조건에서는 설명력이 떨어지고, 반대로 물리법칙의 설명력을 높이면 참에서 멀어진다는 주장을 했다. 예를 들어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법칙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중력법칙이 참인가? 대개의 경우 아니다. 현실에서 두 물체 사이에 중력 말고도 전자기력이 영향을 끼치고, 주변의 다른 물체들의 중력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력법칙이 참이려면 주변에 다른 물체가 전혀 없고 두 물체 사이에 전자기력도 작용하지 않는 아주 이상적인 조건을 상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경우 중력법칙은 참이 되지만, 설명력은 떨어진다. 이런 이상적인 상황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물리학의 철학보다는 사회과학의 철학, 정책학의 철학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장하석의 지도교수였으며, 이언 해킹의 전부인이기도 하다.
    • 바스 반 프라센: 과학적 반실재론 진영의 가장 영향력있는 학자로 뽑힌다. 실재론, 반실재론 논쟁은 1970년대에 들어서서 실재론의 완승으로 결론이 나고 사실상 식은 떡밥이 되었었다, 그러나 반 프라센은 새로운 형태의 반실재론인 '구성적 경험론'을 내놓으며 반실재론 진영을 순식간에 부활시켰다. 구성적 경험론은 우리는 실재의 참모습을 결코 알 수 없으므로 과학 이론은 실재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적합한 것을 목표로 한다는 입장이다.
    • 필립 키처: 굉장히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철학자이다. 연구 분야는 생물철학, 논리학, 수리철학, 과학과 사이비과학의 구획 문제, 근대철학, 과학과 민주주의의 관계 등을 아우른다. 실재론, 반실재론 논쟁에서 실재론 진영의 대표적인 학자로 뽑히기도 하며, 특히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두고 벌인 쿤과의 논쟁으로 유명하다. 덕질도 전문적으로 하는지 제임스 조이스 문학 연구로 단행본을 내기도 했다! 아내인 패트리샤 키처도 칸트 연구의 권위자로 뽑히는 세계적인 철학자이다.

  • 한국인 학자
    • 고인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현재 한국과학철학회 회장.
    • 박일호: 전북대 철학과 교수. 학부 전공은 건축공학.
    • 여영서: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 학부와 석사과정 전공은 물리학. 주요 연구분야는 물리철학과 생물철학. 한양대학교의 필수교양인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교과목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 이영의: 강원대학교 교수.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인지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분야는 베이즈주의, 인지과학철학, 체화인지, 철학상담치료이다.
    • 이재호: 중앙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분야는 귀납문제와 형이상학.
    • 이중원: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부 전공은 물리학.
    • 이초식: 고려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로 한국 과학철학계의 원로 중 한명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귀납논리, 논리교육.
    • 이충형: 현 포스텍 교수. 前 경희대 철학과 교수, 학부 전공은 물리학. 미네소타 대학에서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논리학, 물리철학, 분석형이상학.
    • 장하석: 케임브리지 대학교 석좌교수 겸 런던 대학교 과학철학과 교수, 형은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는 사촌관계다. 칼텍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포드에서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토마스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고 과학철학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과학철학계의 권위있는 상인 '라카토스 상'을 수상하였다. EBS에서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시리즈 강의를 맡아서 한 적이 있다.
    •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교수. 진화생물학자겸 과학철학자. 과학철학 중에서도 생물철학이 전공이다. 학부에서는 기계공학을 전공.
    • 조인래: 서울대학교 철학과,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명예교수. 학부 전공은 물리학. 이 목록에 있는 학자들 중 장대익, 천현득, 최성호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이다.
    • 천현득: 서울대학교 철학과,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교수. 은사인 조인래 교수의 퇴임 이후 임용되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인지과학철학. 학부 전공은 물리학.
    • 최성호: 경희대학교 철학과 교수. 학부와 석사과정 전공은 물리학.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과학철학보다는 분석형이상학을 주로 연구한다.
    • 최종덕: 상지대 교양대학 교수. 학부 전공은 물리학. 과학철학 중 생물철학이 주요 연구 분야이다.
    •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교수[10] 한국과학사학회 회장. 홍교수 본인은 스스로 과학철학자가 아니라, 과학사학자, 과학사회학자라고 말한다. 따라서 취소선이 그어졌다. 하지만 과학사와 과학철학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과학철학을 주제로 한 강연, 세미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학자다. 그리고 과학철학 관련 저서도 많이 내는 등, 적어도 대중을 상대로는 과학철학 쪽 활동도 많이 한다. 학부에서는 물리학을 전공.

8. 과학철학 교양 강연


▲홍성욱 교수 강의,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장하석 교수 강의,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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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시대에는 관찰 기술 및 보조 이론의 발전이 더뎌 육안으로 금성 크기의 미세한 변화를 관측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2] 포퍼는 자신의 저서에서 칼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에 대한 해석,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및 아들러 심리학의 예를 제시한다.[3] 언어학의 구조주의나 프랑스 철학의 구조주의와는 전혀 다르다[4] 몇몇 입문서들은 사실 여기까지만 다룬다.[5] 이런 이유 덕분에 개별과학의 철학을 연구하는 철학자들의 경우 해당 과학 분야의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6] 정교수 중에 과학철학 전공자가 없다. 사실 현 교수들이 학부생이던 시절엔 칸트를 비롯한 유럽 근대철학 또는 고대 그리스철학이 압도적 주류였고,(동양의 경우 이이, 이황, 정약용3대장이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 과학철학은 비교적 생소한 분야였다. 이런 이유로 어느 대학이나 과학철학 전공 교수는 드물다.[7] 흔히 반증주의로 알려진 포퍼부터 토마스 쿤의 '과학적 방법'에 대한 입장과 이들에 대한 비판, 과학의 의미 등을 포함한다.[8] 그리고 철학과의 경우 과학철학 커리큘럼이 개설되어 있다. 한국의 유명한 과학철학자이신 모 교수님(학/석사 과정은 물리학을 하시고, 박사과정은 과학철학을 하셨다.)께서 해당 학교에 재직 중이시다.[9]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분야를 'épistémologie'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의 영어형인 'epistemology'와는 뜻이 다르다. 영어의 'epistemology'는 지식 일반에 대한 이론을 포괄하는 의미로 쓰인다면, 프랑스어 'épistémologie'는 지식 일반이 아니라 과학 지식에 대한 연구만을 가리킨다. 따라서 뜻을 감안한다면 프랑스어 'épistémologie'에 해당하는 영어는 'epistemology'라기보다는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에 가깝다. 한국어로 번역할 때 프랑스어 'épistémologie'와 영어 'epistemology'를 둘 다 '인식론'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하면 혼동이 될 수 있다.[10]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 과정 전임 교수이지만, 협동과정에는 교수를 둘 수 없어, 소속은 생명과학부로 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