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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앙리 푸앵카레 Jules Henri Poincaré | |
출생 | 1854년 4월 29일 |
프랑스 제2제국 낭시 | |
사망 | 1912년 7월 17일 (향년 58세) |
프랑스 제3공화국 파리 |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학자 |
분야 | 수학, 이론물리학, 공학, 과학철학 |
수상 | 왕립천문학회 금메달 (1900) 실베스터 메달 (1901) 마테우치 메달 (1905) 보여이 상 (1905) 브루스 메달 (1911) |
모교 | 에콜 폴리테크니크 에콜 데민 파리 대학교 |
경력 | 파리 대학교 교수 |
종교 | 가톨릭 → 자유사상[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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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과학자는 자연이 유용하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는 자연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을 연구하고, 자연이 아름답기 때문에 자연을 좋아한다. 만약 자연이 아름답지 않다면, 알 가치도 없다. 자연이 알 가치가 없다면, 인생도 살 가치가 없다."
"The scientist does not study nature because it is useful; he studies it because he delights in it, and he delights in it because it is beautiful. If nature were not beautiful, it would not be worth knowing, and if nature were not worth knowing, life would not be worth living.”
- 앙리 푸앵카레 저, 『과학의 가치(The Value of Science)』, New York, Cosimo Inc, 2007, p.8.
"The scientist does not study nature because it is useful; he studies it because he delights in it, and he delights in it because it is beautiful. If nature were not beautiful, it would not be worth knowing, and if nature were not worth knowing, life would not be worth living.”
- 앙리 푸앵카레 저, 『과학의 가치(The Value of Science)』, New York, Cosimo Inc, 2007, p.8.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뉴턴, 라이프니츠, 오일러, 가우스 등과 같이 수학과 물리학의 전 방면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리하여 과학계에서는 그를 "the last universalist"(최후의 만능과학자)라고도 한다. 오늘날에는 물리학-수학은 방법론이 서로 접점을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두 방면에서 동시에 대가로 올라가는게 매우 어렵다. 현대에는 물리학자가 수학의 일부[2]에만 능할 뿐 수학 자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다.[3] 푸앵카레 사후 물리학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핫이슈가 불거지며 초끈이론에까지 이르는 현대물리학이 수립되어왔으나, 푸앵카레 사후 수학은 니콜라 부르바키의 영향으로 엄밀하고 추상적인 공리주의의 길을 걸으며 물리학과의 접점으로부터 멀어지기만 했으니[4], 푸앵카레 이후 universalist라 할만한 인물은 나오기가 힘들 정도로 두 분야간의 차이가 커졌다.
그는 수학에서는 카오스 이론, 동역학계(Dynamical System), 위상수학, 대수기하학의 아버지이며, 물리학에서는 상대성 이론, 천체역학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이밖에도 확률론, 미분방정식, 열역학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수리철학 및 과학철학에도 큰 공헌을 남겼다. 임마누엘 칸트의 인식론을 비판적으로 계승 및 보완한 입장을 제시함으로써 20세기 철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푸앵카레는 칸트가 수학 명제를 선험적 종합(Synthetisch a Priori) 명제라고 규정한 것을 받아들였지만, 유클리드 기하학을 유일무이한 기하학으로 보는 칸트의 견해를 수정하여 기하학에 대한 규약주의(Conventionnalisme)를 제안한 초기 철학자이고, 푸앵카레의 철학은 논리 실증주의를 거쳐 현대 철학에서도 서양 철학사 가운데 고전적인 입장이다.
2. 생애
프랑스 로렌의 낭시 출생.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수석으로 입학, 차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5][6] [7]
에콜 폴리테크닉과 에콜 데민(광산전문학교)[8]을 졸업하고, 소르본 대학교에서 미분방정식에 관한 연구로 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광산감독 공무원으로 잠시 일하다가 캉(Caen) 대학에서 수학강사로 임용되어 학계에 진입했다. 당시부터 독일의 펠릭스 클라인과 편지로 교류하며 대수학을 연구했고, 그 업적으로 소르본 대학교 수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수학만이 아니라 물리학에도 상당히 능해서 소르본 대학교에서도 물리학의 모든 분야를 강의했고, 여러 논문을 남겼다.
이렇게 20대 후반부터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그때부터 파리에서 사망할 당시까지 소르본 대학 교수, 에콜 폴리테크닉 교수를 역임했다. 워낙 학력이 뛰어났고, 어릴 때부터 학벌로도 프랑스 학계의 정석 출세코스[9]만을 밟아왔기 때문에 마리 퀴리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는 거의 없다. 특별한 정치성향은 없었지만, 드레퓌스 사건에서 드레퓌스 편에서 서서 경찰 측이 제시한 증거를 과학적 소견으로 뒤집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10년 58명의 노벨상 20대 후반부터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그때부터 파리에서 사망할 당시까지 소르본 대학 교수, 에콜 폴리테크닉 교수를 역임했다. 워낙 학력이 뛰어났고, 어릴 때부터 학벌로도 프랑스 학계의 정석 출세코스[10]만을 밟아왔기 때문에 마리 퀴리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는 거의 없다. 특별한 정치성향은 없었지만, 드레퓌스 사건에서 드레퓌스 편에서 서서 경찰 측이 제시한 증거를 과학적 소견으로 뒤집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10년 58명의 노벨물리학상 후보 지명자들이 꼽은 69개의 후보자 지명 중에서 34개로 가장 많은 지명을 받았었다[11] 그러나 1910년 수상자는 판데르발스였다. 1910년이 푸앵카레가 노벨상을 받을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고 판단했지만 아쉽게도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1912년 세상을 떠났다[12]
3. 여담
- <과학의 가치>에서 수학자들을 연구전개방법에 따라 '논리파'와 '직관파'로 분류하고, 수학적 재능과 함께 이러한 경향도 타고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 책에서는 본인은 어떤 부류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전적으로 직관파에 속한다. 실제로 수학사에서 그는 초기 직관주의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된다. 그러다 보니 이런 직관에 정통으로 타격을 입힌 병리적 함수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푸앵카레는 바이어슈트라스 함수를 '괴물'이라고 불렀다.
- 고도 근시로 눈이 매우 나빴지만,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을 정도로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또한 전 세대의 레온하르트 오일러,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나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존 폰 노이만과 같이 뛰어난 암산력과 직관력으로 유명한 수학자다.
- 전립선 비대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58세에 사망했다.
- 에콜 폴리테크닉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파리 고등사범학교 입시에서는 5등을 했다. 이것도 상당히 높은 등수이지만, 입학시험 수석을 한 에콜 폴리테크닉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 2000년대 초반 러시아인 그리고리 페렐만이 푸앵카레 추측을 푼 후에 한국에서도 대중적 인지도가 올랐다.
-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대통령 레몽 푸앵카레의 친사촌이다. 푸앵카레의 둘째 큰아버지의 맏아들이 레몽 푸앵카레이다.
- 삼체문제의 일반해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다.
- 중력파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이다.
- 아래 동영상은 EBS 다큐프라임 문명과 수학 마지막 편 남겨진 문제들에서 나오는 푸앵카레 추측을 설명하는 동영상이다.
4. 외부 링크
- 프랑스어
- 프랑스어 위키백과 - Henri Poincaré
[1]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으나 이후 스스로를 free thinker로 규정하였다.[2] 주로 선형대수학, 미분방정식, 초월함수, 좌표계등 수학에 나오는 정리나 개념들 중에서 비교적 직관적인 개념들 정도.[3] 에드워드 위튼을 반례로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위튼은 이론물리학 관련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을 뿐 물리학 전체와 수학 전 방면에서 두루 업적을 남긴 사람이 아니다.[4] 20세기 후반부터는 현대수학의 핵심 분야인 대수기하학과 현대 이론물리학의 경계가 다시 희미해지기는 했으나, 양쪽 다 각자의 분야에서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이기 때문에 경계만 흐려졌을 뿐 충분히 섞이지는 않는 형편이다. 수학계에서는 대수기하학과 이론물리학을 넘나들며 연구하려던 학자들이 오히려 논리 중심의 수학을 어지럽힌다고 비판받기까지 했다.[5] 미술과 체육은 재능이 없어서 평균에 못 미치는 성적을 받았다고 하며, 에콜 폴리테크닉 필수과목인 군사학 분야에서 학점이 나빴기 때문에 차석을 받은 것이다.[6] 푸앵카레가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볼 무렵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터져 그가 살던 알자스-로렌이 전쟁터의 한복판이 된 탓에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어 일시적으로 성적이 저조했을 뿐 학창시절 내내 두각을 나타냈다.[7] 참고로 알자스-로렌 지방은 예로부터 자원에 기반한 공업지대로 잘 개발된 지역이라 독일과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서도 상당한 부촌이었다. 덕분에 이 지역이나 이 지역 기반의 가문에서 태어난 엘리트 수학자 및 과학자, 예술가, 고위 관료들이 많았다. 특히 학계에서는 이들이 어릴 때부터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익히며 자랐다는 점이 큰 자산이었다. 푸앵카레 이후 세대의 니콜라 부르바키 역시 핵심 멤버 다수가 이 지역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이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도 양차대전 이후 파리 집중 현상 때문에 조금 덜할 뿐 어느 정도 영향력이 남아있는 편이다. 오늘날 파리에서 손꼽히는 명문 사립학교 에콜 알자시엔(École Alsacienne)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독일에 합병된 알자스 주민들이 파리로 옮겨와 세운 학교이다.[8] 왜 이런 학교를 갔나 의아해하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학교는 에콜폴리테크닉 졸업생을 대상으로 광산계 고급공무원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로, 한국으로 치면 고급공무원 연수원 정도의 개념이다. 상술했듯 당시의 광산 공무원은 국가 요직이었다.[9]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과학고-서포카-해외명문대유학 박사- 박사후과정-서포카 교수의 경력을 밟은 셈이다.[10]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과학고-서포카-해외명문대유학 박사- 박사후과정-서포카 교수의 경력을 밟은 셈이다.[11] 참고로 2위는 막스 플랑크로 10개의 지명을 받음[12] 1911년, 1912년에도 후보지명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