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7 01:31:05

레온하르트 오일러


1. 개요2. 그의 생애3. 그의 업적
3.1. 오일러의 공식3.2.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3.3. 감마 함수, 제타 함수
3.3.1. 오일러 곱
3.4. 이론3.5. 유체장의 기술 방법3.6. 기호의 고안3.7. 약방의 감초3.8. 오일러 이름이 들어 간 것들
4. 오일러와 관련된 명언5. 그 외

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eonhard_Euler.jpg
'두 눈을 감고 우주를 보았다.'

Leonhard Paul Euler[1]
1707년 4월 15일 ~ 1783년 9월 18일

수학계의 레전드이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수학자. 수학 천재의 대명사로 가우스를 꼽지만, 천재성으로는 오일러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수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가우스보단 오일러의 천재성에 무릎을 치는 경우가 많은데 오일러의 직관성은 가히 역사상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자연로그의 밑 ee, π 등을 사용하기 시작하거나, 막 사용하고 있던 것을 오일러가 사용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했다. 이게 바로 오일러의 위엄.

당신이 대학교, 아니 고등학교만 들어가도 오일러의 업적을 만나 볼 수 있다.거의 중고등학교 수학책은 이 사람 일기장 수준[2] 그게 바로 자연로그의 밑 ee. 그리고 지수로그! 이전까지만해도 로그와 지수는 완전히 별개의 존재였으며[3], 그렇기 때문에 로그의 역함수가 지수라는 게 밝혀진 후 많은 발전이 있었다.[4]

2. 그의 생애

1707년 스위스 베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요한 베르누이[5]에게 수학적 재능을 인정받고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13세 때 대학에 입학하면서 신학을 전공할지 수학을 전공할지 많은 갈등을 하다가 결국 수학을 전공하기로 하지만, 평생동안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남았다.[6]

그리고 20세인 1727년에 베르누이 형제의 추천으로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로 건너갔다. 이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에는 요한 베르누이의 아들 다니엘 베르누이가 있었는데 1733년에 다니엘이 러시아를 떠나면서 오일러가 다니엘의 자리를 이어받는다. 이때 고작 26살의 나이로 수학과장이 되었다.

1735년에는 집념이 강하고 연구에 온 힘을 다하는 자세를 가진 것은 좋았으나 적당히 해야 하는 걸 잊어서인지 겨우 28살 때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1741년에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 아카데미로 적을 옮겼다. 그럼에도 러시아 측에서 오일러에게 연금을 계속 보내줬다고 한다. 오일러도 감사의 뜻으로 자신의 논문의 일부는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 쪽에 꾸준히 보냈다. 그런데 오일러의 성격이 투박했는지 프리드리히 대왕은 초청해서 불러온 오일러를 "사이클롭스"라고 놀려대서 25년간 베를린에 머물면서도 기분은 영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다시 러시아로 와 달라는 예카테리나 2세의 요청을 수락해 1766년에 다시 러시아로 되돌아간다. 하루에 20시간 이상을 연구에 매달리니 몸이 버틸 수가 없었던 게 당연했는데 오른쪽 눈을 잃은 후에도 몸을 혹사시키는 버릇을 그다지 고치지 않다가 결국 이때 백내장으로 남은 눈마저 못 보게 되어 나머지 삶을 시각 장애인으로서 지내야 했다. 1771년백내장 수술을 했다곤 하는데 며칠간 시력을 회복했다가 다시 잃어버렸다고 한다. 결국 1766년부터 죽는 해까지 약 17년을 맹인으로 지낸 셈이다.[7][8]

시각 장애인이 된 후 그가 연구한 문제 중에는 태양과 달, 지구의 위치를 계산하는 공식이 있는데 이 문제를 낸 것은 영국 해군이었다. 망망대해에서 배의 위치를 계산하려면 태양과 달과 지구의 위치를 알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력에 의해 서로 영향을 미치는 3개의 물체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이른바 '삼체문제'라 하여, 이후 앙리 푸앵카레[9]에 의해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른 말로 해를 구할 수 없음)임이 증명된 것이었다. 여담으로 이로부터 시작된게 카오스 이론.

그러나 오일러는 "세 별의 위치를 굳이 정확하게 알아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항해하는 배가 자기 위치를 cm 단위까지 파악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 착안한 오일러는 반복연산방식(알고리즘)을 개발하였는데, 이것은 첫 번째 계산으로 대략적인 값을 알아낸 후 이 값을 계산식에 다시 넣어서 더 정확한 값을 얻어내고, 이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일러는 배의 위치를 km 단위까지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고, 영국 해군은 오일러에게 상금을 지급함으로써 그의 공로를 인정했다.[10]

그는 1783년 9월 18일 가족들과의 점심식사 후 학술회의 동료 안데르스 요한 렉셀과 새로 발견한 행성 우라노스(천왕성)와 그 궤도를 연구하는 도중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졌고, 몇 시간 후 오일러는 일생 동안 쉼 없이 지속했던 그의 위대한 계산을 영원히 안식케 한다. 죽을 때도 참 차분했는데 석판에 "나는 죽는다."라는 글을 유언처럼 남겼다고 한다.

그 후 오일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제카브리스토프 섬에 있는 스몰렌스키 루테란 묘지에 묻혔고 1956년 오일러의 250주년 탄생을 기념하여 그의 묘비는 그가 남긴 유품들과 함께 알렉산드르 넵스키 수도원에 있는 18세기 공동묘지로 이장된다.

일생을 노력하고 또 노력하며, 비록 시련이 그를 고통스럽게 할지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고 그 시련을 계기로 오히려 스스로를 더욱 영광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계속된 끊임없는 연구에 시력과 건강을 잃으며 결국에는 뇌출혈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지만 그의 일생은 단순히 한 수학가의 일생이 아닌 인간이 어떻게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가를 보여준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로서의 귀감을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참고로 아내인 카타리나 젤(Katharina Gsell) (1707–1773)은 여성 화가이자 박물학자인 마리아 시비야 메리안(1647~1717)의 손녀다. 마리아에 대한 건 C.M.B. 박물관 사건목록에서도 나오는데 이 만화에서도 나오듯이 17세기에 여성으로서 당차게 자기 뜻을 주장[11]하며 자신이 그림을 그려 아이들을 키우고 수리남까지 직접 가서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던 여장부다!

3. 그의 업적

오일러의 공식, 한붓그리기 규칙[12]등으로 유명하다. 여기까진 고등학생 수준이고, 사실 오일러가 했거나 오일러 이름이 들어간 수학 정리나 공식은 너무 많아서...(...) 여기에 적기에는 여백이 부족할 정도다.

주요 활동분야는 해석학(미적분, 복소해석, 수열, 미분방정식)과 정수론 전 분야[13]이고, 기하학(특히 위상수학의 시초로 여겨지는 정다면체와 평면 그래프에 관한 연구. 한붓그리기는 이 연구들에서 빙산의 일각이다.)과 역학 분야에도 많은 연구와 기여를 했다. 때문에 당신이 고도의 수학 관련 학문을 접하지 않았더라도, 전자기학, 유체역학, 건축공학 관련 학문을 배우다보면 심심찮게 오일러의 이름을 볼 수 있게 된다.

한 세대 뒤의 또 다른 천재 수학자인 가우스보다, 오히려 오일러의 연구를 보다 보면 정말 천재적인 직관력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비유하면 일반인 수학자 기준으로 AA에서 BB를 발견 후, BB에서 CC를 발견하고 CC에서 DD를 발견해나갈때, 오일러의 경우는 B,CB, C가 생략된 채 ADA \to D로 바로 정곡을 찌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B,CB, C를 이미 머리 속에서 알고있던 게 아니라 자신도 B,CB, C를 모른채 그냥 AA에서 바로 DD가 튀어나오는 수준. 실례를 들면 복소수 ii의 개념이 처음 등장하고 이 ii라는 것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무도 감을 못 잡아 뉴턴같은 경우는 ii가 등장하는 방정식은 오류라 하고 다른 수학자들도 헷갈려하고 있었는데 오일러는 iii^i 등의 값을 정확히 연산해냈다.[14][15][16]
오일러는 다작의 대명사였던 만큼 논문을 찍어내듯 발표했고, 그 과정에 직관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수학적 정의에 모순되더라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그의 논문에서는 log 0과 같은 표현도 빈번히 등장하며 무한대 분의 1을 서슴없이 더하고 빼기도 하는데, 이것을 엄밀성의 부족이라 부른다면 오일러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부족한 발언이다. 또 하나 예를들면, 53=15\sqrt{-5}\sqrt{-3} = \sqrt{15} 같은 간단한 오류[17] 등이 종종 등장하고 대수학의 기본정리에 대해서도 결과는 정확히 예측을 했지만 증명에서는 오류가 존재하여, 당시 20대 초반의 젊은 가우스에게 공격을 받았다. (물론 이때는 이미 오일러가 사망한지 한참 후이기는 했다.) 가우스의 이름이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진 계기가 바로 당시 최고의 수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오일러의 대수학의 기본정리(임의의 복소계수 다항방정식의 근은 한 개 이상의 근을 가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근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증명의 오류를 찾아내고 비판한데 기인한다. 다만, 가우스의 증명에서도 오류는 발견되긴 했다.

1911년부터 오일러가 생전에 낸 문헌들을 정리해서 "Opera Omnia"라는(라틴어로 "전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책으로 묶어내고있는데, 오페라 옴니아는 75권이 넘게 나와있고 여전히 나오고 있다.

3.1. 오일러의 공식

항목 참조.

3.2.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그는 페르마가 남긴 자료를 뒤진 끝에, n=4일 경우의 증명을 찾아냈다. 페르마 자신이 증명해서 써놨는데, 오일러가 매의 눈을 부릅뜨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걸 찾지 못했던 것. 그는 이 증명을 바탕으로 n=3의 경우의 증명을 해냈지만, 일반적인 경우의 증명에 실패하였다.[18] 그러나 n이 소수(素數, prime number)여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3.3. 감마 함수[19], 제타 함수[20]

오일러의 천재적인 직관은 현재 수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두 함수에서도 작동했었다.

감마함수의 극한형태를 만들어내서 감마함수를 미분한다든가 로그를 씌운다든가의 조작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서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같던' γ[21]와의 연관점을 찾아냈다. 다만 감마함수의 경우 오일러가 정의역을 자연수에서 더 큰 범위로 확장시킨 방법은 무한곱으로 나타낸 방법인데 반해 요즘에 감마함수를 정의하는 방법은 르장드르가 해놓은 방법이다. 물론 둘의 결과는 같다. 이외에 바이어슈트라스가 감마함수를 정의한 방법도 유명하다.

제타함수에서는 오일러 곱(Euler product)라고 불리는 것을 증명해내서 완전한 수론의 주제로 여겨졌던 소수를 해석학쪽으로 이끌어 내는 것을 성공해낸다.[22] 이것을 살짝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들릴수도 있지만 정말로 무서운 것이 소수의 규칙성을 분석해내는데 '미분'[23]같은 강력한 무기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도 만약 오일러가 없었다면 리만 가설 같은 건 안 나왔을 정도로 무서운 것이 오일러 곱이다.

3.3.1. 오일러 곱

오일러 곱은 제타함수와 소수와의 관계를 기술하는 것이 주 목적인데 증명만 생략하고 간단히 결론만 쓰자면

n=11ns=sprime11ps\displaystyle \sum^{\infty}_{n=1}\frac{1}{n^s}=\prod^{}_{s\, prime}\frac{1}{1-p^{-s}}
좌변: n=1 \sum n=1 \sim \infty 는 해당 수열의 무한합을 의미한다
우변: \prod 는 해당 수열의 무한곱을 의미하며 p prime은 p가 소수이며 n번째 항의 p에는 n번째 소수가 들어감을 의미한다

오일러가 증명에 사용한 방법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설명하자면 '리만가설(승산)'의 저자 존 더비셔는 이 증명을 독자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증명을 찾아놓고, 적어놨는데 오일러가 증명한 원 방법을 살펴보자마자 적어놓은 쪽지들을 그냥 버렸다고 한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체[24]와 비슷한 방법으로 S=ns S = \sum n^{-s} 라 놓고 양변에 2s 2^{-s} 를 곱하면 2sS=k(2n)s2^{-s}S=\sum k(2n)^{-s}이 된다. 이때 우변을 살펴보면 모든 짝수에 대한 항만 나온다. 양변을 끼리끼리 빼면 (12s)S=ms (1-2^{-s})S= \sum m^{-s} (m은 2와 서로소인 자연수)가 된다. 이제 양변에 3s 3^{-s} 를 곱하면 (12s)3sS=(3m)s (1-2^{-s})3^{-s}S=\sum (3m)^{-s} 이므로 m중 3의 배수에 대한 항만 나온다. 뺄셈하면 (12s)(13s)S=ks (1-2^{-s})(1-3^{-s})S = \sum k^{-s} (k은 2,3 모두와 서로소인 자연수)가 된다. 이젠 5s 5^{-s} 를 곱해서 빼고, 7s 7^{-s} 을 곱해서 빼고.... 모든 소수 p에 대해 반복하면 오른편 \sum 안에는 모든 소수 pp와 서로소인 자연수 11만 남게 되고 왼쪽에는 (1ps)(1-p^{-s})의 무한곱과 S가 남는다. (1ps)(1-p^{-s})를 우변으로 이항시키면 끝.

3.4. 이론

베르누이 방정식으로 유명한 베르누이와 함께 보에 관련된 이론을 고안해냈다. 요약하자면 보가 하중을 받아 휨이 발생했을 때, 가해진 하중과 보의 변위 사이의 관계를 알아낸 것.

또한 오일러는 기둥에 좌굴[25]이 생겨나는 최소 하중인 임계 하중을 계산하는 법 역시 고안해냈다. 우리는 이를 특별히 오일러 임계 하중(Euler's critical load)라고 부른다.

3.5. 유체장의 기술 방법

유체역학에서 유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기술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흔히 라그랑주의 방법과 비교되며, 이 둘을 묶어서 Lagrangian and Eulerian specification of the flow field라 말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라그랑주의 방식은 fluid particle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시간과 공간에 따라 기술한다면, 오일러의 방식은 특정한 구역 하나를 지정해놓고 그곳에서의 시간에 따른 유체의 출입에 주목하는 방식이다.

유체의 particle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기에 라그랑주의 방식은 유체역학보단 기존의 역학에서 좌표축을 잡고 물체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데에 어울리는 지라 복잡한 유체역학의 계산엔 오일러의 방식을 자주 택하게 된다.

3.6. 기호의 고안

수학이론 외에도 오늘날 많은 영향을 미치는 훌륭한 업적이 있는데 바로 몇몇 수학 기호를 통일시킨 것이다. 그중 유명한 것 몇 개를 서술하면...
  • 1734~1735년, x의 함수f(x)로 표기함
  • 1736년, 약 반세기 전에 이미 발견된 수였으나 표기법이 제각기 따로놀던 자연로그의 밑ee라는 기호를 씀
  • 1737년, 원주율의 기호로 π를 채택함
  • 1777년, 허수 단위의 기호로 i를 씀[26]
  • 합을 나타내는 기호로 Σ를 도입함

절대적으로 통용되는 표기법은 이 정도이고 몇몇 짜잘한 것도 있다.
  • 삼각형의 내접원의 반지름을 r로 표기함
  • 삼각형의 외접원의 반지름을 R로 표기함
  • 삼각형의 변을 a,b,c로 표기한뒤 그에 대응되는 각을 A,B,C로 표기함
  • 삼각형 둘레의 반을 s로 표기함
  • x의 로그를 [math(lx)]로 표기함#[27]

이 표기법들이 널리 사용된 이유는 오일러가 시대를 초월한 천재이기 때문이기도, 그리고 편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교과서를 저술했던 학자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학자 윌리엄 던햄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평하기도 했다.
확실히 현대의 독자가 오일러의 저작을 보면 마치 최근에 쓰인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런 느낌을 받는 이유는 오일러가 현대적인 표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영향력이 너무도 커서 후대의 수학자들이 그의 방식(style)과 표기법, 그리고 형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28]

3.7. 약방의 감초

연구분야가 굉장히 광범위하고 남긴게 많은 만큼 오래되고 유명한 미해결 문제에선 꼭 한번씩 언급된다. 골드바흐의 추측은 골드바흐가 오일러에게 쓴 편지로부터, 리만 가설의 제타 함수의 유래는 오일러의 연구[29]에서 시작되었으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도 역시 도전하였다. [30]

영국의 윌리엄 로원 해밀턴[31]이라는 수학자는 어렸을때 보인 천재성으로 인해[32] 매우 주목받던 수학자였고, 뉴튼-라이프니츠의 미적분관련 논쟁으로 인해 대륙 수학자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그 이후 대륙의 오일러와 가우스 수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웃풋이 떨어지던 영국민들에게 있어 해밀턴은 다시 한 번 뉴튼의 영광을 재현할 국민적 희망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런 해밀턴이 연구하던 분야가 바로 복소평면에서 축을 하나 더 확장한 3차원 공간 시스템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10여년의 연구끝에 결국 실패하고 4차원 공간에서 방법을 찾아내는데 이것이 바로 사원수(Quarternion)다. 그리고 이 발견으로 해밀턴은 일약 영국의 국민스타로 떠오르고 영국민은 희열에 들뜨는데... 문제는 한참 옛날에 오일러가 골드바흐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원수와 동일한게 이미 발견되었다. 게다가 오일러는 이것을 발견해놓고도 대수롭지 않은 발견인양 쳐박아두었었다는 사실...[33]
로저 코츠가 있잖아[34]

3D그래픽을 하면 자주 볼 수 있는 위인이다. 물체를 회전 시킬때 오일러 방식(위의 오일러가 발견하고 처박아둔 방식과 다른 방식이다.)과 사원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오일러 방식은 복잡한 회전을 하면 축이 겹치는 문제가 있고 사원수 방식은 회전 그래프를 볼 수 없다는 점이 있다.

3.8. 오일러 이름이 들어 간 것들[35]

4. 오일러와 관련된 명언

오일러의 업적은 너무나도 대단해서 나중에 수학자들은 그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몇 마디를 남겼는데 유명한 것을 적자면.
'오일러를 읽고 또 읽어라. 그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다.' - 라플라스
'비유할 필요도, 과장할 필요도 없이 오일러는 해석학의 화신이다. 마치 사람이 숨을 쉬는 것처럼 또 독수리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그는 아무 힘을 들이지 않고 계산을 해냈다' - 프랑수아 아라고[36]
'오일러는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거장이다.' - 존 폰 노이만[37]

5. 그 외

  • 오일러가 수학 논문을 냈던 잡지중에 페테르부르크 학술원에서 새로 창간한 "Commentarii Academiae Scientiarum Imperialis Petropolitanae"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오일러가 논문을 워낙 많이 써낸 덕분에(수백 편에 달함) 편집자는 실을만한 내용이 없어서 잡지가 휑해질 걱정 없이 편하게 일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이 냈는지 페테르부르크 학술원은 오일러가 죽고나서 그의 논문을 무려 50년 동안 우려먹었다. 오일러의 저술량을 평균 내면 1년에 약 800페이지 분량을 저술한 꼴이라고 한다.
  • 수학사가 칼 보이어는 "오일러의 1748년 저작 '무한소 해석 입문'이 해석학에서 갖는 위상은 기하학에서 '원론'이 갖는 위상과 같다."고 평했다.
  • 마치 오일러의 일화인 것처럼 잘못 알려진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는데, 오일러가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앞에서 당시 유명한 철학자이자 무신론자였던 드니 디드로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수식을 제시하며 "(a+bn)/n=x 이므로 신은 존재합니다. 대답해 주시오!"라고 말하자 수학적 지식이 부족하여 반박할 수단을 찾지 못한 디드로는 그대로 꿀먹은 벙어리 신세가 되었다...라는 것.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유명한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마저 저서인 '만들어진 신'에 잘못 인용했을 정도로 널리 퍼졌다.

    박부성 교수(경남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의 조사[38]에 의하면 이 일화는 문법학자였던 디외도네 티보(Dieudonné Thiébault)라는 사람의 책 <베를린에 머문 20년의 추억>에 나오는 이야기가 원전인데, 원래 이야기에서는 오일러가 아니라 '러시아의 한 철학자'이며 수식도 (a+b^n)/n=x가 아니라 (a+b^n)/z=x라고 한다. 또한 디드로가 등장하긴 하지만, 수학 지식의 부재로 답을 하지 못한것이 아니라 낚시 수준이 워낙 한심해서 씹은 것이라고 한다. 디드로는 기하학과 확률 분야에 대한 논문을 쓸 정도로 수학에 조예가 있었다. 따라서 이 정도 수식에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실제로 와전된 이야기들에서는 대부분 디드로가 수학에 무지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리고 성품이 온화했던 오일러가 저렇게 과격하고 비논리적인 공격을 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이렇게 잘못된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오거스터스 드 모르간이 티보의 책에 실린 일화를 소개하면서 위와 같은 변형을 가하고 디드로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드 모르간의 저서에 실린 것이라 딱히 원전을 확인하지도 않고 이를 인용하는 바람에 진짜인 것처럼 널리 퍼져버린 것. 참고로 박부성 교수는 드 모르간이 착각했다고 여기는 듯 하다. 실제로 오일러가 당시 러시아에서 주로 활동했던 것이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점 등등 착각할 만한 요소들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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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인 Euler를 간혹 그대로 율러라고 읽는 사람이 있는데, 오일러가 옳다. (독일어에선 eu가 '오이'로 읽힌다. 예를 들어 축구 선수 노이어의 철자는 Neuer이며, 로이스도 Reus이다. 그리고 도이칠란트의 철자 역시 Deutschland이다.)[2] 야공만에 실제로 나온 드립이다.[3] 로그의 원조는 존 네이피어의 로그, 그리고 아이작 뉴턴도 따로 1/x 함수의 정적분 값을 로그로 정의하기도 했다.[4] 흔히 로그/지수/삼각함수초월함수라고 부르는데, 이게 바로 그 때문. 근데 삼각함수는 오일러 공식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결국 '삼각함수' 하나면 모든 초월함수를 표현할 수 있는 셈. 그러나 이 세 개는 초등함수에도 속한다...[5] 그 유명한 로피탈의 정리를 발견한 수학자다. 요한은 야콥 베르누이와 함께 흔히 '베르누이 형제'라고 불리는데 형 야콥은 '베르누이 부등식'과 '큰수의 법칙'을 발견했다. 다만 야콥이 '베르누이 부등식'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아니다.[6] 수학자 중에 유독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많았다. 오일러의 경우에는 부친이 목사였다.[7] 시각 장애인이 됐을 때 오일러가 한 말은 '이제 양쪽 눈 시력이 똑같아져서 덜 헷갈리겠군.'이었다고 한다. 엄청난 강철 멘탈...[8] 오일러의 천재성은 여기서 한 번 더 드러나는데, 실제로 시각 장애인이 된 후 낸 논문의 양이 '훨씬' 많으며 필요한 계산은 전부 다 '암산'으로 처리해냈다. 물론 논문 자체의 주제는 한정돼 있었고, 대신 그 한정된 주제에 대해 엄청나다고 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9] 유일하게 증명된 밀레니엄 문제푸앵카레 추측을 제시한 사람이다.[10] 현재의 수치해석에서 이런 식의 계산 방법을 주로 다루고 있다.[11] 벌레를 꼼꼼하게 연구하여 벌레가 알에서 태어나 애벌레를 거쳐 자란다고 주장(다만 그녀가 처음 알아낸 건 아니고 이전에도 여러 학자들이 연구하여 발견하긴 했지만 묻혔다)했다. 지금이야 당연한 상식이지만 그 시절만 해도 벌레는 썩은 흙에서 태어난다고 여기던 시절이며 이런 주장을 함부로 하다간 종교재판에 회부될 건이었으므로 그건 목숨 걸 용기였다.[12] 한붓그리기가 성립하는 조건은 1.모든 점이 짝수 개의 선을 가지거나, 2. 단 두 개의 점만이 홀수 개의 선을 가져야 한다. 이걸 고안하는 과정에서 위상수학의 뿌리를 만들었다.[13] 특히 페르마가 남긴 (증명이 없었으므로 사실상 발견이나 가설이라고 해야하지만) 정리를 많이 증명했다. 대표적으로 페르마의 소정리.[14] 오일러의 천재성을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예로는 제타함수의 전개형식을 들 수 있는데 고등학교 수준에서 제타함수를 바라보면 x>1x>1 인 범위에서밖에 정의되지 않을 것 같지만, 복소해석학을 조금만 배운다면 제타함수를 감마함수와 엮어서 표시하는 동시에 정의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 그런데 오일러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복소해석학이라는 수학은 '없었다'! 오일러는 단순한 직관과 예시를 통해서 본인에게 충분하다고 생각할 만큼 검토해서 100% 정확한 공식을 얻어내기도 했다.[15] 관련된 또 다른 일화로 오일러는 1748년 자신의 저작에서 "'P(x)=1+Ax+Bx²+Cx³+…=(1+ax)(1+bx)(1+cx)…'에 대하여 'a+b+c+…=A', 'a²+b²+c²+…=A²-2B', 'a³+b³+c³+…=A³-3AB+3C'등등이 성립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에게는 이것이 직관적으로 자명하지만 추후에 엄밀히 증명하겠다고 약속했고 2년 뒤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 이 정리는 선대 수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1n2=11+14+19+116+...=?\sum \frac{1}{{n}^2} = \frac{1}{1} + \frac{1}{4} + \frac{1}{9} + \frac{1}{16}+ \text{...} = \text{?} 라는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보조정리로 이용되었고(참고로 이 값은 π26\frac{\pi^2}{6}이다) 오일러는 비슷한 방법으로 1n4=11+116+181+1256+...=π490\sum \frac{1}{{n}^4} = \frac{1}{1} + \frac{1}{16} + \frac{1}{81} + \frac{1}{256} + \text{...} = \frac{\pi^4}{90}임도 구해냈다. 그런데 그도 1n3=11+18+127+164+...\sum \frac{1}{{n}^3} = \frac{1}{1} + \frac{1}{8} + \frac{1}{27} + \frac{1}{64} + \text{...} 의 수렴값은 구해내지 못 했는데 이에 대하여 "이런 급수는 로그나 원주율로 나타낼 수 없으며 유한한 방법으로 구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고 약 250년이 지난 지금도 저 급수는 컴퓨터를 통해 근사적으로 (π\pi도 굉장히 인위적인 정의임을 감안해야겠지만)구할 수 있을 뿐인 것을 떠올려보면 오일러의 직관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공포스러울 정도다.[16] 그런데 제타 함수의 비밀(구로카와 노부시게 저, 정경훈 역)이라는 책을 보면, 오일러는 1n3=11+18+127+164+...\sum \frac{1}{{n}^3} = \frac{1}{1} + \frac{1}{8} + \frac{1}{27} + \frac{1}{64} + \text{...}의 수렴값을 구했다고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오일러가 구한 ζ(3)\zeta(3)는 다음과 같다. ζ(3)=2π27log2+1670π2xlog(sinx)dx\zeta(3) = \frac{2\pi^2}{7} \log2 + \frac{16}{7} \int_{ 0 }^{ \frac{\pi}{2} }{ x \log (\sin x ) dx} 자세한 증명은 이 책의 135쪽에 있는 부록 3을 참고하면 된다.[17] 알다시피 ab\sqrt{a}\sqrt{b}는 둘 다 음수인 경우에는 ab=1a1b=12(a)(b)=ab\sqrt{a}\sqrt{b}=\sqrt{-1}\sqrt{-a}\sqrt{-1}\sqrt{-b}=\sqrt{-1}^{2}\sqrt{(-a)(-b)}=-\sqrt{ab}이 된다. 둘 중 하나라도 0 이상이라면 그대로 ab=ab\sqrt{a}\sqrt{b}=\sqrt{ab}가 성립한다.[18] 그렇다고 오일러의 업적이 대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오일러와 페르마 사이에는 백 년 가까이의 시간차가 있었으니까! 또, 복소수를 도입했던 이유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n=3 일때 증명하기 위해서 도입한 것이라고 한다.[19] 계승함수라고도 불리며 실제로 이 함수는 고등학교때 배우는 ! 기호의 확장이라고 할수있다. 시작은 자연수지만 복소수까지 확장했다는 신비함이...[20] 자연수의 역수의 제곱꼴의 합으로 정의되며 조화급수라든가 바젤문제도 이 함수의 특수한 경우이다. 복소해석학을 배우기 전에는 아무리 살펴봐도 정의역은 x>1인 실수 밖에 안될 것같지만 정말로 신기하게 x=1이 아닌 모든 복소수에서 정의되도록 복소해석학에서는 조작을 가한다.[21] 오일러-마스케로니 상수라고도 불리며 감마라고 읽는다. 우연히 감마함수와 연결된거 같지만, 원래 오일러는 이 상수를 C라고 썼지만 나중에 감마함수와 많은 연관이 있는 것은 확인하고 γ라고 이름지어졌다. 정의는 간단하지만 지면이 부족하므로 생략하자. 이 수가 유리수인지 무리수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22] 한 분야가 다른 분야와 이어지는건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며, 우리가 고등학생때 지겹게 배우는 좌표평면, 좌표공간이 바로 그 예이다. 실제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될 때 증명의 주인공인 앤드루 와일스는 사실상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직접 증명한 것이 아니라, '타니야마-시무라의 추측'을 일부분 증명한 것으로써 타원곡선과 모듈러를 연결시키고, 수론과 타원곡선을 연결시켜 결론적으로 모듈러로 수론을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그 정리를 증명하였다.[23] 미분은 어떤 함수를 분석하는데 에는 최고의 무기이다. 물론 적분도 같은 의미에서 최고의 무기지만.[24] 소수를 찾는 방법중 하나인데, 사실 우리들은 이 방법을 중학생때 배웠다. 1부터 자신이 소수를 찾고싶은 곳까지의 수를 전부 적은 후 그 수의 제곱근까지 의 정수의 배수를 전부 지워나간다.[25] 길쭉한 기둥이 축 방향 힘을 받았을 때 찌그러지기 전에 옆으로 휘어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버클링 스프링 방식 키보드는 이 원리를 이용한 것.[26] 오일러는 이 기호를 한참 쓰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사용했는데 그 이전에 i는 무한대(현재는 ∞를 사용함)를 뜻했기 때문이다. 이게 대중적으로 쓰이게 된건 가우스가 자기 책에서 이 기호를 채택한 이후이다.[27] 당대에는 오일러를 따라서 많이 쓰던 표기법이었으나 후에는 [math(\ln)][math(x)], [math(\log)][math(x)] 등으로 쓰게 되었다.[28] 출처 : "Journey Through Genius", 210페이지, ISBN 014014739X. 한국에 "수학의 천재들"이라는 제목으로 경문사에서 편역판을 냈는데 매너없게도 편역자의 이름만 써놓고 책에 원저자인 던햄 교수의 이름을 써놓지 않았다.[29] 자주 나오는 1/1 + 1/4 + 1/9 + 1/16 + ... = pi제곱/6을 증명한게 오일러다.[30] n=3일 때만 증명에 성공하였지만, 이도 페르마의 대정리가 나온 뒤 100년이 지나서 나온 첫 결과인 만큼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31] 사원수를 발견해낸 수학자이다. 실제로 산책중에 다리를 지나다니던중 갑자기 i^2 = j^2 = k^2 = i*j*k = -1을 다리에다가 적은 후 엄청나게 기뻐했다는듯.[32] 수학적 재능은 차처하고 언어적으로만 봐도 13살에 라틴어와 고대 희랍어, 히브리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등등등을 하였다.[33] 게다가 해밀턴의 사원수 연구는 결국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34] 오일러의 공식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오일러가 아니라 영국의 수학자 로저 코츠다. 코츠가 현재 알려진 오일러의 공식 양변에 자연로그를 씌운 형태로 처음 발견했고 나중에 오일러가 현재 알려진 것과 같은 형태의 공식을 발견했다.[35] 항목이 따로 있는 것들만 추가할 것. 오일러의 이름이 들어간 용어들은 여기에 다 적기엔 너무나도 많다.[36] 19세기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37] 수학 갤러리의 꾸준글[38] 박부성 교수의 저서인 <천재들의 수학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