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주요 후보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8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0d164a,#FFC224> 정당 | 대통령 후보 | 순위 | |
<rowcolor=#0d164a,#FFC224> 부통령 후보 | 비고 | |||
민주당 | 앨 고어 | 2위 | ||
조 리버먼 | 낙선1 | |||
공화당 | 조지 W. 부시 | 1위 | ||
딕 체니 | 당선2 | |||
녹색당 | 랄프 네이더 | 3위 | ||
위도나 라듀크 | 낙선 | |||
개혁당 | 팻 뷰캐넌 | 4위 | ||
에졸라 포스터 | 낙선 | |||
1 대중득표 1위, 선거인단 2위 2 대중득표 2위, 선거인단 1위 | ||||
| }}}}}}}}}}}} |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개혁당 후보 | |
패트릭 조셉 뷰캐넌 Patrick Joseph Buchanan | |
<colbgcolor=#e81018> | |
출생 | 1938년 11월 2일 ([age(1938-11-02)]세) |
미국 워싱턴 D.C.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정당 | (1999년~2002년) (2002년~2004년) (1999년 이전,2004년 이후) |
학력 | 조지타운 대학교 (B.A.) 컬럼비아 대학교 (M.A.) |
종교 | 가톨릭 |
신체 | 185cm |
가족 | 셜리 앤 스카니 (1971년 결혼) |
'주요 경력 | 부통령 연설문 작성자 백악관 특별 보좌관 백악관 공보국장 1992년 미국 대선 공화당 경선 후보 1996년 미국 대선 공화당 경선 후보 2000년 미국 대선 개혁당 후보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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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정치인, 칼럼니스트, 고보수주의 운동가.선출직 경력이 없는 인물이지만, 미국의 고보수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생애
1938년 워싱턴 D.C.에서 가톨릭 가정 아래서 태어났고, 학교 또한 가톨릭교 학교를 다녔다. 학사 학위도 가톨릭교 학교인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받았다.[1] 이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언론학 석사 과정을 밟았으며, 청년기부터 조지프 매카시를 존경하는 보수주의자로 성장했다.St. Louis Globe-Democrat라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보수 언론에서 최연소 논설위원으로 일하면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에서는 린든 B. 존슨을 지지한 대부분의 언론과 달리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를 지지했다. 이후 닉슨의 뉴욕주 로펌에서 일했고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이 정계에 복귀하자 닉슨에 의해 선거 고문으로 뽑힌다.
리처드 닉슨과 팻 뷰캐넌 |
로널드 레이건과 팻 뷰캐넌[3] |
닉슨과 레이건 행정부에서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다양한 TV 프로그램[5]에서 보수 패널로 출연했다. 이는 뷰캐넌이 인지도와 충실한 지지자를 얻는 기반이 된다. 지지자들에 의해 1988년 미국 대선 출마론이 있었지만 불출마했다.[6] 1989년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강간 사건이 벌어지자 용의자였던 16세 흑인 청소년이었던 코리 와이즈를 공개적으로 교수형시켜야된다고 주장했지만, 용의자들이 결국 무죄인 것으로 밝혀져 뷰캐넌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
1992년 대선 공화당 경선 유세중인 뷰캐넌 |
2000년 대선 개혁당 팻 뷰캐넌-에졸라 포스터[10] 티켓 |
선거가 끝나자 또다시 TV패널로 복귀했고, 부시 행정부, 오바마 행정부, 트럼프 행정부,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도 자신의 고보수주의 사상에 맞지 않으면 같은 공화당 정부라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예시 그래도 상대적으로 (개혁당 시절에 비해 상당히 우클릭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가장 옹호하는 편이다. #
3.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0 | 미국 대통령 선거 | 미합중국 | | 448,895 (0.43%, 0명) | 낙선 (4위) |
[1] 현재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다.[2] 닉슨의 사임 후에도 닉슨과 뷰캐넌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3] 챌린저호 폭발사고 경과를 지켜보는 중에 찍힌 사진[4] 워터게이트 사건의 "Deep Throat"로도 의심되었으나, 결과적으로 별 관계 없던 것으로 밝혀졌다.[5] 대표적으로 CNN의 크로스파이어라는 토론 프로그램[6] 공교롭게도 공화당 경선에서 다른 우익 극단주의자인 팻 로버트슨이 3위를 한다. 다만 둘의 사상은 상당히 차이점이 많은 편.[7] 대선 때 "Read my lips: no new taxes"라고 했다가 말을 바꾸었다. 걸프전 때문에 불가피한 증세였으나 보수층에게는 공약 배신이라고 비판받았다.[8] 현직 대통령은 대체로 80%대 후반 ~ 90%대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경선을 프리패스한다. 1976년 대선 제럴드 포드, 1980년 대선 지미 카터 정도가 예외, 이들은 모두 본선에서 낙선했다.[9] 3위는 포브스의 편집장인 스티브 포브스[10] Ezola Foster, 교사 출신의 흑인 여성으로 뷰캐넌과 동일한 강경보수, 반이민, 보호주의자 성향이었다.[11] 뷰캐넌의 극우 사상에 반발한 제시 벤투라 미네소타 주지사와 도널드 트럼프 같은 개혁당 중도파는 이때 탈당한다.[12] 정치 성향에서는 상극이다.[13]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랄프 네이더가 투표지에 이름을 올리려고 이용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