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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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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루이스 잭슨 1세
Jesse Louis Jackson Sr.
파일:제시잭슨목사.jpg
출생 1941년 10월 8일 ([age(1941-10-08)]세)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그린빌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정당

학력 노스캐롤라이나 A&T 주립대학교 (B.S.)
시카고 신학대학교 (경영학 / B.A.)
가족 배우자 재클린 브라운 잭슨
아들 제시 잭슨 주니어, 조너선 잭슨
딸 샌티타 잭슨
이외 자녀 3명
종교 개신교 (침례회)
경력 Rainbow/PUSH 창립자 겸 초대 회장
1984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
198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
연방 예비상원의원 (1991~1997 / 워싱턴 D.C.[A])
서명
파일:Jesse_Jackson_signature.svg
1. 개요2. 생애3. 선거 이력4.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목사, 정치인, 흑인 민권운동가. 1984년과 1988년 민주당의 대통령 예비선거 후보였으며,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워싱턴 D.C.를 대표하는 미국 예비상원의원으로 재직했다.

마틴 루터 킹의 수제자로 그가 암살당했을 때 바로 옆에 있었던 전설적인 운동가이다.[2] 1970년대 킹의 유훈을 이어 흑인들이 주류 정치권과 재계에 편입되는데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으며, 버락 오바마 역시 잭슨의 도움을 받았을만큼[3] 현대 흑인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2. 생애

2.1. 두 번의 대통령 도전

2.1.1.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파일:Jackson_1984_campaign_logo.svg
제시 잭슨은 한번도 공식 선거에 출마한 적이 없었지만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 사회의 우경화가 심해지고 특히 흑인 거주지 게토화 문제가 불거지자 흑인 민권운동에 다시 추동력을 불어넣고자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예비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한다. 제시 잭슨의 목적은 진지하게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아닌, 흑인의 저조한 투표 참여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유색인종이 겪는 인종차별의 실태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제시 잭슨의 호소에 많은 남부의 흑인이 폭발적으로 유권자 등록을 하기 시작했고, 제시 잭슨은 미국 남부에서 유례 없는 높은 지지를 기록했다.

당시 민주당 내에서는 기존 당권파를 대표하던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과, 중도개혁파 게리 하트가 맞붙었는데, 제시 잭슨은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후보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확고한 진보좌파적 의제를 주장했기 때문에[4] 흑인과 백인 진보파의 지지도 일부 확보해 뉴햄프셔 주 프라이머리에서 6%에 달하는 득표를 얻기도 했다.[5] 이 외에도 흑인이 밀집한 뉴욕에서 25%, 펜실베이니아에서 15%, 루이지애나에서 67%에 달하는 유의미한 표를 얻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흑인들은 휴버트 험프리[6]의 수제자인 먼데일을 더욱 지지했으며, 미국 남부 프라이머리에서도 루이지애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에서 먼데일이 승리했다. 잭슨은 먼데일을 험프리의 발치에도 따라오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비난했지만, 먼데일이 승리한 이후에는 마지못해 먼데일을 지지했다. 한편, 잭슨은 선거운동 도중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브루클린을 "하이미타운"(Hymietown)이라 불러 유대인 혐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1.2.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

파일:Jesse_Jackson_presidential_campaign,_1988.png
1988년 제시 잭슨은 자신의 흑인 민권운동 경력에 더해 단일지불자 의료보험, 평등권 수정안 비준, 소련과의 평화, 국방비 지출 삭감 등 좌파적 공약을 내세워 다시 대통령 후보에 도전했다. 비록 진보파는 아니었지만 조지 월리스(!) 전 앨라배마 주지사와 오벌 포버스 전 아칸소 주지사 같이 흑인 민권운동을 지지하는 많은 남부 민주당 정치가들도 흑인 민권운동 지지 차원에서 제시 잭슨을 지지했다. 조지 월리스의 제시 잭슨 지지는 당시 큰 뉴스가 되었다. 레이거노믹스에 질렸던 흑인과 백인 진보파가 제시 잭슨을 열렬히 지지하면서 1988년 대선을 앞두고 제시 잭슨의 지지율이 크게 올라갔다. 1988년 1월 갤럽의 여론조사에 민주당 후보 중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본선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실질적인 지지율은 10%대 후반 선에서 정체되었다.

마이클 두카키스가 중도와 진보를 아우르는 후보로 부상하면서 제시 잭슨 열풍은 다소 가라앉았다. 3월 미시간 프라이머리에서 제시 잭슨이 깜짝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1984년 예비선거 때의 유대인 혐오 논란이 불거지며 에드 카치 뉴욕시장을 비롯한[7] 많은 민주당 정치가들이 제시 잭슨을 지지하지 않으며 잭슨은 북부의 여러 경선에서 연이어 패배했다. 1988년 5월 잭슨은 경선 승리가 불가능함을 직감하고 두카키스를 지지한다. 제시 잭슨은 1988년 예비선거도 패배하긴 했지만, 1984년에 비해 더욱 선전해 전체 민주당 예비선거 득표의 29.3%를 얻고 남부 6개 주를 포함한 11개의 경선에서 승리하였다. 이 기록은 버락 오바마가 꺾기 전까지는 미국 역사상 유색인종이 거둔 가장 큰 대통령 예비선거 승리였다. 여전히 오바마를 빼면 이만큼의 기록을 거둔 사람이 없다.

제시 잭슨은 두카키스의 러닝메이트로 고려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잭슨과 정반대 성향인 로이드 벤슨이 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두카키스를 열정적으로 지원했으며, 전당대회 연설에서 "마이클 듀카키스의 선조는 이민선을 타고 미국에 왔고 나의 선조는 노예선을 타고 미국에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앞 세대가 무슨 배를 타고 왔든 그와 나는 한 배에 함께 타고 있습니다."라는 감동적 연설을 하여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2.2. 이후의 삶

1988년 예비선거 패배 이후에는 다시 정계에서 물러났으며, 레인보우/퍼시 조직을 이끌며 흑인 민권 운동을 계속 이끌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에는 빌 클린턴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시스터 술자"라는 민권운동가가 "흑인은 흑인끼리 죽이지 말고 차라리 백인을 죽이자"라는 과격한 발언을 하자, 클린턴은 이를 데이비드 듀크의 리버스 버전이라며 비판했고 제시 잭슨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클린턴에게 사과를 요청했다. 클린턴은 제시 잭슨이 너무 극단적인 민권운동을 추진하고 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잭슨 역시 이런 클린턴을 안좋게 봐서 처음에는 그의 제3의 길 노선을 타협적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클린턴의 노력 끝에 두명은 화해하는데 성공했고, 심지어 두명은 사적인 친구 관계로도 발전했다.[8]

클린턴 행정부에서 잭슨은 비공식 친선 대사로 활약하며 의외의 외교관 기질을 드러내기도 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도 만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사로도 고려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다만 후일 베네수엘라 독재 정권을 지지하고 우고 차베스 장례식장도 다녀와서 한소리 듣기는 했다.

워싱턴 D.C. 시장직 등 여러 공직에 출마해야한다는 제안을 꾸준히 받긴 했지만, 제시 잭슨은 스스로가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계속 출마를 고사했으며 대신 알 샤프턴과 같은 동료 흑인 민권운동가들이 정계에 진출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1990년 워싱턴 D.C.를 대표하는 예비상원의원직에 출마해 압도적으로 당선되긴 했지만 이 자리는 명예직에 가까웠고, 6년 후 임기가 만료되자 재선에 도전하지 않으면서 완전히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21세기에는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출마를 도왔으며, 2016년 대선 당시에는 버니 샌더스, 힐러리 클린턴 두명과 사적 친분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것을 거부했다. 2020년에는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고, 조 바이든이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자 "비록 조 바이든이 경력 초반에는 흑인 민권운동의 적이었지만, 나는 그가 변했다고 믿는다"라며 바이든 지지를 촉구했다.

2023년 7월, 건강이 악화되어 레인보우/퍼시 회장직에서 은퇴했다. 이로서 제시 잭슨은 평생 몸담아온 흑인 민권운동 분야에서도 물러나게 되었으며, 현재는 민주당과 흑인 민권운동의 원로로서 대우받고 있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0 연방 상원의원 선거 워싱턴 D.C.

105,633 (46.80%) 당선 (1위) 초선[A]

4. 여담

  • 2018년 민중당(2017년) 인사들과 접촉해 한반도 평화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 민주당 강경좌파의 아버지 격으로 평가받는 인물중 하나이지만, 낙태에 관해서는 친생명의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로 대 웨이드가 결정된 날 이 판결을 제2의 드레드 스콧 대 샌드퍼드라고 주장하며 낙태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여기에는 그의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로널드 레이건의 강력한 반낙태 정책에는 반대를 표했다.

[A] 표결권이 없는 비공식 예비의원(Shadow senator)으로, 미국의 주가 아닌 지역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는다.[2] 다만 증언에 따라 잭슨이 킹의 암살 당시 어느정도로 가까웠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3] 오바마는 하와이 태생이지만, 잭슨 목사의 정치적 기반인 일리노이 주에서 잭슨의 지원을 받아 주의원으로 선출된 것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4] 1970년대 진보좌파의 대명사인 조지 맥거번이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상당히 선전했지만, 그 역시 대통령이 되기보다는 진보적 의제를 제시하기 위해 출마한 것이었기 때문에 조기에 경선에서 물러났다.[5] 별거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뉴햄프셔주는 백인 비율이 90%가 넘어가는 미국 대표 백인주이다.[6] 1948년 민주당의 인종평등 강령 채택을 주도한 인물이었고 이후로도 꾸준히 흑인 민권운동을 지지해서 "노동자와 흑인의 히어로"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흑인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은 정치가였다.[7] 카치 시장은 잭슨의 반유대주의 성향을 두고 잭슨을 미치광이라고 비난했는데, 이 때문에 흑인 표가 돌아서면서 1989년 시장선거에서 4선에 실패하게 된다.[8] 정치 성향이 어쨌든 클린턴은 남부 빈민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흑인 문화에 익숙했고 그래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고도 불린다.[A] [10]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