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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허버트 스펜서 Herbert Spenc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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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20년 4월 27일 |
영국 잉글랜드 더비셔 더비 | |
사망 | 1903년 12월 8일 (향년 83세) |
영국 잉글랜드 서식스 브라이튼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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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기숙학교 졸업 |
종교 | 불가지론 |
직업 | 사회학자, 철학자, 교육학자 |
서명 |
1. 개요
영국의 사회학자, 철학자, 교육학자. 19세기 사상계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2. 생애
1820년에 교사인 윌러엄 조지 스펜서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교사인데다가 학회의 간부로 일할 정도로 상당한 지식인이었으나 정작 본인은 학교 교육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스펜서에게 유년기 학교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이후 목사이자 교사인 숙부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서 라틴어, 수학, 물리학 등을 배웠다. 17세에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아버지의 권유로 교직에 나아가려고 했으나 어째서인지 철도쪽에 관심이 생겼고 유명한 엔지니어 찰스 폭스의 조수로 임용되어 경력을 쌓다가 런던-버밍엄 철도 구간의 철도 기사로 일하게 된다. 이때 측량, 설계, 건설 등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이는 그의 사상에도 많은 과학적 영향을 미쳤다.1842년에는 기관차의 속도를 측정하는 속도계를 발명했고, 현대 종이 클립의 기원이 되는 형태를 발명해내기도 했다. 단순 발명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토목/건축 기술 저널에 꾸준히 글을 기고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자 점차 정치/사회 쪽에도 관심이 생겼고 왕성하게 저작활동을 하며 여러 잡지의 편집자 자리를 거쳤고, 1848년부터 1853년까지는 이코노미스트지의 부편집장의 자리까지 맡게 된다.
1853년에 숙부가 사망하며 그에게 유산을 남기자 편집자 일을 그만두고 글을 쓰며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고, 1855년에는 심리의 생리학적 기초를 탐구한 "심리학원리"를 출판, 1857년에는 사회의 진보에 생물적 진화론을 접목한 "진보에 대해 - 그 법칙과 원인"을 출판한다. 흥미로운 점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그로부터 2년 뒤에 출판되었다는 것. 1862년에는 그의 사회진화론 사상이 제일 잘 담긴 "제1 원리"를 출간한다. 스펜서 본인은 처음에는 학자보다는 그냥 글을 쓰는 작가로 남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나, 이미 60년대~70년대에 이르러 당대의 가장 유명한 학자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고, 토머스 헨리 헉슬리, 찰스 다윈, 헤르만 폰 헬름홀츠 등과도 꾸준히 교류한다. 1876년 "사회학 원리"를, 1893년에는 "윤리학 원리"를 출판하는 등 계속해서 저작 활동을 이어가며 당대의 걸출한 학자로서 이름을 떨치다가 1903년에 8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3. 사상
스펜서의 핵심이론은 군사형 사회에서 산업형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보편적 경향을 설명한 사회변동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원시공동사회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로 존재했던 '군사형 사회'는 군대모델에 입각한 사회형태다. 군사형 사회에서는 용맹성, 상급자에 대한 복종, 물리적 힘이 높은 가치로 여겨지고, 사회적 협력이 강제된다.하지만 19세기 후반 경에는 사회적 유대의 초기 조건을 만드는 일이 마무리됐고 투쟁의 본능이 축소된 새로운 사회가 대두됐다. 이러한 '산업형 사회'에서는 공적 조직의 영역이 감소하고 사적 영역은 확대된다. 즉, 국가권력이 지녔던 기능들은 사적/자발적 조직들에게로 옮겨가고 자발적으로 협동하는 기업들이 국가의 자리를 대체한다.
스펜서는 산업형 사회를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산업형 사회로의 변동이 완료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를 사랑하고, 타인의 주장과 재산을 존경하며, 강한 독립의 욕구를 가질 것이었다. 따라서 스펜서는 모든 사회는 반드시 군사형 사회에서 산업형 사회로 변모하는 역사를 거치기 마련이며 그것은 곧 종속의 상황에서 자유의 상황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라고 결론지었다.
또한, 스펜서는 사회진화론의 창시자다. 흔히 알려져 있는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는 스펜서가 만들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이 주장한 자연도태 원리를 스펜서 본인의 이론 안에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고안한 독자적인 개념이 적자생존이었다.
문제는 적자생존 원칙을 사회변동이론에 적용해 사회진화론으로 정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사회진화라는 결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사회구성원들의 행위를 맞춰야 한다는 논지가 도출됐기 때문이다. 이 관점이 현실에 적용된 결과 사회진화에 기여한 우수한 개인은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상응하는 대가를 재산으로 소유해야 하며 반면에 노동자들은 사회진화에 별 기여를 못하는 쓸모없는 사람들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같은 맥락에서 스펜서는 인간의 책임감을 약화시킨다며 빈민법에 반대했다.
결론적으로 스펜서가 산업형 사회가 궁극적으로 달성할 것이라고 본 '평등한 자유의 원칙'과 진화론 수용 이후에 주장한 '행위(개인)와 결과(사회진화) 사이의 정상관계' 사이에는 괴리가 발생했다. 이러니 당대의 세계적 상황을 진단함에 있어서도 괴리가 나타났다. 힘의 우월성이야말로 사회진화의 원동력이라 보면서도, 식민주의적 착취는 군사형 사회의 특징이라며 부정한 것이다.
한편 그는 이른바 영웅사관에 대한 비판을 공식적으로 가했다. 영웅사관은 역사가 몇몇 영웅들의 행적에 의해 크게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관인데, 이에 대해 스펜서는 영웅 또한 그들이 속한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지적했다.
4. 저서
그를 대표하는 저서로 "개인 대 국가", "사회정학", "심리학의 원리", "생물학의 원리"등이 있으며, 현재 그의 저서와 수고등을 정리하는 작업중이다.5. 어록
음식의 부족, 혹서, 혹한은 무시되기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교육적) 자극을 만든다.
Want of food, great heat, extreme cold, produce promptings too peremptory to be disregarded (On Education 교육론)
Want of food, great heat, extreme cold, produce promptings too peremptory to be disregarded (On Education 교육론)
사회는 단순한 상태에서 복잡한 상태로 진화하며, 더 발달된 사회가 덜 발달된 사회를 지배하는 적자생존의 원칙도 적용된다.
- 하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 하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인간은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고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다.
조직적인 지식의 도움 없이는 선천적인 재능은 무력하다.
모두가 행복할 때까지는 아무도 완전히 행복할 수 없다.
인생은 석재(石材)이다. 이것에다 신의 형상을 새기든 악마의 형상을 새기든 그것은 각자의 자유이다.
진보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필연적인 사건이다.
6. 기타
- 영화 마틴 에덴에서 그의 저서가 핵심적으로 등장한다.
7. 평가
"다윈을 제외하고는 유럽 대륙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사상가였다."
- 앨프리드 마셜
19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다. 19세기 말부터 2차세계대전까지의 시기 동안 그의 사회진화론은 광범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현재까지도 그의 책들은 꾸준하게 읽히고 있다. - 앨프리드 마셜
스펜서의 학설이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정당화하는 데 많이 쓰였기 때문에, 식민지배를 경험한 민족들은 스펜서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 그런데 상술했듯이 정작 스펜서 본인은 식민주의/제국주의에 반대한 인물이었다.
관점에 따라, 스펜서를 현대철학의 태동을 가능케 한 철학자, 혹은 사회학자로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의 철학은 스펜서가 구성한 사회진화론을 부정하고 그 모순을 찾기 위한 시도였다는 식으로. 특히 앙리 베르그송은 그의 주저인 "창조적 진화"에서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면서 과학적/사회적/철학적으로 새로운 진화의 개념을 구성하려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