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7-18 15:53:15

허버트 스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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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허버트 스펜서
Herbert Spencer
파일:Herbert_Spencer.jpg
출생 1820년 4월 27일
영국 잉글랜드 더비셔 더비
사망 1903년 12월 8일 (향년 83세)
영국 잉글랜드 서식스 브라이튼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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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기숙학교 졸업
종교 불가지론
직업 사회학자, 철학자, 교육학자
사상 사회진화론, 자유지상주의
서명
파일:HS_steel_portrait_sig.jpg

1. 개요2. 생애3. 사상4. 평가5. 저서6. 어록7. 미디어 믹스에서8. 여담

1. 개요

영국의 사회학자, 철학자, 교육학자.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주고 받아서, 생명체 뿐만이 아니라 물리적 세계에서부터 유기적 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단순한 상태에서 복잡한 상태로 진화한다고 주장하였다.[1] 그는 이를 '진보'라고 불렀는데, 진화에 방향이 있다는 그의 생각은 사실 다윈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으므로, 이로 인해 19세기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의 사상은 20세기에 들어와 급격하게 그 위상을 잃어버렸다.

2. 생애

1820년에 교사인 윌러엄 조지 스펜서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교사인데다가 학회의 간부로 일할 정도로 상당한 지식인이었으나 정작 본인은 학교 교육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스펜서에게 유년기 학교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이후 목사이자 교사인 숙부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서 라틴어, 수학, 물리학 등을 배웠다. 17세에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아버지의 권유로 교직에 나아가려고 했으나 어째서인지 철도쪽에 관심이 생겼고 유명한 엔지니어 찰스 폭스의 조수로 임용되어 경력을 쌓다가 런던-버밍엄 철도 구간의 철도 기사로 일하게 된다. 이때 측량, 설계, 건설 등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이는 그의 사상에도 많은 과학적 영향을 미쳤다.

1842년에는 기관차의 속도를 측정하는 속도계를 발명했고, 현대 종이 클립의 기원이 되는 형태를 발명해내기도 했다. 단순 발명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토목/건축 기술 저널에 꾸준히 글을 기고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자 점차 정치/사회 쪽에도 관심이 생겼고 왕성하게 저작활동을 하며 여러 잡지의 편집자 자리를 거쳤고, 1848년부터 1853년까지는 이코노미스트지의 부편집장의 자리까지 맡게 된다.

1853년에 숙부가 사망하며 그에게 유산을 남기자 편집자 일을 그만두고 글을 쓰며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고, 1855년에는 심리의 생리학적 기초를 탐구한 "심리학원리"를 출판, 1857년에는 사회의 진보에 생물적 진화론을 접목한 "진보에 대해 - 그 법칙과 원인"을 출판한다. 흥미로운 점은 찰스 다윈종의 기원은 그로부터 2년 뒤에 출판되었다는 것. 1862년에는 그의 사회진화론 사상이 제일 잘 담긴 "제1 원리"를 출간한다. 스펜서 본인은 처음에는 학자보다는 그냥 글을 쓰는 작가로 남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나, 이미 60년대~70년대에 이르러 당대의 가장 유명한 학자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고, 토머스 헨리 헉슬리, 찰스 다윈, 헤르만 폰 헬름홀츠 등과도 꾸준히 교류한다. 1876년 "사회학 원리"를, 1893년에는 "윤리학 원리"를 출판하는 등 계속해서 저작 활동을 이어가며 당대의 걸출한 학자로서 이름을 떨치다가 1903년에 8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3. 사상

스펜서의 핵심이론은 군사형 사회에서 산업형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보편적 경향을 설명한 사회변동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원시공동사회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로 존재했던 '군사형 사회'는 군대모델에 입각한 사회형태다. 군사형 사회에서는 용맹성, 상급자에 대한 복종, 물리적 힘이 높은 가치로 여겨지고, 사회적 협력이 강제된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경에는 사회적 유대의 초기 조건을 만드는 일이 마무리됐고 투쟁의 본능이 축소된 새로운 사회가 대두됐다. 이러한 '산업형 사회'에서는 공적 조직의 영역이 감소하고 사적 영역은 확대된다. 즉, 국가권력이 지녔던 기능들은 사적/자발적 조직들에게로 옮겨가고 자발적으로 협동하는 기업들이 국가의 자리를 대체한다.

스펜서는 산업형 사회를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산업형 사회로의 변동이 완료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를 사랑하고, 타인의 주장과 재산을 존경하며, 강한 독립의 욕구를 가질 것이었다. 따라서 스펜서는 모든 사회는 반드시 군사형 사회에서 산업형 사회로 변모하는 역사를 거치기 마련이며 그것은 곧 종속의 상황에서 자유의 상황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라고 결론지었다.

또한, 스펜서는 사회진화론의 창시자다. 흔히 알려져 있는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는 스펜서가 만들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이 주장한 자연도태 원리를 스펜서 본인의 이론 안에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고안한 독자적인 개념이 적자생존이었다.

문제는 적자생존 원칙을 사회변동이론에 적용해 사회진화론으로 정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사회진화라는 결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사회구성원들의 행위를 맞춰야 한다는 논지가 도출됐기 때문이다. 이 관점이 현실에 적용된 결과 사회진화에 기여한 우수한 개인은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상응하는 대가를 재산으로 소유해야 하며 반면에 노동자들은 사회진화에 별 기여를 못하는 쓸모없는 사람들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같은 맥락에서 스펜서는 인간의 책임감을 약화시킨다며 빈민법에 반대했다.

결론적으로 스펜서가 산업형 사회가 궁극적으로 달성할 것이라고 본 '평등한 자유의 원칙'과 진화론 수용 이후에 주장한 '행위(개인)와 결과(사회진화) 사이의 정상관계' 사이에는 괴리가 발생했다. 이러니 당대의 세계적 상황을 진단함에 있어서도 괴리가 나타났다. 힘의 우월성이야말로 사회진화의 원동력이라 보면서도, 식민주의적 착취는 군사형 사회의 특징이라며 부정한 것이다.

한편 그는 이른바 영웅사관에 대한 비판을 공식적으로 가했다. 영웅사관은 역사가 몇몇 영웅들의 행적에 의해 크게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관인데, 이에 대해 스펜서는 영웅 또한 그들이 속한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지적했다.

4. 평가

"다윈을 제외하고는 유럽 대륙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사상가였다."
- 앨프리드 마셜
19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고 19세기에 그의 사회진화론은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20세기 초부터는 그 명성이 급격하게 하락해서 20세기 중반부터는 '철학의 놀림감(parody of philosophy)'으로 치부될 정도로 그 위상이 낮아졌다.[2] 탤컷 파슨스는 1937년에 "이제 누가 스펜서를 읽습니까?"라고 되물은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3] 21세기 들어서 몇 번의 긍정적 재평가가 있긴 했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평가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스펜서의 학설은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정당화하는 데 많이 쓰였기 때문에, 식민지배를 경험한 민족들은 스펜서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 하지만 정작 스펜서 본인은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반대한 인물이었다. 그가 서술한 야만사회, 그러니까 군사형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다름이 아니라 그 파시즘, 군국주의가 지향한 모습이었다.[4] 아무튼 이러한 입장은 제국주의가 당연했던 당시 영국에서 스펜서의 인기가 크게 하락하는 데 일조했다.

관점에 따라, 스펜서를 현대철학의 태동을 가능케 한 철학자, 혹은 사회학자로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의 철학은 스펜서가 구성한 사회진화론을 부정하고 그 모순을 찾기 위한 시도였다는 식으로. 특히 앙리 베르그송은 그의 주저인 "창조적 진화"에서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면서 과학적/사회적/철학적으로 새로운 진화의 개념을 구성하려 시도했다.

5. 저서

제목 발간 연도
<colbgcolor=#fff,#1f2023> 정부의 적절한 영역
The Proper Sphere of Government
<colbgcolor=#fff,#1f2023> 1843년
사회 정학
Social Statics
1851년
심리학의 원리[5]
The Principles of Psychology
1855년
진보의 법칙과 원인
Principles of Biology: The Laws of Organic Progress
1859년
교육론:지적,도덕적,신체적[6]
Education: Intellectual, Moral, and Physical
1861년
제 1 원리[7]
First Principles
1862년
생물학의 원리[8]
Principles of Biology
1864년
사회학 연구
The Study of Sociology
1874년
사회학의 원리[9]
The Principles of Sociology
1874-96년
윤리학 원리 [10]
The Principles of Ethics
1879년
인간 대 국가
The Man versus the State
1884년
유기적 진화의 요인들
The Factors of Organic Evolution
1887년
윤리학의 원리[11]
The Principles of Ethics
1892년
자서전
An Autobiography
1904년

스펜서의 대표작은 '원리' 시리즈를 하나로 모은 『종합철학체계』[12]인데, 한국에서는 번역된 바 없다. 이외에 여러 편의 논문을 저술했으며, 한국에서는 교육이나 진화에 관련된 논문의 일부가 번역되어 책으로 나오기도 한다.

6. 어록

음식의 부족, 혹서, 혹한은 무시되기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교육적) 자극을 만든다. [13]
외력의 한정된 총합과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저 개체들의 기능은 죽게 될 수밖에 없고, 외력의 한정된 총합과 거의 평형을 이루는 기능들은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적자생존은 적자증식을 시사한다. [14]
인간은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고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다.
조직적인 지식의 도움 없이는 선천적인 재능은 무력하다.
모두가 행복할 때까지는 아무도 완전히 행복할 수 없다.
인생은 석재(石材)이다. 이것에다 신의 형상을 새기든 악마의 형상을 새기든 그것은 각자의 자유이다.
진보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필연적인 사건이다.

7. 미디어 믹스에서

  • 영화 마틴 에덴에서 그의 저서가 핵심적으로 등장한다.

8. 여담

  • 젊었을 때 스펜서는 스스로를 '급진적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자유주의적 사상을 가졌었지만, 말년에는 보수적으로 변하여 당시 영국에서 벌어진 여성 참정권 운동을 격렬하게 반대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1] 엄밀히 말하면 그가 진화의 개념 자체(단 라마르크식의 진화)를 먼저 제시하였고, 그 후에 다윈의 학설을 받아들여 더 정교하게 다듬은 것.[2] Gertrude Himmelfarb, Darwin and the Darwinian Revolution, 1968, p. 222; quoted in Robert J. Richards, Darwin and the Emergence of Evolutionary Theories of Mind and Behavior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9), p. 243.[3] Talcott Parsons, The Structure of Social Action (1937; New York: Free Press, 1968), p. 3; quoting from C. Crane Brinton, English Political Thought in the Nineteenth Century (London: Benn, 1933).[4] 결과적으로 제국주의 국가들은 점점 야만성에 물들어가다 끝내 파국을 맞이하였다.[5] 나중에 『종합철학체계』 4-5권으로 편입됨.[6] 1854년부터 1859년까지의 에세이들을 묶은 것.[7] 나중에 『종합철학체계』 1권으로 편입됨.[8] 적자생존 개념 처음 제시. 나중에 『종합철학체계』 2-3권으로 편입됨.[9] 나중에 『종합철학체계』 6-8권으로 편입됨.[10] 초판,1893년 완성.스펜서의 방대한 '종합철학 체계'의 마지막 부분을 구성하는 중요 저작. 이 중 네번째 부분인 '정의,Justice'는 중요 저작으로, 초기 저작인 '사회 정학'의 내용을 상당 부분 재작업하여 포함[11] 나중에 『종합철학체계』 9-10권으로 편입됨.[12] 기존에 발표했던 『제1원리』, 『생물학의 원리』, 『심리학의 원리』, 『사회학의 원리』, 『윤리학의 원리』를 합쳐서 낸 책.[13] Want of food, great heat, extreme cold, produce promptings too peremptory to be disregarded. (On Education 교육론)[14] It cannot but happen that those individuals whose functions are most out of equilibrium with the modified aggregate of external forces, will be those to die; and that those will survive whose functions happen to be most nearly in equilibrium with the modified aggregate of external forces. But this survival of the fittest, implies multiplication of the fittest. (Principles of Biology (18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