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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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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여행국 목록과 여정4. 혜초의 시5. 평가6. 기타

1. 개요

왕오천축국전()은 723년부터 727년까지 신라승려 혜초가 다섯 천축국을 답사하고 그들 나라의 종교, 정치, 문화 등을 기록한 여행기다. 인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과 다른 남아시아 지역, 그리고 보통 중동으로 분류되는 페르시아(이란)까지 여행하였다.

책 제목은 '왕(往) / 오(五) / 천축국(天竺國) / 전(傳)' 으로 읽는다. '고대 인도의 다섯 나라(五天竺國)를 다녀온(往) 이야기(傳)'란 뜻이다.

2. 역사

8세기에서 9세기 사이에 활동한 당나라의 승려 혜림이 쓴 책 《일체경음의》[1]에 혜초가 《왕오천축국전》이란 책을 지었다고 전한다. 원래는 책 3권 분량이라거나, 혜초가 인도로 갈 때는 배를 타고 갔고 동남아시아의 각멸(閣蔑)[2], 나형국(裸形國)[3] 등을 거쳤다는 사실은 현재 남아있는 왕오천축국전 부분이 아니라, 원본을 인용한 이 책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폴 펠리오가 중국 간쑤성둔황 막고굴 장경동에서 당시 장경동을 지키던 왕원록에게서 희귀한 고서 여러 권 사들였는데 개중 섞여 있었다. 본래 3권으로 편찬되었으나 현존본은 그 약본이며, 앞뒤 부분은 유실되었다. 3권 중 첫 부분 전체와 두 번째 부분 앞머리, 세 번째 부분 끝 일부가 잘려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내용 중에는 중국부터 인도까지 동남아시아 지역을 항해하며 임읍 등을 거쳤다는 과정은 빠져 있다. 남아 있는 부분은 인도에서 육로로 아시아 내륙을 통과하며 정보를 기록한 부분이다. 물론 이만큼 분량만 해도 당시의 지리기록이 부족하다보니 역사적인 발견이었다.

《왕오천축국전》이 세상에 알려지자 많은 역사가들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중국의 나진옥(羅振玉), 일본의 후지타 도요하치(藤田豊八) 등에 의해 사본의 교정출판이 이루어졌다.[4] 이전에 왕오천축국전의 저술은 당나라 승려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 1915년 일본의 사학자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가 신라 승려임을 입증하였다. 사본은 1928년에 독일의 사학자 푸크스(Fuchs,W.)가 독일어로 번역 출판하였다.

한국에서는 1943년 최남선이 원문과 해제를 추가함으로써 이 여행기가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들어서서 출판된 번역본으로는 2004년에 출판된 정수일 교수의 번역본과 2010년에 출판된 지안스님의 번역본이 있다. 정수일 교수의 번역본은 역자가 문명교류사의 대가이다 보니 주석이나 참고자료가 풍부하다. 오늘날 《왕오천축국전》은 한국이 아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었으므로 한국의 국보로는 지정되지 않았다.

3. 여행국 목록과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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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의 여정.

폐사리(吠舍厘), 구시나(拘屍那), 파라닐사(波羅痆斯), 중천축갈나급(中天竺葛那及), 중천축사대탑(中天竺四大塔), 남천축(南天竺), 서천축(西天竺), 도란달라(闍蘭達羅), 마게타(摩揭陀), 소발나구달라(蘇跋那具怛羅), 탁사(鐸社), 신두고라(新頭故羅), 가섭미라(迦葉彌羅), 가비라(伽毗羅), 대발률(大勃律), 양동(楊同), 사파자(娑播慈), 토번(吐蕃), 건다라(建馱羅), 소발률(小勃律), 오장(烏長), 구위(拘衛), 림파(覽波), 계빈(罽賓), 범인(犯引), 토화라(吐火羅), 파사(波斯), 대식(大食), 대불림(大拂臨), 사율(謝䫻), 조국(曹國), 골돌(骨咄), 강국(康國), 사국(史國), 미국(米國)[5], 안국(安國), 발하나(跋賀那), 돌궐(突厥), 총령진(葱嶺鎮), 호밀(胡密), 식닉(識匿), 소륵(疏勒), 구차(龜茲), 우전(于闐), 안서(安西), 언기(焉耆)

또한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대식국(우마이야 왕조아바스 왕조), 소불림국(시리아), 대불림국(동로마 제국)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다시 파사국(페르시아)에서 북쪽으로 열흘을 가서 산으로 들아가면 대식국에 이른다. 대식국 왕은 본국에 살지 않고 소불림국에 가서 살기는 하는데[6] 소불림국을 쳐서 얻기 위해서는 소불림의 산 많은 섬에서 가서도 산다.

이 땅에는 낙타, 노새, 양, 말, 모직물, 모포가 나며 의상은 가는 모직으로 만든 헐렁한 적삼을 입고, 또 그 위에 한 장의 모직 천을 걸친다. 이것을 겉옷으로 한다. 왕과 백성의 의상은 한 가지로 구별이 없다.[7] 여자도 헐렁한 적삼을 입는다. 남자는 머리는 깎으나 수염은 그대로 두며 여자는 머리를 기른다.

식사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다 같이 한 그릇에서 먹는다.[8] 숟가락이나 꼬챙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자기 손으로 잡은 것을 먹어야 무한한 복을 얻는다고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살생을 좋아하고, 을 섬기나 불법을 알지 못한다.

4. 혜초의 시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에서 오언율시 5수를 남겼다.

나의 마음을 간단히 적다
(略題述其愚志 약제술기우지)
깨달음이 멀다고 걱정 않는데

어찌 녹야원[9]이 그리 멀다 하리오

가파른 길 험하다고 근심할 뿐

업풍(業風)[10]이 몰아쳐도 개의치 않네

여덟 탑[11]을 보기란 정말 어려운데

오랜 세월 겪으며 거의 타버렸으니

어찌 뵈려는 소원 이루어지겠는가

(하지만) 바로 이 아침 내 눈으로 보았노라.
不慮菩提遠 불려보리원

焉將鹿苑遙 언장녹원요

只愁懸路險 지수현로험

非意業風飄 비의업풍표

八塔難誠見 팔탑난성견

參著經劫燒 참착경겁소

何其人願滿 하기인원만

目覩在今朝 목도재금조
* 힘들게 도착하여 석가모니의 성지를 바라봄에 뿌듯한 감회를 서술.

남천축국 길에서
(在南天路재남천로)
달밤에 고향 가는 길 바라 보니

뜬구름 휙휙 돌아나가네

그 편으로 서신을 붙이고자 하나

급한 바람은 듣지도 않고 돌아가 버리누나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의 구석 서쪽에 있는데,

일남(日南)[12]에는 기러기가 있지 않으니

누가 계림[13]을 향하여 날갯짓을 하오리.
月夜瞻鄕路 월야첨향로

浮雲颯颯歸 부운삽삽귀

緘書參去便 함서참거편

風急不聽廻 풍급불청회

我國天岸北 아국천안북

他邦地角西 타방지각서

日南無有雁 일남무유안

誰爲向林飛 수위향림비
* 베트남에서 달밤에 달에 비치는 구름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함.

저승길을 슬퍼하다
(悲冥路비명로)
고향의 등불은 주인을 잃어

타향에서 보배로운 나무가 꺾어져 버렸도다.[14]

신성한 영혼은 어디로 가버렸기에

옥 같던 모습은 이미 재가 되었는가?

잊지 못하고 그리워서 슬픈 감정 간절하지만

그대 소원을 따르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오.

고향으로 가는 길 누가 알고 있는지

흰 구름 돌아감을 헛되게 바라본다.
故里燈無主 고리등무주

他方寶樹摧 타방보수최

神靈去何處 신령거하처

玉貌已成灰 옥모이성회

憶想哀情切 억상애정절

悲君願不隨 비군원불수

孰知鄕國路 숙지향국로

空見白雲歸 공견백운귀
* 같이 여행을 한 동료가 타지에서 죽어, 깊이 슬퍼함.

서역으로 들어가는 한나라[15] 사신을 만나 간단히 운[16]을 취해 짓다
(逢漢使入蕃略題四韻取辭봉한사입번약제사운취사)
그대는 서역이 멀다고 한탄하고

나는 동쪽 길이 멀다고 탄식한다.

길은 거칠고 고개에 엄청난 눈 쌓였는데

험한 산골엔 도적떼가 날뛰는구나

새는 날다가 가파른 산 높이에 놀라고

사람은 굽은 나무 의지하며 어렵사리 넘어가노니

평생 눈물을 흘리지 않았건만

오늘은 하염없이 떨어지누나.
君恨西蕃遠 군한서번원

余嗟東路長 여차동로장

道荒宏雪嶺 도황굉설령

險澗賊途倡 험간적도창

鳥飛驚峭嶷 조비경초억

人去難偏樑 인거난편량

平生不捫淚 평생불문루

今日灑千行 금일쇄천항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역으로 가는 사신을 만나서,
귀향 하기 힘듦을 토로하고 북받쳐 눈물을 흘림.

겨울에 토화라[17]에서 눈을 만나 마음에 품은 말을 적다
(冬日在吐火羅逢雪述懷동일재토화라봉설술회)
서늘한 눈, 얼음에 붙어 합하고

차가운 바람, 땅을 쪼갤 듯 사납다.

큰 바다는 얼어서 단(壇)을 이루고

강물은 벼랑을 물어 뜯는다

용문에 폭포는 끊어지고

우물은 똬리 튼 뱀, 엉켰나니[18]

불에 의지해 계단 오르며 노래하도다

어떡하면 파미르[19]를 넘어갈 수 있는가
冷雪牽氷合 냉설견빙합

寒風擘地烈 한풍벽지열

巨海東墁壇 거해동만단

江河凌崖囓 강하릉애설

龍門絶瀑布 용문절폭포

井口盤蛇結 정구반사결

伴火上陔歌 반화상해가

焉能度播蜜 언능도파밀
* 파미르 고원의 상상하지도 못할 추위에 놀라며, 노래를 부르며 나아감.

5. 평가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8세기 인도, 중앙아시아 지역의 여러 문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마르코 폴로동방견문록, 현장대당서역기 등과 함께 '세계 4대 여행기' 중 하나로 손꼽혀서 설명되기도 한다.

6. 기타

  • 2010년에 잠시 프랑스에서 한국에 돌아와 전시되었다.[20]
  • 해양수산부, 경상북도, 한국해양대학교는 공동으로 해양실크로드 탐험을 추진하여 2014년 87일 동안 항해를 성공하였다.[21]


[1] 불교 자체가 인도에서 넘어왔다보니 동아시아인이 해석하기 어려운 단어가 많았는데, 일체경음의는 이런 어려운 부분에 주석을 달아 설명하는 책이다.[2] 오늘날의 캄보디아인 크메르의 음차로 추정되고 있다. 고병익, "혜초의 인도 왕로에 대한 고찰" 1987, 876면.[3] 현지인들이 벌거벗었다는 의미. 오늘날의 말레이 반도 북서안이나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로 추정되고 있다. 고병익, "혜초의 인도 왕로에 대한 고찰" 1987, 882~885면.[4] 다만, 이들의 사본을 보면 문자를 누락시키거나 똑같은 문자를 반복해 쓰는 등 실수가 많이 보인다. 너무나 잘못된 문자가 많았는지 수정한 부분도 있지만, 수정된 문자보다 잘못된 문자가 더 많다. 당시 대한제국은 이미 외교권까지 일본에 뺏기고 나라 먹히기 직전 상황이라 조사에 필요한 학술 역량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5] Maymurgh #[6] 우마이야 칼리파들이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메디나에 머무르는 대신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머무르면서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을 자주 방문했던 것을 전해 듣고 설명한 내용인 듯하다.[7] 초창기 이슬람 제국은 아랍인 평등주의에 기반해서 사치를 삼가는 편이었다.[8] 전통적인 아랍인들의 식사 방법이다.[9] 석가모니가 최초로 설법을 한 곳.[10] 과보가 돌아오는 바람. 가는 길이 괴로워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11] 석가모니의 4대 성지와 4대 기적지에 세운 탑을 말한다.[12] 베트남을 말한다.[13] 신라의 서라벌을 말한다.[14] 고향에서 같이 온 동료의 목숨을 '등불'에 비유하였다. '등불에 주인이 없다(燈無主)'는 것은 동료의 목숨이 꺼졌다는 것. 또는 고향에서 같이 온 동료가 죽고 그가 고향에서 가져온 등불만 남았다. 여기서 '보배로운 나무'는 동료를 뜻한다.[15] 여기서 漢은 중국 당나라를 뜻한다.[16] 운율에 맞춰서[17] 현 아프가니스탄 북부 지역.[18] 얼어서 폭포가 끊어지고 우물이 얼음으로 막힌 것을 묘사했다.[19] 파미르 고원을 말한다.[20] 한국일보, 2010년 12월 14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1283년 만에 한국 왔다[21] 경북일보, 2014년 12월 10일, 해양실크로드 경북이 간다(10) - 해양실크로드, 87일간 역사적인 항해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