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colcolor=#ffffff> 출생 | 1916년 10월 20일 |
경상북도 상주군 내서면 능암리[1] (現 경상북도 상주시) | |
사망 | 2004년 3월 19일 |
대전광역시 충남대학교병원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본관 | 창녕 성씨 |
학력 | 경북공립중학교 (졸업) 니혼대학 (법과)[2]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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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2. 생애
1916년 10월 20일 경상북도 상주군 내서면 능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8년 경북공립중학을 졸업한 뒤 일본 동경으로 유학하여 니혼대학 법과에 재학했다.그러던 중 경북중학 동창인 동경유학생 최홍준(崔弘俊)과 만나 "참혹한 민족차별의 현 제도가 존속되는 한 일제의 학대를 받아야 하므로, 민족자결주의를 표방하여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독립하게 하는 민족의식을 앙양하여 궐기할 것"을 맹세하고 활동했다. 1943년 2월 초순경에는 서울에서 최홍준·여대현 등과 다시 만나 "우리는 동지로서 이후 더욱 협력하여 난관을 돌파하고 조선 독립의 실현을 위하여 매진해야 한다"고 약속하고 이의 실현을 위하여 민족의식 앙양을 도모했다.
그러나 이 일이 경찰에 탐지되는 바람에 체포되었고, 1944년 1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및 육군형법과 해군형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8.15 광복 직후 석방되었다. 이후 대전에서 조용히 지내다 2004년 3월 19일 충남대학교병원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성장환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2004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