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06 15:35:57

세우테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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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오드뤼사이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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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스 1세 시탈케스 세우테스 1세 아마도코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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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테스 2세 헤브리젤미스 코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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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티스 3세 로메탈케스 2세 피토도리스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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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뤼사이 제3대 국왕
세우테스 1세
Σεύθης
파일:Seuthes_I.jpg
출생 생년 미상
사망 기원전 411년 이후 (향년 ?세)
재위기간 오드뤼사이 국왕
기원전 424년 ~ 기원전 411년 이후
(12~13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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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부모 아버지 스파라도코스
어머니 미상
배우자 미상
자녀 없음
형제자매 아마도코스 1세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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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드뤼사이 왕국 3대 군주.

2. 생애

오드뤼사이 왕국 초대 군주 테레스 1세의 아들 스파라도코스의 아들이자 2대 군주 시탈케스의 조카다.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동맹을 맺은 시탈케스는 기원전 429년 아테네를 적대하는 마케도니아 왕 페르디카스 2세를 상대로 대대적으로 쳐들어갔다. 시탈케스의 군대는 악시아 강을 돌아 마케도니아 각지를 돌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미그도니아, 안테문트, 그리고 크레스토니아를 약탈했으며, 다수의 정착촌을 파괴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안가서 식량난에 시달렸고, 아테네가 함대를 보내주지 않은데다, 마케도니아군의 거센 반격에 시달리다 1개월여 만에 본국으로 퇴각했다. 이후 그가 양자를 중재한 끝에 페르디카스 2세의 누이 스트라토니케를 시탈케스와 결혼시키고 양국간의 분쟁을 종식하기로 했다.

기원전 424년 시탈케스가 북마케도니아 북부와 불가리아 서부의 평야를 지배했던 트리발리 족을 침공했지만 전투에서 패배하고 목숨을 잃었다. 이후 왕위에 오른 그는 트리발리 족과 화해하고 삼촌에게 시집갔다가 미망인이 된 스트라토니케와 결혼했으며, 내실을 다지는데 힘썼다.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당시 오드뤼사이 왕실의 정규 수입이 400달란트였으며, 금과 은의 형태로 거의 같은 양의 공물이 여러 부족에서 바쳐졌다고 한다. 기원전 425년에서 기원전 423년까지 암피폴리스의 소유권을 놓고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격돌했을 때, 그는 선왕 때 동맹을 맺었던 아테네를 돕기를 거부했다. 또한 기원전 418년부터 기원전 415년까지 암피폴리스를 상대로 침공한 페르디카스 2세와 이에 맞선 아테네 중 어느 쪽도 돕지 않았다. 이것이 평화를 선호했기 때문인지, 피지배 민족에 대한 통제력 약화로 인해 외부에 신경쓰기 힘들었기 때문인지는 불분명하다.

기원전 411년, 갈리폴리 반도를 얻기 위해 아테네에 대항하여 원정을 단행했으나 패배했다.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투키디데스의 역사에는 그의 죽음이나 후계자의 등장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기원전 405년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 때 아테네 해군에 접근한 알키비아데스가 "나는 트라키아 왕 메도쿠스와 세우테스를 친구로 두고 있다"라고 자랑한 걸 봤을 때, 이 시기에 왕국이 아마도코스 1세(또는 메도쿠스)와 세우테스 2세의 세력으로 양분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