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06 15:53:20

코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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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뤼사이-사파이 왕국의 국왕에 대한 내용은 코티스 1세(사파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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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오드뤼사이 왕국
<rowcolor=#000,#fff>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테레스 1세 시탈케스 세우테스 1세 아마도코스 1세
<rowcolor=#000,#fff> 제5대 제6대 제7대
세우테스 2세 헤브리젤미스 코티스 1세
서부 오드뤼사이 왕국
<rowcolor=#000,#fff> 초대 제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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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오드뤼사이 왕국
<rowcolor=#000,#fff> 초대 제2대
아마도코스 2세 테레스 2세
동부 오드뤼사이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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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뤼사이 왕국의 부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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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뤼사이-사파이 왕국
<rowcolor=#000,#fff>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코티스 1세 레스쿠포리스 1세 코티스 2세 로메탈케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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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쿠포리스 2세 안토니아 트뤼파이나 로메탈케스 3세
코티스 3세 로메탈케스 2세 피토도리스 2세 }}}}}}}}}

<colbgcolor=#000><colcolor=#fff>
오드뤼사이 제7대 국왕
코티스 1세
Κότυς
파일:코티스 1세.jpg
출생 생년 미상
사망 기원전 360년 (향년 ?세)
재위기간 오드뤼사이 국왕
기원전 384년 ~ 기원전 360년
(23~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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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부모 아버지 세우테스 2세
어머니 미상
배우자 미상
자녀 베리사데스, 케르소블렙테스
형제자매 없음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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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드뤼사이 왕국 7대 군주. 왕국의 통합을 이룬 뒤 체르소네스 반도를 공략하기 위해 아테네 연방과 전쟁을 벌여 목적을 거의 이룰 뻔했으나 도중에 암살당했다. 그의 사후 오드뤼사이 왕국은 3개로 분열되어 쇠락하다가 마케도니아 왕국의 침략에 무너졌다.

2. 생애

기원전 330년경에 세워진 아테네 비문에는 "코티스의 형제이자 세우테스의 아들인 레불라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로 보건대, 그는 세우테스 2세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기원전 411년 이후 세우테스 1세가 세상을 떠난 이래, 오드뤼사이 왕국은 아마도코스 1세가 다스리는 트라키아 내륙 지방과 세우테스 2세가 다스리는 트라키아 해안 지방으로 양분되었다. 초기에는 아마도코스 1세가 선임 군주이고 세우테스 2세는 봉신을 자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마찰을 벌이다 나중에는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기원전 390/389년, 아테네 장군 트라시볼로스가 둘을 중재했다. 그 결과 세우테스 2세가 아마도코스 1세의 권위를 인정하는 대가로 트라키아 해안 지대의 지배를 인정받았다.

얼마 후 아마도코스 1세가 죽고 헤브리젤미스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자 세우테스 2세는 다시 전쟁을 벌였다. 헤브리젤미스는 아테네와 동맹을 맺었고, 세우테스 2세는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었다. 그는 거의 모든 영토를 잃고 축출될 위기에 몰렸다가, 아테네 장군 이피크라테스가 이끄는 용병대가 트라키아 해안지대를 확보한 뒤 그에게 넘겨줬다. 그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아들 코티스 1세의 딸을 이피크라테스에게 시집보냈다. 기원전 385년 세우테스 2세가 사망한 뒤, 헤브리젤미스가 그의 영역을 잠시 다스렸다가 기원전 384년에 그가 뒤를 이어 트라키아 해안지대의 왕으로 선임되는 걸 허용했다. 이후 기원전 383년 헤브리젤미스가 사망했다. 그가 헤브리젤미스를 살해했다는 설이 제기되나, 진위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는 이피크라테스의 지원에 힘입어 아마도코스 2세와 사라토코스 등 정적들을 물리치고 왕국 전역을 통합했다. 이후 에게 해 연안지대와 체르소네스 반도를 공략하여 왕국을 더욱 발전시킬 야망을 품었다.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아테네는 이를 경계하여 기원전 370년대 초 여러 이웃도시들과 섬들을 아테네 연방에 가입시켜서 그에게 대적했다. 기원전 375년, 그는 트라키아 북서부의 강력한 트라키아 부족인 트리발리 족 지도자 헤일스가 아테네 연방에 가입한 압데라를 공격하는 걸 도왔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에 따르면, 아테네 장군 차브리아스가 구원군을 이끌고 당도하는 바람에 도시 공략은 실패했다고 한다. 기원전 367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프리지아 사트라프 아리오바르자네스가 시스토를 공략했다. 이후 기원전 365년 아리오바르자네스가 샤한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고 아테네가 아리오바르자네스를 돕자, 그는 샤한샤 편을 들어 아테네와 대적했다. 아테네인들은 테모테우스 장군 휘하의 해군을 파견해 세스토와 크리토테(오늘날 갈리폴리)를 함락했다.

기원전 363년, 그는 체르소네스 반도를 공략하기 위해 밀토키데스 장군을 파견했다. 밀토키데스는 세스토스와 크리토테를 탈환했고, 도시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아테네군을 격파했다. 그러나 기원전 362년, 밀토키데스는 오드뤼사이 왕실의 국고가 있는 히에론 오로스를 탈취했다가 분노한 그의 군대에게 포위되었다. 밀토키데스는 아테네에 구원을 요청했고, 아테네는 그를 돕기 위해 함대를 파견했지만 코티스의 사위 이피크라테스에게 격파되었다. 밀토키데스는 기원전 361년 봄 히에론 오로스를 버리고 세스토스로 달아났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어 그에 대적하기로 하고, 2명의 지휘관을 더 파견해 코티스에 대항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이피크라테스와 카리데모스의 도움 덕분에 승리했다. 데모스테네스에 따르면, 두 사람은 아테네 육군과 해군 지휘관들에게 뇌물을 줘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일에 분노한 아테네인들은 본국에 돌아온 지휘관들을 재판에 회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추방했다.

기원전 360년, 그는 체르소네스 반도의 거의 모든 지역을 공략했고,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아테네 연방 도시인 세피소토스를 향한 공세를 계획했다. 그러나 그해 9월, 그는 자신과 가까운 사이였던 파이톤과 헤라클레이데스를 연회에 초대했다가 두 사람에게 암살당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아테네로 도주해 명예 시민권을 수여받고 금화환을 받았다. 이후 그의 아들 케르소블렙테스가 왕위에 올랐지만, 이듬해인 기원전 359년 지난날 그에게 대적했던 아마도코스 2세베리사데스가 반란을 일으켜 각각 중부 트라키아와 서부 트라키아를 차지하면서, 왕국은 순식간에 3개로 분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