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41414, #000 20%, #000 80%, #141414); color: #fff;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통합 오드뤼사이 왕국 | |||
<rowcolor=#000,#fff>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
테레스 1세 | 시탈케스 | 세우테스 1세 | 아마도코스 1세 | |
<rowcolor=#000,#fff> 제5대 | 제6대 | 제7대 | ||
세우테스 2세 | 헤브리젤미스 | 코티스 1세 | ||
서부 오드뤼사이 왕국 | ||||
<rowcolor=#000,#fff> 초대 | 제2대 | |||
베리사데스 | 케트리포리스 | |||
중부 오드뤼사이 왕국 | ||||
<rowcolor=#000,#fff> 초대 | 제2대 | |||
아마도코스 2세 | 테레스 2세 | |||
동부 오드뤼사이 왕국 | ||||
<rowcolor=#000,#fff> 초대 | ||||
케르소블렙테스 | ||||
오드뤼사이 왕국의 부흥기 | ||||
<rowcolor=#000,#fff> 초대 | 제2대 | |||
세우테스 3세 | 로이고스 | |||
오드뤼사이-사파이 왕국 | ||||
<rowcolor=#000,#fff>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
코티스 1세 | 레스쿠포리스 1세 | 코티스 2세 | 로메탈케스 1세 | |
<rowcolor=#000,#fff> 제5대 | 제6대 | 제7대 | ||
레스쿠포리스 2세 | 안토니아 트뤼파이나 | 로메탈케스 3세 | ||
코티스 3세 | 로메탈케스 2세 | 피토도리스 2세 | }}}}}}}}} |
<colbgcolor=#000><colcolor=#fff> | |||
출생 | 생년 미상 | ||
사망 | 기원전 385년 (향년 ?세) | ||
재위기간 | 오드뤼사이 국왕 | ||
기원전 411년 이후 ~ 기원전 385년 (?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메사데스 어머니 미상 | |
배우자 | 미상 | ||
자녀 | 코티스 1세 | ||
형제자매 | 없음 | }}}}}}}}} |
[clearfix]
1. 개요
오드뤼사이 왕국 5대 군주.2. 생애
오드뤼사이 왕국 초대 군주 테레스 1세의 후예인 메사데스의 아들이다. 메사데스는 트라키아 남동부의 멜란디티족, 티니족, 트란입시 족 등 여러 부족을 다스렸지만, 모종의 이유로 나라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쫓겨난 뒤 아마도코스 1세에 의해 아버지의 영지를 물려받았다. 기원전 405년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 때, 아테네 해군에 접근한 알키비아데스는 자신이 트라키아 왕 메도쿠스(아마도코스 1세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와 세우테스를 친구로 두고 있다고 자랑했다.기원전 401/400년 겨울, 젊은 키루스를 따라 페르시아로 진군했다가 쿠낙사 전투 후 온갖 고생 끝에 발칸 반도로 돌아온 크세노폰의 용병대를 고용했다. 크세노폰을 그를 아마도코스 1세의 부하로 묘사했다. 크세노폰의 용병대는 트라키아 해안 지대에서 그의 통치에 반발한 산악 부족들을 제압하는 데 도움을 줬다. 크세노폰과 용병대가 급료를 지불하라고 요구했을 때, 그는 급료를 지불하길 꺼렸지만 "수틀리면 당신을 몰아낼 수 있다"는 압력을 받자 급료를 지불하기로 했다.
기원전 399년 스파르타 사령관 데르실리다스를 돕기 위해 비티니아에 200명의 기병과 300명의 펠타스트, 상당수의 트라키아 보조병을 파견했다. 그러나 스파르타군이 비티니아에서 고전하자, 그는 아테네와 페르시아 동맹 편에 붙었다. 그와 아마도코스 1세는 한동안 공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마찰을 벌이다 나중에는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기원전 390/389년, 아테네 장군 트라시볼로스가 둘을 중재했다. 그 결과 그가 아마도코스 1세의 권위를 인정하는 대가로 트라키아 해안 지대의 지배를 인정받았다.
얼마 후 아마도코스 1세가 죽고 헤브리젤미스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다시 전쟁을 벌였다. 헤브리젤미스는 아테네와 동맹을 맺었고, 그는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었다. 그는 거의 모든 영토를 잃고 축출될 위기에 몰렸다가, 아테네 장군 이피크라테스가 이끄는 용병대가 트라키아 해안지대를 확보한 뒤 그에게 넘겨줬다. 그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아들 코티스 1세의 딸을 이피크라테스에게 시집보냈다. 기원전 385년에 사망했고, 헤브리젤미스가 그의 영역을 잠시 다스렸다가 기원전 384년 코티스 1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트라키아 해안지대의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