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매사추세츠 세일럼시에 있는 마녀 박물관 |
1. 개요
세일럼 마녀 재판(Salem witch trials)은 미국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였던 13개 식민지 시절 당시 1692년 1월부터 9월까지[1] 매사추세츠 식민주 보스턴 근교의 어촌 세일럼시(Salem City) 및 세일럼촌(Salem Village)[2]에서 벌어진 일련의 마녀사냥 및 종교 재판을 말한다. 이 재판으로 19명이 사형당하고 1명이 고문치사했으며 140여 명이 체포되었다.2. 전개
※ 세일럼 재판 당시 영국과 식민지 지역은 율리우스력을 사용했으므로 관련 자료들도 전부 율리우스력 날짜를 따른다.
발단은 1692년 1월 20일 매사추세츠의 청교도 목사 새뮤얼 패리스(Samuel Parris)의 딸 베티 패리스(Betty Parris)와 조카 애비게일 윌리엄스(Abigail Williams)가 발작과 이상 행동을 보인 것이었다. 두 소녀의 치료를 하던 의사 윌리엄 그릭스는 증상이 낫지 않자 2월 중순쯤 "이들이 악마의 손아귀에 떨어졌다."는 진단을 내렸다.[3] 이들은 환자들을 저주하고 있는 마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호밀가루와 두 소녀의 소변으로 반죽한 '마녀의 빵'을 개에게 먹이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의 추궁에 두 소녀는 남아메리카계 노예 출신 하녀인 티투바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두 소녀는 이후 패리스 목사에게 구걸하러 온 세라 굿과 1년이 넘도록 교회에 나가지 않는 병든 노파 세라 오즈번을 더 지목했고 사람들은 이 세 명을 고발했다. 결국 수 일간의 '조사' 끝에 티투바가 자신이 그 둘을 저주했으며 나머지 두 명이 공범이라고 진술했다.
이후 두 소녀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늘었고 애비게일 윌리엄스를 포함한 소녀들이 여러 사람을 마녀로 지목하면서 몇 개월간 마녀 재판이 진행되었다.
특히 이 광기어린 재판을 주도하고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 코튼 매더 목사였다. 당시 뉴잉글랜드 일대 식민지 청교도 도시들은 목사가 지배하는 신정 왕국들이 할거하는 곳에 가까웠는데 그 중에서도 코튼 매더는 '매더 왕조'로까지 불리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종교인 가문 출신이었다. 사실 코튼 매더는 개인적으로는 과학에 지대한 흥미를 가진 이성적인 사람으로서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종두법을 도입해 자신의 아들에게 직접 접종할 정도로 깨어 있는 사람이었으며 이른바 허깨비 증거가 재판에 도입되는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목사 왕조들은 문명이 종교에서 멀어져 타락해 간다고 여겼으며 그 역시 이 재판을 일종의 명분으로 삼아서 민중의 신앙심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특히 버로스 목사가 처형당할 때 찝찝해하던 사람들에게 '버로스는 안수받지 않았고 악마는 천사로 둔갑하기도 한다'는 근거 없는 선동을 하여 끝내 이를 관철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이후 재판의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신정 체제의 파멸에 결정타를 먹이고 말았다.[4]
마녀재판이 일어나자 세일럼의 유력 가문들은 정적을 해치우는 데 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유력가 중 하나인 퍼트넘 가[5]의 앤 퍼트넘은 딸인 앤 퍼트넘 주니어와 다른 마을 소녀들[6]과 함께 법정에서 마치 마녀의 저주라도 받은 듯한 연기를 해서 남편의 정적을 처리하려고 했다. 이 연기가 얼마나 요란했는지 다른 도시에서 구경꾼들이 몰려올 정도였다. 나중에 일이 잦아들고 나서 1706년까지 마을에 남아있던 앤 퍼트넘 주니어는 이때의 행동에 대해 공개 사과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당시 자신이 사탄에게 홀린 상태였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진심으로 참회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판 당시 무고한 사람들을 고발하면서 발작까지 했던 출중한 연기력을 보았을 때 진심으로 뉘우친 게 아니라 훗날 여론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자기한테 벌어질 공격을 모면하기 위해 가식적으로 눈물을 연기하면서 벌인 쇼일 가능성도 있다. 앤 퍼트넘 주니어는 그때 부모가 이미 사망했고, 남은 형제자매들을 세일럼에서 계속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사과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의심스럽다.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당사자들은 사건 이후 다른 곳으로 이사가서 결혼도 하고 천수를 누렸다. 애비게일 윌리엄스만 일찍 죽었을 뿐이다.
결국 여자 13명, 남자 6명이 교수형에 처해졌고 남자 한 명은 압살당했다.[7] 주민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온 도시가 불안에 떨었지만 세일럼 내부에서는 도저히 분위기를 진정시킬 수 없었고 견디다 못한 세일럼 주민 일부가 외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1692년 10월 마침내 매사추세츠 총독 윌리엄 핍스(William Phips) 경[8]이 허깨비를 증거로 채택함을 금지하고 곧 세일럼의 마녀 재판 법정을 해산시켰으며 10년 뒤에는 세일럼에서 있었던 마녀 재판을 불법으로 선언했다. 덤으로 이전에 재판으로 죽은 사람들도 사면받았다.
3. 영향
유럽의 마녀사냥 전성기와 비교하면 매우 뒤늦은 시기로, 본토인 유럽마저도 그런 것이 없었던 시기에 터진 만큼 후폭풍도 컸다. 이 사건은 마을 전체를 광풍으로 휘몰았기 때문에 재판이라는 행정적 절차보다는 세일럼이라는 마을 공동체 전체에 눈을 돌려야 한다. 당시 사정을 다룬 논문이나 책이 많지는 않으나 꾸준히 나온다. 미국의 초창기 이주민들의 주류였던 청교도들이 본토 유럽의 기독교인들보다도 더 열렬한 신자였다는 점, 영국과의 전쟁, 원주민들과의 대립, 전염병, 그로 인한 농사의 흉작, 기존에 땅을 개척했던 개척민들과 뒤이어 새로 이주한 개척민들과의 갈등 등이 유럽에선 이미 한물 간 마녀사냥 열풍이 늦게서 불어닥친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실 19~20세기 초엽에도 미국은 기독교 문화와 청교도 금욕주의가 유럽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회였다. 여담으로 지금도 미국은 유럽에 비해 보수적인 면이 많지만 이는 세속화된 북부 청교도보다는 남부의 복음주의 교회의 근본주의 사상의 영향이 크다.미국 정부나 반미활동위원회는 '세일럼의 마녀들'이 매카시즘 비판을 위해 쓰여진 것을 알고 불쾌해했지만 1957년 매사추세츠 주정부가 1692년 세일럼에서 있었던 마녀 재판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악마나 영혼 따위의 종교적, 초자연적 현상을 재판에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교훈과 증거의 여왕이라는 자백도 고문으로 인한 것이면 무효로 해야 하고 자백이나 다른 사람의 증언도 객관적 물증의 뒷받침 없이는 확실한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는 증거주의재판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 사례로 흔히 인용된다.
4. 창작물
- 러브크래프트는 1938년에 출판한 ≪네크로노미콘의 역사'(History of the Necronomicon)≫에서 세일럼 재판도 마치 네크로노미콘으로 말미암은 일인 것처럼 지나가듯이 언급했다.[9] 또 아캄의 모델이 세일럼이며 지리상으로도 두 지역은 가깝다.
- 이에 대해 가장 강하게 비판한 작가가 너새니얼 호손이다. 그의 고조부가 바로 이 마녀 재판의 판사였는데 그는 할아버지가 저지른 이 일을 평생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인 ≪주홍 글자≫, ≪영 굿맨 브라운(Young Goodman Brown)≫, ≪메리 마운트의 5월제 기둥(The Maypole of Merrymount)≫ 등의 작품에서 개인을 억압하는 청교도 사회의 경직성이 잘 드러난다. 심지어 이 사람은 할아버지가 저지른 짓 때문에 아예 성까지 갈아 버렸다. 호손의 성은 본래 Hathorne이었는데 여기에 w를 추가해서 Hawthorne로 바꾸었다고 한다.
-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는 매카시즘 선풍[10]을 보고 '시련'이라는 희곡을 썼는데 장폴 사르트르가 이를 기초로 쓴 시나리오가 1957년에 레몽 룰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1996년 니컬러스 하이트너가 감독한 크루서블의 시나리오는 밀러 자신이 직접 쓰기도 했다. 뮤지컬 마녀사냥도 세일럼의 마녀들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인데 초연된 다음 해에 퓰리처 상을 받았다. 남을 파멸시키기 위해 악마가 되어가는 인간 군상의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2014년 이 희곡을 기초로 한 미드 'Salem'이 방영되었다.
- 마리즈 콩데는 세일럼 마녀 재판에서 잊혀졌던 마녀로 지목되어 희생이 되었던 남미 흑인 노예 티투바를 그린 소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를 썼다.
- 호러 영화 제인 도에서 시체가 온 출처인데 마녀로 지목되어 고문받고 각종 의식으로 봉인당한 채 묻힌 시체가 미국 전역을 떠돌아 다니면서 죽음을 불러온 것으로 묘사되었다.
- 1993년 영화 호커스 포커스는 주인공 마녀 위니프레드 샌더슨, 메리 샌더슨, 세라 샌더슨 자매가 1693년 세일럼에서 마녀재판을 통해 교수형당한 뒤 300년이 흘러 1993년의 세일럼에서 다시 살아나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세일럼에서 촬영도 진행되었다.
- 안야 테일러 조이 주연의 영화 더 위치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등장하며 당대 사람들이 느꼈을 광기와 공포, 두려움, 슬픔이 굉장히 상세하게 묘사돼있다. 소품과 의상 등 시대를 잘 고증한 미술로도 유명하니 관심 있다면 꼭 감상을 권한다.
- 폴아웃 4는 세일럼을 포함한 보스턴 광역권이 배경으로, 본 사건을 소재로 한 '마녀 박물관'이 등장한다.[11] 마녀 박물관은 유저들이 꼽은 작중 최고의 호러 스팟 중 하나로 꼽힌다. 주인공도 본인 지역의 역사를 아는지 퀘스트 중 증거도 없이 의심하고 들쑤시며 다니는 사람을 비꼬며 말하는 대사가 "우리는 사실 세일럼에 살고 있었던 거구나! 이 마녀사냥 같은 여러가지 짓거리들이 이제야 말이 되네!" 라며 짜증낸다.
- 해리 포터 시리즈에선 설정상 진짜 마녀 2명이 여기 휘말려 죽었으며 이를 계기로 미국 마법사회는 머글과의 접촉을 법(1965년 폐지)으로 금했다고 한다. 최소 90년대까지 미국 마법사회에 '세일럼 마녀 협회'라는 조직이 있을 정도.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1693년 이후 마법사회 최대 노출 위기라는 신문기사가 나오는데 연도상 이 사건으로 보인다. 그와는 별개로 마녀 재판에서 오히려 화형 과정을 마법사들이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12]
-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 3에서 주제로 다루었다.
- Fate/Grand Order의 1.5부 4장 금기강림정원 세일럼의 배경. 애비게일도 등장한다.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타이탄 코믹스 연재 만화 '어쌔신 크리드: 어쌔신즈(Assassin's Creed: Assassins)'에서는 세일럼 마녀 재판 자체가 세일럼의 암살단원들을 색출해 처형하고자 템플 기사단이 부린 수작이라고 나온다. 세일럼 마녀 재판의 주도자들인 새뮤얼 패리스 목사와 마녀 재판 재판장 윌리엄 스타우턴 모두가 영국 지부 쪽 템플 기사단원이라는 설정.
- 머더드: 소울 서스펙트는 이것을 주 소재로 다룬 게임이다.
- 디모인급 중순양함 2번함 USS 세일럼의 부대 패치는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마녀 도안으로 그려졌다.
- 미드 타임리스의 한 에피소드로 다뤄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역사를 고쳐 자기들 입맛대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의 조직이 마녀 재판에 숟가락을 얹어서 원래 역사에선 고소당하지 않은 여인을 마녀로 몰아 죽게 하려고 하는데 이 여자가 그 해를 기준으로 14년 후 벤자민 프랭클린을 낳을 여자였고 주인공들이 이걸 막으려고 고군분투한다.
-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2부인 리틀 호프는 세일럼 마녀 재판에서 소재를 따 온 것으로 보인다.
- 아담스 패밀리 2의 주인공 가족의 첫 행선지는 세일럼이었다. 고메즈 생각에 마녀의 도시이기 때문에 희생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 세일럼 1692 -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보드게임. 플레이어 중 진짜 마녀가 섞여 있고 마녀를 골라 잡아내는 마피아 게임. 명목상 마피아게임이지만 진행을 하다보면 단서로 추리하기보단 진짜 마녀사냥처럼 아무나 대충 몰아가 처형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는 경우가 많다.
[1] 독립선언문 발표는 1776년에 있었으며 미국이 독립국으로 완전히 인정받은 것은 1783년 파리 조약 이후다.[2] 오늘날 댄버스(Danvers)라고 불리는 곳으로, 세일럼 시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3] 로절린 섄저 지음, 김영진 옮김, 『세일럼의 마녀들』, 파주, 서해문집, 2013, p.25. 과학적 원인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맥각균에 오염된 호밀빵을 먹고 맥각 중독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설, 원주민 공격에 대한 집단 히스테리라는 설, 일종의 뇌염이 유행했기 때문이라는 설 등 의견이 많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질병 등이 원인이 아니라 순수하게 질투와 광기가 발작의 원인이었다고(=정신질환) 주장하기도 한다.[4] 매더 본인도 당대 높았던 명성을 크게 깎아먹은 것은 물론이고 생전에도 비판을 받았다.[5] 훗날 이 집안에서 이스라엘 퍼트넘이 미국 독립전쟁에서 장군으로 활약한다.[6] 사건의 발단이 된 새뮤얼 패리스의 딸 엘리자베스 패리스, 메리 월콧, 머시 루이스, 애비게일 윌리엄스.[7] 법정에 출두하는 걸 거부하다 강제로 끌려가 가슴에 바위를 올리는 린치를 당했는데 이틀 동안이나 고통받다가 죽었다. 혐의는 마녀 집회에 음식을 제공했다는 것이었다고. 이 남자는 자신이 고문에 못 이겨 마녀 혹은 마귀의 끄나풀이라는 허위자백을 하면 자신의 전 재산이 압수당한다는 사실 때문에 끝까지 허위자백을 하지 않고 죽었는데 사후 재산은 빼앗기지 않고 가족에게 상속되었다.[8] 생몰년 1651-1695. 향년 44세. 1692년부터 94년까지 매사추세츠의 첫 번째 총독으로 재임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국법으로 임명된 총독이 있었다.[9] 해당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500~1550년 사이에 이탈리아에서 출판된 (네크로노미콘의) 그리스어 판본은 1692년에 어느 세일럼 주민의 장서실에서 불타 소실되었다고 보고되었다." 1692년 세일럼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세일럼 재판을 가리킴이 분명하다.[10] 밀러는 매카시즘으로 고생한 바 있다.[11] 문서 상단 사진의 저 건물 맞다. 배경이 배경인 만큼 폐허가 된 상태로 등장.[12] 설정상 진짜 마법사들은 '화염 저항 마법'이 있었기 때문에 진짜 잡혀서 화형당해도 불이 간지러운 수준으로 약해지게 하거나 도망도 칠 수 있었으므로 그 간지러운 감각을 즐기는 케이스도 있었고 어떤 괴짜 마법사는 그 감각을 즐기기 위해 수십 번이나 신분을 바꿔 가며 고의로 잡히고 다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