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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티니아 왕국 11대 군주 Σωκράτης ό Χρηστός | 소크라테스 크레스투스 | ||
제호 | 한국어 | 소크라테스 크레스투스[1] |
그리스어 | Σωκράτης ό Χρηστός | |
영어 | Socrates Chrestus | |
존호 | 바실레프스 | |
별명 | 크레스투스(Chrestus: 선한 자) | |
생몰 년도 | 미상 ~ 기원전 89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91년 ~ 기원전 8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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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티니아 왕국 11대 군주.2. 생애
비티니아 왕국 제9대 군주 니코메데스 3세가 시지코스 출신의 정부 하그네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이다. 이복형으로 니코메데스 4세가 있었고, 이복누이로 니사가 있었다. 아버지는 하그네와 그에게 500달란트를 주고 키지코스로 보내 그곳에서 살게 했다. 기원전 94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이복형 니코메데스 4세가 비티니아의 새 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니코메데스 4세는 통치 능력이 부족하고 성격이 우유부단해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그러던 기원전 91년, 폰토스 왕국의 군주 미트리다테스 6세는 로마가 동맹시 전쟁을 치르느라 대외 상황에 제대로 신경쓰지 못하는 틈을 타 비티니아를 곧장 침공하여 니코메데스를 몰아내고 그를 새 왕으로 세웠다. 여기에 카파도키아 왕 아리오바르자네스 1세를 폐위시키고 자신의 사생아 아리아라테스 9세를 카파도키아 왕으로 앉혔다.
로마는 이 일에 반발하여 그와 아리아라테스 9세의 즉위 승인을 거부하고 니코메데스 4세와 아리오바르자네스 1세를 복위시키라고 요구했다. 기원전 89년 로마 사절 마니우스 아퀼리우스가 폰토스에 찾아와 복위를 이행하지 않으면 전쟁을 각오하라고 경고했다. 아직 로마와 싸울 준비가 안 되었던 미트리다테스 6세는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유스티누스에 따르면, 미트리다테스는 로마의 환심을 사려고 폰토스로 망명한 소크라테스를 죽였다고 한다.
[1] 현대 그리스어로는 소크라티스 흐레스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