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11 04:37:39

니코메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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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티니아 왕국 3대 군주
Νικομήδης | 니코메데스 1세
파일:니코메데스 1세.jpg
제호 한국어 니코메데스 1세
그리스어 Νικομήδης
영어 Nicomedes I
존호 바실레프스
생몰 년도 미상 ~ 기원전 255년
재위 기간 기원전 278년 ~ 기원전 255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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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티니아 왕국 3대 군주.

2. 생애

비티니아 왕국 초대 군주 지포에테스 1세의 장남이다. 형제로 지포에테스 2세 등 3명이 있었다. 기원전 278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왕위를 독차지하기 위해 형제 2명을 살해했다. 이후 비티니아 왕국의 트라키아령을 다스리던 동생 지포에테스 2세에게 영토를 자신에게 넘기지 않으면 응징하겠다고 협박했다. 지포에테스 2세는 이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켜 비티니아 일부 원주민들의 호응을 받았으며, 셀레우코스 제국안티오코스 1세의 지원을 받았다. 이에 맞서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지원을 받았다. 안티오코스 1세는 소아시아 서부 지역의 시트라프 파트로클로스에게 비티니아 침공을 명령했지만, 파트로클로스는 니코메데스 1세에게 패하고 목숨을 잃었다.

기원전 276년, 동생을 끝장내기 위해 레온노리오스와 투타리오스가 이끄는 켈트인들을 소아시아로 초대했다. 그들은 곧장 소아시아로 진격해 지포에테스 2세를 살해했고, 비티니아 전역을 장악했다. 그가 불러들인 켈트 족이 소아시아 일대를 유린하는 사이, 그는 켈트인들과 일찌감치 동맹을 맺고 왕국을 평화롭게 다스렸다. 그는 아스타코스(Ἀστακός)라는 소도시를 대대적으로 증축하고 니코메디아라는 명칭을 붙여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니코메디아는 훗날 소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서 6세기 이상 번영한다.

그는 두 번 결혼했다. 프리기아 출신의 첫 번째 아내인 디티젤리에게는 아들 지아일라스와 프루시아스, 딸 리산드라를 두었다. 첫번째 아내가 사망한 뒤 두번째 아내로 에타제타를 맞이했다. 에타제타는 그를 설득해 첫번째 아내의 자녀들을 제쳐두고 자신의 자녀 중에서 후계자를 고르게 했다. 기원전 255년 그가 사망했을 때, 에타제타의 아들 지포에테스 3세가 후계자로 지명되었지만 아직 유아였기에 에타제타가 섭정 여군(女君)이 되었고 안티고노스 2세프톨레마이오스 2세, 자유도시인 헤라클레아 폰티카, 비잔티움, 키우스가 후견인을 맡았다. 그러나 지아일라스가 이에 반발하여 기원전 254년 쿠데타를 일으켜 계모와 이복동생들을 몰아내고 새 군주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