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2대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2세 Ptolemy II Philadelphus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 프톨레마이오스 2세 Πτολεμαῖος | Ptolemy | |
출생 | 기원전 309년 | |
고대 그리스 코스 섬 | ||
사망 | 기원전 246년 1월 28일 (향년 62-63세) |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
재위 기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284년 ~ 기원전 246년 (약 38년) | ||
전임자 | 프톨레마이오스 1세 | |
후임자 | 프톨레마이오스 3세 | |
부모 |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어머니: 베레니케 1세 | |
배우자 | 아르시노에 1세, 아르시노에 2세 | |
자녀 | 프톨레마이오스 3세 | |
종교 | 이집트 다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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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2대 파라오. 내정을 잘 닦아 국가의 번영을 이끌었지만 외정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2. 생애
2.1. 즉위 이전의 행적
기원전 309년경, 에게 해의 코스 섬에서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 네번째 부인 베레니케 1세의 아들로 출생했다. 두 누이 아르시노에 2세와 필로테라를 두었다. 그는 코스 섬에서 필리타스와 람파쿠스의 스트라토 등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고급 교육을 받았다. 당시엔 이복형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1]가 유력한 왕위 계승권자였지만, 그가 자라나면서 두 이복형제 사이의 치열한 권력다툼이 벌어졌다.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장고 끝에 기원전 287년경 베레니케 1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를 후계자로 삼기로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는 소아시아 서부와 트라키아, 마케도니아의 지배자 리시마코스에게 망명했다. 기원전 284년 3월 28일,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아들 프톨레마이오스를 파라오로 선포했다. 이후 아버지와 함께 공동 파라오로서 나라를 이끌다가 282년 부친이 사망하면서 단독 파라오가 되었다.
2.2. 누이와 결혼하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단독 파라오가 된 직후 강력한 경쟁자인 케라우노스의 일가족을 처형했고, 리시마코스에게 케라우노스를 이집트로 압송하라고 요청했다. 당시 리시마코스는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누이 아르시노에 2세를 아내로 두었고, 후계자 아가토클레스를 케라우노스의 여동생 리산드라와 결혼시켰다. 그는 어느 한쪽과 관계를 끊기를 원치 않았기에, 케라우노스를 이집트로 보내지 않는 대신 자신의 딸 아르시노에 1세를 프톨레마이오스 2세와 결혼시키기로 하였다.그런데 얼마 후, 리시마코스가 아가토클레스를 처형하면서 민심이 동요했고, 셀레우코스 1세가 이 때를 틈타 소아시아 서부로 쳐들어가서 리시마코스를 죽이고 그의 영토 전체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이에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아내가 쓸모없어졌다고 판단하여 기원전 275년 자신을 몰아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이유로 아르시노에 1세를 콥토스로 추방한 뒤 기원전 273년경 아르시노에 2세와 결혼했다. 그는 이러한 조치로 인해 '필라델포스(Philadelphus: 형제를 사랑하는 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고대 이집트에선 형제자매 및 부모와 자녀의 결혼은 왕실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전통이었지만, 그리스인들에겐 무척 낯설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정적들은 이 일을 빌미삼아 그를 비난하였고, 시인 소타데스는 그의 결혼을 조롱했다가 암살당했다. 반면 궁중 시인들은 "제우스께서도 누나 헤라와 결혼하지 않았느냐?"라며 파라오를 옹호했다. 이후 후대 파라오들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선례를 따라 근친결혼을 이어갔다.
2.3. 훌륭한 내치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즉위 직후 아버지를 신격화했으며, 아버지가 시작한 알렉산드로스 3세의 숭배를 국가 숭배로 전환하여 매년 정해진 때에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 알렉산드로스 3세를 기리는 축제를 개최하도록 하였다. 또한 자신과 아르시노에 2세를 '테오이 아델포이(Theoi Adelphoi 형제 신)'의 현신으로 승격시켰으며, 또다른 누이 필로테라 역시 신으로 숭배받게 하였다. 심지어 자신의 정부인 빌리슈테 역시 아프로디테와 동일시되었다. 그는 왕국 곳곳에 신전을 건설했으며, 고대 이집트 종교를 국교로 삼고 사제들을 후원했다.이렇듯 왕권 강화와 국가 종교 정립에 매진하는 동시에, 행정 방면에도 힘을 기울었다. 수도 알렉산드리아에는 '파라오의 친구들'이라는 특별한 계층에서 뽑힌 관료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에피스토로가라포스(epistolographos: '편지 작성자'. 외교 담당), 히포네마토그라포스(hypomnematographos: '메모 작성자'. 수석 비서), 에피톤 프로스타그마톤(epiton prostagmaton: '명령을 담당하는 자', 왕실 칙령 초안 작성)이 포함되었다. 또한 디오이케테스(dioiketes)가 제국 전역에서 세금을 거둬들이고 재정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한 이집트 전역을 '노메스(nomes)'로 불리는 39개의 구역으로 나누었고, 각 구역에는 농업 생산을 담당하는 노마치(nomarch), 재정을 담당하는 오이코노모스(oikonomos), 토지 측량과 기록 보전 임무를 맡은 바실리코스 그라마테오스(basilikos grammateus)를 두었다. 이 세 관리들은 국왕이 파견한 세금 관리인 디오이케테스(dioiketes)의 관리를 받았으며, 각자 동등한 지위를 유지하였다. 각 마을에는 코마치(komarch)와 코모그라마테오스(komogrammateus)가 있었는데, 이들은 각각 노마치와 바실리코스 그라마테오스에게 보고했다. 여기에 각 노모스마다 장군 한 명이 이끄는 군대가 주둔했다.
기원전 259년 거듭된 전쟁으로 세금을 보다 체계적으로 거둬들여야 할 필요성이 커지자 <세입법 파피루스>로 알려진 법령을 반포했다. 이 법령은 이집트 전체를 조사해 토지, 관개 시설, 수로 및 삼림의 양과 징수할 수 있는 소득 금액을 파악하고, 각 분야별로 특정 세금을 지정했다. 그 결과 제국은 세금을 보다 효율적으로 거둬들여서 다른 경쟁국가들을 능가하는 재정 수입을 기록했다. 또한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기원전 253년에 파이윰의 모에리스 호수 인근의 늪지대를 개간하여 군인들에게 분배하기도 했다.
그는 대외 관계에도 힘을 기울였다. 시칠리아 섬 동부 시라쿠사의 왕 히에로 2세와 우호관계를 유지해, 양국의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했다. 이 시기에 아르키메데스가 이집트를 방문하여 수학과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서쪽의 카르타고와도 가급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기원전 273년 사절을 로마에 보내 친선 관계를 맺었다. 기원전 26년 제1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는 양자중 한 쪽을 돕지 않고 중립을 유지했다. 대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에도 디오니시오스라는 이름의 사절을 보내 양국의 무역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이렇듯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국가들과 가급적 잘 지내려 노력했고, 그들과의 무역을 지원해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한편,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다리우스 1세에 의해 건설되었지만 당시에는 방치되어 있었던 수에즈 운하를 복구하게 했고, 홍해 해안을 따라 270개의 항구 기지를 건설하게 했다. 이중 일부는 중요한 상업 중심지로 성장했다. 그리고 코끼리를 포획하는 기지로 활용하고자 홍해 최남단에 프톨레마이오스 테론을 설치해, 전투 코끼리를 지속적으로 충원하는 동시에 주요 무역품목인 상아를 확보하도록 했다. 또한 홍해 동쪽 해안에 베레니케와 암펠로네 시를 건설하고, 나바테아인과 교역하도록 했다.
2.4. 성공과 실패가 교차한 외치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국가들을 상대로 군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기원전 275년, 이집트 남쪽에 있는 누비아를 침공하여 누비아의 북부 일부 지역을 공략했다. 이 영토에 속한 와디 알라키에는 풍부한 금광이 있었는데,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여기에 베레니케 판크리소스라는 도시를 세워서 광산을 개발하도록 했다. 이 지역의 금 생산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번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기원전 275년 말, 안티오코스 1세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기습 공격해 다마스쿠스를 탈취하고, 여세를 몰아 시리아 해안과 아나톨리아 남부를 점령했다. 이에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기원전 274년 반격에 나서 빼앗긴 영토를 되찾고 오히려 카리아와 시리아 대부분을 공략했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시리아에 가있는 동안 키레나이카의 총독이었다가 276년에 왕을 칭했던 마가스가 아내의 설득을 받아들여 독립을 선포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어쩔 수 없이 이집트로 돌아가서 키레나이카의 반란을 진압한 뒤, 안티오코스 1세가 이집트 본토를 침략하는 걸 막고자 나일 삼각주 동부 전선의 방어를 강화했다. 하지만 셀레우코스 왕조 역시 국내 사정이 좋지 않아서 이집트를 공격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기원전 271년, 양자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선에서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기원전 272년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가 마케도니아의 왕으로서 입지를 굳히고 그리스 본토로의 진출을 꾀하자, 동부 지중해와 에게 해, 심지어 흑해까지 진출할 정도로 방대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세력이 위협받았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마케도니아의 침략으로부터 그리스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아테네,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었다. 기원전 268년 말 아테네 지도자 크레모니데스가 마케도니아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양자가 본격적으로 충돌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해군 사령관 파트로클레스는 기원전 267년, 에게 해로 항해해 케이오스 섬에 기지를 세우고 기원전 266년 아티카로 항해했다. 그는 스파르타군과 합세한 뒤 아테네를 견제하고 있는 마케도니아군을 격파하려고 했다. 그러나 스파르타군이 적에게 가로막히는 바람에 아티카로 오지 못하면서 계획은 실패했다.
기원전 265년 스파르타 왕 아레우스 1세는 코린토스 지협을 건너 마케도니아군에게 포위당한 아테네를 도우려 했지만, 안티고노스 2세가 그들을 격파했다. 프톨레마이오스 해군 역시 적 해군에게 가로막혀 아테네에 물자를 공급해주지 못했다. 아테네는 프톨레마이오스 2세에게 육군을 보내달라고 청원했지만, 그는 끝까지 응하지 않았다. 결국 기원전 261년 초, 아테네는 안티고노스 2세에게 항복했다. 이리하여 그리스에서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기원전 261년, 안티오코스 1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휴전을 파기하고 시리아 해안 도시들을 공략했다. 이에 안티오코스 2세는 마케도니아 왕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와 연합하여 에게 해에서 프톨레마이오스군을 몰아내기 위한 군사 작전을 실시했다.(제2차 시리아 전쟁) 안티고노스 함대는 코스 해전에서 프톨레마이오스 함대를 격파하고 코스 섬을 공략했으며, 안티오코스 2세는 팜필리아와 이오니아, 밀레투스, 에페소스를 공략한 뒤 이집트 본토로 쳐들어갈 태세를 갖추었다. 기원전 257년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반격에 나서 시리아 일부를 공략했다. 여기에 코린토스와 칼키스를 선동하여 마케도니아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이에 안티고노스 2세는 어쩔 수 없이 그리스로 철수했다.
게다가 안티오코스 2세가 시리아 전쟁에 열을 올리느라 동방 속주에 별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 파르티아와 박트리아에서 사트라프들이 잇따라 반란을 일으켰다. 파르티아의 사트라프 안드라고라스는 독립을 선포했고, 박트리아 총독 디오도토스도 기원전 256년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권을 부정하고 자신이 왕이라고 선포했다. 상황이 이처럼 좋지 않게 돌아가자, 안티오코스 2세는 프톨레마이오스 2세와 화해하기로 하고, 아내 라오디케 1세와 이혼한 뒤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딸 베레니케와 결혼했다.
제2차 시리아 전쟁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에게 해와 그리스 본토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아카이아 동맹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그들이 마케도니아를 상대로 지속적인 위협을 가하도록 조장하였다. 한편 키레네의 마가스와 손을 잡기로 하고 그의 외동딸 베레니케 2세와 자신의 후계자 프톨레마이오스 3세의 결혼을 추진했다. 그러나 기원전 250년 마가스가 죽자, 베레니케의 어머니 아파마 2세는 약혼을 취소하고 마케도니아 왕자 데메트리오스를 키레네로 초대하여 베레니케와 결혼시켰다. 하지만 데메트리오스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고, 키레네의 지배는 공화 정부에 맡겨졌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기원전 246년 1월 28일 자연사하였고, 아르시노에 1세와의 사이에서 낳은 장남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뒤를 이어 파라오로 등극했다.
3. 매체에서
3.1. 게임
3.1.1. 도미네이션즈
-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튜닉이 유물로 등장한다.